현모(賢母) 고사(故事) (1) 왕손가의 어머니
고대 중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낮았지만 가정내에서 자녀 교육 방면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고대에 인재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현모들의 자녀 교육이 필수적이었다. 유명한 정치가와 교육가와 사학가와 문학가 등 얼마든지 예를 들수 있다.
전국책(戰國策)– 제책육(齊策六)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가 수록되어 있다.
”왕손가(王孫賈), 전국말기제국적소년의사(戰國末期齊國的少年義士). 이자기적담략화재지(以自己的膽略和才智), 십오세취입조복시제민왕(十五歲就入朝服侍齊湣王 : BC 301년 – BC 284년).자소존봉모훈(自小尊奉母訓). 요치작반란제국(淖齒作反亂齊國), 시민왕(弑湣王), 국내대란(國內大亂), 왕손가도회가중(王孫賈逃回家中). 기모견타도반(其母見他逃返), 대매도(大罵道) : 현재국군피인살사(現在國君被人殺死), 이경파사이포회가리타장(爾竟怕死而跑回家裏躲藏),즘능대득기국가니(怎能對得起國家呢)? 아희망이능건공입업적열심(我希望爾能建功立業的熱心), 이야고부료(爾也辜負了)!” 왕손가청료모친저번화후(王孫賈聽了母親這番話後), 입즉단거좌비(立卽袒去左臂), 휴병기입시(携兵器入市), 대호도(大呼道) : ”요치저난신적자(淖齒這亂臣賊子), 시국군(弑國君), 난국가(亂國家), 인인득이주지(人人得而誅之). 수인요살탁치적(誰人要殺淖齒的), 즉근수아래(卽跟隨我來)!”불일회(不一會), 취소집료사백인(就召集了四百人), 종어파국난평정(終於把國亂平定),야파요치살요료(也把淖齒殺掉了).”
다시 말하면”왕손가는 전국시대 말기의 소년 의사(義士)이었다. 왕손가는 자신의 담력과 탁월한 지모 때문에 15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정에 들어가 제나라 민왕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어릴 때 부터 어머니의 교훈을 받들었다. 요치가 반란을 일으켜 민왕을 살해하였다. 나라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하여 왕손가는 집으로 도망하여 피난을 하였다.
그러나 왕손가의 어머니는 왕손가를 크게 꾸짖어 가로되 ”현재 민왕이 피살되었다. 그런데 너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네가 섬기던 민왕을 떠나 비겁하게 집으로 도망와서 숨어 있단 말이냐?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를 일으켜 세우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네가 열심을 다해서 공훈을 세우고 업적을 쌓기를 바라는데 너는 그러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려고 하느냐?” 고 아들에게 질책하였다.
왕손가는 어머니의 충고를 듣고 나서 즉시 팔을 걷어 부치고 병기를 휴대하고 길거리로 나아가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요치의 악당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민왕을 살해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요치를 살해하려거든 나를 따라 오십시요!” 얼마 후에 사 백명의 젊은이들이 소집되었고 왕손가는 무리를 이끌고 요치와 맞서 싸워 요치를 살해하고 국난을 평정하였다. 왕손가의 어머니는 애국충정열에 불타는 현모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다음은 현모(賢母) 고사(故事) (2) 맹자(孟子:BC372년-B289년)C의 어머니
고대 중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낮았지만 가정내에서 자녀 교육 방면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고대에 인재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현모들의 자녀 교육이 필수적이었다. 유명한 정치가와 교육가와 사학가와 문학가 등 얼마든지 예를 들수 있다.
전국책(戰國策)– 제책육(齊策六)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가 수록되어 있다.
”왕손가(王孫賈), 전국말기제국적소년의사(戰國末期齊國的少年義士). 이자기적담략화재지(以自己的膽略和才智), 십오세취입조복시제민왕(十五歲就入朝服侍齊湣王 : BC 301년 – BC 284년).자소존봉모훈(自小尊奉母訓). 요치작반란제국(淖齒作反亂齊國), 시민왕(弑湣王), 국내대란(國內大亂), 왕손가도회가중(王孫賈逃回家中). 기모견타도반(其母見他逃返), 대매도(大罵道) : 현재국군피인살사(現在國君被人殺死), 이경파사이포회가리타장(爾竟怕死而跑回家裏躲藏),즘능대득기국가니(怎能對得起國家呢)? 아희망이능건공입업적열심(我希望爾能建功立業的熱心), 이야고부료(爾也辜負了)!” 왕손가청료모친저번화후(王孫賈聽了母親這番話後), 입즉단거좌비(立卽袒去左臂), 휴병기입시(携兵器入市), 대호도(大呼道) : ”요치저난신적자(淖齒這亂臣賊子), 시국군(弑國君), 난국가(亂國家), 인인득이주지(人人得而誅之). 수인요살탁치적(誰人要殺淖齒的), 즉근수아래(卽跟隨我來)!”불일회(不一會), 취소집료사백인(就召集了四百人), 종어파국난평정(終於把國亂平定),야파요치살요료(也把淖齒殺掉了).”
다시 말하면”왕손가는 전국시대 말기의 소년 의사(義士)이었다. 왕손가는 자신의 담력과 탁월한 지모 때문에 15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정에 들어가 제나라 민왕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어릴 때 부터 어머니의 교훈을 받들었다. 요치가 반란을 일으켜 민왕을 살해하였다. 나라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하여 왕손가는 집으로 도망하여 피난을 하였다.
그러나 왕손가의 어머니는 왕손가를 크게 꾸짖어 가로되 ”현재 민왕이 피살되었다. 그런데 너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네가 섬기던 민왕을 떠나 비겁하게 집으로 도망와서 숨어 있단 말이냐?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를 일으켜 세우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네가 열심을 다해서 공훈을 세우고 업적을 쌓기를 바라는데 너는 그러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려고 하느냐?” 고 아들에게 질책하였다.
왕손가는 어머니의 충고를 듣고 나서 즉시 팔을 걷어 부치고 병기를 휴대하고 길거리로 나아가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요치의 악당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민왕을 살해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요치를 살해하려거든 나를 따라 오십시요!” 얼마 후에 사 백명의 젊은이들이 소집되었고 왕손가는 무리를 이끌고 요치와 맞서 싸워 요치를 살해하고 국난을 평정하였다. 왕손가의 어머니는 애국충정열에 불타는 현모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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