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승려들의 행의(行醫)
천축(天竺) 불교(佛敎)에서는 본래 걸식(乞食)을 주장했으며 사명자활자(邪命自活者)는 불조(佛祖) 계율(戒律) 행위에 위반된다고 가르쳤다.
다음은 네 가지 종류의 사명자활자(邪命自活者)인데 천축 불교에서는 허용하지 않았다.
첫째 하구식(下口食)이다.
즉 농작물의 씨를 뿌려 수확하고 탕약을 조제하여 팔아서 의식(衣食)을 해결함을 일컫는다.
둘째 앙구식(仰口食)이다.
즉 천문(天文)이나 기상(氣象) 지식과 기술의 힘을 빌어 의식을 해결함을 의미한다.
셋째 유구식(維口食)이다.
즉 주술(呪術)과 복산(卜算)을 이용하여 의식을 해결함을 말한다. 점으로 승패를 예측해 주고 길흉을 점쳐서 거주지를 선택해 주기도 하고 출행 시기를 결정해 주거나 길(吉)한 날짜를 받아 주는 것 등이다.
넷째 방구식(方口食)이다.
권력자나 부호들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것을 일컫는다. 통상사절로도 파견되고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얼굴 빛을 보기좋게 꾸며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으로써 의식을 해결함을 일컫는다.
불교가 중국에 전입된 후 이러한 주장은 실행하기 어려웠다. 사원(寺院) 경제가 부유하지 못할 경우 승려들의 생활 필수품의 충족은 어려웠다.
당 나라 때 백장산(百丈山) 회해선사(懷海禪師)는 선문(禪門)의 규칙과 제도인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창제하였다.
즉 회해선사(懷海禪師) ”실행일일부작(實行一日不作), 일일불식제도(一日不食制度), 농선병중(農禪幷重), 위연성풍(蔚然成風).”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하루 밥벌이 못하면 하루 굶는 제도를 실행했고 불교에 관한 일과 농사일을 똑 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그러한 좋은 기풍이 널리 퍼졌다.” 는 뜻이다.
후세 불가에서 이러한 좋은 전통을 계승하게 되었으며 현재 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탕약을 조제하고 의방명을 학습하며 사원내에 병원을 설립하여 중생의 질고(疾苦)를 구해 줌으로써 승려들은 경제적인 도움을 얻었다.
당회요(唐會要) 49 권(卷)에 보면 ”당대사원제설려인방용이격리(唐代寺院除設疠人坊用以隔離), 치료마풍병인외(治療麻風病人外), 환설유비전방(還設有悲田坊) 혹(或) 양병방(養病坊). 비전내관석교(悲田乃關釋敎), 차시승니직장(此時僧尼職掌). 당무종멸불후(唐武宗滅佛後), 비사방무인주령(悲思坊無人主領), 재전위관판(才轉爲官辦).”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당 나라 때 사원은 려인방을 격리 설치하여 마풍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 외에 비전방 또는 양병방을 설치하였다. 비전방에서는 불교의 교리를 해석해 주었는데 이는 승려들의 직분이었다. 당 나라 무종이 불교를 없앤 후 비사방 내에는 지도자가 없어졌다. 그래서 비사방은 관청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는 뜻이다.
북송(北宋) 원우(元祐) 5 년(서기 1090 년) 소동파(蘇東坡)가 항주(杭州) 일대에 퍼진 유행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방(病坊)을 처음으로 건립하였다. 이 병방을 ‘안락(安樂)’ 이라고도 칭했다. 숭녕(崇寧) 2 년(서기 1103 년) 정부에서는 안락을 안제방(安濟坊)이라고 개명했다. 그후 부터 각 지방에 안제방이 설립되었다.
또 송사(宋史)-이종본기(理宗本紀)에 보면 ”계해(癸亥), 소급관전오백무(紹給官田五百畝), 명임안부창자유국(命臨安府創慈幼局), 수양도로유기초생영아(修養道路遺棄初生婴兒), 병치유모위양(竝置乳母喂養), 무자녀자가이래영양(無子女者可以來領養), 잉치약국료빈민질병(仍治藥局了貧民疾病).”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송(宋) 나라 이종(理宗) 순우(淳祐) 9 년(서기 1249 년)에 관전(官田) 500 무(畝)를 칙령으로 하사하여 임안부(臨安府)로 하여금 자유국을 설립하고 도로변에 유기(遺棄)한 갖난 아이들을 돌보게 하였다. 유모들로 하여금 아이들을 양육케 하였으며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고아들을 양자와 양녀로 입양하였다. 그리고 약국의 설치로 인하여 빈민들의 질병이 치료 되었다.” 는 뜻이다.
이는 당(唐) 나라 때 비전방의 복원이다.
고대로 부터 승려들은 시골로 돌아 다니며 행의(行醫)도 하였다. 그리하여 승려들은 중생의 동정과 지지를 얻었으며 시주(施主)도 받았다. 승려들로 부터 치료받고 질병이 치유된 환자들 중에는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 스님들을 돕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와 같이 의약(醫藥)으로 환자들의 질병을 치유하여 생긴 시주(施主)는 스님들의 물질적인 생활 조건을 개선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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