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明太)의 유래(由來) - (2)
다음은 명태에 관한 또 다른 고사(故事)이다. " 很久月以前,居住在海边的朝鲜人遇到了三年自然灾害,颗粒无收。忽一日,有一个叫朴明太的人发现海上漂来许多大鱼,捕来食之不完,又淹制成干,帮人渡过了灾荒。人们即称此鱼为“明太鱼” 又因此鱼保佑了他们,故又称“民泰鱼”
다시 말하면 “옛날 옛적에 조선에 3 년 동안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해변가에 살고있는 백성들은 쌀 한톨 구경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박명태(朴明太)라고 불리는 사람이 해변가에 대어(大鱼)들이 밀려든 것을 발견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해변가에 밀려든 생선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남은 생선들은 소금에 절여 햇빛에 말려 두었다가 후에 식사대용으로 허기를 면했으며 무사히 흉년을 넘겼다. 동네 사람들은 이 생선의 이름을 박명태가 발견했으므로 그의 이름을 따서 “명태어(明太鱼)” 라고 명명했으며 또 이 생선이 동네 사람들을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민태어(民泰鱼)” 라고도 칭했다. " 는 뜻이다.
또 이씨조선(李氏朝鲜) 왕조(王朝) 제 9 대왕 성종(成宗 : 서기 1469 년 - 서기 1494년) 시기(时期)에 노사신(卢思慎) 등이 편찬(编撰)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东国舆地胜览)에 보면 명태어(明太鱼)를 “무태어(無泰鱼)” 라고 기록해 놓았다.
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 서기 1764년 ~ 서기 1845년)가 편찬(编撰)한 농업기술서적(农业技术书籍)『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속에 보면 “태어(太鱼)” 가 수록되어 있다. 또《승정원일기(承政院日记)》에 보면 이씨조선(李氏朝鲜) 효종(孝宗) 3 년(서기 1652년)에 강원도(江原道) 지역에서 “명태란(明太卵 : 명태의 알)” 을 임금님께 진헌(进献)했다고 기재(记载)되어 있다. 최초(最初)로 “명태(明太)” 란 이름이 승정원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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