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소아과 의사 증세영(曾世荣: 서기 1252 년 – 서기 1332 년)

소아과 의사 증세영(曾世: 서기 1252 서기 1332 )
원(元) 나라 때 저명한 소아과 의사 증세영(曾世: 서기 1252 서기 1332 )의 자()는 덕현()이고 호()는 육계(育溪)이며 호남성(湖南省) 형주(衡州 : 현재 衡) 사람이다.
원 나라 제 5 대왕 세조(世祖) 지원(至元) 31(서기 1294 )에 활유심서 (活幼心) 3 ()을 편찬했으며 또 소아과 의학 이론에 관한 활유구의(活幼口) 20 ()을 편찬하였다.
증세영은 의학에 정통하였으며 의덕이 고상함은 물론 그의 아동 보건에 관한 의학 이론은 매우 깊고 치밀하였다.
그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였기 때문에 질병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하시하처를 막론하고 달려가서 보살펴 주었다.
어느 날 형주 근교에 살고 있는 가난한 농민의 세살 된 아이가 경풍에 걸려 의식불명이 되어 쓰러져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약낭을 둘러메고 급히 달려가 치료하여 아이를 살려냈다.
활유심서(活幼心)에 보면 “凡有召,不以夜寒暑,疏,富贵贫贱命即赴,切吾身,必用望,推拯救,勿。”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밤이나 낮이나 춥거나 더웁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부자인건 가난한 사람이건 상관하지 않고 치료해 달라는 부탁을 받자마자 자신은 돌보지 않고 달려가서 치료한 후 보수를 바라지 않았으며 정성을 다히여 치료해 주었다.” 는 뜻이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도 주었다.
증세영은 다음과 같이 활유심서(活幼心)에 기록해 놓았다.
曾世荣认为对不可溺,不宜穿得暖和吃得太,否以害之”,足以成致病因素.一些寒病或脾胃病之
就是因穿得太厚或吃得过饱所造成的.他明确指出:“四欲得小安,常要一分饥与寒,但愿人皆依此法,自然疾不相干.
다시 말하면 증세영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않된다고 말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너무 두꺼운 의복을 입히거나 너무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워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오히려 해가되며 질병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는 또 아이들의 한열병이나 비위병은 의복을 너무 두껍게 입히거나 배불리 먹여서 생긴 병들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질병없이 건강하게 키우려면 약간 배가 고프게, 약간 차게 키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는 뜻이다.
그는 아이들을 약간 배가 고프게 키워야만 위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아이들을 약간 차게 키워야만 상풍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증세영은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의사였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백성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증세영을 도와주었다.
다음은 형주부지(衡州府志)에 수록되어 있는 원문이다.
元代大德十年(1306),湖南衡州曾一次大的火灾,一连烧掉民宅和店铺两千多家。眼看曾宅就要遭受池之殃了,
多市民便自地前来浇火,使曾家的财产医书及手稿等得以完整地保存.
众奋助曾宅火救宅的义举,无疑是重德幼的曾世的最大鼓和最高奖赏.”
다시 말하면 원 나라 제 6 대왕 성종(成宗) 대덕(大德) 10(서기1306 )에 호남성 형주에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그 당시 약 2000여 주택과 상점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 증세영의 집도 뜻밖의 후림불에 말려 들었기 때문에 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인근 백성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증세영의 집 소화작업에 전념하였다. 천만다행으로 증세영이 아끼던 의서들과 집필하고 있던 초록(抄錄)과 재산을 그대로 보존시켜 주었다. 백성들이 증세영 집의 화재구조 작업에 나선 의거(义举)는 증세영이 아이들을 지극정성을 다하여 사랑해 주고 질병을 치료해 준 것에 대한 크나큰 보답이었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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