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려(蒺藜 Tribulus terrestris L.) :
질려(蒺藜)는 질려과(蒺藜科) 식물(植物) 질려(蒺藜 Tribulus terrestris L.)의 성숙(成熟)한 과실(果實)이다. 추계(秋季)에과실(果實)이성숙(成熟)할 때 채집하여 가시를 제거시킨 후 햇볕에 말려 약용한다.
【별명(別名)】 백질려(白蒺藜)、자질려(刺蒺藜)、경질려(硬蒺藜)
질려(蒺藜)의 처방명(處方名)은 백질려(白蒺藜) 、자질려(刺蒺藜) 、초질려(炒蒺藜) 、염질려(鹽蒺藜).
초질려(炒蒺藜)는 백질려(白蒺藜)의 가시를 제거시킨 후 노릇 노릇해 질때 까지 볶아서 가루내어 약용한다.
질려(蒺藜)의 고사(故事) :
한(漢) 나라 때 간당(奸黨) 왕망(王莽)이 정권(政權)을 찬탈(篡奪)한 후 한실(漢室) 후예(後裔) 유수(劉秀)는 홀로 말을 타고 경성(京城)을 떠났으나 한실강산(漢室江山)을 복구해야 된다는 결심을 하였다. 이때 왕망(王莽)은 군사들을 데리고 유수를 추격하였다. 유수(劉秀)의 심정(心情)은 초급(焦急)하였으며 도망치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간화상요(肝火上擾)와 목적다루(目赤多淚)와 두훈목현(頭暈目眩) 등 증상들이 출현하여 결국 위씨현(尉氏縣)의 백록강(白鹿崗)에 도착하자 마자 혼도(昏倒)해 버렸다. 유수는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때 다행히 백록(白鹿) 한 마리가 한 그루의 백질려앙(白蒺藜秧 : 유묘(幼苗))를 입에 물고 유수 옆으로 다가와서 질려앙(蒺藜秧)을 입속에 집어넣고 씹어 즙액(汁液)을 만들어 유수(劉秀)의 입속에 몇 방울 떨어뜨려 주었다. 잠시후 유수(劉秀)는 혼도상태에서 깨어나 천만다행으로 계속 도주할 수 있었다. 유수(劉秀)는 동한(東漢)의 초대 임금 광무제(光武帝 : 서기 25 년 – 서기 57 년)이며 동한제국(東漢帝國)의 건립자(建立者)이다. 유수(劉秀 : BC 5 년 - 서기 57년)는 유방(劉邦)의 9세손(九世孫)이다. 다음은 고사(故事)의 원문(原文)이다. “相傳漢朝奸黨王莽等人篡奪政權後,漢室後裔劉秀,隻身匹馬逃出京城,以圖復興漢室江山。王莽得知,親自帶兵追趕。劉秀由於心情焦急,加之沿途缺食少水,以致肝火上擾,目赤多淚,頭暈目眩,昏倒在尉氏縣的白鹿崗上。正在這緊急關頭,有一隻白鹿,銜著一棵白蒺藜秧,並用嘴嚼,使蒺藜秧的汁液,滴進劉秀口中,劉秀因而得救,遂逃之夭夭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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