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오대시기(隋唐五代時期)의
한중(韓中) 의학교류
수당오대시기(隋唐五代時期)에 고구려,
신라, 백제에서는 수 많은 유학생들을 중국에 보내어 한의학 수업을 시켰다. 3 국 중
신라에서 제일 많은 유학생들이 중국에 건너가서 한의학 수업을 하고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한의학이 신라로 전입됨과 동시에 수당시기의(隋唐五代時期)
의사제도(醫事制度) 역시 신라에서 모방하게 되었다.
서기
693 년 신라는 의학박사 두 명으로 하여금 본초경과 갑을경과 소문과 침경과 맥경과 명당경과 난경 등 과목을
가르쳤다. 후에 신수본초 과목이 추가되었으며 당(唐) 나라 의학 교육
제도를 모방하여 실행하였다. 그후 상한론과 제병원후론과 천금방과 외대비요 등이 계속 신라로 전입되었다.
서기
796 년 당(唐) 정부에서
광리방(廣利方)을 반포하였다. 신라에서는 사신을
당(唐) 나라로 파견하여 당 정부에 관리방을 요청하여 입수하게 되었다.
한편
고구려, 신라, 백제의 의학(醫學)도 당(唐)
나라에 전수되었다.
외대비요에
보면 ”조선료각기지고구려노사방(高句麗老師方),
조재공원656년-660년(현경연간)이전중국(早在公元656-660年(顯慶年間)已傳中國),병위중국당시급이후의가광핍응용(幷爲中國當時及以後醫家廣乏應用).”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 노사방이라고 불리는 조선의 각기병 치료방은 서기 656 년과 서기 660
년 사이(제 3 대왕 高宗 :
顯慶年間)에 당 나라로 전입되었으며 당 나라 때는 물론이고 그후에도 아주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는 뜻이다.
또
증류본초(證類本草) - 위령선(威靈仙) 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정원중(唐貞元中),
고양자주군소작위령선전운(高陽子周君巢作威靈仙傳云) :
선시상주유일인환중병(先時商州有一人患重病),
족불이지수십년(足不履地數十年),
소유의사도속수무책(所有醫師都束手無策),
후우도일위신라승인고지(後遇到一位新羅僧人告知),
차질병유일약가의치(此疾病有一藥可醫治),
단부지차유부(但不知此有否)? 인차(因此),
입산구득위령선(入山求得威靈仙),
병인복후(病人服後),
수일편능보행(數日便能步行)"
다시 말하면 "당
나라 제 13 대왕 덕종(德宗 : 서기 779 년
– 서기 805 년) 정원(貞元)
연간에 고양자 주군소의 저서 위령선전에 이르기를 : 상주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렸다.
수 십년 간 발을 땅에 딛어보지 못했다. 여러 의사를 불러 치료해 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후에 우연히 신라에서 온 승려를 만났다. 신라 승려는 "당신의 질병은 한 가지 약으로
치료 가능합니다.그러나 그 약초가 여기에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 환자에게 말했다.
스님은 즉시 산으로 올라가 위령선을 구하여 환자에게 복용시켰더니 수 일 후에 걷게 되었다." 는
뜻이다.
서기 8
세기에 조선의 승려들이 중국에서 의료 활동을 활발하게 실행하였다는 것을 짐작 할수 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 19 권(卷)에 보면
”서원723년(西元723年),
당정부반행적광제방중강조응용고구려곤포치방광결기자(唐政府頒行的廣濟方中强調應用高句麗昆布治膀胱結氣者)”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서기 723 년 당(唐) 정부에서 반포 시행한
광제방속에 고구려 곤포(昆布 : 다시마)를 사용하여 방광의
기(氣)가 순조롭게 창통하지 못하고 응결되어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강조했다.”
는 뜻이다.
이로써 우리는
당대(唐代) 의가(醫家)에서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중요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신임했었다는 것을 엿볼수 있다.
당 나라 때 조선의
의방(醫方)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생산되는 인삼과 우황과 곤포와
지초(芝草) 등 약물이 계속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당(唐) 나라에서는 조선의 의방(醫方)을 깊이 연구하고 보귀적인
임상경험을 입수하려고 애를 섰다.
본초습유에 보면 신라에서 생산되는
남등근(藍藤根)과 대엽조(大葉藻)와 곤포 등이
수록되어 있고 해약본초(海藥本草)에 보면 신라의 부자(附子)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외 해동역사(海東繹史) 26
권(卷)에 보면 신라에서 생산되는 명귀 약재
토과(土瓜)와 해석류(海石榴)와
해홍화(海紅花)와 가자(茄子)와
석발(石發)과 해송자(海松子)와
도인(桃仁)과 진자(榛子 :
개암)와 올내제(腽肭臍 :
海狗腎)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수당(隋唐)
시기 중 특히 당(唐) 나라 때 조선과 당(唐) 나라의 의약 교류는
빈번했으며 성황(盛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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