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홍(宋弘)의 불기조강(不棄糟糠)
다음은 후한서(後漢書)-송홍전(宋弘傳)에 수록되어 있는 고사(故事)이다.
<<제저호양공주신과(帝姐湖陽公主新寡), 제여공론군신(帝與共論群臣), 미관기의(微觀其意). 주왈(主曰) : ”송공위용덕기(宋公威容德器), 군신막급(群臣莫及).” 제왈(帝曰) ”방차도지(方且圖之).” 후홍피인견(後弘被引見), 제영주좌병풍후(帝令主座屛風後), 인위홍왈(因爲弘曰) : ”언언귀역교(諺言貴易交), 부역처(富易妻), 인정호(人情乎)?” 홍왈(弘曰) : ”신문빈천지지불가망(臣聞貧賤之知不可忘),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제고위주왈(帝顧謂主曰) : ”사불해의(事不諧矣).>>
다시 말하면
”서한(西漢) 광무제(光武帝)의 누나인 유황강(劉黃剛 : 호양공주(湖陽公主))의 남편이 갑자기 죽어 과부(寡婦)가 되었다. 광무제(光武帝)와 유황강은 조중(朝中)의 대신(大臣)들 중에서 남편감을 골라 보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호양공주(湖陽公主)는 ”송공(宋公)의 용모가 위엄이 있고 도량과 식견이 출중함은 다른 대신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고 광무제(光武帝)에게 말했다.
광무제(光武帝)는 ”내가 계획을 한 번 세워보지!” 라고 누나에게 대답했다.
얼마 후에 광무제(光武帝)는 송홍을 접견했다.
광무제(光武帝)는 송홍(宋弘)과 면접하는 동안 누나에게 병풍 뒤에 숨어서 송홍(宋弘)이 하는 말을 엿들어 보라고 말했다.
광무제(光武帝)는 송홍(宋弘)에게 ”속설(俗說)에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 지면 부인을 바꾼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는가?” 라고 송홍(宋弘)에게 말했다.
송홍(宋弘)은 ”소인은 곤란할 때 사귀었던 친구를 잊지 말고 어려움을 함께 나눈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고 광무제(光武帝)에게 대답했다.
광무제는 호양공주(湖陽公主)에게 “누나! 될 가망이 전혀없네!” 라고 말했다.” 는 뜻이다.
송홍(宋弘)의 자(字)는 중자(仲子)이고 경조장안(京兆長安 : 현재 陝西省 西安市) 태생이다.
송홍(宋弘)은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한 후 대사공(大司空)의 지위에 올랐다. 대사공이란? 사도(司徒)와 태위(太尉)와 더불어 삼공(三公)이라고 칭한다. 송홍(宋弘)은 도량과 학식이 출중하고 인품이 고상하기로 조정내에서 소문이 났었다.
송홍(宋弘)의 ”불기조강(不棄糟糠)” 은 천고(千古)의 미담(美談)으로 현재까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불기조강(不棄糟糠)이란?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지 마라는 뜻이다.
조(糟)는 주사(酒渣)를 일컬으며 강(糠)은 곡피(穀皮)를 일컫는다. 그래서 조강지처(糟糠之妻)란? 가난할 때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어려움을 함께 겪은 아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조강지처(糟糠之妻)란? 곤경 속에서 구차스러운 생활을 같이 하던 아내를 일컫는다.광무제(光武帝 : 서기 전 140 년 – 서기 전 87 년)는 서한의 제 6 대왕 유철(劉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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