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중국의 식인문화(食人文化)

중국의 식인문화(食人文化)
황숙빙(叔娉) 의 저서 중국원시사회사화(中國原始社 》에 보면 北京人化石有一令人注意的事,即发现得很多,而干骨和四肢骨却很少,而且大部分盖骨都有痕。痕是有皮肉受打所致,是用利刃器物、石或棍棒打击产生的。很可能,古的北京人有食人之这种食人之风显然是在食物十分乏,饥饿死神的使者出现时产生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북경인의 화석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두개골은 많이 있는데 비하여 기타 신체 부위의 뼈는 아주 드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두개골에 상흔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흔은 예리한 물건이나 둥그런 돌과 곤봉을 사용하여 머리를 때려서 만든 상처임을 알수 있다. 북경인들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식인풍습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기 직전에 사신(死神)이 발동하여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게 하였기 때문이다.” 는 뜻이다.
삼국연의《三》에 보면 발시담정(拔矢啖睛)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하후돈(夏侯惇)이 전장터에서 왼쪽 눈에 화살이 밖혔는데 화살을 뽑아내니 화살 끝에 밖힌 눈알이 함께 딸려 나왔다. 하후돈은 피부모발(),부정모혈(父精母血), 불가기야(不可棄也).” 라고 소리치며 눈알을 입속에 집어 넣고 꿀떡 삼켜버렸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살갗이나 머리털 하나라도 부모님의 정과 혈인데 버리면 않된다.” 는 뜻이다.
또 왕망(王莽)은 왕위를 찬탈한 역적이었다. 왕망이 실각한 후 백성들은 분한을 참지 못하고 왕망의 살을 찢어 서로 다투어 빼앗아 먹었다.
또 동탁(董卓)은 다년간 장안()과 낙양()의 백성들을 마구 짓밟고 토지를 강탈하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왕망 보다 더 심한 고통을 주었다. 동탁이 죽은 후 백성들은 동탁의 시체를 갈기 갈기 찢어서 나누어 먹었.
고대에 행군시 군량미가 떨어질 경우 인육을 먹은 기록이 많이있다.
안록산(安祿山)의 난리 때 장순()이 수양()을 수비하고 있을 때 군량미가 떨어졌는데 장순은 병사들의 사기를 앙양시키기 위하여 자기 애첩(愛妾)을 살해한 후 살을 찢어 병사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북송(北宋) 때 등주(登州) 사람 범온()은 금() 나라에 항거하는 의병을 모집하여 싸웠다. 전쟁이 끝난 후 수도 임안()에 도착하여 인육(人肉) 건포(乾脯)를 먹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육을 양각양(脚羊)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하면 다리가 두개인 양의 고기이다.” 는 뜻이다.
노인들의 인육은 요파화(把火)라고 부렀고 젊은 여자들의 인육은 불선양()이라고 칭했으며 어린 아이들의 인육은 화골난(和骨)이라고 각각 불렀다.

근대 역사에서도 1942년 중국의 10() 원정군이 미얀마(Myanmar)에서 일본군과 항일 전투 할 때 산중에서 군량미가 떨어져서 초근목피로 연명했으며 또 산 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다. 이때 중국 군대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었으며 산 사람도 잡아 먹었었다.

사서에 보면 흉년이 들었을 때 자기 친 자식은 잡아먹기 어려우므로 자식들을 서로 교환하여 잡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청() 나라 말기에 발생한 고사이다.

양주() 부근의 어느 시골에 살고있는 한 청년이 밤중에 강변 멀리있는 사당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쳤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청년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몇몇 친구들을 불러 몽등이를 손에들고 가까이 가 보았다.

청년들은 한 화상이 솥에 무엇을 넣고 끓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청년들은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화상은 솥안에 두개의 태아(胎兒)를 삶고 있었다.

청년들은 화상에게 어째서! 태아를 솥안에 넣고 삶고 있습니까?” 고 물었다.

화상은 나는 금강선적좌도사술(刚禅的左道邪)을 연마하고 있는데 36개의 남자 태아를 먹어야 만 도를 깨우치게 됩니다.” 고 청년들에게 말했.

이 소문을 듣고 인근 농민들은 두명의 태아가 어느 집 태아인 줄은 모르지만 화상의 잔인한 행위를 규탄하고 악승을 때려 죽여버렸다.

중국 역사에 보면 철천지 원수들의 시체를 뜯어 먹은 예들이 사서(史書)에 수록되어 있는데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가슴 속에 맺혀있는 한()을 푸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