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6일 수요일

백마사(白馬寺)는 중국 최고(最古)의 사원(寺院)

백마사(白馬寺)는 중국 최고(最古)의 사원(寺院)

낙양(洛陽)의 동쪽 12km 지점에 한 개의 고사찰(古寺刹)이 있다.  수 백년 된 송림(松林) 고목들과 서로 잘 어울려 돋보이는 이 사찰! 우람스럽고 장엄하며 엄숙한 전당(殿堂)들......, 높이 솟아있는 보탑(寶塔)들......, 한 번 이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의 뇌리속에서 인상이 깊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 이 사찰이 바로 백마사이며 중국에서 맨 처음 건축된 사찰이다.

"중국제일고사(中國第一古寺)” 란 호칭을 갖고 있으며 약 12345 ()의 대지(垈地) 위에 천왕전(天王殿), 대불전(大佛殿), 대웅전(大雄殿), 접인전(接引殿), 청량대(淸凉臺), 비로각(毘盧閣) 등이 있다.

백마사에 한 가지 기괴한 일이 있다.

즉 낙양팔대경(洛陽八大景) 중의 하나인 백마사종성(白馬寺鐘聲)” 이다.

매달 달이 밝고 바람이 없는 날 밤 온 세상이 고요할 때 스님이 방망이로 대불전(大佛殿)에 높이 매달아 놓은 종을 치면 종소리가 십리 까지 들리고 그치지 않고 계속 울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12.5km 떨어져 있는 낙양의 노성(老城) 종루(鐘樓) 위에 매달아 놓은 큰 종의 음율(音律)이 백마사의 종과 똑 같기 때문에 백마사의 종을 칠때 마다 함께 울려 계속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백마사는 북망산(北邙山)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낙수(洛水)가 옆으로 흐르고 있다. 백마사에서 중원의 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백마사 내에 있는 구리로 만든 종과 북소리는 2000여 년 동안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백마사의 건립과 동한(東漢)의 제 2 대왕 명제(明帝 : 서기 58 서기 75 ) 유장(劉庄)과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어느 날 밤 한명제(漢明帝)의 꿈에 금인(金人 : 금으로 만든 사람)을 보고 나서 사신을 서방(西方)으로 보내어 구법(求法)하고 돌아오라고 명했다.

채음과 진경은 대월지(大月氏)에 가서 우연히 인도의 고승 섬마등(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났다. 섬마등(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으로 부터 불경을 익히고 불경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한(漢) 나라로 귀국하였다. 

이들은 말등에 불경을 싣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사막을 뜷고 천신만고 끝에 영평(永平) 10(서기 68 )에 낙양에 도착되었다.

한명제(漢明帝)는 스스로 두 명의 인도 고승에게 경의를 표하여 극진히 모셨다. 한명제는 그들을 홍려사()에 임시로 머물게 하였다. 홍려사()는 그 당시 외교사무(外交事務)를 관장하는 관서(官署)였다.

한명제(漢明帝)는 그 이듬해 서기 69 년에 낙양성 서편에 승원을 건축하라고 명하였다. 사원이 완공된 후 명제는 불경을 천축에서 낙양까지 싣고 온 백마(白馬)”와 홍려사()()” ()  따서  명제가 직접 이 사찰의 이름을 백마사라고 명명하였다. 그래서 백마사는 중국 최초의 사원이 되었다.

백마사 건축 후 한문에 능통한 천축 승려 섭마등 스님과 축법란 스님들은 불경의 번역에 주력하였다. 첫번 째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번역하였다. 한명제가 사십이장경을 읽어 본 후 극구 칭찬하였으며 한(漢)나라 황실도서관(皇室圖書館)-난대석실(蘭臺石室)에 잘 보관해 두라고 칙령을 내렸다.

인도의 섭마등 스님과 축법란 스님이 번역한 사십이장경은 중국 불교 전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불교 홍법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써 백마사는 중국내에서 불교 경전 번역의 발원지(發源地)가 되었다.

명제때 불경 번역 승려 중 안식(安息 : 파키스탄 왕국) 왕자(王子) 안세고(安世高)와 월지인(月氏人 : 기원 전 3 세기와 기원 1 세기 사이에 북 아시아와 중앙 아시아에 건국했던 유목민족 국가) 지류가참(支流迦讖) 등도 모두 백마사에서 천축의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국가사업에 종사하였다. 그들 외에도 천축인 축불삭(竺佛朔)과 안식인 안현(安玄)과 월지인 지요(支曜)와 강거인(康居人 : 카자흐스탄) 강맹상(康孟祥)과 강거인(Kazakhstan) 강거(康巨) 등이 있었다.

서진(西晉) 때에도 백마사는 불경을 번역하는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북위(北魏) 때에도 인도의 승인 불타선다(佛陀扇多)는 백마사에서 역경(譯經)에 종사했었다. 이와 같이 백마사는 중국 불교 발전에 크나 큰 역할을 해온 사원임과 동시에 중국 불교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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