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중국에 전입된 후 2 천 여년 동안 중국의 승인(僧人)들은 한의약학을 홍법(弘法)의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역사적으로 볼때 대부분의 중국 승의들은 한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의사(醫事)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들을 승의(僧醫) 또는 의승(醫僧)이라고 칭했다. 역대 승의(僧醫) 중 무술(巫術)을 사용하여 환자들을 괴롭힌 승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승의(僧醫)들 중에는 전문의도 있었으며 의술이 고명하여 출중한 의저(醫著)를 간행한 승의(僧醫)들도 많았다. 그 당시 의학계에 유익한 의술을 전파했으며 후세 의가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은 승의(僧醫)들이 산부인과(産婦人科) 방면에 공헌한 일부 기록이다.
승의(僧醫)들이 산부인과(産婦人科) 질병을 치료했다는 사실은 모양세가 격에 맞지 않는 것 처럼 들릴지 모르나 불경(佛經) 중에 기록된 것은 아니고 역사적으로 출현한 사실이다.
고승전(高僧傳) 4 권(卷) 중에 기록되어 있는 우법개전(于法開傳)에 보면
”진승우법개조술기파(晉僧于法開祖述耆婆), 묘통의술(妙通醫術). 상걸식(嘗乞食), 투주인가(投主人家), 치부인재초(임산)위급(値婦人在草(臨産)危急), 중치불험(衆治不驗), 거가황(황)우(擧家皇(惶)憂). 개왈(開曰) : ’차이치이(此易治耳).’ 주인정재양(主人正宰羊), 욕위음사(欲爲淫祀). 개영선취소육위갱(開令先取少肉爲羹), 진경(進竟), 인기침지(因氣針之). 수유(須臾), 양막이아이충(羊膜裏兒而出).”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진(晉) 나라의 우법개(于法開) 스님은 기파의 의술에 정통하였다. 우법개 스님은 걸식하러 어느 집으로 자진하여 들어 섰다. 주인 집 안에 들어서서 주의를 살펴보니 여러 의사들의 치료를 받고도 아무 소용이 없어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는 임신부를 보았다.
온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며 놀라서 당황 할 즈음에 우법개(于法開) 스님은 ”제가 쉽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고 말했다. 주인은 흠없는 양을 잡아 사신(邪神)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다.
우법개(于法開) 스님은 먼저 소량의 고기국을 취하고 임신부에게 침을 놓았다. 잠시 후 양막(羊膜) 속에서 아기가 나왔다.” 는 뜻이다.
우법개(于法開) 스님은 맨 처음으로 산부인과(産婦人科) 질병을 치료한 승의(僧醫)였다. 우법개(于法開) 스님의 저서는 의론비예방(議論備豫防) 1 권(卷)이 있으나 도중에 분실되고 말았다. 내용은 미상(未詳)이나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 저서명 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우법개(于法開) 스님 이후 산부인과 승의(僧醫)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오대(五代 : 서기 907 년 - 서기 960 년) 때 절강성(浙江省) 소산현(蕭山縣 : 杭州 남쪽 15km 지점) 죽림사(竹林寺)에 산부인과 가 창립되어 산부인과(産婦人科) 전문 치료를 실시하였다. 그후에도 계속 죽림사의 산부인과(産婦人科) 치료 의술이 계승되고 임상 경험이 누적됨에 따라 후대 의학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오대(五代) 부터 근대 까지 일 천 여년 동안 병마(兵馬)에 휩쓸려 죽림사는 수 십번 파괴되고 복구 되었지만 산부인과 의술은 변함없이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민간에서 현재까지 ”문전차마훤(門前車馬喧), 성성병고난(聲聲病苦難)” 이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죽림사(竹林寺) 문전에 마차 소리 떠들썩하고 환자들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소리 듣기 난처하네!” 란 뜻이다.
이러한 전설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죽림사로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가? 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 환자들의 신임을 얻었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청(淸) 나라 초기(初期) 죽림사(竹林寺)의 산부인과(産婦人科) 비방(秘方)들이 민간에 유전(流傳)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수 많은 산부인과(産婦人科) 저작들이 출간되었다.
그중 가장 광범위 하게 유전된 저작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죽림여과증치(竹林女科證治) 4 권(卷)이다. 죽림여과라고도 부르는데 조경(調經)과 안태(安胎)와 보산(保産)과 구사(求嗣)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논했다. 처방의 효과는 영험했다고 한다.
둘째 영곤비적(寧坤秘籍) 3 권(卷) 또는 죽림사여과(竹林寺女科)라고도 칭한다.
셋째 죽림사삼선사여과삼종(竹林寺三禪師女科三種) 20 권(卷) 또는 태산신서(胎産新書), 죽림사여과전서(竹林寺女科全書), 제곤육린죽림사여과전서(濟坤育麟竹林寺女科全書)라고도 칭하는데 여과비요(女科秘要), 여과요지(女科要旨), 여과비지(女科秘旨) 등을 포함하고 있다.
넷째 죽림사여과비방(竹林寺女科秘方) 1 권(卷) 또는 여과비전(女科秘傳), 부과비방(婦科秘方)이라고도 칭한다.
대부분 산부인과에서는 문진(問診)을 가장 중요시 했다. 왜냐하면 승의들이 직접 여성들의 신체에 접촉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치료법은 활혈이기(活血理氣)를 위주로 하고 소정의 방제를 사용했으며 포제(炮制)와 전복(煎服)의 방법을 사용했다.
우법개(于法開)는 절강성(浙江省) 섬현(剡縣 : 현재 嵊縣(杭州 동남방 100km 지점))에서 태어난 승인(僧人)임과 동시에 명의(名醫)였다. 우법개(于法開)는 동진(東晉 : 서기 317 년 – 서기 420 년) 제 6 대왕 애제(哀帝 : 서기 362 년 – 서기 365 년) 때 수차 경사(京師)로 초청받아 방광반야(放光般若)를 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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