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괄(沈括)의
자(字)는 존중(存中)이고
전당(錢塘: 현재 浙江省 杭州) 태생이다.
북송(北宋)의 과학자요 정치가였다.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했으며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에 참가하여
혁신적 정치활동을 한 정치가였다.
심괄은 일생 동안 과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실현하고 경험하고 듣고 본 것을 기록하여 불후의
명저(名著) 몽계필담을 저술하였다.
몽계필담 속에는 역사,
정치, 군사, 문학, 예술,
과학기술, 천문,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질, 지리,
기상, 의약과 공정기술 등 각 분야에 걸쳐서 그 당시 중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자연 과학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외국의 과학자들도 몽계필담을 읽어 본 후 입이
마르도록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모두 30
권(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609 개
항목(項目)이 수록되어 있다.
몽계필담 속에는 일반 백성 과학자들의 사적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필승(畢升)의 활자 인쇄 발명 사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후세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일 몽계필담이 없었다면 필승의 활자 인쇄 발명 사실은 새까맣게 숨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무엇이든지 하면 할수 있다고
장담한 사람이다. 만년에 의약(醫藥)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신농본초경의
오류를 정정(訂正)하였다.
그는 일생 동안 수 많은 저작 활동을 했으며
몽계필담을 비롯하여 십이기력(十二氣曆)과 영원방(靈苑方) 20
권(卷)과 심존중양방(沈存中良方)과
소심양방(蘇沈良方) 8 권 등이 있다.
그는 약학(藥學)에도 조예가 깊었고
일가견(一家見)을 갖고 있었으며 그 당시 약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몽계필담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 하다.
심괄은 누구 보다도 엄밀하고 신중하게 학문을 하는 올바른 태도를 가졌으며 독창적 견해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리하여 후세인들은 심괄의 몽계필담을 ‘중국
과학사상(科學史上)의 이정표(里程標)’ 라고
칭송했다.
다음은 몽계필담 21
권(卷) - 이사(異事)에서 발췌한 것
이다.
”강남역여중일노부(江南逆旅中一老婦),
담물부지포(啖物不知飽).
서덕점과역여(徐德占過逆旅),
노부소이기(老婦訴以飢), 기자치심지(其子恥之),
대덕점이증병담지(對德占以蒸餠啖之),
진일죽궤(盡一竹篑), 약백병(約百餠),
유칭기불이(猶稱飢不已).
일식반일석미(日食飯一石米), 수즉이지(隨卽痢之),
기복여(飢復如故).
경조예천주부채승(京兆醴泉主簿蔡繩),
여우인야(予友人也), 역득기질(亦得飢疾).
매기입수담(每飢立須啖),
초지즉돈부민절(稍遲卽頓仆悶絶).
회중상치병이(懷中常置餠餌), 수대귀관(雖對貴官),
우기역편흘담(遇飢亦便龁啖).
승유미행(繩有美行), 박학유문(博學有文),
위시문인(爲時聞人), 종이차불행(終以此不幸).
무인식기질(無人識飢疾), 매위지애상(每爲之哀傷).”
다시 말하면 ”강남의
어느 여관에 한 노파가 머물고 있었다. 욕심껏 먹어도 배부른 줄을 몰랐다. 서덕점 역시 이 여관에
머물고 있다. 노파는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 했다.
노파의 아들은 부끄러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덕점을 향하여 ”저의 엄니께서 대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일 백개나 되는 떡을 모두 잡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씀하시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열 말의 쌀을 먹고나서 즉시 설사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배고픈 것은 또 마찬가지입니다.
섬서성(陝西省)
예천현(醴泉縣)에 낭관(郎官)
채승이라고 불리는 나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역시 배고픈 병이 있습니다. 그도 역시
배가 고플 때는 즉시 먹어야 합니다. 조금만 지체해도 발을 구르며 넘어지고 숨이 막혀 죽을 지경에 도달합니다.
항상 호주머니 속에 떡을 가지고 다니며 아무리 지위가 높은 고관을 만날지라도 배가 고프면 즉시 떡을 깨물어 먹습니다.
채승은 품행이 방정하고 박학다식하며 명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국엔 배고픈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채승의 질병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채승의 죽음을 비통해 할
뿐이었습니다.” 고 말하였다.
다음은 몽계필담 26
권(卷)-약의(藥議)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적전(赤箭),
즉금지천마야(卽今之天麻也), 초약상품(草藥上品),
제오지외(除五芝外), 적전위제일(赤箭爲第一),
차신선보리양생상약(此神仙補裏養生上藥).
세인혹어첨마지설(世人惑於天麻之說),
수지용지치풍(遂止用之治風), 양가석재(良可惜哉)!”
다시 말하면 “적전은
오늘날의 천마이며 상품 초약(草藥)에 들어 간다. 다섯 가지 버섯을
제외하고 적전이 제일이다. 신선들이 몸을 보해 주고 양생에 사용하는
상약(常藥)이며 세상 사람들이 천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망설이다가 끝내
풍병(風病)을 고치는데 사용하지 않으니 정말로 애석하게 여기지 않을수 없네!”
라는 뜻이다.
다음은 몽계필담 26
권(卷)에 수록되어 있는 약학에 관한 논술이다.
”채약불능구한일정적시간(采藥不能拘限一定的時間),
응근거약용부분화지온(應根據藥用部分和地溫氣候等條件的不同而靈活掌握),
반대전재이팔월채적적구법(反對專在二八月采摘的舊法).
여위(如謂) : 고법채초약(古法采草藥),
다용이팔월(多用二八月), 차수미당(此殊未當),
단이월초이아(但二月初已芽),
팔월묘미고(八月苗未枯),
채철자이변식이(采掇者易辨識耳),
재약직미위양시(在藥則味爲良時).
대솔용근자(大率用根者), 약유숙근(若有宿根),
수취무경엽시채(須取無莖葉時采),
직진택개귀기근(則津澤皆歸其根), 욕험지(欲驗之),
단취로보(但取蘆菔), 지황배관(地黃輩觀),
무묘시채(無苗時采), 직실이침(則實而沈) ;
유묘시채(有苗時采), 직허이부(則虛而浮).
기무숙근자(其無宿根者),
즉후묘성이미유화시채(則候苗成而未有花時采),
직근생이족이우미쇠(則根生已足而又未衰),
여금지자초(如今之紫草), 미화시채(未花時采),
직근색선택(則根色鲜澤) ;
과이채직근색암악(過而采則根色黯惡),
차기효야(此其效也).
용엽자취엽초장족시(用葉者取葉初長足時),
용아자자종본설(用芽者自從本說),
용화자취화초부시(用花者取花初敷時),
용실자성실시채(用實者成實時采),
개불가한이시월(皆不可限以時月).”
다시 말하면 ”채약은
정해진 시간의 제약을 받으면 않된다. 약초의 약용 부분과 다른
지온(地溫)과 다른 기후 조건 등을 재빨리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오로지 2 월과 8 월에 채집해야 된다는
구법(舊法)에 반대한다. 구법에 의하면 대개 초약은 2
월과 8 월에 채취해야 된다고 말하는데 타당치 않은 말이다. 2 월에 싹이 돋아나고
8 월엔 새로 돋아난 가지와 잎사귀들이 아직 시들지 않은 때이다는 것을 채집자들은 분별할 줄 알며 언제 채취해야 약효가
제일 좋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대개 뿌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뿌리가 숙근일
경우 줄기와 잎사귀가 없을 때 채취해야 된다. 왜냐하면 진액이 모두 뿌리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로복(蘆菔)과 지황(地黃)은 싹이 없을
때 채취해야 무게가 무겁고 속이 꽉 차있다.
만일 싹이 나 있을 때 뿌리를 채취하면 속이
비어 있거나 부실하다.
숙근이 아닌 약초는 꽃이 피기 전에 채취해야
뿌리가 충실하다. 예를 들면 자초(紫草)는 꽃이 피기 전에 채취하면 뿌리의
색깔이 선명하고 깨끗하며 광택이 난다.
그러나 꽃이 피고 난 후에 채취하면 뿌리의
색깔이 선명하지 않으며 약효가 약하다.
잎은 초기에 무성할 때 채취해야 되고 싹 역시
초기에 채취해야 되고 꽃도 처음 피었을 때 채취해야 되며 과실은 완전히 익었을 때 채취해야 된다. 대부분 채취의 시기를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는 뜻이다.
심괄은 채약 시기가 부적당 할 경우 약효가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금앵자지유설(如金櫻子止遺泄),
취기산차삽야(取其酸且澁也).
세지용금앵자(世之用金櫻子),
대기홍숙시취기즙오고용지(待期紅熟時取其汁熬膏用之),
대오야(大誤也), 홍직미감(紅則味甘),
오고직전단삽미(熬膏則全斷澁味),
도실본성(都失本性).
금당취반황시채건품(今當取半黃時采乾品),
도말용지(搗末用之).”
다시 말하면 ”예를 들면
금앵자는 유설(遺泄 : 遺尿, 遺精,
久瀉久痢, 帶下)을 그치게 해주는 작용이 있는데 금앵자의
산성(酸性)과 삽미(澁味) 때문이다.
사람들은 금앵자가 빨갛게 익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채취하여 그 즙을 짜서 달여 고약 처럼 만드는데 큰 잘못이다.
금앵자가 빨갛게 익으면
미(味)는 감미(甘味)로 변한다. 그리고 달이는 동안 금앵자의
삽미(澁味)는 완전히 상실되고 만다. 그러므로 금앵자의
본성(本性)을 상실한다.
그래서 금앵자가 절반 정도 익었을 때 즉 반절
노랑색 꽃잎 일 때 채취하여 말려서 가루내어 써야 한다.
약재는 똑 같은 지역에서 생산된 것 일지라도
지온(地溫)과 기후가 다르고 지세(地勢)의 높고 낮음과 관개 여부와 시비(施肥)의 차이에 따라 약효가 다르다.
그리고 약재의 성숙기도 반드시 선후(先後)를
가려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일묘지가직분개자선아(一亩之稼則糞漑者先芽),
일구지화직후종자만식(一丘之禾則後種者晩食),
차인력부동야(此人力不同也),
기가일체구어정월재(豈可一切拘於定月哉).”
다시 말하면 ”한 밭
이랑에서도 똥 거름을 주고 물 대기를 잘 해준 곳에서 빨리 싹이 나온다. 한 논 배미 내에서도 늦게 심은 것은 늦게
먹는다. 이는 사람이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약재의 성숙기는
시기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니다.” 는 뜻이다.
심괄은 자신의 저서
'양방(良方)'의 자서(自序) 중에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관월인예다휴도일구일롱지이(觀越人藝茶畦一沟一壟之異),
원불능수보직색미돈수(遠不能數步則色味頓殊).”
다시 말하면 ”절강성
동부 지역 사람들이 차(茶) 농사와 벼 농사 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밭 이랑 마다 차이가
있고 몇 발자국 만 걸어가도 식물의 색미(色味)가 다르다.” 는
뜻이다.
심괄은 지리적인 위치와 식물의
성미(性味)는 각각 다르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과학적인 가치가 있는 말이다.
심괄은 고인들의 과학적인 성과를 존중했다. 그렇다고 매혹된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근거하여
과학적인 진리를 탐구하였다.
예를 들면
”산두근미극고(山豆根味極苦),
본초언미감자(本草言味甘者), 대오야(大誤也).”
라고 본경(本經)에 기재되어 있는 산두근의
미(味)를 수정하였다.
다시 말하면 ”산두근의
미는 극고(極苦)이다. 본초에 산두근의 미는 감이다고 했는데 큰
잘못이다.” 는 뜻이다.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일목오향(一木五香)이라고 기록된 것도 수정하였다. 심괄은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의 기사들에 몹시 탐을 내어 군침을 흘려가며 탐독하였다.
심괄은 단향목과 침향목은 다른 두 개의 품종이다는 것을 상세히 고찰한 후에 밝혔다.
또
계설향(鷄舌香)은 정향(丁香)이다는 것과 곽향은
목본(木本)이 아니고 일종의 초엽(草葉)이다는 것과
훈육(熏陸)은 유두향(乳頭香)이며 일종의 큰
잎사귀를 가진 작은 나무이고 해남도(海南島)에서 생장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상에 열거한 5 가지
초약은 각각 다른 것이다고 밝혔다.
심괄은 유양잡조의
'일목오향(一木五香)' 이란 부분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심괄의 과학적인
연구 태도는 칭찬 받을 만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