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賢母) 고사(故事) (6) 여몽정(呂蒙正)의 어머니
“송대적여몽정(宋代的呂蒙正), 지명대신야(知名大臣也), 야인자모제휴(也因慈母提携), 시성대기(始成大器). 초몽정상유년(初蒙正常幼年), 기모여기부뇨이혼(其母與其父闹離婚). 기모열쟁몽정(其母力爭蒙正), 귀기무양(歸己撫養). 기부화족중인명언(其父和族中人明言), 여개가별성(如改嫁別姓), 직장자귀환여씨(則將子歸還呂氏). 기모입지안빈교자(其母立志安貧敎子), 절불개가(絶不改嫁),일면이홍도일(一面以紅度日), 일면교자독서(一面敎子讀書). 몽정장대후(蒙正長大後), 고중장원(考中壯元), 삼입위상(三入爲相). 영귀후부단경봉모친(榮歸後不但敬奉母親), 환대기부친가이조고니(還對其父親加以照顧呢)!”
다시 말하면 ”송 나라 때 여몽정(서기 946 년 – 서기 1011년)은 명대신(名大臣)으로 알려져 있고 여몽정이 큰 인물로 성장한 배후에는 여몽정 옆에 현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몽정이 어릴 때 몽정의 부모는 서로 의견이 틀려 이혼하였다. 여몽정의 양육권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여몽정의 어머니가 여몽정을 데리고 나와 잘 양육하였다. 그 당시 여몽정의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시집 식구들은 여몽정의 어머니에게 만일 개가하드래도 여몽정의 성씨 만은 개명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여몽정의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여몽정을 가르쳤으며 개가하지도 않았고 개명하지도 않았다. 여몽정의 어머니는 남의 집 바느질을 해주고 받은 품싻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살아갔다. 여몽정이 성인이된 후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였고 그후 세 번이나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랐다. 여몽정은 어머니를 끝까지 보살펴 주었으며 후에 아버지도 보살펴 주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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