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백질려(白蒺藜)와 사원자(沙苑子) :

백질려(白蒺藜)사원자(沙苑子) :
 고대(古代)의 자질려(刺蒺藜)와 사원자(沙苑子)는 한 가지 이름백질려(白蒺藜)로 사용되었다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용약(用藥)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초서(本草書)에 기재(記載)된 것을 보면 자질려(刺蒺藜)가  사원자(沙苑子) 보다 먼저 출현(出現)하였다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보면 "但當時並不叫作刺蒺藜白蒺藜」,而是以蒺藜子命名. "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자질려와  백질려라고 부르지 않고  를  그저 자질려라고 명명하였다." 는 뜻이다.  별명(別名)은  방통(旁通)굴인(屈人)지행(止行)재우(材羽)승추(升推) 등이다. 그러다가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고 불리는  남조(南朝)의 양() 나라 때 도홍경(陶弘景 : 서기 456서기 536)의 저서 《명의별록(名醫別錄)》에 보면 백질려(白蒺藜)를 즉려(即藜) 또는 「자(茨)」라고 수재(收載)되어 있다. 후에 명(明) 나라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에 다음과 같이 주해(註解)를 달아 놓았다.:“即(蒺),疾也;藜,利也;茨,刺也。其刺傷人,甚疾而利也。“  다시 말하면  자질려(刺蒺藜)란 약명(藥名)의 시초(始初)이다.   당(唐) 나라 초년(初年),견권(甄權;서기 541 년 - 서기 643년)의 저서《약성론(藥性論)》에 보면 질려자(蒺藜子)를「백질려자(白蒺藜子)」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백질려(白蒺藜)」는 자자려(刺蒺藜)이며 사원자(沙苑子)는 아니다.
 또 서기 1061년 송(宋) 나라 때 소송(蘇頌)등이 편찬한도경본초(圖經本草)에 보면 古方雲蒺藜子皆用有刺者治風明目最良……類白色類軍家鐵蒺藜故名(軍家鐵蒺藜古代打仗時用的一種三角四刺兒的鐵器扔在路上用以防禦敵人라고 기재되어 있다.  백질려(白蒺藜)동주백질려(同州白蒺藜)사원백질려(沙苑白蒺藜)사원질려(沙苑蒺藜)동질려(潼蒺藜)사질려(沙蒺藜) 등 여러 명칭이 수록되어 있다여러 본초학가들이 지금까지 저술한  본초서를 종합해 보면  보면 2 가지 종류의 백질려(白蒺藜)가  기재(記載)되어 있다.
 첫째 가시가 있는 자질려(刺蒺藜)황구지(荒丘地)와 전변(田邊)과 노방(路旁)과 상하변(江河邊)에 분포(分布)되어 있는데  중국 전국 각지에  서  생장하고 있고특히 장강이북(長江以北最)에서 가장 많이 생장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 가시가 없는 사원자(沙苑子)는 내몽고(內蒙古)와  동북(東北) 지역과  서북지구(西北地區)에  분포되어 있으며 주산지는 섬서(陝西)산서(山西)섬서동주(陝西同州 ; 현재 대리현(大荔縣)-고대의 동주부(同州府0 소재지(所在地) 사원지구(沙苑地區)이다.
 이 두 가지 약재(藥材)의 성상(性狀)과 공효는 완전히 다르다. 자질려(刺蒺藜)의 과실(果實)의 표면(表面)에 다수(多數)의 작은 가시(小刺)들이  붙어있는데 약간 긴가시(長刺)와 짧은 가시(短刺)가 각각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질(質)이 견경(堅硬)하다.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에 刺蒺藜狀如赤根菜子及細菱三角四刺實有仁故今人又稱之為三角蒺藜硬疾藜蒺骨子等等。" 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사원자(沙苑子) 종자(種子)의 표면(表面)은 회갈색(灰褐色)이거나 녹갈색(綠褐色)이며 광택이 나고 무자(無刺 ; 가시가 없다)이다. 
 현대과학(現代科學) 분류(分類)를 보면 "자질려(刺蒺藜)와 사원자(沙苑子)는 양종(兩種)의  다른 식물(植物)이다.  자질려(刺蒺藜)는  질려과(蒺藜科)  일년(一年) 또는  다년생(多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 질려(蒺藜)과실(果實)이다. 그리고 사원자(沙苑子)는 두과(豆科)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 편경황기(扁莖黃芪)의 성숙(成熟)한 종자(種子)이다." 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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