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 2 차 대전 때 일본이 중국에서 약탈한 보물들 - (2)
동경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 내의 동양관「東洋館」은 아시아주문물진열관(亞洲文物陳列館)이라고도 칭하는데 대부분의 전시물은 중국문물(中國文物)이며 제 2 차 대전 때 중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제국으로 부터 약탈한 것들이다. 동경국립박물관 내에 대략 100,000 건(件)의 장품(藏品)이 있는데 그중 중국(中國) 문물은 대략(大約) 10,000 건(件)이다.
동양관(東洋館)의 제 2 층(第二層)에 중국전관(中國專館)이 설치되어 있는데 모두 5개(五個)의 진열실(陳列室)이 있으며 그중 4 개의 진열실에는 중국(中國) 고고문물(考古文物)들이 진열되어 있고 나머지 한 개의 진열실에는 중국(中國) 고대의 회화(繪畫)외 서법(書法) 등을 전시해 놓았다. 송(宋) 나라와 원(元) 나라와 명(明) 나라 때의 회화(繪畫)와 서법(書法) 등이 진열되어 있다. 「중국회화서법(中國繪畫書法)」진열실(陳列室) 내에 남송(南宋)의 서법가 이생(李生)의《瀟湘臥遊圖卷》과 이적(李迪)의 《紅白芙蓉圖》와 양계(梁楷)의 《雪景山水圖》과 마원(馬遠)의 《洞山渡水圖》와 원(元) 나라 때 서법가 인타라(因陀羅)의 《禪機圖斷簡寒山拾得圖》4 폭(幅) 작품(作品)과 명(明) 나라 때 서법가 주단(朱端)의《寒江獨釣圖》와 청(清) 나라 때 조지겸(趙之謙)의 《花卉圖》 등이 진열되어 있고 서법(書法) 작품(作品) 중에 황정견(黃庭堅)과 주희(朱熹)와 조맹부(趙孟頫)와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정변(鄭燮) 등 명가(名家)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본국보(日本國寶)」라고 라벨을 붙여 놓았다. 진열실 내에서 사진 촬영을 엄금하고 있으며 만일 사진 촬영시 진열실 관리인들이 카메라를 압수하거나 카메라 속의 사진을 삭제시키며 사진을 촬영한 관광객은 진열실 내에서 추방당한다.
경도대학(京都大學)의 좌등웅(佐藤雄) 교수(教授)는 일본군대가 제 2 차 세계대전 때 아시아주의 여러국가에서 약탈(掠奪)한 보물 전문(專門) 연구학자이다. 그는 세게 제 2 차 대전 때 일본(日本) 이 중국내에서 약탈한 진귀문물(珍貴文物)의 숫자는 대략 100,000 건(件)이며 한국을 비롯한 기타(其他) 동남아 제국에서 약탈한 문물(文物)의 숫자는 정확한 수(數)를 헤아릴 수 없으며 대략 수 백만(百萬) 건(件)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中國) 정부에서 발표한 숫자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中國) 정부의 통계(統計)에 의하면 서기 1931 년 부터 서기 1945 년 항일전쟁(抗日戰爭)이 종료될 때 까지 일본이 중국으로 부터 약탈한 문화재(文化財)는 1879 개의 컨테이너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컨테이너 속에 들어있는 중국 문화재의 정확한 숫자는 헤아리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日本) 정부의 통계(統計)에 의하면 대략 3,600,000 건(件)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좌등웅(佐藤雄) 교수가 당초에 경도시(京都市) 내에 있는 여러 박물관(博物館)에 수장(收藏)되어 있는 중국(中國)의 국보급(國寶級) 문물의 숫자를 헤아릴 때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발표했으며 그리하여 좌등웅 교수는 세계 제 2 차 대전 기간(期間)에 일본이 아시아주의 여러 나라에서 약탈해간 보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일본의 경도(京都)에 자리잡고 있는 대덕사(大德寺) 내에 송(宋) 나라 때 선종화(禪宗畫)의 대표작(代表作) 《관음원학도(觀音猿鶴圖)》가 진열되어 있으며 그림 옆에 다음과 같은 주(註)를 달아놓았다. “「國寶」和「重要文化財」,禁止遊客拍照。” 다시 말하면 “이 그림은 일본의 국보임과 동시에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관광객 여러분의 사진촬영은 절대 금지입니다.‘ 는 뜻이다.
또 경도(京都) 시내에 있는 천옥박물관(泉屋博物館)에 「맹호식인유(猛虎食人卣)」 청동기(青銅器)가 진열되어 있다. 맹호인식인유(猛虎食人卣)는 중국(中國) 상(商 ; BC 1711 년 - BC 1066 년) 나라 만기(晚期)에 만든 청동기(青銅器)인데 최고급 국보급 진품(珍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일본(日本) 내에 수장(收藏)되어 있는 오직 2 개의 중국(中國) 청동기(青銅器) 중 하나이다. 맹호식인유(猛虎食人卣)의 높이는 35.7cm 이며 호랑이와 사람이 서로 껴앉고 있는 형상으로 조형(造型)되어 있다. 또 경도(京都) 시내에 있는 돋복사(東福寺)에 중국 남송(中國南宋) 때의 종교초상화(宗教肖像畫) 《무준사범상(無准師範像)》은 모든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있다. 또 경도(京都)의 지은원(知恩院) 내에 비치되어 잇는 서위(西魏 : 서기 535년 - 서기 556년) 시대(時代)의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 5첩(五貼)은 사원(寺院) 내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이며 15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세계 제 2 차 대전 이후에 중국(中國)의 학자(學者)들이 일본정부에 중국 문화재물(文化財物)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미국(美國)에서 일본(日本)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세계 제 2 차 대전시 일본이 약탈(掠奪)해 간 중국의 문물(文物)에 관하여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조사단은 일본(日本) 내의 17 개 지방(地方)에 전시(戰時)에 약탈해 간 서적(書籍)들을 발견하였다. 그중 일본황궁(日本皇宮)과 동경과학박물관(東京科學博物館)과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美國)의 조사단은 일본내에 대략 3,000,000 권의 진귀(珍貴)한 도서(圖書)와 명인들의 친필원고들이 수장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하여 일본정부에서는 160,000 권의 책자를 중국에 반환시켰는데 전체의 6% 에 해당되며 나머지 94% 는 일본이 현재까지 수장하고 있으며 반환되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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