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박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보면
”호(壺), 주기야(酒器也).
로(盧), 반기야(飯器也).
차물각상기형(此物各象其形),
우가위주반지기(又可爲酒飯之器), 고명(故名).”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호는
술잔이고 로는 밥그릇이다. 모양이 술잔과 밥그릇 처럼 생겼음과 동시에 실제로 술잔과 밥그릇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는 뜻이다.
시경(詩經)에는
포(匏), 논어(論語)에는
포과(匏瓜), 설문(說文)에는
호과(瓠瓜), 본초구원(本草求原)에는
호로과(葫蘆瓜), 음편신참(飮片新參)에는
호로(葫蘆), 포로(蒲蘆),
추호로(抽葫蘆)라고 각각 기록되어 있다.
햇빛을 가려주는 조롱박의 시렁 아래에서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면 매우 시원할 뿐만 아니라 기분이 상쾌하다. 왜냐하면 푸른 조롱박의 잎사귀들과 아름다운 하얀 꽃들은
눈을 부시게 만들어 주고 마음을 깨끗하게 청결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호로와
맹강녀(孟姜女)에 관한 전설이다.
”상전(相傳),
맹강녀적부모재원중종료일과호로(孟姜女的父母在院中種了一棵葫蘆),
호로등장득흔쾌(葫蘆藤長得很快), 흔무성(很茂盛),
단지결료일개과실(但只結了一個果實).
저개과실월장월대(這個果實越長越大),
이면경장출료일개총명적소녀해자(裏面竟長出了一個聰明的少女孩子).”
다시 말하면 ”옛날에
맹강녀의 부모는 정원에 조롱박 씨를 한 개 심었다. 정성을 들여 길렀기 때문에 조롱박 덩쿨은 빨리 자라 잎이 무성하게
되었으며 열매를 맺어 크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조롱박 속에서 총명한 어린 여자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이 소녀가 바로 맹강녀이다.” 는 뜻이다.
또 하나의 전설은
”호로와 약” 이란 전설인데 필자의 본초학 중에 이미 기입되어 있는데
일대(一代) 명의(名醫)
비장방(費長房)에 관한 이야기이다.
호로는 1 년생
만생(蔓生) 식물이며 여름철에 하얀 색깔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고인들은
호로를
호로(壺蘆),호과(瓠瓜),포과(匏瓜)라고
칭했다.
호로의 재배 역사는 유구하다.
시경(詩經)-빈풍(豳風)에
보면 ”칠월식과(七月食瓜),
팔월단호(八月斷壺).”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7 월이면
참외를 먹고 8 월이면 박을 타네!” 란뜻이다.
시경(詩經) 속에는 은대(殷代 : BC 16 세기 - BC
11 세기) 부터 춘추(春秋 : BC 770 년 - BC 403 년) 시대 까지의 시(詩) 311 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기 1973 년에 고고 학자들은 절강성
여요현(余姚縣 : 杭州 동쪽 100km 지점)
하모도(河姆渡) 유지(遺址) 발굴 작업
중 호로 종자를 발견하였다. 지금부터 6, 7 천년 전 조롱박의 씨앗이다.
그후 호북성
강릉(江陵)과 광서성(廣西省)
귀현(貴縣) 라백만(羅伯灣)과
강소성(江蘇省) 연운항(連運港) 등지에서
서한(西漢 : BC 206 년 – AD 23 년)
시대의 호로 종자를 발굴했다.
또 강서성에서는
서진(西晉 : 서기 280 년 - 서기
316 년) 때 호로의 종자를 발견했다.
호로는 고인들이 사용한 오래된 식물이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호로는
공예품(工藝品)의 원료이다.
장인(匠人)들이 호로의 표면에
산천계수(山川溪水)와 기타 여러가지 풍경과 인물 등을 조각하여 관상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즉 박공예라고도 부른다.
장인들은 머리 속에 어떤 물체를 상상해 두고
어린 호로의 표면에 미리 조각해 두면 호로가 완전 성숙된 후에 진기한 조롱박 공예품이 탄생되게 하였다.
호남성
장사(長沙)에서 출토된 전국시대(戰國時代 : BC 403 년 –
BC 221 년)의 초묘(楚墓) 속에서 하나의
취주악기(吹奏樂器)가 발견되었다.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 이 취주악기는
호로로 만든 것이다고 판명되었다.
조롱박 공예는
청(淸) 나라 때 가장 왕성했으며 상당히 기술이 발전하였다.
청(淸) 나라 임금들은 백성들이 만든
호기(瓠器)를 무척 사랑하였다. 그리고 임금들은
궁내(宮內)에 호로의 재배를 장려하였다. 그리하여 진기한
호품(瓠品)들이 생산되었다. 예를 들면
호(壺)와 합(盒)과
수도(壽桃)와 비인호(鼻烟壺 :
코담배통) 등이 있다.
청대(淸代)의
사료(史料)에 보면
”호기야작위우호적예품송급외국인(瓠器也作爲友好的禮品送給外國人),
강희황제증경와라사국피득대제증송과호기(康熙皇帝曾經俄羅斯國彼得大帝贈送過瓠器).
일본지금환보존착일건당대적과기(日本至今還保存着一件唐代的瓠器),
상면회유공자등팔개역사인물적도상(上面繪有孔子等八個歷史人物的圖像),
감칭무가지보(堪稱無價之寶).”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호기는
양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 수립을 위해서 유명한 외국인들에게 하사되었다. 청 나라 제 4 대왕
강희황제(康熙皇帝)는 러시아의 피터 대제(大帝)에게
호기를 증정하였다. 현재 까지 일본에서는 당(唐) 나라 때 박공예품을 갖고
있는데 조롱박의 표면에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여덟 명의 중국 역대 명인물들의
도상(圖像)이 천연색으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써 가격이 없을 정도로 보귀한 작품이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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