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고대인들의 식인육(食人肉)

고대인들의 식인육(食人肉)
고대인들은 천재(天災)로 인하여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거나 전쟁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을 때 인육을 식량으로 사용하였다.
또는 잔인한 행위로 인하여 인육을 먹었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인육을 먹은 경우도 있고 원수를 보복하는 심정으로 원수의 인육을 먹은 경우도 있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흉악한 장수들이 인육을 군량미로 사용한 적은 많이 있었다.
주로 적군의 죽은 시체와 포로들을 군량미로 사용하였었다.
16() 시대에 전진(前秦)의 부등(苻登 : 서기 343서기 394)은 전쟁 때 붙잡은 포로들이나 사상자들을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부등은 군사들에게 제군들은 아침 일찍 작전에 참가하여 저녁 때 인육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고 명령하였다. 부등의 군사들은 인육을 먹고 나서 전투에 임할 때 용맹성이 더욱 격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 나라 말기에 진종권(秦宗: ? – 서기889 ) 군량미가 떨어졌을 때 군대들을 파견하여 민간인들을 붙잡아다가 죽인 후 소금에 절여 살을 찢어서 군량미 대용으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당 나라 말기의 명장 양행밀(行密: 서기 852 서기 905 )은 광능(广陵)을 포위하여 공격할 때 군량미가 떨어졌다. 양행밀은 병사들을 파견하여 인신매매 시장에서 사람을 사가지고 부대 안으로 들어와 돼지 잡듯이 죽여서 인육을 병사들의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당 나라 말기 황소()의 난 때 진주()를 공격할 때 군량미가 떨어졌다. 민간인들을 붙잡아다가 디딜방아에 찌어 뼈까지 부스러 뜨린 후 국을 끓여 병사들의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안록산(安祿山)의 난리 때 당 나라 명장 장순(: 서기709 서기 757 )이 수양(睢阳)을 수비할 때 30000명의 적군의 시체와 포로와 민간인들을 붙잡아 군량미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순은 자기의 애첩의 인육을 사병들에게 나누어 먹였는데 그 당시 장순의 애첩은 정세가 위급하므로 자살하였었다고 한다. 고대의 전쟁은 잔혹했기 때문에 생사존망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인성(人性)이 수성(獸性)으로 변하여 인육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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