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7일 금요일

사대보살(四大菩薩)

사대보살(四大菩薩)에 관하여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법화경(法華經)에 기록되어 있는 미륵보살(彌勒菩薩)과 문수보살(文殊菩薩)과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일컬으며 또 하나의 설은 중국 불교에서 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관음보살을 일컫는다. 각각 구화산(九華山)과 오대산(五臺山)과 아미산(峨眉山)과 보타산(普陀山)을 현령설법(顯靈說法)의 도장(道場)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4 대 보살이라고 하면 후자를 일컫는다.

첫째 지장보살은 범어(梵語)Ksitigarbha 의 음역이며 Ksiti 는 대지(大地)를 의미하고 garbha 는 모태(母胎) 즉 생명을 품는 태()를 의미한다. 지장의 뜻 속에는 대지가 어머니와 같이 삼라만상을 품어 발육 성장시켜 주는 것과 같이 땅이 간직한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

음역(音譯)이란? 한자의 음()이나 훈( : 한문 글자의 뜻이 새김)을 빌어 외국어의 음을 표시한 것이다. 예를 들면 Buddha 를 불타(佛陀)로 표기하고 America 를 아미리가(亞美利加)로 표기하는 것 등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입정 한 후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기 전 까지 죄고(罪苦)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전에는 자신의 성불을 미루겠다는 대원(大願)을 세우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인도하는 대자재비의 보살이다. 다시 말하면 지옥 중생 까지도 구제하는 서원을 세우신 분이다.

지장보살의 현령 설법 도장은 안휘성 청양현(靑陽縣 : 黃山의 서북쪽) 구화산이었다. 지장의 본명은 김교각(金喬覺)이고 불타(佛陀 : Buddha) 입멸 후 1500 년에 신라에서 왕자(王子)로 태어났다. 

당 나라 현종(玄宗 : 서기 712 서기 756 ) 때 구화산으로 들어가 구화산 산정에서 니토(泥土 : 당지인들은 관음토(觀音土)라 칭함)와 쌀 한 주먹을 섞어 끓여 먹으며 단정하게 앉아 수 십년 동안 풍찬로숙(風粲露宿)하며 각고수행(刻苦修行)하였다.

지장보살은 99 세 되던 해 윤() 칠월 삼십 일 원적(圓寂)하였다. 지장의 육체는 불변하여 전신(全身) 입탑(入塔)하였다. 현재 구화산에 있는 월신전(月身殿)은 지장보살의 영탑(靈塔)이다.

둘째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의 약칭이다. 구역(舊譯)은 만수시리(曼殊屍利)이고 신역(新譯)은 만수실리(曼殊實利)이다. 의역(意譯)묘길상(妙吉祥)”이다. 지혜가 매우 높은 인물이며 보현보살과 함께 불타의 좌우이협시(左右二脇侍)로써 불타의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문수보살의 형상은 동자(童子) 상모(相貌)이고 보관(寶冠)을 머리에 쓰고 있거나 보검(寶劍)을 손에 쥐고 있으며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자의 등에 올라 타고 있다.

문수보살의 현령설법도장은 산서성(山西省) 오대산(五臺山)이었다. 오대산은 그 당시 청양산(淸凉山)이라고 부렀다. 오대산은 태원(太原) 북족 160km 지점에 있다.

당 나라 제 3 대왕 고종 의봉(儀鳳) 원년(元年 : 서기 676 )에 인도 스님 불타파리(佛陀波利)가 오대산을 방문하였다. 그때 문수보살은 일개 노인의 모습이었다. 인도 스님 불타파리는 존승타라니경(尊勝陀羅尼經)을 가지고 인도로 돌아갔다. 후에 불타파리 스님은 문수보살의 불경을 되돌려 주려고 오대산에 와보니 문수보살은 이미 원적하였다.

당 나라 때 오대산은 첫째가는 불교의 성지(聖地)였다. 참배자가 대단히 많았으며 외국에서도 인도와 일본과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 등을 비롯하여 여러 서역 지방 국가에서 신도들이 참배하러 오대산을 방문하였다.

셋째 보현보살은 편길(徧吉)이라고도 부르는데 음역은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이다. 중국 불교에서는 보현대사(普賢大士)라고 부른다. 석가여래의 이협시 중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데 문수보살은 왼쪽에서 부처들의 지덕(智德), 체덕(體德)을 말하고 있고 보현보살은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덕(理德), 정덕(定德), 행덕(行德)을 맡고 있다. 흰 코끼리 위에 앉아있다.

보현보살의 현령설법도장은 사천성(四川省) 아미산(峨眉山)이며 산정상에 광상사(光相寺)가 있다. 3000 명의 신도들이 이 절에서 보현대사와 함께 머물었다.

넷째  관음보살(觀音普薩)은  원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며  관음보살은 약칭이다.   구역은  광세음(光世音)이고  신역은 관자주(觀自主또는  관세자주(觀世自主)이다음역은  아파로길저사파라(阿婆盧吉低舍婆羅) 또는 아박로지다이습벌라(阿縛盧枳多伊濕伐羅)이다. 관음보살의 현령설법 도장은 절강성(浙江省) 보타산(普陀山)이다

보타산은 항주(杭州) 동해 바다에 있는 1390 개의 주산군도(舟山群島) 중 하나의 작은섬에 있는 산이다. 다시 말하면 보타산은 섬의 이름이기도 하다. 보타산은 해천불국(海天佛國) 또는 남해성경(南海聖境)이라고 칭하고 해도풍경(海島風景)이 수려하여 관광지로 사용되고 있다. 면적은 4 백만 평()의 작은섬이며 용이 드러누워 있는 형상이다.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의 입멸 이후 미륵이 출현할 때 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 부터 지켜주는 대자재비의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의  형상 또한 부드럽고 자비로운 여상(女相)이다.

매년 음력 2 19 일은 관음탄신일(觀音誕辰日)이고 6 19 일은 관음득도일(觀音得道日)이며 9 19 일은 관음출가일(觀音出家日)이기 때문에 신도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향불을 피우며 송경(誦經)하고 예불(禮佛)하며 밤을 지새운다. 1000여 년 동안 이와 같은 불사(佛事) 활동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당 나라 때 서기 847 년 과 서기 860 년 사이에 인도의 승려들이 다녀 갔으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친도관세음보살현신설법(親睹觀世音菩薩現身說法), 수이칠색보석(授以七色寶石).” 다시 말하면 직접 관세음보살의 설법을 듣고 나서 칠색보석을 전해 주었다.” 는 뜻이다. 현재 까지 보타산에 고려도두(高麗道頭)와 신라초(新羅礁) 등 역사 유적이 있으며 장보고(張保皐)의 사적(史蹟)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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