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 나라 때
공주(公主)들의 결혼 생활
공주(公主)는 임금의 딸이며
급지옥엽(金枝玉葉)이라고도 부른다.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공주의 생활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역대 공주(公主)들의
혼인 생활은 일반 백성들 보다 더 고뇌가 많았다.
청(淸) 나라 때 공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초(淸初) 부터 봉건적
예교(禮敎)를 답습했다. 그래서 공주들은
부도(婦道)를 준수해야 했기 때문에 시부모를 잘 섬기고 공경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공주들은 왕가의 지고(至高)한 체통을 지켜야만 했다. 시부모를
만날 때 임금을 만나는 것 처럼 군신지예(君臣之禮)를 갖추어야 만 하였다.
사위는 물론 양쪽 부모들에게 효도해야 되고 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
공주는 궁내에 혼자 살아야 했다. 공주의 남편인 사위가 공주를 만나고 싶으면 먼저 연락을 하고 만나야
한다.
또 공주가 자기 남편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반드시 공주의 보모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보모는 지위상 시비(侍婢)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노보모(老保姆)는
다년간 궁내에서 보모(保姆) 노릇을 해왔기 때문에 신임을 얻고
있다.
보모들의 권력은 미약했지만 봉건적 예교(禮敎)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봉건 시대의 여자들은 유약하고 수집어 하였다. 또 봉건시대 황실
가정에서는 보모들이 예법과 각종 규율을 공주들에게 가르치고 강의도 했다. 보모들은 이러한 특권도 가지고
있었다.
공주가 자기 남편을 만나고 싶으면 그때 마다 뇌물을 보모에게 주어야 만 했고 보모들은 그때 마다 뇌물을 공주들로 부터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만일 공주가 보모에게 건내준 뇌물이 보모의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공주는 남편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만일 보모의 생각과 주장이 과격하다든지 성격이 가혹하거나 냉혹할 경우 공주와 공주의 남편이 서로 만나서
좋은 날을 보내지 못하게 된다. 이 처럼 청 나라 때 공주들의 생활에 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청(淸) 나라 제 8 대왕
선종(宣宗 : 서기1821년 -
서기1850 년)의 대공주(大公主)는
출가 후 성격이 엄격한 보모에 의하여 여러 차례 신랑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다. 결혼 후 1
년 동안이나 신랑을 만날 수 없었다.
도광(道光) 황제의 대공주는 고통을 참다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아버지께 가서 통곡하며 신랑을 만날 수 없는 경위를 알려드렸다. 도광 황제는 딸의 형편을 이해하고 나서
보모의 허락없이 자유자재로 신랑을 만날 수 있게 하락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도광(道光) 황제의 대공주(大公主)는
청(淸) 나라 때 가장 행복한 공주로 이름이 남아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