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광(司馬光 : 서기 1019 년 - 서기 1086 년)은 북송 제 4 대왕 인종(서기 1022년 - 서기 1063 년)과 제 5 대왕 영종(英宗: 서기 1063 년 - 서기 1067 년)과 제 6 대왕 신종(神宗: 서기 1067 년 - 서기 1085 년)과 제 7 대왕 철종(哲宗: 서기 1085 년 - 서기 1100 년) 때 사람이다. 섬주 하현(陝州夏縣 : 현재 山西省 夏縣)의 속수향(涑水鄕)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군실(君實)인데 사람들은 사마광을 속수선생이라고도 불렀다. 인종(仁宗) 보원(寶元) 원년(元年 : 서기 1038 년) 19세 때 진사에 합격하였다. 철종 때 재상이 되어 죽을 때 까지 역임했다. 사후에 태사(太師), 온국공(溫國公)에 추증(追贈)되었고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저서에 자치통감 294 권과 독락원집(獨樂園集) 등이 있다.사마광의야기속에미인당전(美人當前),수색가찬(秀色可餐), 염야당전(艶冶當前), 발연난제(勃然難制)." 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미인과 함께 있으면 아름다운 용모가 밥 반찬이며 매력있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이 있으면 흥분을 참기 어렵다. 또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사람과 함께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 는 뜻이다. 다음은 일화 한 토막이다. 사마광이 대 여섯 살 때 호도 껍질을 어떻게 까는 줄 몰랐다. 작은 누이가 까주기를 바랬는데 작은 누이도 깔 줄 몰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후에 하녀(下女)가 뜨거운 물 속에 한참 동안 집어 넣어 두었다가 까면 잘 까진다고 말하며 사마광 대신 호도 껍질을 까 주었다. 큰 누이가 집에 돌아와 "누가 호도 껍질을 까는 것을 도와 주었으냐?" 고 사마광에게 물었다. 사마광은 "작은 누이가 호도 까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 거짓말을 하였다. 사마광의 아버지는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않된다." 고 엄하게 타이르며 호되게 꾸짖었다. 사마광은 이때 이후로 죽을 때 까지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이 성실하게 살았다. 사마광은 이 사실을 종이에 써 두고 시시각각으로 읽어 보며 자기 자신을 채찍 질 하며 살았다. 소옹의 아들 소백은 사마광의 글을 읽고 또 읽었으며 청 나라 때 진굉모는 "사마광은 일생 동안 성실을 위주로 살았으며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을 근본(根本)으로 삼았다." 고 말했다. 또 후세인들은 사마광의 널 위에 오직 "성(誠)" 자(字) 한자 만을 써놓았다. 일화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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