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기원 전 770 년 - 기원 전 403 년) 송(宋) 나라의 강왕(康王) 때 황궁내에 한빙(韩凭)이라고 불리는 시위(侍衛)의 부인 하씨(何氏)는 절세미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강왕(康王)은 하씨(何氏)를 보고 나서 하씨(何氏)의 미에 반해서 침을 흘렸다. 군대를 한빙(韩凭)의 집에 보내어 부인을 입궁시키라는 어명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한빙(韩凭)은 부인의 입궁을 결사코 반대하였다. 결국 한빙(韩凭)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노예가되어 성을 쌓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하씨(何氏)부인은 항상 한빙을 생각하며 사람을 시켜 몰래 다음과 같은 비밀 서한을 한빙(韩凭)에게 발송하였다.
“其雨淫淫,河大水深,日出当心。”
궁문을 감시하고 있는 위병에게 발각되어 하씨(何氏)의 비밀편지가 강왕(康王)의 손에 들어갔다.
강왕이 여러 차례 자세히 편지를 읽어봤는데 도저히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좌우 대신들에게 읽어 보고나서 해석해 보라고 어명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강왕(康王)은 그 당시 문학에 조예가 깊은 소하(蘇賀)를 입궁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소하는 강왕(康王) 앞에서 하씨(何氏)가 한빙(韩凭)에게 보낸 비밀 편지를 읽어보더니 ”기우음음(其雨淫淫)은 하씨가 한빙을 무척 그리워하고 근심과 걱정과 생각이 비오듯 한다는 뜻이고 하대수심(河大水深)은 두 사람 사이에 큰 바다가 가로 막고 있어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며 일출당심(日出当心)은 당신과 내가 함께 죽고 싶다는 뜻이옵니다.” 고 강왕(康王)에게 아뢰었다.
화가 머리끝 까지 치밀어 오른 강왕(康王)은 신하를 시켜 한빙을 두들겨 패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날밤 한빙(韩凭)은 자살하고 말았다.
하씨(何氏)는 자기의 비단 의복을 물속에 담그어 부패하여 상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강왕(康王)은 하씨(何氏)를 데리고 관망대로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하씨(何氏)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타서 관망대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렸다. 좌우에서 호위병들이 급히 달려가 하씨(何氏)의 의복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하씨가 입고있는 의복은 삭아서 쉽게 찢어져 버렸고 하씨(何氏)는 결국 익사하고 말았다.
죽은 하씨(何氏)의 호주머니 속에서 하씨가 강왕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유서가 발견되었다.
“大王想我生,而我自己想死. 愿大王看在往日恩情,赐我与韩凭合葬.”
다시 말하면 ”대왕! 살아 생전에 나의 남편 한빙(韩凭)에게 관직을 주셨음에 대하여 우리 부부는 대왕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나의 남편에게 고통도 주었고 부인도 빼앗아 갔으며 목숨을 잃게 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나의 남편을 만나러 구천으로 가니 대왕께서 연민을 베풀어 우리 부부의 시체를 합장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는 뜻이다.
강왕(康王)은 화가나서 하씨(何氏)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강왕은 매장하는 인부들에게 명하여 한빙과 하씨(何氏)의 시체를 산길의 양쪽 끝에 묻으라고 어명을 내렸다. 그래서 한빙과 하씨(何氏)의 무덤 사이는 대략 7 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강왕은 ”만일 너희들이 진실로 사랑한다면 천제께서 두 무덤을 하나로 합쳐 줄 것이다. 그때엔 나도 너희들을 도와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하씨(何氏)와 한빙의 무덤 속에서 각각 하나의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두 나무는 크게 자라서 윗 부분의 나뭇가지가 서로 들어붙었고 지하에 있는 뿌리도 서로 달라붙어 결국 한 나무가 되었다.
나뭇 가지 위에는 한쌍의 원앙새가 집을 짓고 살며 매일 새벽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처량하게 울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금을 아프게 해준다.
송 나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감동도 받고 상심도 하여 이 나무의 이름을 사상수(思想樹)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사상수(思想樹)는 한빙 부부의 혼이 변하여 된 나무이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이상의 고사는 중국신화고사 중 사상수적신화((思想樹的神話)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 还是在春秋时候,宋国国君是宋康王,皇宫中有一名侍卫叫韩凭。韩凭娶妻何氏,长得非常漂亮。宋康王垂涎何氏美色,派兵强抢进宫。韩凭反抗,结果被囚禁,后来又被赐为奴隶,修筑城墙。
何氏想念韩凭,派人偷偷送信给韩凭,信曰:“其雨淫淫,河大水深,日出当心。”
这封信被宋康王的秘史获得,报告给宋康王了。宋康王仔细读信,又让左右随从读,大伙都不明白是什么意思。一个叫苏贺的大臣说:“其雨淫淫,说的是愁和思;河大水深,指不能往来;日出当心,表明心有死志。”宋康王大怒,派人将韩凭毒打一顿,当晚韩凭就自杀了。
何氏偷偷的把衣服放在水中浸泡,让丝绸变腐。有一天,宋康王携着何氏登台看景,何氏乘人不备,从高台上跳下。左右互为看她跳楼,就去抓她衣服,但衣服已经被腐蚀,何氏最终还是死了。在何氏的遗体上发现了一封写给宋康王的信:“大王想我生,而我自己想死。愿大王看在往日恩情,赐我与韩凭合葬。”
宋康王愤怒,没有按照何氏的要求办。派去埋葬的人,把两人的坟墓分别葬在一条山道的两旁,相距两丈。宋康王说:“如果你们夫妻真的相爱,那么老天爷会让你们坟墓合二为一,那里用得我帮忙。”
不久,韩凭和何氏的坟墓里,各长出一颗大树,两棵树相向而长,最后长到了一起,上面是枝桠交错,地下是根木相缠,变成了一棵树。树上又有一对鸳鸯筑巢,每天早晨和黄昏交颈哀鸣,声音感人。
宋国人都知道这个事情,非常伤心和感动,把这种树取名叫做“相思树”,说是韩凭夫妇精魂所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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