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미(红麴米)의 역사(历史) :
홍국미는 일종의 한약재이고 식품(食品)이며 착색제(着色剂)이고 조미품(调味剂)이며 홍부유(红腐乳)의 제조원료(制造原料)이고 육류(肉类)와 기타 식물(食物)의 보존제(保存剂)이다. 저명(著名)한 모태주(茅台酒) 속에도 들어있고 복건성(福建省)을 비롯한 동남지역의 여러 성과 대만(台湾) 등지의 명주(名酒)인 홍노주(红老酒)는 홍국미를 사용하여 빚은 술이다. 오대(五代) 때 도곡(陶谷)의 저서《청이록(清异录)》에 보면 사비양(赐绯羊) 만드는 법이 수록되어 있다. 사비양은 주골조(酒骨糟)라고도 칭하는데 홍국과 양고기를 함께 삶아서 양고기를 둘둘 말아 무거운 돌멩이로 눌러 놓았다가 술 항아리 속에 집어넣어 두면 짙은 술냄새가 양고기 속에 스며드는데 종이 처럼 얇게 양고기를 썰어 술안주로 사용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홍곡에 대한 최조(最早)의 기록이라고 한다. 도곡(陶谷)의 저서《청이록(清异录)》 2 권(卷)은 천문(天文)、지리(地理)、초목(草木)、화과(花果)、소약(蔬药)、금수(禽兽)、충어(虫鱼)、거실(居室)、기구(器具) 등 37 류(类)로 분류되어 있으며 총 648 조(条)가 수록되어 있다. 도곡(陶谷 : 서기 903 년-서기 970 년)의 본성(本姓)은 당(唐)이며 자(字)는 수실(秀实)이다. 빈주(邠州) 신평(新平 : 현재 섬서성(陕西省) 빈현(彬县) 사람이며 북송(北宋)의 대신(大臣)이었다.
도곡(陶谷)은 북송 건립 전에 후진(后晋)과 후한(后汉)과 후주(后周)의 감찰어사(监察御史)、지제조(知制诰)、창부낭중(仓部郎中)、중서사인(中书舍人)、급사중(给事中)、호부시랑(户部侍郎)、병부시랑(兵部侍郎)、이부시랑(吏部侍郎)、한림학사승지(翰林学士承旨) 등 관직(官职)에 임명되었다.
북송(北宋) 건립 후 도곡(陶谷)은 예부상서(礼部尚书), 형부상서(刑部尚书)、호부상서(户部尚书)를 역임했고 개보(开宝) 3 년(서기 970 년)에 병서(病逝)하였다. 청이록에 기재되어 있는 홍국미에 관한 고사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북송 때 이미 민간(民间)에서 홍국미의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원(元) 나라 때 오서(吴瑞)가 서기 1329 년에 저술한 《일용본초(日用本草)》에 보면 “홍국양주(红麴酿酒)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홍국양주는 "破血行药势的药用.” 이라고 기재(记载0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홍국을 사용하여 빚은 술은 파혈행약으로 사용한다.” 는 뜻이다.
홍국(红麴)은 홍곡(红曲) 또는 단곡(丹曲)이라고도 칭한다. 명(明) 나라 때 송응성(宋应星)의 《천공개물(天工开物)》에 보면 홍국미의 제작(制作)과 용법(用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即精白米浸渍水中七天后蒸,以红酒精为种曲加工,在瓦室连续培养约一周可得。" 다시 말하면 “멥쌀을 7 일 동안 물속에 담그어 불린 후 종곡(种曲)을 혼합하여 일 주일 동안 기와집 안에 저장해 두고 발효시키면 홍국미가 된다.” 는 뜻이다. 중국(中国)의 동남(东南) 제성(诸省)과 대만(台湾)에서는 지금도 홍국미를 방부제로 사용한 식물(食物) 보존법(保存法)이 유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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