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4일 토요일

현모(賢母) 고사(故事) (6) 여몽정(呂蒙正)의 어머니

현모(賢母) 고사(故事) (6) 여몽정(呂蒙正)의 어머니
송대적여몽정(宋代的呂蒙正), 지명대신야(知名大臣也), 야인자모제휴(也因慈母提携), 시성대기(始成大器). 초몽정상유년(初蒙正常幼年), 기모여기부뇨이혼(其母與其父離婚). 기모열쟁몽정(其母力爭蒙正), 귀기무양(歸己撫養). 기부화족중인명언(其父和族中人明言), 여개가별성(如改嫁別姓), 직장자귀환여씨(則將子歸還呂氏). 기모입지안빈교자(其母立志安貧敎子), 절불개가(絶不改嫁),일면이홍도일(一面以紅度日), 일면교자독서(一面敎子讀書). 몽정장대후(蒙正長大後), 고중장원(考中壯元), 삼입위상(三入爲相). 영귀후부단경봉모친(榮歸後不但敬奉母親), 환대기부친가이조고니(還對其父親加以照顧呢)!”
다시 말하면 송 나라 때 여몽정(서기 946 서기 1011)은 명대신(名大臣)으로 알려져 있고 여몽정이 큰 인물로 성장한 배후에는 여몽정 옆에 현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몽정이 어릴 때 몽정의 부모는 서로 의견이 틀려 이혼하였다. 여몽정의 양육권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여몽정의 어머니가 여몽정을 데리고 나와 잘 양육하였다. 그 당시 여몽정의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시집 식구들은 여몽정의 어머니에게 만일 개가하드래도 여몽정의 성씨 만은 개명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여몽정의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여몽정을 가르쳤으며 개가하지도 않았고 개명하지도 않았다. 여몽정의 어머니는 남의 집 바느질을 해주고 받은 품싻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살아갔다. 여몽정이 성인이된 후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였고 그후 세 번이나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랐다. 여몽정은 어머니를 끝까지 보살펴 주었으며 후에 아버지도 보살펴 주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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