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6일 목요일

난윤(亂倫)의 비극(悲劇)

난윤(亂倫)의 비극(悲劇)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음(邪淫)은 추악(醜惡)한 짓이다고 알고 있으며 사음(邪淫)이 난윤(亂倫)에 이를 경우 추악(醜惡)한 짓 중 추악(醜惡)이라고 말하며 악(惡) 중(中)의 악(惡)이라고 말한다. 다음 이야기는 지금으로 부터 83년 전에 발생(發生)한 난윤(亂倫)의 비극(悲劇) 이야기이다. 이 사건은 1931 년 4 월 22 일에 발생했다. 귀주성(貴州省) 동인현(銅仁縣)에 적광원(翟光遠)이라고 불리는 당년 60 세의 노인이 있었다. 그의 조카 며느리(侄媳) 전씨(錢氏)는 나이도 어리고 미모(貌美)의 여인이었다. 적광원 노인은 자신이 며느리의 삼촌임을 망각한 채 며느리를 유혹하여 간음(奸淫)하였다. 적광원(翟光遠)과 질부(侄媳) 전씨(錢氏)는 간정(姦情)하다가 현장에서 형수(嫂嫂) 상씨(常氏)에게 들켜 버렸다. 이 세상에서 이 간음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상씨 뿐이었다. 적광원과 그의 질부는 매우 두려웠다. 왜냐하면 상씨(常氏)가 입을 열어 발설 할 경우 집안 어른들로 부터 엄한 징벌(懲罰)을 받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독약(毒藥)을 준비하여 소문을 퍼뜨리지 못하게 상씨(常氏)의 음식물(飮食物) 속에 집어넣어 상씨(常氏)를 독살(毒死)하였다. 상씨(常氏)의 자녀들은 자기(自己)들의 모친(母親)의 참사(慘死)의 진범을 적광원(翟光遠)으로 추측하고 나서 적광원을 문책하였으나 적광원(光遠)은 극구 부인(否認)하였으며 「倘若我做這樣喪盡天良的事,那麼上天有眼,一定會遭雷殛。」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만일 내가 양심을 저버린 이와 같은 끔찍한 살인을 했다면 하늘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다.” 는 뜻이다. 1931 년 5 월 1 일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하더니 뇌성벽력이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홀연히 한 바탕 크나큰 뇌성벽력이 적광원(翟光遠)의 집 지붕위에 떨어져 지붕 위에 큰 구멍이 났다. 비가 그치고 뇌성벽력이 멈춘 후 동네 사람들이 적광원의 집에 들어가 보았더니 적광원(光遠)과 전씨(錢氏)가 뇌성벽력에 맞아 방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전씨(錢氏)는 이미 죽어버렸고 적광원(光遠)은 신음하며 통곡하면서 「曾與侄媳錢氏亂倫,犯下大錯,更因被嫂嫂常氏發覺姦情, 就把常氏毒死,這樣罪大惡極,所以遭受雷殛,死後將與侄媳錢氏二人,一同投胎到近鄰石姓家為牛。」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전씨와 난윤을 범한 것은 크나 큰 죄이다. 내가 전씨와 간통하다가 현장에서 발각되었기 때문에 상씨를 독살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죄는 더 커졌다. 그 결과 우리는 벼락을 맞았다. 우리가 죽은 후에 이웃 동네에 있는 석씨 집의 소로 다시 태어 날 것이다.” 는 뜻이다. 말을 마치자 마자 적광원은 숨을 거두었다. 이웃 동네에 있는 석선생(石先生)의 집에 모우(母牛)가 한 마리 있는데 기괴한 송아지 새끼를 낳았다. 자웅이성(雌雄二性)의 음양우(陰陽牛)인데 송아지의 음부(陰部)에 웅성생시기(雄性生殖器)가 달려 있으므로 숫송아지인데 엉덩이(臀部)에 송아지의 머리가 또 하나 달려 있었다.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렸하게 붙어있는 엉덩이의 송아지는 암놈인데 두 개의 유방(乳房)과 음호(陰戶)가 달려 있었다. 세상에서 보기드문 괴우(怪牛)였다. 동네 사람들은 이 송아지의 이름을 적광원(翟光遠)이라고 지었다. 이 송아지는 머리를 수그리고 계속 비오듯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懺悔)하는 모습이었다. 사천성(四川省) 합강현(合江縣) 불학사(佛學社) 사장(社長) 유천석(劉天錫) 노거사(老居士)는 이 사실을 신문에 보도하였다. 불교(佛教)의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윤회진리(輪迴真理)를 증명해 주는 가장 좋은 자료(資料)라고 말했으며 즉시 귀주성(貴州省) 동인현(銅仁縣) 석선생(石先生)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그 송아지를 사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석선생(石先生)의 동의(同意)로 이 괴우(怪牛)는 운수회사의 추럭에 실려 사천성(四川省) 합강현(合江縣)에 도착되었다. 이 괴우(怪牛)가 합강현에 도착하자 마자 구경꾼들로 포위되었다. 수일(數日) 내(內)에 관람인들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1931 년 여름에 합강현장(合江縣長) 유유장(劉裕長) 선생(先生)은 현민(縣民)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이 괴우(怪牛)를 끌고 현정부(縣政府) 청사 앞에 전시하였다. 그리고 상해(上海) 불교잡지(佛教雜誌)에 이 사실을 기고하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