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일요일

주숙(朱橚) 과 구황본초(救荒本草)

주숙(朱橚) :

주숙(朱橚)은 호주종리(濠州鐘離 : 현재 안휘성(安徽省) 풍양(風陽)) 사람이다.
원(元) 나라 지정(至正) 21년(1361 )에 출생하여 명(明) 나라 홍희(洪熙) 원년(1425 )에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에서 세상을 하직하였다. 구황본초는 방제학(方劑學)과 식물학(植物學) 전서(專書)이다.

주숙(朱橚)은 명(明) 나라 개국황제(開國皇帝)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1328l398)의 다섯째 아들이다.
명성조(明成祖) 주체(朱棣 : 13601424)의 친동생이다.
주숙의 모친(母親) 마황후(馬皇后)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현혜(賢慧)한 여성 중 하나이며 자녀(子女) 교육이 엄격하였고 특히 주숙(朱橚)의 교육에 중시하였다.
홍무(洪武) 3년(1370)에 주숙을 오왕(吳王)에 봉하였다. 봉양(鳳陽)에 주둔하여 있었다.
홍무(洪武) 11년(1378) 주왕(周王)으로 개봉되어 개봉(開封)에 임직(任職)되었다.
주숙(朱橚)은 소년시절 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였으며 다재다능하였다.
주숙은 개봉에서 농업생산경제정책(農業生産的經濟政策) 회복과 수리(水利) 사업과 감세(減稅)와 종식(種植) 사업에 주력하여 농업생산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숙(朱橚)은 청년 시절 부터 의약(醫藥)의 연년익수(延年益壽)와 구사부상(救死扶傷) 효과에 흥취(興趣)를 가지고 연구하여 보생여록《保生余錄》2 권(卷)을 집필하였다.
그후 방제학(方劑學)에 관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홍무(洪武) 23년(1389)에 주숙은 운남성(雲南省)으로 유방당하였다.
그때 주숙(朱橚)운남 지역 백성들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의사가 부족하고 의약이 부족함을 아쉽게 여겼다.
그리하여 주숙은 양의(良醫) 이백(李佰)에게 명하여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수진방《袖珍方》을 편찬하게 하였다.
홍무(洪武) 24년(1391)에 주숙(朱橚)응 개봉(開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구황서(救荒書) 저작의 절박성(迫切性)을 인식하였다.
주숙은 유순(劉醇)과 등석(滕碩)과 이항(李恒)과 구우(瞿佑) 등 여러 학자들을 모아 연구팀을 조성하였다.
또 주숙은 식물원(植物園)을 건설하고 각종 야생(野生) 식용식물(食用植物)을 재배하며 관찰하고 실험하였다.
주숙은 서기 1399년에 다시 운남성(雲南省)으로 유방되었다.
그때 주숙은 방제학(方劑學)과 구황식물(救荒植物) 연구(研究)에 열중하였다.
주숙은 등석(滕碩)과 유순(劉醇)과 함께 보제방《普劑方》을 편성하였다.
영락(永樂) 4년(1406)에 주숙(朱橚)은 본초학상(本草學上) 별개 분야인 구황본초《救荒本草》를 간행(刊行)하였다.
후에 주숙(朱橚)운궁사《元宮詞》백장(百章)을 편찬하였다.

구황본초는 초근수피(草根樹皮)로 연명하며 고통받는 백성들의 식생활을 개선시켜 주었다.
구황본초《救荒本草》는 일종의 독특한 식용야생식물(食用野生植物) 전서(專書)이다.
구황본초《救荒本草》2 권으로 편찬되었으며 414 종(種)의 식물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276 종(種)은 종전에 편찬된 본초서(本草書) 중에 없는 식물이다.
주숙(朱橚)백성들이 이해하기 쉬운 통속적 언어를 사용하여 식물(植物)의 형태(形態)를 상세히 묘술(描述)해 놓았다.
매 식물(植物) 마다 그림을 첨부해 두었다.
구황본초에는 식물 속에 들어있는 독성(性) 물질(物質)을 제거시키는 법도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명(明) 나라 때 명의 서광계(徐光啟)의 저서 농정전서《農政全書》에 구황본초《救荒本草》전문(全文)이 수록되어 있다.
또 청(清) 나라 때 저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중 초목전(草木典)에 수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약초의 그림은 구황본초《救荒本草》에서 퍼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l7 세기말(世紀末)에 구황본초《救荒本草》는 일본으로 전도(傳到)되었다.
형보(享保) 원년(1716)에 강호(江戶) 시대 중기(中期)의 저명한 본초학가(本草學家) 송강서(松岡恕)는 농정전서《農政全書》속에서 구황본초《救荒本草》를 추려내어 고정(考訂)한 후 주헌왕구황본초《周憲王救荒本草》14 권(卷)을 편찬하였다.
구황본초《救荒本草》는 국제학술계(國際學術界)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30 년대 미국(美國)의 식물학자들은 구황본초《救荒本草》에 관하여 세계에서 최초로 구황(救荒) 식용(食用) 식물(植物)을 수집하여 기록한 전서라고 평했다.
또 1940 년대에 영국(英國)의 약물학가(藥物學家)들은 구황본초(救荒本草)를 기황(饑荒) 식물(食物)의 전서(專著)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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