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2일 수요일

중국 고대 혹형(酷刑)

다음은 중국 고대 혹형(酷刑) 중에 있는 고사(故事)의 한 토막이다.

수양제시요개변거(隋煬帝時要開汴渠), 마숙모담임개하독호(麻叔謨擔任開河督護). 타도영능후환료마비병(他到寧陵後患了麻痺病), 의생진단후설(醫生診斷後說) : 요용눈양육화행락오미일기증(要用嫩羊肉和杏酪五味一起蒸), 규함소련(叫含酥), 흘료병재능호(吃了病才能好). 향촌백성전래헌양고약유수천인(鄕村百姓前來獻羊羔約有數千人), 마숙모수하양고(麻叔謨收下羊羔), 급료타문우후적보수(給了他們優厚的報酬). 영능현하마촌유개규도랑아적인(寧陵縣下馬村有個叫陶榔兒的人),투살료인가적소해(偸殺了人家的小孩), 할거두화쌍각(割去頭和雙脚), 절쇄증숙후(切碎蒸熟後), 정헌급마숙모(呈獻給麻叔謨). 마숙모흘후각득미도격외선미미도격외선미(麻叔謨吃後覺得味道格外鮮味), 여중양고적육부동(與衆羊羔的肉不同), 중중지상사료타(重重地上賜了他). 어시도랑아형제(於是陶榔兒兄弟), 편경상투소해(便經常偸小孩), 장육헌급마숙모(將肉獻給麻叔謨), 이구은상(以求恩賞). 나사탐재적촌민야분분효방(那些貪財的村民也紛紛效倣), 치사일군지중유기백개아동피해(致使一郡之中有幾百個兒童被害), 애곡지성(哀哭之聲), 통소달단(通宵達旦). 유소해적촌민적가리도주료목궤(有小孩的村民的家里都做了木櫃), 용철피파목궤적봉극충상(用鐵皮把木櫃的縫隙衷上), 야리취파해자방입목궤(夜里就把孩子放入木櫃), 점상랍촉(点上臘燭), 전가인수재궤방직지천량(全家人守在櫃旁直至天亮). 조신타개목궤견해자완호무손(早晨打開木櫃見孩子完好無損), 전가노소편십분흔희(全家老少便十分欣喜). 후래마숙모적죄행패로(後來麻叔謨的罪行敗露), 황제열거타적종종죄상(皇帝列擧他的種種罪狀) : 흘인소아(吃人小兒), 수수뇌뢰(授受賂賂). 방축하북(放逐河北), 참위삼절(斬爲三截). 도랑아형제오인도피차열처사(陶榔兒兄弟五人都被車裂處死).”

다시 말하면 수양제 때 하남성 영양(: 鄭州 서쪽 25km 지점)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황하의 지류에 운하를 건설할 때 마숙모(麻叔謨)라는 관리를 감독으로 파견하였다.

마숙모(麻叔謨)가 영능에 도착하자 마자 마비병에 걸려 병상에 드러누워 있었다. 의사가 진찰한 후 어린 새끼양의 부드러운 고기와 행락(살구씨즙)과 오미자를 혼합하여 수증기로 쩌서 만든 함소련(작은 덩어리로 썬 고기)을 복용하여 병정이 호전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양고(羊羔 : 어린 새끼양의 고기)를 마숙모(麻叔謨)에게 바쳐서 돈을 벌었다.

영능현 하마촌에 도랑아라는 사람은 어린아이들을 잡아다가 머리와 두 다리는 잘라서 내버리고 나머지를 삶아서 마숙모(麻叔謨)에게 바쳤다. 마숙모(麻叔謨)는 어린 아이의 고기를 먹고 맛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낸 양고기와 맛이 다르다고 칭찬까지 하며 보수를 톡톡하게 많이 주었다.

그래서 도형제들은 아이들을 잡아다가 죽인 후 삶아서 인육을 마숙모(麻叔謨)에게 바쳐 돈을벌었다. 인육을 마숙모(麻叔謨)에게 팔아서 돈을 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수 백명의 아이들이 죽어 없어졌다. 동네

마다 통곡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는 나무로 궤짝을 만들어 연결 부분은 양철판을 대고 못질을 하여 튼튼하게 만든 후 밤에는 아이들을 커다란 나무 궤짝 속에 집어넣고 큰 자물쇠로 잠근 후 촛불을 밤새도록 켜놓고 집안 사람들이 교대해 가며 불침번을 스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 나무 궤짝을 열어보고 아이들이 무사하면 온 집안 식구들은 함께 기뻐하였다.

후에 마숙모(麻叔謨)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수양제는 마숙모(麻叔謨)의 죄상을 하나 하나 열거하였다. 즉 이린 아들의 고기를 먹고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죄인들을 하북성으로 쫓아내어 세 토막으로 잘라서 죽였다. 그리고 도씨 형제 다섯명은 차열형(車裂刑)에 처하였다.” 는 뜻이다.


차열형(車裂刑)이란?

옛날 죄인의 사지(四肢)를 다섯 대의 수레에 나누어 묶고 찢어 죽이던 혹형(酷刑)인데 차책(車磔)이라고도 칭한다.

수양제(隋煬帝 : 서기 604 년 - 서기 618 년)는 대운하(大運河)를 파기 시작했다. 대운하는 낙양(洛陽)을 중심으로 약 2000km 에 달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공사였다. 첫째 영제거(永濟渠)는 낙양에서 탁군(涿郡 : 북경의 서남단) 까지이고 둘째 통제거(通濟渠)는 낙양에서 회수(淮水) 까지이며 셋째 한거()는 산양(山陽: 현재 회수 南岸에 있는 강소성 淮安)에서 강도(江都: 현재 강소성 揚州) 까지 이고 넷째 강남하(江南下)는 경구(京口: 현재 강소성 鎭江)에서 여항(餘杭: 현재 강소성 杭州) 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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