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5일 금요일

어성초(魚腥草)

어성초(魚腥草)



춘추(春秋 : 서기전 770 년 – 서기전 403 년) 시대에 있었던 오(吳) 나라의 도읍은 오(吳 : 현재 蘇州)이었고 월(越) 나라의 도읍은 회계(會稽 : 현재 紹興)이었다.



BC 494 년 오(吳) 나라는 월(越) 나라를 공격했다. 그리하여 월(越) 나라는 부초(夫椒: 현재 江蘇省 吳縣 太湖 中山)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때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포로가 되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부차(夫差)에게 화친을 요구하고 오(吳) 나라의 속국이 되겠다고 말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큰 일을 위하여 굴욕을 참아가며 부차(夫差)의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주었다. 그 결과 구천(句踐)은 월국(越國)으로 다시 석방되었다.



구천(句踐)이 회계(會稽 : 현재 紹興)로 돌아와 보니 보기드문 흉년을 만나 백성들은 먹을 양식이 없어 굶고 있었다.



구천(句踐)은 온 국민의 난관을 극복시 켜 주기 위하여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부단히 애쓴 결과 일종의 식용 야채를 발견하였다. 이 야채는 생장 능력이 특별히 강하여 베어 먹고 나면 또 자라나고 그칠 줄을 모르고 자라기만 하는 야채였다.



월(越) 나라 사람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 야채로 난관을 극복하게 되었다. 이 야채는 생선 비린 냄새가 났다. 그래서 구천(句踐)은 이 야채의 이름을 어성초(魚腥草)라고 명명했다.



어성초(魚腥草)의 잎과 줄기는 자적색(紫赤色)이다. 어성초(魚腥草)의 성미는 신(辛), 한(寒)이고 간(肝)과 폐(肺)로 들어 간다. 청열해독 작용과 해독소옹(解毒消癰) 작용이 있다. 이뇨 소종 작용이 있으므로 수종(水腫)과 열림(熱淋)을 치료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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