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불교 종파의 변천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小獸林王 : 서기 371 년 - 서기 384 년) 2년 서기 372 년에 그 당시 전진(前秦 : 서기 352 년 - 서기383 년)의 부견(苻堅) 왕(王)은 승려 순도(順道)와 사신들에게 명하여 불경(佛經)과 불상(佛像)을 휴대하고 고구려에 들어가게 하였다. 이로써 중국 불교는 가장 먼저 고구려에 전입되었다. 그후로 부터 불교는 고구려를 통하여 백제와 신라로 각각 전입되었다.
수(隋) 나라와 당(唐) 나라 때 중국 불교의 종파가 형성되고 발전하게 되었다. 그 당시 중국에 열반(涅槃), 지론(地論), 섭론(攝論), 구사(俱舍), 성실(成實) 등 학파(學派)와 천태(天台), 삼론(三論), 자은(慈恩), 화엄(華嚴), 선종(禪宗), 율종(律宗), 정토(淨土), 밀종(密宗) 등 종파(宗派)가 있었다.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 초기에 조선의 고승(高僧)들이 중국에 들어가 구법(求法)한 후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므로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이미 조선내에 불교 종파가 형성되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조선의 불교 중 오교(五敎)가 형성되었다.
오교(五敎)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불교 종파를 일컫는다.
즉 계율종(戒律宗)과 열반종(涅槃宗)과 원융종(圓融宗)과 법성종(法性宗)과 법상종(法相宗)이다.
각 종파(宗派)의 시조(始祖)는 자장(慈藏 : 戒律宗)과 보덕(普德 : 涅槃宗)과 의상(義湘 : 圓融宗)과 원효(元曉 : 法性宗)와 진표(眞表 : 法相宗)이었다.
또 각 종파의 중심 사원(寺院)은 통도사(通度寺 : 戒律宗)와 경복사(景福寺 : 涅槃宗)와 부석사(浮石寺 : 圓融宗)와 분황사(芬皇寺 : 法性宗)와 금산사(金山寺 : 法相宗)이었다.
또 구산(九山)은 선종(禪宗)의 9 개 종파(宗派)를 일컫는다.
즉 가지산파(迦智山派), 실상산파(實相山派), 동리산파(桐裏山派), 사굴산파(阇崛山派), 봉림산파(鳳林山派), 사자산파 師子山派), 희양산파(曦陽山派), 성주산파(聖住山派), 수미산파(須彌山派)를 일컫는다.
또 각파의 조사(祖師)는 도의(道義 : 가지산파), 홍척(弘陟 : 실상산파), 혜철(惠哲 : 동리산파), 범일(梵日 : 사굴산파), 현욱(玄昱 : 봉림산파), 도윤(道允 : 사자산파), 도헌(道憲 : 희양산파), 무염(無染 : 성주산파), 이엄(利嚴 : 수미산파)이며 각파의 주요 사원은 보림사(寶林寺 : 가지산파), 실상사(實相寺 : 실상산파), 대안사(大安寺 : 동리산파), 굴산사((崛山寺 : 사굴산파), 봉림사(鳳林寺 : 봉림산파), 흥녕사(興寧寺 : 사자산파), 봉암사(鳳巖寺 : 희양산파), 성주사(聖住寺 : 성주산파), 광명사(光明寺 : 수미산파)이었다.
고려 때 ”오교양종(五敎兩宗)” 이 형성되었으며 선종(禪宗)은 가장 널리 알려진 종파였다. 대각국사 의천(義天 : 서기 1055 년 - 서기 1101 년)은 천태종을 창립했다. 고려의 천태종은 선종에 속해 있었지만 중국에서는 교종(敎宗)에 속해 있었다. 고려 때 선종의 9 개 종파는 합병되어 조계종(曹溪宗)이 되었고 이후 오교구산(五敎九山)은 오교양종(五敎兩宗)으로 개칭(改稱)되었다.
그 당시 오교(五敎)는 교종(敎宗)의 5개 종파를 일컬었는데 南山宗(계율종)과 慈恩宗(법상종)과 華嚴宗(원융종)과 中道宗(법성종)과 시흥종(始興宗)으로 각각 개명(改名) 되었다.
그리고 양종(兩宗)은 천태종(義天)과 조계종(知訥)이었다.
이씨 조선 초기에 고려 시대의 5교양종은 발전하여 11 종으로 증가되었다. 이씨조선 제 3 대왕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마자 억불정책(抑佛政策)을 폈다. 그 결과 종파들은 합병되었고 사원의 숫자는 대폭 감소되었으며 승려(僧侶)들은 환속(還俗)하였고 사찰에서 소유하던 토지는 국유로 되었다. 또 사원의 노비(奴婢)들은 군정(軍丁)으로 보충되었다. 또 도첩제(度牒制)가 엄격해 짐과 동시에 왕사(王師)와 국사(國師)와 능사제(陵寺制)도 모두 폐지되었다.
태종(太宗) 때 11개 불교 종파는 7 종(種)으로 합병되었다. 즉 총지종(摠持宗)과 남산종(南山宗)이 합병되어 총남종(摠南宗)이 되었고 중도종(中道宗)과 신인종(神印宗)이 합병되어 중신종(中神宗)이 되었으며 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과 천태법사종(天台法事宗)이 합병되어 천태종이 되었다. 그래서 7 종은 총남종, 중신종, 천태종, 조계종, 화엄종, 시흥종, 자은종이다.
세종대왕(世宗大王) 때 불교의 배척은 더욱 심해져서 불교의7종파는 병합되어 양종(兩宗)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조계종과 천태종과 총남종을 모두 병합시켜 선종(禪宗)이라고 칭하고 화엄종과 자은종과 중신종과 시흥종을 모두 병합하여 교종(敎宗)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세종 때 이씨조선의 불교는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뿐이었다.
불교 사원 역시 전국에 36개로 줄어 들었다. 불교 종파의 병합은 각 종파들이 자원하여 합병된 것이 아니었고 통치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선종이나 교종이나 종지(宗旨)가 없고 종파적 특징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성종(成宗)과 연산군(燕山君)과 중종(中宗) 때 이르러 그나마 존재해 오던 선종과 교종은 완전 폐지되고 말았다. 후에 독실한 불교 신자인 중종(中宗 : 서기 1506 년 - 서기 1544 년)의 왕비 문정왕후(文定王后 : 서기 1501 년 - 서기 1565 년)의 섭정(攝政) 때 선종과 교종은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죽고 나서 또 다시 불교는 탄압을 받게되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불교에 큰 변화가 일어나 선종적(禪宗的) 조계종(曹溪宗)이 가장 성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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