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2일 수요일

하대적혼군공갑 (夏代的昏君孔甲)

하대적혼군공갑 (夏代的昏君孔甲)
우왕(禹王)이 하 나라를 건립한 후 자기 아들 계()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고 계 또한 왕위를 자기 아들 태강(太康 : BC 2015 – BC 1987 )에게 물려 주었다. 하 나라 제 14 대왕 공갑(孔甲 : BC 1706 – BC 1676)은 정사에 태만하였고 귀신을 믿기에 힘섰다. 그리고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며 유람하며 수렵을 즐겼으며 색()을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하 나라는 물론 공갑(孔甲) 왕자신의 위엄과 명망은 점점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공갑(孔甲)은 신하들과 사냥 매와 사냥 개들을 데리고동양(東陽)에 있는 부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라고 불리는 부산 속의 길신(吉神)은 어리석은 공갑(孔甲)왕이 조용한 산속에 들어와서 사냥을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이때 길신은 일진광풍을 일으켜 돌멩이와 모래와 흙을 날려 보내며 온 천지를 캄캄하게 만들었다. 공갑(孔甲)과 그의 신하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실종되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맸다. 공갑(孔甲)은 몇 사람의 신하들을 데리고 산속에 있는 굴속에 숨어 있다가 계곡으로 도망쳐 나왔다. 어느 노인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때 그 집안에서 남자 아기를 낳았다. 이웃에 있는 친구들이 아들을 낳았다고 축하해 주기 위해서 모여 들었다. 친구들은 공갑왕을 보자마자 경의를 표했다. 사람들은 저 아기가 임금님이 집안에 왕림하자 마자 세상에 태어 났으므로 반드시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일 것이며 앞길이 대길대리할 것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또 한 쪽에서는 생일은 좋지만 후일에 재앙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있던 공갑(孔甲)왕은 화를 벌컥내며 너 이놈들! 허튼 소리 말아라. 저 아기는 천신이 나에게 점지해준 아기이다. 누가 감히 저 아이에게 재앙을 입힌단 말인가?” 고 말했다. 공갑(孔甲)왕은 그 아기를 궁안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들여 길렀다. 아이가 점점 자라 성인이 될 때쯤 그 아이에게 관직을 주면 그 아이는 자기의 세력과 명성을 온 천하에 날리게 될 것이다고 공갑(孔甲)왕은 혼자서 상상하였다. 복을 원하면 복이 생기고 재앙을 주고 싶으면 재앙을 줄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별안간 한 사건이 발생하여 공갑(孔甲)의 기획한 바가 수포로 돌아갔다. 어느 날 이 소년이 궁안의 연무장 안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 홀연히 일진광풍이 불어닥쳐 장막의 섯까래가 무너져서 무기를 진열해 둔 선반을 때려 눕힘과 동시에 날이 넓고 편평한 도끼가 바람에 날아가 소년은 대경실색하여 도망갔다. 아무도 도끼가 날아와 소년의 발목을 절단시킬 줄 몰랐다. 소년의 다리가 부러져서 병신이 되고 말았다. 공갑왕은 용을 기르는 것에 취미가 있었다. 그래서 암수 한 쌍의 용을 궁안에서 사육하였다. 공갑(孔甲)왕은 용의 습성도 잘 몰랐고 어떻게하면 용이 사람을 잘 따르는지도 몰랐으며 무엇을 용에게 먹여야 좋은지도 몰랐다. 그래서 용을 사육할 사람을 구해봤다. 용을 사육하는데 조예가 깊지않은 유루씨가 양룡사로 들어왔다. 유루는 용을 기르다가 암룡을 죽여버렸다. 유루는 큰 화가 닥칠 것을 모르고 태연자약하였다. 유루(劉累)는 죽은 용을 연못속에서 끄집어 내어 용의 배를 가르고 용의 살을 잘게 썰어 요리를 하여 공갑(孔甲)왕에게 올렸다. 유루는 자기 자신이 요리한 야생 동물의 고기라고 말하며 한 점 드셔보라고 공갑(孔甲)왕에게 권유했다. 공갑(孔甲)왕은 용의 고기를 한 점 먹고난 후 맛이 좋다고 말하며 몇 차례 더 먹고나서 유루(劉累)를 칭찬하였다. 그리고나서 공갑왕은 유루(劉累)에게 용을 두 마리를 대령하여 구슬을 갖고 놀게해 보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공갑왕은 숫용 한 마리가 억지로 혼자서 놀고 있는 장면을 보고 암컷은 어찌하여 데리고 나오지 않았느냐? 고 유루(劉累)에게 물었다. 유루(劉累)는 공갑(孔甲)왕이 먹어버렸다는 말은 차마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둘러대며 얼버무렸다. 한 두 차례는 넘어갈 수 있지만 세번째 네번째 공갑(孔甲)왕은 화를 내며 다음번에는 반드시 암컷을 데리고 나오라고 유루에게 명했다. 유루(劉累)는 더 이상 이리 저리 둘러댈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궁을 탈출하여 도망가 버렸다. 암컷은 죽어버렸고 유루(劉累)는 도주해 버렸으므로 혼자 남아있는 숫컷은 병으로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공갑왕은 용을 사육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구하여 대령하라고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신하들은 용을 잘 사육시킬 수 있다고 소문이 난 고수를 찾았다. 그의 이름은 사문이었다. 사문(師門)이 숫용을 사육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들어 시들 시들하던 숫용은 생기를 얻기 시작하여 건강을 되찾았다. 공갑(孔甲)왕은 사문에게 이제 숫용을 내 앞에 데려와 재롱을 부려보게 해달라고 말했다.공갑(孔甲)왕 앞에서 사리를 틀고 꾸불 꾸불하며 빙빙 감도는 숫용의 모습은 귀여웠다. 공갑(孔甲)왕은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사문(師門)은 유루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이었다. 사문(師門)은 절대로 비굴하게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용을 사육하는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해야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임금의 명령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절대복종은 아니었다. 그래서 유아독존적인 공갑(孔甲)왕은 매우 난감하였다. 궁중 안에서 용을 사육하는 목적은 오직 오락에 만 있었다. 어느 날 공갑(孔甲)왕은 매우 화가나서 노발대발하며 사문(師門)의 목을 당장 치라고 명령하였다. 사문(師門)은 늠름한 모습으로 내 목을 자르고 싶으면 자르십시요. 내목을 당신께 바치겠으니 모두 가지십시요. 내몸 까지 모두 헌납하겠습니다.” 고 마지막으로 공갑(孔甲)왕에게 말했다. 즉시 위사들이 사문(師門)에게 달려가서 사문(師門)의 목을 잘라 위사들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문(師門)의 머리를 공갑(孔甲)왕에게 헌납하였다. 공갑(孔甲)왕은 사람을 시켜 사문(師門)의 시체를 궁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황야에 묻으라고 명하였다. 사문(師門)의 시체를 교외에 있는 깊은 산속에 묻고난 후 폭풍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일진광풍이 불기도 했으며 사문(師門)의 시체가 묻혀있는 주위의 산림에서 산불이 나서 나무들이 훨훨 타며 불꽃은 하늘까지 치솟았다. 공갑(孔甲)왕은 궁안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에 산불이 발생하여 훨훨 타고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공갑(孔甲)왕은 마차를 타고 산불이 훨훨 타고있는 곳 가까이 가서 제발 작괴를 부리지 말아 주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공갑(孔甲)왕이 기도한 후 과연 불길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결국 산불은 저절로 진압되었다. 공갑(孔甲)왕은 안심하고 마차를 타고 궁으로 돌아왔다. 공갑(孔甲)왕이 왕궁 문 앞에 다달았을 때 위사대장이 공갑(孔甲)왕이 타고있는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위사대장은 폐하! 어서 마차에서 내리십시요. 궁문 앞에 당도했습니다고 말했다. 공갑(孔甲)왕은 꼼짝달싹 하지않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공갑(孔甲)왕은 두 눈을 뜬채로 먼산 만 바라보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위사대장이 공갑(孔甲)왕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공갑(孔甲)왕은 이미 죽어 있었고 몸은 얼음짱과 같이 차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상의 고사는 중국신화고사 중 하대적혼군공갑(夏代的昏君孔甲)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夏代是樣滅亡的?看看夏代後期的這兩個昏君,就明白了。
夏代有個昏君名叫孔甲,他十分自私自傲,並且淫亂無度。夏王朝的德望隨著他的昏惡,而日漸衰微,各地諸侯對他的人,十分鄙視,於是,相繼背叛。
傳說上天曾經降下一雌一雄兩條神龍,來警示孔甲,孔甲不思修身興德,振作勤政。卻耽於欣賞這兩條龍,就四處尋找會養龍的人。當時,有一個叫劉累的人,從一個養龍的人那裏,學會了馴龍之術,便決定去侍奉孔甲,幫助孔甲養龍。孔甲對他十分寵信,賜封他御龍氏,並賜給他許多封地。後來那條雌龍死了,劉累便突發奇想,偷偷地把做成了肉醬,拿來獻給孔甲品。孔甲吃完以後,覺得味道非常鮮美,便派人去找劉累,再做一些那樣的肉醬。劉累已經沒有肉醬可以進貢,又害怕龍死的事情被孔甲知道,就連夜逃了。這件事也預示著上天對夏王朝已經失去了信心。
孔甲死後,幾經傳位到桀,傑是夏朝最後一個君王,是個有名的暴君。他不但不講德行,
反而用武力傷害、
壓百姓,民眾都不堪忍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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