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수난수(潑水難收)
동진(東晉) 때 왕가(王嘉)의 저서 습유기(拾遺記)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가 실려 있다.
”발수난수(潑水難收) : ”태공망처마씨고사일직(太公望妻馬氏故事一則), 재태공초취마씨(載太公初娶馬氏), 인애독서(因愛讀書), 불사생산(不事生産), 마씨혐빈이거(馬氏嫌貧離去), 개가신부(改嫁新夫), 급태공기봉제(及太公旣封齊), 마 씨구재합(馬氏求再合). 태공취수일분(太公取水一盆), 경지어지(傾之於地), 명마씨수수(命馬氏收水), 지수득일사니장(只收得一些泥漿). 태공왕(太公曰) : ”기능이재합(豈能離再合), 복수정난수(覆水定難收).”
다시 말하면 ”태공은 마씨와 처음 결혼하였다. 태공은 책 읽기를 좋아하여 매일 독서 만 하고 일은 하지 않아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마씨는 가난한 생활이 역겨워 태공과 헤어졌다. 마씨는 태공과 헤어진 후 다시 다른 남자와재가(再嫁)하였다.
나중에 태공은 벼슬을 하게 되었다. 마씨는 태공이 벼슬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 태공을 찾아가서 재결합 하자고 사정을 했다.
태공은 물 한 동이를 마씨 앞으로 가져오더니 물 동이를 기울여 물을 깡그리 땅바닥에 부으며 땅바닥에 엎지러진 물을 주워 담으라고 명했다. 마씨는 약간의 진흙탕 물을 주워 담았을 뿐이다.
태공은 가엾은 마씨를 바라보며 ”헤어졌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것은 엎지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 말했다.
습유기(拾遺記)는 황당무계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이 실려 있다. 태공의 고사(故事)도 믿기 어렵다. 그러나 발수난수(潑水難收)의 고사를 통하여 우리는 재가(再嫁)하는 부녀들이 고대 사회에서 멸시 당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습유기(拾遺記)는 동진십육국(東晉十六國) 시기의 롱서(陇西) 안양(安陽 : 현재 甘肅省 泰安(西安의 서쪽340km 지점)) 사람 왕가(王嘉 : ? – 서기390 년)의 저서인데 20 권(卷)으로 구성되어 있고 220 편(篇)의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왕가의 자(字)는 자년(子年)이다. 그래서 습유기를 왕자년습유기(王子年拾遺記)라고도 칭한다.
습유기는 중국 고대 단편소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왕가는 동진십육국 시기의 저명한 방사(方士)였으며 수 백명의 제자를 양성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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