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일 금요일

삼국양진남북조(三國兩晉南北朝時代 : 서기 190 년 – 서기 581 년) 한(韓) 중(中) 의학교류(醫學交流)

삼국양진남북조(三國兩晉南北朝時代 : 서기 190 서기 581 ) () () 의학교류(醫學交流)


양진(兩晉) 남북조 시대부터 한() () 사이의 의(), (), 위생 방면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였다. 서기 4 세기 중엽 중국 승려 순도(順道)와 아도(阿道)와 마라난타(摩羅難陀)와 묵호자(墨胡子) 등이 한문으로 번역된 인도의 불경(佛經)을 가지고 조선으로 들어갔다.


동진(東晉) 8 대왕 간문제(簡文帝) (서기 372 , 고구려 소수림왕 2 )에 고구려로 먼저 들어갔고 그후 서기 384 년 동진의 제 9 대왕 무제(武帝) 때 백제로 들어갔으며 서기 442 년 남조(南朝) 유송(劉宋)의 제 3 대왕 문제(文帝) 때 신라로 각각 들어갔다.


이들은 불전(佛典) 오명(五明) 속에 있는 의방명(醫方明)을 보고 의약으로 시술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3 ()에 보면 순도조려(順道肇麗), 아도기라(阿道基羅).”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순도가 맨 처음으로 고구려에서 시작하였고 아도는 신라에서 시작하였다.” 는 뜻이다.


그 당시 중국 승려 순도와 아도와 마라난타와 묵호자는 의료 시술을 시행하였으며 궁정(宮廷) 출입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불교를 전파하고 또 한편으로는 의술을 폈다. 그리하여 그 당시 고구려 신라 백제에서는 승려의학(僧侶醫學)이 성행하였다.


얼마 후에 갈홍(葛洪 : 서기 281 - 서기 341 )의 주후방(肘后方)과 도홍경(陶弘景 : 서기 456 서기 536 )의 본초경집주가 계속적으로 전입되었다. 중국의 양생법과 연단술(丹術)과 연금술(金術)을 조선에서는 선도술(仙道術)이라고 칭했다.


도홍경의 본초경집주에 보면 금설(金屑), 벽악이유독(辟惡而有毒, 불연복지살인(服之殺人, 고구려성기연숙가복(高句麗成器熟可服).”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금속 가루는 독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잘 연단하지 않은 것을 복용하면 죽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연단한 금속은 복용해도 아무런 탈이 없었다.” 는 뜻이다.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에 보면 백제파갈씨주후방적치폐옹방화치정방수재어백제신집방리(百濟把葛氏肘后方的治肺癰方和治丁腫方收載於百濟新集方裏).”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백제신집방 속에 갈홍의 폐옹 치료방과 정종 치료방이 수록되어 있다.” 는 뜻이다.


또 주서(周書)에 보면 백제병유궁전(百濟兵有弓箭), 도초(刀梢), 기수이자파해문(其秀異者頗解文), 우해음양오행(又解陰陽五行), 우해의약복무점상지술(又解醫藥卜巫占相之術).”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백제의 군사들은 활과 화살과 창과 칼을 가지고 있고 재능과 지혜가 유달리 우수하며 음양오행을 이해고 있고 또 의약을 이해하며 점도 칠줄 알고 관상도 볼 줄 안다.” 는 뜻이다.


일본 고적문화대계(古籍文化大系)에 보면 오인지총휴내외전본초경(吳人知聰携內外典本草經), 명당도등164권의약서부일(明堂圖等164卷醫藥書赴日), 도중로경고구려(途中路經高句麗), 재고구려전수료한의학(在高句麗傳授漢醫學).”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오나라 사람 지총은 불교의 내전(內典)과 외전(外典)과 본초경과 명당도 등 164 권의 의약책을 가지고 일본을 향하여 가던 중 고구려에 머물며 고구려 사람들에게 한의학을 전수했다.” 는 뜻이다.


또 김투종(金鬪鐘)의 한국의학사에 보면 백제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의사제도(醫事制度)를 모방하여 의자(醫者)와 약자(藥者)를 구분하여 태의승(太醫丞)과 약장승(藥藏丞)의 제도를 두었고 의박사(醫博士)와 채약사(采藥師)를 구분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도홍경의 본초경집주에 보면 고구려와 백제에서 생산되는 명귀 약재는 인삼, 금설, 세신, 오미자, 관동화, 백부자, 오공, 곤포, 무이, 은설 등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약재의 형태와 약성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인삼에 대하여 내중백제자(乃重百濟者), 형세이견백(形細而堅白), 기미박어상당(氣味薄於上黨); 차용고구려(次用高句麗), 형대이허연(形大而虛軟), 불급백제(不及百濟).”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백제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알이 잘고 보드랍지만 무겁고 단단하며 색갈은 하얗고 기미는 상당 인삼 보다 엷다. 다음은 고구려 인삼인데 모양은 크고 굵으나 연하며 백제 인삼에 미치지 못한다.” 는 뜻이다.


또 관동화에 대하여 제일출하북(第一出河北), 차출고구려(次出高句麗), 백제(百濟), 기화이대국화(其花以大菊花).”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북성에서 생산되는 관동화가 제일 품질이 우수하고 그 다음은 고구려 관동화와 백제 관동화인데 그 꽃은 큰 국화꽃 만 하다.” 는 뜻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