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말크머스 목사는 내가 존경하는 목사인데 가끔 이메일을 나에게 보내준다. 나는 이 목사님의 글속에서 흙냄새를 맡을 수 있기에 좋아하며 나와 비슷한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더욱 친근감이 있다.
다음은 그가 보낸 이메일이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뉴욕주 콘스타블에 살고 있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선에서 10리도 채않되는 거리에 있는 시골이었다.
나의 외할아버지 댁에 가보면 전화도 없었고 자동차도 없었으며 맨발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교통 수단은 말구루마와 겨울철에는 개가 끄는 썰매가 있었다.
물론 외할아버지네는 전기도 없었고 수도도 없었으며 목욕탕도 없었다.
울타리 옆에 아웃하우스가 하나 있었다.
아웃 하우스란?
드럼통을 땅속에 묻어두고 그 안에 대소변을 보는 옛날 시골의 칙간이다.
물론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땅을 깊이 파고 작은 사다리를 놓고 내려가는 찬방이 땅속에 있었는데 그 방이 냉장고 노릇을 해주었다.
난방 시설도 없었고 난로에 장작불을 때서 난방도 하였고 난로 위에 냄비와 솥을 올려 놓고 요리도 하였다.
나의 외할아버지네는 일 년 내내 농사를 짓고 과수원을 경영하여 일 년 양식을 저장해 두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네는 건강보험은 물론 생명 보험도 들지 않았다.
약방도 없었고 의사를 만나러 마차를 타고 하루 종일 가야만 했다. 겨울철에는 하루 종일 개썰매를 타고 가까운 도시 까지 가야만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아플 경우 대부분 집에서 천연치료를 하였다. 그렇지만 나의 외할아버지 식구들은 모두 80세 이상 장수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도시로 이사하여 살았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는 슬하에 12 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1912 년에 출생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외조부모님 처럼 시골 생활을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농장을 떠나 간호사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앉고 뉴욕으로 가서 거기서 간호학교를 다녔다.
간호학교를 다니면서 나의 아버지를 만났다.
나의 아버지는 뉴욕 사람이었다. 1933 년에 나의 어머니는 뉴욕에 있는 마운트 싸이나이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Registered Nurse (RN) 가 되었으며 나의 아버지와 결혼하였다.
결혼한지 1 년 후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나의 어머니는 무공해 자연식 만 하다가 결혼 후 뉴욕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가공된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고 의사와 서양약과 친근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이와 같은 음식들이 자신의 건강과 남편의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동물성 지방을 다량 섭취해 오던 나의 아버지는 42 세의 젊은 나이에 첫째번 심장마비를 당했다. 그후로 나의 아버지는 여러 차례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입원 가료를 받았다.
나의 아버지는 23 년 동안 병원을 찾아가고 의사를 만나고 서양약을 복용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신체는 점점 쇠약해져서 65 세 때 엄중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가 8 살 되던 해에 나의 아버지는 첫째 번 심장마비로 쓸어졌었다.
그때 부터 나는 아버지와 운동도 함께 하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암으로 사망하였다. 나의 어머니가 49 세 되던 해에 대장암(colon cancer) 진단을 받았다.
나의 어머니는 의사들이 치료하는 대로 맡길수 밖에 없었다.
병원 치료는 나의 어머니의 면역력을 점점 약화시켰다.
겨울이 돌아오면 나의 어머니는 폐염에 걸려 대량의 페니실린을 복용하였고 때로는 죽기 직전에 당도하기도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16 년 동안 수많은 서양약을 복용하면서 의사들의 치료를 받았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65 세 까지 죽어가는 과정을 상세히 지켜보았다. 나는 나의 누나와 함께 나의 어머니가 죽은 후 나의 어머니의 아파트를 깨끗이 청소하였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복용하고 있던 약병을 큰 쇼핑 빽으로 3 개를 가득 담아 쓰레기통 속에 버렸다.
나의 누이도 갑상선암으로 69 세에 사망하였다.
나의 누나 역시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을 받았으나 암이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었다.
나의 차례
1975 년 나는 나의 어머니와 똑 같은 대장암(colon cancer) 진단을 받았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암치료를 받으며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서양 의사들의 암치료를 거부하고 대체의학 쪽으로 치료를 하기 원하였다.
텍사스(Texas) 주에서 목회를 하고있는 나의 친구목사 Lester Roloff 를 찾아갔다.
Roloff 목사는 하나님이 아담(Adam) 에게 지시한 창세기(Genesis) 1장 : 29 절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더불어 매일 대량의 당근 주스를 마시라고 권고하였다.
나는 37 년 전에 Roloff 목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모든 고기와 우유제품과 설탕과 정제한 곡식 등을 모두 버리고 100% 생식과 채식 위주의 식료법을 단행하였다.
나의 다이어트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창세기(Genesis) 1 장 : 29 절에 알려준 다이어트에 생채소 주스 만을 곁들였다.
2, 3 주 후 나의 대변에서 피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다. 직장 출혈이 멈춘것이었다.
일 년 후 정구볼 만 하던 대장암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지금 37 년 전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나는 현재 79 번째 생일 파티를 하였다.
나는 42 세 되던 해 부터 나 자신의 의사가 되었다.
아웃 하우스란?
드럼통을 땅속에 묻어두고 그 안에 대소변을 보는 옛날 시골의 칙간이다.
물론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땅을 깊이 파고 작은 사다리를 놓고 내려가는 찬방이 땅속에 있었는데 그 방이 냉장고 노릇을 해주었다.
난방 시설도 없었고 난로에 장작불을 때서 난방도 하였고 난로 위에 냄비와 솥을 올려 놓고 요리도 하였다.
나의 외할아버지네는 일 년 내내 농사를 짓고 과수원을 경영하여 일 년 양식을 저장해 두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네는 건강보험은 물론 생명 보험도 들지 않았다.
약방도 없었고 의사를 만나러 마차를 타고 하루 종일 가야만 했다. 겨울철에는 하루 종일 개썰매를 타고 가까운 도시 까지 가야만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아플 경우 대부분 집에서 천연치료를 하였다. 그렇지만 나의 외할아버지 식구들은 모두 80세 이상 장수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도시로 이사하여 살았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는 슬하에 12 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1912 년에 출생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외조부모님 처럼 시골 생활을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농장을 떠나 간호사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앉고 뉴욕으로 가서 거기서 간호학교를 다녔다.
간호학교를 다니면서 나의 아버지를 만났다.
나의 아버지는 뉴욕 사람이었다. 1933 년에 나의 어머니는 뉴욕에 있는 마운트 싸이나이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Registered Nurse (RN) 가 되었으며 나의 아버지와 결혼하였다.
결혼한지 1 년 후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나의 어머니는 무공해 자연식 만 하다가 결혼 후 뉴욕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가공된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고 의사와 서양약과 친근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이와 같은 음식들이 자신의 건강과 남편의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다.
나의 아버지는 어릴 때 부터 육식을 했으며 설탕이 듬뿍 들어있는 음식만 먹고 자랐다. 아플 경우 제일 먼저 의사를 찾아가 약을 처방 받아왔다.동물성 지방을 다량 섭취해 오던 나의 아버지는 42 세의 젊은 나이에 첫째번 심장마비를 당했다. 그후로 나의 아버지는 여러 차례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입원 가료를 받았다.
나의 아버지는 23 년 동안 병원을 찾아가고 의사를 만나고 서양약을 복용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신체는 점점 쇠약해져서 65 세 때 엄중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가 8 살 되던 해에 나의 아버지는 첫째 번 심장마비로 쓸어졌었다.
그때 부터 나는 아버지와 운동도 함께 하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암으로 사망하였다. 나의 어머니가 49 세 되던 해에 대장암(colon cancer)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하여 대장을 열어보니 온통 암이 대장 전체에 퍼져 속수무책이었다.
담당 의사들은 나의 어머니에게 코발트치료(cobalt treatments (radiation))와 화학요법(chemotherapy) 치료를 강요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의사들이 치료하는 대로 맡길수 밖에 없었다. 병원 치료는 나의 어머니의 면역력을 점점 약화시켰다.
겨울이 돌아오면 나의 어머니는 폐염에 걸려 대량의 페니실린을 복용하였고 때로는 죽기 직전에 당도하기도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16 년 동안 수많은 서양약을 복용하면서 의사들의 치료를 받았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65 세 까지 죽어가는 과정을 상세히 지켜보았다. 나는 나의 누나와 함께 나의 어머니가 죽은 후 나의 어머니의 아파트를 깨끗이 청소하였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복용하고 있던 약병을 큰 쇼핑 빽으로 3 개를 가득 담아 쓰레기통 속에 버렸다.
나의 누이도 갑상선암으로 69 세에 사망하였다.
나의 누나 역시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을 받았으나 암이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었다.
나의 차례
1975 년 나는 나의 어머니와 똑 같은 대장암(colon cancer) 진단을 받았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암치료를 받으며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서양 의사들의 암치료를 거부하고 대체의학 쪽으로 치료를 하기 원하였다.
텍사스(Texas) 주에서 목회를 하고있는 나의 친구목사 Lester Roloff 를 찾아갔다.
Roloff 목사는 하나님이 아담(Adam) 에게 지시한 창세기(Genesis) 1장 : 29 절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더불어 매일 대량의 당근 주스를 마시라고 권고하였다.
Roloff 목사는 나에게 "나 자신의 의사가 되라." 고 격려하였다.
Roloff 목사는 나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서양 의사들의 치료를 따르지 말고 네가 현재 먹고있는 음식을 완전히 바꾸고 대량의 채소 주스 를 짜서 마시라고 권했다.나는 37 년 전에 Roloff 목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모든 고기와 우유제품과 설탕과 정제한 곡식 등을 모두 버리고 100% 생식과 채식 위주의 식료법을 단행하였다.
나의 다이어트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창세기(Genesis) 1 장 : 29 절에 알려준 다이어트에 생채소 주스 만을 곁들였다.
2, 3 주 후 나의 대변에서 피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다. 직장 출혈이 멈춘것이었다.
일 년 후 정구볼 만 하던 대장암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지금 37 년 전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나는 현재 79 번째 생일 파티를 하였다.
나는 42 세 되던 해 부터 나 자신의 의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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