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질려(白蒺藜)와 사원자(沙苑子) :
고대(古代)의 자질려(刺蒺藜)와 사원자(沙苑子)는 한 가지 이름「백질려(白蒺藜)」로 사용되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용약(用藥)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초서(本草書)에 기재(記載)된 것을 보면 자질려(刺蒺藜)가 사원자(沙苑子) 보다 먼저 출현(出現)하였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보면 "但當時並不叫作「刺蒺藜」或「白蒺藜」,而是以「蒺藜子」命名. "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자질려와 백질려라고 부르지 않고 를 그저 자질려라고 명명하였다." 는 뜻이다. 별명(別名)은 방통(旁通)、굴인(屈人)、지행(止行)、재우(材羽)、승추(升推) 등이다. 그러다가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고 불리는 남조(南朝)의 양(梁) 나라 때 도홍경(陶弘景 : 서기 456년~서기 536년)의 저서 《명의별록(名醫別錄)》에 보면 백질려(白蒺藜)를 즉려(即藜) 또는 「자(茨)」라고 수재(收載)되어 있다. 후에 명(明) 나라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에 다음과 같이 주해(註解)를 달아 놓았다.:“即(蒺),疾也;藜,利也;茨,刺也。其刺傷人,甚疾而利也。“ 다시 말하면 자질려(刺蒺藜)란 약명(藥名)의 시초(始初)이다. 당(唐) 나라 초년(初年),견권(甄權;서기 541 년 - 서기 643년)의 저서《약성론(藥性論)》에 보면 질려자(蒺藜子)를「백질려자(白蒺藜子)」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백질려(白蒺藜)」는 자자려(刺蒺藜)이며 사원자(沙苑子)는 아니다.
또 서기 1061년 송(宋) 나라 때 소송(蘇頌)등이 편찬한《도경본초(圖經本草)》에 보면 :“古方雲蒺藜子皆用有刺者,治風明目最良……類白色,類軍家鐵蒺藜,故名(軍家鐵蒺藜:古代打仗時用的一種三角四刺兒的鐵器,扔在路上用以防禦敵人。” 라고 기재되어 있다. 백질려(白蒺藜)、동주백질려(同州白蒺藜)、사원백질려(沙苑白蒺藜)、사원질려(沙苑蒺藜)、동질려(潼蒺藜)、사질려(沙蒺藜) 등 여러 명칭이 수록되어 있다. 여러 본초학가들이 지금까지 저술한 본초서를 종합해 보면 보면 2 가지 종류의 백질려(白蒺藜)가 기재(記載)되어 있다.
첫째 가시가 있는 자질려(刺蒺藜)는 황구지(荒丘地)와 전변(田邊)과 노방(路旁)과 상하변(江河邊)에 분포(分布)되어 있는데 중국 전국 각지에 서 생장하고 있고, 특히 장강이북(長江以北最)에서 가장 많이 생장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 가시가 없는 사원자(沙苑子)는 내몽고(內蒙古)와 동북(東北) 지역과 서북지구(西北地區)에 분포되어 있으며 주산지는 섬서(陝西)、산서(山西),섬서동주(陝西同州 ; 현재 대리현(大荔縣)-고대의 동주부(同州府0 소재지(所在地) 사원지구(沙苑地區)이다.
이 두 가지 약재(藥材)의 성상(性狀)과 공효는 완전히 다르다. 자질려(刺蒺藜)의 과실(果實)의 표면(表面)에 다수(多數)의 작은 가시(小刺)들이 붙어있는데 약간 긴가시(長刺)와 짧은 가시(短刺)가 각각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질(質)이 견경(堅硬)하다.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에 :“刺蒺藜狀如赤根菜子及細菱,三角四刺實有仁。故今人又稱之為三角蒺藜、硬疾藜、蒺骨子等等。" 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사원자(沙苑子) 종자(種子)의 표면(表面)은 회갈색(灰褐色)이거나 녹갈색(綠褐色)이며 광택이 나고 무자(無刺 ; 가시가 없다)이다.
현대과학(現代科學) 분류(分類)를 보면 "자질려(刺蒺藜)와 사원자(沙苑子)는 양종(兩種)의 다른 식물(植物)이다. 자질려(刺蒺藜)는 질려과(蒺藜科) 일년(一年) 또는 다년생(多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 질려(蒺藜)의 과실(果實)이다. 그리고 사원자(沙苑子)는 두과(豆科)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 편경황기(扁莖黃芪)의 성숙(成熟)한 종자(種子)이다." 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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