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초재좌정지살(耶律楚材佐政止殺)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원(元) 나라 때 유명한 대신이었고 평생 글을 읽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불교내전(佛教内典)과 술수황노(術數黃老) 학설에 정통하였다. 원태조(元太祖) 성길사한(成吉思汗)이 행군하기 직전에 항상 초재(耶律楚材)를 불러서 점을 먼저 치고나서 예언을 듣고 행동 개시를 하였다. 점 결과는 매번 귀신 처럼 영험하였다. 성길사한(成吉思汗)은 초재(耶律楚材)의 말을 신임했다. 어느 날 성길사한(成吉思汗)은 동인도를 공략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행군하는 도중에 철문관 지방에 도착하고 있는데 모양은 사슴 처럼 생겼고 꼬리는 말의 꼬리와 닮았으며 한 쌍의 뿔이 있고 사람의 말을 하였다. 이 처럼 괴상한 짐승이 원태조의 시위들에게 ”당신들이 공격하려고 하는 저 지방은 공격하는데 매우 불리하므로 내일 새벽에 군대를 회수하여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당신의 상관에게 말하십시요.” 라고 말했다. 성길사한(成吉思汗)은 시위로부터 이러한 보고를 받고 이상하게 여기며 초재(耶律楚材)를 불러 물어 보았다. 초재(耶律楚材)는 ”저 동물은 아주 보기 어려운 동물입니다. 저 짐승의 이름은 주각서인데 각 지방의 방언을 하며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살아 남는 동물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상서로운 징조를 대왕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대왕께서 하늘의 마음에 순종하여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아뢰었다. 성길사한(成吉思汗)은 초재(耶律楚材)의 말을 듣자 마자 즉시 회군하였다. 그 당시 각 주군현의 관리들은 포학하게 백성들을 살해하였고 부녀자들을 간음하였으며 백성들의 재물을 착취한다는 소문을 초재(耶律楚材)는 듣고 통곡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초재(耶律楚材)는 원태조(元太祖)에게 각 주군현의 관리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살해를 즉시 금하고 형벌 또한 원태조의 허가를 맡으라고 명령을 내리라고 조언하였고 위반할 시에는 처형하겠다고 통보하라고 간언하였다. 이때부터 각 지방의 포학한 악풍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원태조(元太祖)가 남정 때 초재(耶律楚材)는 태조에게 수 백개의 항복기를 만들라고 요청했다. 항복하는 백성들에게 항복기를 나누어 주고 항복기를 하늘 높이 휘날리며 고향으로 돌아 가도록 하라고 간언하였다. 왜냐하면 무고한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후에 원태조(元太祖)는 군대를 이끌고 변량(현재 河南 開封)을 공격하였다. 왜냐하면 변량 지구 백성들은 금(金) 나라를 위하여 최후까지 완강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이었다. 원태조(元太祖)는 변량 전 지역을 깨끗이 불살라 버리라고 명하였다. 초재(耶律楚材)는 원태조에게 ”황상의 공격 목적이 인민과 토지를 획득하는 것일 진대 변량의 전 지역을 불살라 버린다면 토지는 얻되 인민은 얻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 아뢰었다. 그래서 성길사한은 단호하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초재(耶律楚材)는 계속 ”정교한 공예품과 아름다운 건축물과 보물과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호들이 변량성 안에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만일 변량의 전 도시를 불살라 없애 버린다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깝지 않습니까?” 고 말했다. 원태조(元太祖)는 초재(耶律楚材)의 말을 듣고나서 그럴듯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한 끝에 변량 도성을 전멸시킬 계획을 취소하였다. 그러므로 성안에 들어있는 147 만 명의 생명을 보전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포로로 붙잡혔다가 도망가는 사람의 숫자도 많았다. 원태조(元太祖)는 만일 붙잡힐 경우 본인은 물론 전 가족을 멸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때 초재(耶律楚材)는 원태조(元太祖)에게 ”현재 하남 일대가 평정되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은 황상의 새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도망간다 하드래도 어디로 도망을 치겠습니까?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일 개 포로로 인하여 수 십명 내지 수 백명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하시는 겁니다.” 고 아뢰었다. 초재(耶律楚材)는 원태조(元太祖) 때 군사 방면은 물론 국가의 대사를 도와주었다. 초재(耶律楚材)는 후에 중서령의 관직에 임명되었고 죽은 후에 광녕왕(廣寧王)에 추봉되었다. 초재(耶律楚材)의 아들 주(鑄)는 좌승상(左丞相)을 역임했고 11명의 손자들은 모두 대관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는 야율초재(耶律楚材)의 일생을 볼 때 그는 불법에 정통하였고 대신으로써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힘써 일했기 때문에 변량성 일대의 소살(燒殺)을 방지했다. 초재(耶律楚材)는 원태조의 변량성 안에 있는 금은 보화에 대한 물욕을 자극시켜 원태조(元太祖)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결과 변량대도살(汴梁大屠杀)의 재난(灾难)을 면하게 되었다. 또 도망간 포로들의 생명도 유지할 수 있었다. 몽고인들이 처음 중국에 쳐들어 올 때는 모든 한족(漢族)들을 깡그리 몰살시켜 버릴 계획을 세웠었는데 원태조(元太祖)가 불법(佛法)을 연구하게 되고 초재(耶律楚材)와 같은 훌륭한 명재상(名宰相)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날 한족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야율초재(耶律楚材)의 공적 역시 불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교가 중국 민족에게 끼친 공헌은 지대하다.
이상의 고사는 인과응보고사류편(因果應報故事類編) 중 야율초재좌정지살(耶律楚材佐政止殺)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耶律楚材是元朝时代有名的大臣,生平无书不读,学问很渊博,尤精通佛教内典,对于术数黄老等学说,也很有研究。元太祖成吉思汗在行军之前,每次都要请楚材占卜得失,预言常能应验如神,所以成吉思汗对他十分倚重信任。
有一次,元军征伐东印度,行军到铁门关地方,发现一只有角的兽,身形似鹿而尾巴像马,发出人声,对元太祖的侍卫说:“这地不宜再进攻,请你们皇上早日收兵为妙。”成吉思汗觉得大为惊奇,向楚材请教,楚材回答说:“这是世界上难见稀有的瑞兽,它的名称叫做角瑞,能够说各地的方言,好生而恶杀,这是天降祥瑞,以示皇上,愿皇上承顺天心而保全民命。”成吉思汗听了,立刻收兵回国。
当时各地州郡的官吏,大多很暴虐,常常任意杀人,甚至奸人妻女,取人货财,楚材听到各地政治黑暗的情形,不禁痛哭流涕,就向元太祖上奏,下令各地州郡,官吏不能随便杀人,凡死刑一定要报经皇上核准,违者官吏处死。这样以后,各地官吏暴虐的恶风,才渐渐的改变,元太祖南征的时候,楚材奏请制备招降的旗数百面,发给降顺的民众,使他们各归故里,因此保全了很多的民命。
后来元太祖率军攻打汴梁(汴梁就是现在的河南开封),带兵的武将,为了报复金人的持久顽抗,主张要烧杀全城,楚材就向太祖上奏说:“皇上用兵的目的,是要获得土地与人民,如果烧杀全城,那么得了土地而无人民,又有什么用呢?”成吉思汗还是犹豫不决,楚材又继续进谏说:“奇巧精美的工程,厚藏财宝的富户,都荟集在这城中,倘若烧杀全城,我们将一无所获,岂不可惜!”太祖听了很有道理,就取消屠城的原议,下令只办城内颜氏的罪,其余一概不究,这样保全了一百四十七万人的性命。当时被俘而逃亡的人很多,元军下令,凡收留或资助逃俘的人,必灭其全家,楚材又向太祖上奏说:“河南既已平定,人民都是皇上的赤子,他们逃也没有地方可以去,怎么可以为了一个俘囚,因而连死数十人数百人呢?”太祖听了楚材的奏言,就解除了原来的命令。楚材襄佐军国大事,官拜中书令,死了以后,追封广宁王。他的儿子铸,位至左丞相,孙儿十一人,也多数做了大官。
有一次,元军征伐东印度,行军到铁门关地方,发现一只有角的兽,身形似鹿而尾巴像马,发出人声,对元太祖的侍卫说:“这地不宜再进攻,请你们皇上早日收兵为妙。”成吉思汗觉得大为惊奇,向楚材请教,楚材回答说:“这是世界上难见稀有的瑞兽,它的名称叫做角瑞,能够说各地的方言,好生而恶杀,这是天降祥瑞,以示皇上,愿皇上承顺天心而保全民命。”成吉思汗听了,立刻收兵回国。
当时各地州郡的官吏,大多很暴虐,常常任意杀人,甚至奸人妻女,取人货财,楚材听到各地政治黑暗的情形,不禁痛哭流涕,就向元太祖上奏,下令各地州郡,官吏不能随便杀人,凡死刑一定要报经皇上核准,违者官吏处死。这样以后,各地官吏暴虐的恶风,才渐渐的改变,元太祖南征的时候,楚材奏请制备招降的旗数百面,发给降顺的民众,使他们各归故里,因此保全了很多的民命。
后来元太祖率军攻打汴梁(汴梁就是现在的河南开封),带兵的武将,为了报复金人的持久顽抗,主张要烧杀全城,楚材就向太祖上奏说:“皇上用兵的目的,是要获得土地与人民,如果烧杀全城,那么得了土地而无人民,又有什么用呢?”成吉思汗还是犹豫不决,楚材又继续进谏说:“奇巧精美的工程,厚藏财宝的富户,都荟集在这城中,倘若烧杀全城,我们将一无所获,岂不可惜!”太祖听了很有道理,就取消屠城的原议,下令只办城内颜氏的罪,其余一概不究,这样保全了一百四十七万人的性命。当时被俘而逃亡的人很多,元军下令,凡收留或资助逃俘的人,必灭其全家,楚材又向太祖上奏说:“河南既已平定,人民都是皇上的赤子,他们逃也没有地方可以去,怎么可以为了一个俘囚,因而连死数十人数百人呢?”太祖听了楚材的奏言,就解除了原来的命令。楚材襄佐军国大事,官拜中书令,死了以后,追封广宁王。他的儿子铸,位至左丞相,孙儿十一人,也多数做了大官。
我们看耶律楚材的一生,因为精通佛法,所以虽位至大臣,但并不是以做官为目的,而以救国救民为急务。他为了阻止元军烧杀汴梁全城,因正谏不能使元太祖接受,就以“奇巧厚藏”的物欲,打动了元太祖的心,使汴梁免除了大屠杀的灾难,至于逃俘免究,更保全了不知凡几的人命。耶律楚材的功德,不仅如此而已,当蒙古人初入中国的时候,本来要杀尽汉人,把中国变为牧场,幸而耶律楚材深明佛法,谏止了蒙古人的杀机,我们汉族能存留于天地之间,固然是耶律楚材之功,也可说完全是靠了佛法。仅从这一点看来,佛教对于中华民族的贡献,实在太大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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