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악과병법(兵法)
고대 한의학가 중 장경악과 같은 명의도 드물다. 장경악은 질병을 종합적인 각도에서 치료하려고 애썼다. 그는 음(陰)을 치료할 때 반드시 양(陽)을 고려하여 치료하였고 양을 치료할 때는 음을 고려하여 치료에 임했다. 현재 한의학계에서 장경악은 온병학파(溫病學派)에 들어 있다. 장경악의 치법을 보면 장경악은 언제나 여러가지 면을 함께 고려해 가며 치료에 임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장경악은 한 번에 2g 내지 15g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대황을 한 번에 75g 까지 사용하였다. 장경악은 병법에 정통한 작전 참모이었다. 병법과 치병(治病)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범중엄(范仲淹)의 후손 범시숭(范時崇)이 복건성과 절강성 총독으로 있을 때 경악전서의 서문을 썼는데 그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수록되어 있다. ”유인문료(有人問了) : 의(醫), 생도야(生道也); 병(兵), 살기야(殺機也). 파저양개교화도일기(把這兩個攪和到一起), 부시부륜불류마(不是不倫不類吗)?”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고 병(兵)은 사람을 죽이는 것인데 의(醫)와 병(兵)을 한데 뒤섞어 놓아도 될까?라고질문하였다.” 는 뜻이다. 질문의 답은 ”당연히 맞다.” 이다. 왜냐하면 의(醫)와 병(兵)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를 하나의 국가로 볼 때 국력이 강할 때 적군은 감히 침범해 올수 없듯이 인체의 면역력이 강할 경우 병사(病邪)가 인체내로 침입해 들어오지 못한다. 한의학에서 약을 쓰는 것과 전쟁을 하는 것은 서로 비슷한 원리를 갖고 있다. 약을 적당히 사용함으로써 정사(正邪)의 역량을 증강시켜 줄수 있다. 장경악이 경악전서를 쓸 때 한참 동안 망설이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여 글이 잘 쓰여지지 않을 경우 장경악은 젊은 시절 전쟁하던 세월을 상기시켰다. 장경악은 작전 참모들과 적군의 군사력을 분석하고 계산한 후 병력을 투입시켰으며 적군에게 합당하고 적당한 전략을 이용하여 적군을 섬멸시켰다. 또 적군들을 병영으로부터 탈출 하도록 작전을 세웠다. 장경악은 전황을 잘 파악하고 나서 전략과 전술을 적용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장경악은 병법(兵法)과 진병(診病)은 서로 상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武)의 원뜻은 흉맹하고 사나우나 무(武) 자(字)를 분석해 보면 과(戈 : 창, 무기, 전쟁)와 지(止: 그치다)의 결합어 임을 알수 있다. 무(武)는 즉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용약(用藥)은 약을 쓴다는 뜻인데 인체의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는 뜻을 의미한다. 장경악은 경악전서 50 권(卷)에 신방팔진(新方八陣)이라고 불리는 치법을 수록해 놓았는데 병법과 흡사한 보략(補略), 화략(和略), 공략(攻略), 산략(散略), 한략(寒略, 열략(熱略), 고략(固略), 인략(因略)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군의 진지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장경악은 사랑하는 장군들을 앞세웠다. 즉 대보원전과 좌귀음과 우귀음과 좌귀환과 우귀환과 오복음(五福飮)과 일음전(一陰煎)과 가감일음전과 이음전과 삼음전과 사음전과 오음전과 대영전(大營煎)과 소영전(小營煎)과 보음익기전과 거원전(擧元煎)과 양의고(兩儀膏)와 정원전(貞元煎)과 당귀지황음과 제천전(濟川煎)과 지황예(地黃醴)와 귀신환(歸腎丸)과 찬화혈여단과 양원분(養元粉)과 현무두(玄武豆)와 반도과(蟠桃果)와 왕모도(王母桃)와 휴학음(休疟飮) 등이다. 이상과 같은 장경악이 이용한 명장(名將)들은 한의학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크다. 이들은 모두 보귀적인 명방들이다. 장경악의 양원분(養元粉)은 찹쌀 한 되와 초산약 3 냥과 초검실 3 냥과 연자육 3 냥과 천초(川椒) 2전 을 모두 가루내어 매차 한 두 냥을 끓인 물 속에 집어넣어 빙당을 가미해서 복용한다. 양원분(養元粉)은 비위의 기를 증진시켜 주는 처방이다. 또 장경악의 반도과는 자보비신(滋脾補腎)해 주므로 유정을 치료해 주는데 초검실 한 근과 연자육 한 근과 교조육(膠棗肉) 한 근과 숙지황 한 근과 호도육2 근을 모두 가루낸다. 그 다음 돼지의 콩팥의 껍질을 벗겨서 대회향(大茴香)과 함께 쪄서 짛이긴 다음 이상 5 가지 한약의 가루와 혼합하여 떡을 만들어 하루에 2 개 씩 복용하면 유정이 치유된다. 현재 한의학의 방제학 교재 중 장중경의 처방 외에 장경악의 처방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다. 경악전서는 한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서 중 하나임이 분명하며 경악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처방들은 장경악이 창제한 것 들이다. 황제내경과 상한잡병론의 기초위에 경악전서를 상세히 연구할 경우 한의학 이론의 레벨은 한 단계 격상될 것이다. 장경악의 책상 옆에는 항상 등과 약상자와 우산이 놓여 있었다. 고향 사람들 중에 환자가 있어 치료해 달라고 연락이 오면 항상 친히 방문하여 치료해 주었다. 문헌에 기록된 것을 보면 장경악이 절강성에서 만 질병을 치료하여 생명을 구해준 환자의 숫자는 일 만명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경악이 얼마나 바쁜 생활을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장경악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집에 돌아와 밤늦게 까지 등불을 밝혀놓고 후세 의학도들을 위하여 경악전서를 썼다. 경악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글자 수는 일 백만 자(字)이며 한자 한자 손수 장경악이 붓으로 썼다. 서기1640 년에 경악전서를 탈고하고 나서 장경악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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