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문뢰읍묘(闻雷泣墓)

문뢰읍묘(闻雷泣墓)
왕부(王裒)는 위진시기(魏晋时期)에 영릉현(营陵縣 : 현재 산동성(山东省) 창락현(昌乐縣) 东南쪽)에서 태어났다.
왕부의 자(字)는 위원(偉元)이다.
왕부의 조부 왕수(王修)는 위나라의 명사(名士)였으며 대사농낭중령(大司農郎中令)을 역임하였다.
왕부의 아버지 왕의(王儀)는 사마염(司馬炎)의 아버지 사마소(司馬昭) 때 사마(司馬)의 관직에 있었는데 동오토벌(東吳討伐)에 실패한 후 간언한 것으로 인하여 죄를 입어 피살되었다.
사마염은 서진(西晉)을 건국하여 초대왕(서기 265 년 – 서기 290 년)이 되었다.
사마염이 여러 차례 왕부에게 관직을 천거하엿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왕부는 종신토록 서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쪽에 서진(西晉)이 있기 때문이었다.
왕부의 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뇌성 벽력을 두려워 하였다.
어머니의 시신을 산속에 무더 둔 후 천둥치고 비가 올 때 마다 왕부는 어머니의 묘로 달려가 엎드려 절하며 ”어머님! 당신의 자식 왕부가 여기 왔습니다. 어머니! 걱정하지마십시요!” 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위안시켜 드렸다.
왕부는 책을 읽을 때 부모님을 생각하며 료아편(蓼莪篇)을 반드시 읽고 눈물을 흘렸다.
후세 사람들은 왕부의 효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詩)를 읊었다.
” 慈母怕闻雷,冰魂宿夜台。
阿香时一震,到墓绕千回。"
다시 말하면
”살아 생전에 어머님은 천둥을 두려워 했었네!
어머님의 묘 옆에서 밤샘을하여 냉기가 뼈속 까지 스며들고,
천둥 한 번 칠 때 마다 어머님의 묘로 달려가서 천 바튀를 빙글 빙글 돌아보네!”
라는 뜻이다.
이상의 고사는24효 중 문뢰읍묘(闻雷泣墓)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魏王裒,事亲至孝。母存日,性怕雷,既卒,殡葬于山林。每遇风雨,闻阿香响震之声,即奔至墓所,拜跪泣告曰:“裒在此,母亲勿俱。”
慈母怕闻雷,冰魂宿夜台。
阿香时一震,到墓绕千回。
【译】王裒,魏晋时期营陵(今山东昌乐东南)人,博学多能。父亲王仪被司马昭杀害,他隐居以教书为业,终身不面向西坐,表示永不作晋臣。其母在世时怕雷,死后埋葬在山林中。每当风雨天气,听到雷声,他就跑到母亲坟前,跪拜安慰母亲说:“裒儿在这里,母亲不要害怕。”他教书时,每当读到《蓼莪》篇,就常常泪流满面,思念父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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