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솔수공(甩手功)은 폐암(肺癌)을 치료해 준다.
솔수공(甩手功)은 폐암(肺癌)을 치료해 준다.
5 개월 동안 매일 오전에 2000번,점심 때 2000번,저녁 때 2000번 솔수공을 실행할 경우 폐암(肺癌)이 치료된다.
2017년 12월 8일 금요일
라우르산(Lauric acid) - 중간사슬중성지방(medium-chain triglycerides) :
라우르산(Lauric acid) - 중간사슬중성지방(medium-chain triglycerides) :
현재 대략 30% 의 라우르산(lauric acid)을 포함한 중간사슬중성지방(medium-chain triglycerides (MCTs))을 사라드오일(salad oils)로 사용하거나 요리용 오일로 사용하고 있다. 긴사슬지방산(long-chain fatty acids)을 요리에 사용할 경우 중간사슬지방산이 함유된 오일을 요리에 사용할 경우 보다 더 많은 양의 지방이 지방조직세포 내에 축적된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이소성지방(異所性脂肪 : ectopic fat) 또는 이위성지방(異位性脂肪)이란? 중성지방(triglycerides)이 지방조직세포(cells of non-adipose)가 아닌 비지방조직의 세포내에 축적된 지방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간이나 췌장이나 골격근이나 심장세포 내에 중성지방이 축적된 경우를 의미한다. 간이나 근육 속에 축적되어 있는 중성지방은 체지방과 인슐린민감성(insulin sensitivity)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중간사슬중성지방(Medium-chain triglycerides)은 약자로 MCTs 이며 6 개 내지 12 개의 탄소원자(carbon atoms)를 함유하고 있는 지방산이다. . 그리하여 MCTs 속에 함유되어 있는 지방산을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 이라고도 칭하며 약자로 MCFAs 라고 표기한다. MCFAs 는 기타 지방산 보다 신진대사율이 빠르고 체내에 덜 축적된다. 그래서 인체내에서 소화된 후 반감기가 짧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비만을 조성하지 않는다고 "Bach AC, Ingenbleek Y, Frey A. The usefulness of dietary medium-chain triglycerides in body weight control: fact or fancy?J Lipid Res 1996;37:708–26. [PubMed]" 에 수록되어 있다. MCT diets 를 실행한 사람들의 체중이 경감되었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으며 "Papamandjaris AA, MacDougall DE, Jones PJ. Medium chain fatty acid metabolism and energy expenditure: obesity treatment implications. Life Sci 1998;62:1203–15. doi:10.1016/S0024-3205(97)01143-0[PubMed]" 에 기재되어 있다. 긴사슬포화지방산은 혈지를 증가시켜 줄 뿐만아니라 ‘이위성지방(ectopic fat)’ 의 대사산물 (metabolites)을 조직내에 증가시켜 비만을 조성하며 인슐린저항성을 증가시켜 주고 염증을 유발시킨다고 "Jornayvaz FR, Shulman GI. Diacylglycerol activation of protein kinase Cepsilon and hepatic insulin resistance. Cell Metab 2012;15:574–84. doi:10.1016/j.cmet.2012.03.005[PMC free article][PubMed]" 에 수록되어 있다. 대사산물 중 Ceramide 와 diacylglycerol 이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의 주범이다고 "Shimabukuro M, Kozuka C, Taira S et al. Ectopic fat deposition and global cardiometabolic risk: new paradigm in cardiovascular medicine. J Med Invest 2013;60:1–14. doi:10.2152/jmi.60.1[PubMed]" 에 발표되어 있다. 그러나 MCFAs 는 위에 열거한 Ceramide 와 diacylglycerol 같은 대사산물을 생성하지 않는다. 또 MCFAs 는 인슐린저항(insulin resistance)을 유발하지 않는다. 긴사슬포화지방산(Longer chain saturated fatty acids)은 macrophages 나 microglia 의 작용을 저해하므로 ceramide 의 합성(synthesis)을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긴사슬포화지방(long-chain saturate fat) 다이어트(diets)는 대사증후군과 퇴행성신경질환(neurodegenerative disorders)과 동맥경화(atherogenesis) 등과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증명되었다. 또 MCFAs 는 팔미트산(palmitate)을 조성하지 않으며 거식세포(macrophage)의 할동을 증가시켜 준다고 발표되었다.
코코넛오일은 LDL( low density lipoprotein) 레벨을 상승시키지만 HDL(high density lipoprotein)의 레벨을 더많이 상승시켜 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총콜레스테롤과 좋은콜레스테롤( total cholesterol/HDL cholesterol)의 비율은 감소시켜 준다. 코코넛오일 속에 다량 함유되어있는 라우르산은 총콜레스테롤과 좋은 콜레스테롤(total cholesterol/HDL cholesterol) 비율을 기타 지방산 보다 훨씬 더 감소시켜 준다고 "Mensink RP, Zock PL, Kester AD et al. Effects of dietary fatty acids and carbohydrates on the ratio of serum total to HDL cholesterol and on serum lipids and apolipoproteins: a meta-analysis of 60 controlled trials. Am J Clin Nutr 2003;77:1146–55. [PubMed]" 에 기재되어 있다. 또 코코넛은 심혈관질병(cardiovascular disease)의 발병율을 경감시켜 준다고 "Lindeberg S, Lundh B. Apparent absence of stroke and ischaemic heart disease in a traditional Melanesian island: a clinical study in Kitava. J Intern Med 1993;233:269–75. doi:10.1111/j.1365-2796.1993.tb00986.x[PubMed]" 에 수록되어 있다. 라우르산( laurate)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MCTs 는 비만을 예방해 주고 이위성지방대사산물(ectopic fat metabolites)을 감소시켜 주므로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의 유발을 방지해 준다.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올리브오일과 코코넛오일은 슈퍼오일이며 제 2 형 당뇨병 치료에 유익하다.
올리브오일과 코코넛오일은 슈퍼오일이며 제 2 형 당뇨병 치료에 유익하다.
대부분의 사람의 머릿속에 지방은 인체에 해롭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과 코코넛오일(coconut oil)은 인체에 유익하다.
1. 슈퍼 지방 -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의 유익점 :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은 항염(anti-inflammatory) 작용과 혈당온정(glucose stabilization)의 공효가 있으므로 제 2 형 당뇨병환자들에게 유익한 오일이다.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을 수퍼지방(super fat)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파이토영양분(phytonutrients) 중 폴리페놀(polyphenols)이란 성분은 항염(anti-inflammatory)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오일(olive oil) 속에 항염작용이 있는 폴리페놀(polyphenols)은 다음과 같다. :
1. Anthocyanidins (cyanidins, peonidins)
2. Flavones (apigenin, luteolin)
3. Flavonols (quercetin; kaempferol)
4. Flavonoid glycosides (rutin)
5. Lignans (pinoresinol)
이와같은 항염(anti-inflammatory) 작용이 있는 영양소들은 homocysteine, C-reactive protein (CRP), TNF-alpha, interleukin 1-beta, thromboxane B2, leukotriene B4. 등 염증을 유발시키는 물질을 경감시켜 준다.
그러므로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은 당뇨병(diabetes)과 심장질환 (heart disease)과 고혈압(high blood pressure)과 고콜레스테롤(high cholesterol) 환자들에게 유익하다..
올리브오일(olive oil)을 주로 사용하는 중동지방음식(Mediterranean Diet)은 심장질환의 발병율을 경감시켜 준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이는 올리브오일이 총콜레스테롤(total cholesterol)과 LDL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주고 HDL:LDL 비율(ratio)은 증가시켜 주며 혈압(blood pressure)을 강저시켜 주기 때문이다..
올리브오일(Olive oil)은 올레산(oleic acid)과 단일불포화지방산(monounsaturated : MUFA)과 오메가-9(omega-9) 지방산(fatty acid) 등을 함유하고 있다.
Extra Virgin Olive Oil(EVOO)은 :
1. 항응혈(Anti-clotting)
2. 암증예방(Cancer prevention)
3. 조소화(助消化) 작용
4. 인지능력(cognitive function) 증강 등 유익점이 있다.
주의(Warning): 올리브오일(olive oil)은 반드시 엑스트라버진(extra virgin) 오일이어야 하고 cold-pressed 한 오일이어야 하며 unfiltered 한 오일이어야 하고 특특해야 하며 검은색 유리병 속에 저장된 것이어야 한다. 또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 (EVOO))은 화씨 300°F/섭씨 148°C 도 이상에서 가열할 경우 폴리페놀(polyphenols)을 산화시켜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EVOO 은 요리하지않거나 가열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해야 한다. 예를들면 삶거나 볶은 채소나 날채소나 스무디(smoothies) 속에 직접 가미하여 섭취해야 한다..
1.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과 유기(organic) 사과 사이다 식초(apple cider vinegar)와 혼합하여 살라드(salad) 쏘스를 만들어 사용한다. .
2.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사라드 드레씽(salad dressings) 속에는 소디움(sodium)과 대두유(soybean oil)와 HFCS 와 색소(color dyes)가 함유되어 있다. .
3. 살짝 튀기거나 볶거나 음식이나 삶거나 찜통에 찐 채소 등에 먹기 직전에 뿌려서 섭취한다.
주(註) : 엑스트라버진아보카도오일( extra virgin avocado oil) 속에는 단일불포화지방산(monounsaturated fats)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루테인(lutein)과 비타민 E 를 비롯한 항산화물질(antioxidants)과 베타싯토스테롤(beta sitosterol)이 함유되어 있다. 또 발화점(smoke point)은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olive oil) 보다 더 높다. .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 (EVCO))은 수퍼지방(super fat)이며 항염(anti-inflammatory) 작용과 혈당온정(glucose stabilization)의 유익점이 있으므로 제 2 형 당뇨병(Type 2 diabetes)에 유익하다. .
코코넛오일(coconut oil)은 항염(anti-inflammatory) 작용과 항박테리아(anti-bacterial) 작용이 있으며 심장질환과 당뇨병에 유익한 오일이다. 코코넛오일 속에 함유되어 있는 지방의 절반은 라우르산(lauric acid)인데 라우르산은 인체내에서 모노라우린(monolaurin)으로 전화되며 모노라우린은 항바이러스 (anti-viral) 작용과 항박테리아(anti-bacterial) 작용과 항프로토조아(anti-protozoa) 작용이 있다.
라우르산(Lauric acid)은 바이러스와 그램네가티브(gram-negative) 박테리아를 사멸시켜 준다. 코코넛 오일은 지구상에서 라우르산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오일이다. 그래서 코코넛오일의 대명사는 라우르산이다.
코코넛오일(Coconut oil) 속에 함유되어 있는 전체 지방산의 3 분의 2 는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 (MCFAs)인데 중간사슬중성지방(medium-chain triglycerides or MCTs).이라고도 칭한다. 이와같은 지방산은 건강에 유익한 지방산이다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 (MCFAs))은 직접 간으로 수송되어 지방으로 간에 저장되지 않고 에너지로 전환된다. 또 MCFAs 는 신진대사(metabolism)를 촉진시켜 주므로 체중을 경감시켜 준다.
코코넛오일(Coconut Oil)은 제 2 형 당뇨병을 개선시켜 준다.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 (MCFAs))은 직접 간으로 들어가 에너지로 사용되므로 글루코스를 에너지 원(原)으로 사용하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유익하다. 당뇨병환자(diabetics)들이나 당뇨병전조증상(pre-diabetics)이 있는 사람들이 코코넛오일을 섭취할 경우 체중을 온정상태로 유지해 줌과 동시에 제 2 형 당뇨병을 예방해 준다.
코코넛오일(coconut oil)의 유익점은 다음과 같다. :
1. 심장(Heart)의 건강에 유익하다.
2. 스킨케어(Skin care)와 모발케어(hair care)
3. 조소화(助消化) 작용
4. 면역력 증강
5. 캔디다(candida) 방치
코코넛오일Coconut Oil)의: 제 2 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유익한 5 가지 유익점 :
코코넛오일은 혈액순환을 양호하게 해주므로 제 2 형 당뇨병의 합병증인 수족마비와 신경질환(neuropathy)을 경감시켜 준다.
1. 코코넛오일은 인슐린(insulin)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 코코넛오일은 신진대사metabolism를 촉진시켜 준다.
3. 코코넛오일은 혈당(blood sugar)을 조절해 준다.
4. 코코넛오일은 당지수(glycemic index)가 낮다.
5. 코코넛오일은 혈액순환을 도와 신경질환을 neuropathy)의 발병율을 강저시켜 준다.
1. 코코넛오일(Coconut Oil)은 인슐린(Insulin)이 필요없다.
평상시 섭취한 음식물은 소화기관에서 분해되어 글루코스(glucose) 전화된다.. 글루코스(glucose)는 혈액 속으로 진입되고 췌장(pancreas)은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Insulin)은 세포에 글루코스(glucose)를 수송해 주고 세포는 글루코스를 에너지(energy)로 사용한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들에게 있어서 인슐린(insulin)은 세포벽에 부착하기 어려우며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세포는 글루코스(glucose)를 에너지(energy)로 사용된다. 그러나 코코넛오일(coconut oil)은 인슐린(insulin)이 없어도 세포들이 직접 에너지(energy)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체는 코코넛오일 속에 대량 함유되어 있는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을 글루코스 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슐린이 필요없다. 즉 중간간사슬지방산은 글루코스와 동일한 작용을 하며 인슐린 없이도 세포속으로 진입된다. 그러므로 췌장(pancreas)은 코코넛오일이 체내로 흡수될 경우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해피하다.
2. 코코넛오일은 신진대사(Metabolism)를 촉진시켜 준다. :
제 2 형 당뇨병 환자(type 2 diabetes)들은 굴루코스 문제 때문에 에너지(energy) 레벨(levels)은 낮고 체중이 증가된다. 세포들이 정상적인 글루코스를 공급받지 못하므로 인하여 신진대사율이 강저되고 에너지 레벨이 하강된다.
그러나 세포들이 코코넛오일을 흡수할 경우 신진대사가 촉진되고 지방의 연소가 가속되므로 체중도 경감된다. 코코넛오일은 갑상선(thyroid gland)의 기능도 조절해 준다. .
또 코코넛오일은 소화속도가 완만하므로 장시간 포만감을 조성해 준다. 코코넛오일은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주므로 체지방(body fat)을 경감시켜 준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3. 코코넛오일Coconut Oil은 혈당을 조절해 준다. :
체내의 혈당조절이 불량할 경우 비만(obesity)과 기아감 유발과 음식욕심(cravings)과 저혈당 (hypoglycemia)과 고혈당(hyperglycemia)과 당뇨병쇼크(diabetic shock) 등이 유발된다. 심한 경우 의식불명과 생명에 위험을 초래한다.
코코넛오일은 인슐린없이도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혈당의 흡수 속도를 완만하게 해준다. 코코넛오일은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이므로 혈당의 심한 파동과 변동을 방지해 준다. 코코넛오일은 글루코스가 혈액속으로 진입하는 속도를 조절해 주므로 인슐린(insulin)의 생산도 조절해 주고 따라서 인슐린저항성( insulin resistance)을 치료해 준다.
2 숟갈 내지 3 숟갈( tablespoons)의 코코넛오일을 복용할 경우 혈당 레벨을 하강시켜 주며 음식탐도 줄여주고 에너지 레벨을 상승시켜 준다.
4. 코코넛오일은 당지수(Glycemic Index : GI)가 낮다.:
코코넛오일의 당지수(glycemic index (GI))는 35 이며 다른 음식의 GI 도 경감시켜 준다. 당지수(glycemic index)가 높은 음식과 코코넛오일을 함께 복용할 경우 당지수가 높은 음식의 당지수도 강저된다.
이와 관련된 T. P. Trinidad 박사의 연구팀의 논문은 2003 년 영국영양학저널(the British Journal of Nutrition)에 수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코코넛오일은 당을 혈액속으로 천천히 진입시켜 주므로 인하여 혈당의 파동과 혈당의 변동을 방지해주기 때문이다.
5. 코코넛오일은 혈액순환(Blood Circulation)을 양호하게 해주므로 인하여 신경질환(Neuropathy)을 예방해 준다.:
발가락에 무감각 증상이 출현함은 대부분 혈액순환 불량 때문이다. 대부분 당뇨병 환자들은 발가락에 상처를 입어 염증이 생길 경우 한참 후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코코넛오일은 다리와 발가락에 혈액순환을 증가시켜 주므로 발가락의 감각신경의 기능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준다. 대략 10 일 동안 매일 2 숟갈 내지 3 숟갈 (tablespoons)의 코코넛오일을 복용할 경우 발가락의 불량한 혈액순환을 정상으로 복원시켜 준다. 매일 코코넛오일을 복용할 경우 당뇨병신경질환(diabetic neuropathy)과 신경통(nerve pain)과 발가락이 따끔거리는 증상이 경감된다.
코코넛오일의 복용방법 :
1. 코코넛오일을 푸라이팬에 두르고 음식을 볶아서 복용한다.
2. 빵이나 쿠키 등을 만들 때 코코넛오일을 버터 대신 사용한다.
3. 마저린(margarine)이나 기타 식용유 대신 코코넛오일을 사용한다.
4. 음식을 굽거나 복을 때 코코넛오일을 사용한다.
5. 스무디(smoothie)를 만들 때 코코넛오일을 가미한다.
6. 날 채소나 익힌 채소와 함께 복용한다.
의학계(medicine)와 영양학계(nutrition)에서 1970 년대 부터 1990 년대 까지 지방은 인체에 매우 해롭다고 인정되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지방(low-fat) 이나 무지방(no-fat) and 이나 저콜레스테롤(low-cholesterol) 함유 음식물을 섭취하였다. 그러나 지난 3,4 십년 동안 저지방 다이어트나 무지방 다이어트는 오히려 비만을 조성하였고 당뇨병을 만연케 하였다. 결국 과학자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방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였으며 트랜스지방(trans fats)이나 동물지방(animal fats) 보다 식물지방을 섭취해야 한다고 밝혀졌다.
지방(Fat)은 세포막(cell membranes)의 구성성분임과 동시에 신경계통(nervous system)의 구성성분이다. 인체 내에있는 모든 지방을 제거할 경우 즉시 사망한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밝혀졌다. 그러므로 지방이 인체에 해롭다고 만 말하면 않된다. 적당량의 지방을 섭취함은 필수적이며 인체 건강을 유지하고 면역계통을 증강시켜 주는데 필수적이다.
제 2 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유익한 오일은 다음과 같다.:
1. 천연초착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
2. 천연초착코코넛오일(Extra virgin coconut oil)
3. 야생연어(salmon)와 넛( nuts)과 씨앗(seeds) 속에 함유되어 있는 오메가-3(Omega-3) 지방산과 EFA 오일과
천연마카다미아넛오일(organic Macadamia nut oil)
4. 유기농아마씨오일(organic Flaxseed oil)
5. 정제하지않은(Unprocessed) 대구의 간유(cod liver oil).
"Diabetes to Death :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당뇨병" 에서 발췌번역
2017년 12월 5일 화요일
코코넛오일의 유익점 : 76/100. 심장질환(Heart Disease)에 유익하다. –
코코넛오일의 유익점 : 76/100. 심장질환(Heart Disease)에 유익하다. –
코코넛오일 속에 함유되어 있는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은 심장건강(heart health)에 유익하며 혈압을 강저시켜 준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
흑구기자(黑枸杞子)의 공효(功效)와 작용(作用) :
흑구기자(黑枸杞子)의 공효(功效)와 작용(作用) :
흑구기자(黑枸杞子)의 정화(精華)를 흡수하기 위하여 흑구기자는 물속에 침포해 두었다가 음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흑구기(黑枸杞)는 일반(一般) 구기(枸杞)에 비하여 영양성분이 더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흑구기자(黑枸杞子)는 다종(多種) 인체(人體) 필수영양물질(必需營養物質)이 함유되어 있는 진귀(珍貴)한 약재(藥材) 중 하나이다.
1. 흑구기(黑枸杞)의 영양설분(營養成分) :
흑구기(黑枸杞) 속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과 지방(脂肪)의 함량은 홍구기자(紅枸杞子) 보다 훨씬 높다. 흑구기자(黑枸杞) 속에 함유되어 있는 철(鐵)과ᅟ칼슘과 마그네슘과 아연과 구리(銅)의 함량(含量)은 홍구기(紅枸杞) 속에 함유되어 있는 평균함량(平均含量) 보다 높으며, 포타슘과 망간의 함량(含量)은 낮고 나트륨의 함량은 서로 비슷하다. 또 흑구기(黑枸杞) 속에는 우질(優質)의 천연(天然) 코발트(Co)와 천연(天然) 니켈(Ni)이 함유되어 있다.
2. 흑구기자의 식용방법(食用方法) :
(1) 직접(直接) 저작(嚼服): 흑구기를 찜통 속에 집어넣고 몇 분 동안 찐후 조만(早晚)에 입안에 넣고 씹어 삼킨다.
(2) 죽(粥)이나 밥을 지을 때 혼합하여 식용한다. 밥이나 죽이 끓은 후에 혼합하여 식용(食用) 할 경우 색(色)과 향(香)과 미(味)가 온전하다.
(3) 포수(泡水):흑구기자를 컵속에 집어넣고 5 분 내지 10 분 동안 온수 속에 침포(浸泡)해 둔 후 음용한다.
(4) 포주(泡酒): 적당량의 흑구기자를 황주(黃酒)나 백주(白酒) 속에 7 일 동안 침포해 둔후 복용한다.
(5) 탕(湯)이나 고기 요리시 적당량의 흑구기자를 혼용할 경우 색(色)과 향(香)과 미(味)를 증가시켜 주며 식보(食補)의 작용(作用)이 있다.
3. 주의사항(注意事項) :
(1)、고온도(高溫度)의 물속에서 흑구기자 속에 함유되어 있는 안토시아니딘(anthocyanidin : C15H11O6)이 파괴되므로 섭씨 50 도 내지 75 도(度)의 온수(溫水) 속에 충포(沖泡)해 두어야 한다. 흑구기자 속에 함유되어 있는 영양성분(營養成分)과 안토시아니딘이 완전 석방(釋放)되면 과실의 색깔은 백색(白色)으로 변한다. 안토시아니딘(anthocyanidin)은 일종(一種)의 수용성(水溶性) 식물색소(植物色素)이며 세포액(细胞液) 속에 함유되어 있는 천연항산화제(天然抗酸化劑)이다.
(2)、흑구기자는 알칼리성 물속에 침포(侵泡)해 둘 경우 물의 색깔이 남색(藍色)으로 변하고 산성물(酸性水) 속에 침포해 둘 경우 물의 색깔은 자색(紫色)으로 변한다.
(3)、흑구기(黑枸杞)를 물속에 침포한 후 5 분이 경과하면 남색(藍色)이나 자색(紫色)으로 변하는 이유는 안토시아니딘의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5 분(分) 좌우(左右)에 음용(飲用)해야 한다.
4. 흑구기자(黑枸杞子)의 공효(功效)와 작용(作用) :
(1)、 흑구기자는 보혈안신(補血安神) 작용이 있으므로 수면(睡眠)을 개선(改善)시켜 주며 주름쌀의 생성(生成)을 방지(防止)해 주는 자연계(自然界)에서 가장 강력한 항산화물질(抗酸化物質)이다. 흑구기자는 영양(營養)을 보충(補充)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인체에 유해(有害)한 활성산소(自由基)를 소제(消除) 해 준다.
(2)、 흑구기자 속에 함유되어 있는 안토시아니딘은 천연(天然) 양광(陽光) 차단물질이므로 자외선(紫外線)으로 인한 피부(皮膚)의 상해(傷害)를 저지해 준다.
(3)、 흑구기자는 지류대사(脂類代謝)를 조절(調節)해 주는 공능(功能)이 있으므로 강혈지(降血脂) 작용이 있고,심혈관질병(心血管疾病)을 예방해 주는 작용이 있다. 또 흑구기자는 강혈당(降血糖) 작용이 있다. 또 흑구기다당(黑枸杞多糖)은 손상된 췌장세포(膵臟細胞) 내(內)의 과산화디스뮤타제(superoxide dismutase,. SOD)의 활동(活動)을 증강시켜 주므로 췌장세포의 항산화능력(抗酸化能力)을 증강시켜 줌과 동시에 과산화물질(過酸化物質)에 의한 세포(細胞)의 손상(損傷)을 경감시켜 주고, 말론디알데히드(Malondialdehyde)의 생성량(生成量)을 강저시켜 준다. 그러므로 흑구기다당(黑枸杞多糖)은 췌장세포의 일정(一定)한 보호작용(保護作用)이 있다. 말론디알데히드(Malondialdehyde)는 신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산되며 산화 스트레스 의 지표이다. 또 SOD 는 초과산화이온을 산소와 과산화수소로 바꿔 줌으로써 독성으로부터 세포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4)、 흑구기자는 니켈을 보충시켜 주며 크로미움과 니켈은 인체(人體)의 필수미량원소(必需微量元素)이지만 함량(含量)이 높을 경우 중독현상(中毒現象)을 출현한다. 그리고 크로미움은 인체(人體)의 당대사(糖代謝)와 지질대사(脂質代謝)와 단백질(蛋白質) 합성(合成)과 핵산대사(核酸代謝)와 서로 밀접한 관계(關係)를 갖고있다. 흑구기자 속에 함유되어 있는 크로뮴의 함량(含量)은 우유 보다 낮으나 인체 내에서 중독현상(中毒現象)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크로뮴은 인체 내에서 리간드(ligand)보조 인자(cofactor)역할을 하며 장내(腸內) 3가철이온(Fe3+)의 흡수(吸收)를 촉진시켜 준다. 납과 카드뮴(Cd)은 인체에 유해무익(有害無益)한 중금속(重金屬)인데,흑구기자 속의 납과 카드뮴의 함량(含量)은 일반식물(一般植物)의 함량(0.5~3.0μg/g) 보다 훨씬낮다. 리간드란? 생화학 및 약리학 에서 수용체에 결합하여 생리적 효과를 나타내는 물질을 의미하고 보조인자란? 생명체 내부에서 단백질의 작용을 돕는 인자이며 구성 성분은 단백질이 아닌 간단한 유기물이나 금속 이온이다.
(5)、 흑구기자 속에 함유되어 있는 천연( 天然) 코발트(Co)는 인체내에서 비타민 B12 를 조성(組成)해 주고 조혈작용(造血作用)을 해준다. 흑구기자 속의 코발트 함량(含量)은 녹엽채소(綠葉蔬菜)의 함량(0.2~0.6ppm) 보다 높다. 또 인체내에서 독부작용의 위협(威脅)이 없고 단순(單純)한 코발트 보제약물(補劑藥物) 작용(作用)을 해준다.
(6)、 흑구기자는 항암방암(抗癌防癌)의 공효(功效)가 있다. 흑구기자 속의 안토시아니딘닌 성분은 색소염료(色素染料)로도 사용되는 일종(一種)의 강력한 항산화제로써 노쇠(老衰)를 방지해 주고, 혈관탄성(血管彈性)을 증강(增強)시켜 주며,과민(過敏)과 염증(炎症)을 예방해 주고, 관절(關節)의 유인성(柔韌性 : 부드럽고 질긴 성질)을 개선(改善)해 준다. 암증(癌症)은 자유기(自由基)가 유전물질(遺傳物質(DNA))을 훼손(毀壞)시킴으로 인하여 발생된다. 안토시아니딘은 유전물질(遺傳物質)을 보호해 줌과 동시에 암증(癌症)의 유발을 방지해 준다. 안토시아니딘은 자유기(自由基)를 청제(清除)시켜 주는 공효(功效)가 있으며 암세포(癌細胞)의 확산(擴散)을 억제시켜 주고 건강한 세포를 암세포(癌細胞)의 침식(侵蝕)으로 부터 보호해 준다. 흑구기자의 색소(色素)는 항산화와 연완노쇠(延緩老衰)의 활성성분(活性成分)이므로 과학자들이 개발(開發)해야 할 잠재력(潛在力)을 지니고 있다.
4. 흑구기자 포수시(泡水時) 안색변화(顏色變化):
섭씨 60℃ 이하의 수돗물 속에서 남색(藍色)이나 남흑수(藍墨水)로 변한다. 수온(水溫)이 섭씨 60℃ 이하의 광천수 속에 충포시(沖泡時) 자색(紫色) 또는 자흑색(紫黑色)으로 변한다. ; 끓인 수돗물 속에 침포시 남색(藍色)으로 변한다. 과실(果實)은 백색(白色)으로 변한다.
흑구기자 속의 안토시아니딘이 물속에서 용해(溶解)되기 때문에 물의 안색이 변한다. 안토시아니딘은 일종(一種)의 수용성(水溶性) 색소(色素)이며,산감성(酸鹼性)에 특별(特別)히 민감(敏感)한데 산성수(酸性水) 속에서 자색계(紫色系 : 자색(紫色) 또는 자홍색(紫紅色)、또는 철홍색(鐵紅色) 색깔로 변하며,감성수(鹼性水 : 알칼리성 물) 속에서 남색계(藍色系 : 남색(藍色)、또는 남녹색(藍綠色)、또는 호남색(湖藍色) 등 색깔로 변한다.
그러므로 흑구기자를 물속에 침포해 둘 경우 물의 종류에 따라 색깔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광천수(礦泉水) 속에 침포해 둘 경우 자색(紫色)으로 변하고 수돗물 속에 침포해 둘 경우 남색(藍色)으로 변한다. 흑구기자는 섭시 60 도(度) 이하(以下)의 온수(溫水)나 찬물(涼水) 속에 침포한 후 음용해야 하며 끓는 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흑구기자 속의 안토시아니딘과 영양물질(營養物質)은 고온(高溫)을 싫어한다.
흑구기자는 사용하는 물의 산검도(酸鹼度)와 물의 온도(溫度) 변화(變化)에 따라서 남색(藍色) 또는 자색(紫色)으로 변한다.
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코코넛오일(Coconut Oil)의 유익점 : 72/100 혈당안정과 당뇨병예방 –
코코넛오일(Coconut Oil)의 유익점 : 72/100 혈당안정과 당뇨병예방 –
코코넛오일은 혈당의 레벨을 온정상태로 유지해 준다. 그러므로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유익하다. 코코넛오일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주므로 혈당을 온정상태로 유지해 주기 때문에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유익하다. 또 코코넛오일의 대명사인 중간사슬지방산(medium-chain fatty acids)은 “비만을 예방해 주고 인슐린저항을 강저시켜 준다.” 고 2009년에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코코넛오일(Coconut Oil)의 유익점 - 1/100 : 모발케어(Hair Care) :
코코넛오일(Coconut Oil)의 유익점 - 1/100 : 모발케어(Hair Care) :
1. 모발케어(Hair Care) : 열대지방 여성들의 장발(長髮)에서 광택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열대지방 여성들은 매일 코코넛오일을 머리카락에 바른다. 코코넛오일은 머리카락의 생장을 돕고 머리카락에서 광택이나게 해주는 공효가 있다. 코코넛오일을 손가락 끝에 묻혀 머리카락에 발라주면 된다. 손상되어 있는 머리카락에 단백질 등 영양분을 공급해 주므로 손상된 머리카락을 복원시켜 줌과 동시에 비듬을 제거시켜 준다. 또 코코넛오일은 머릿이와 슬란(虱卵 ; 서캐)를 제거시켜 준다.
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마그네슘 부족(不足)은 신체(身體) 발염(發炎)과 불면증(不眠症)과 과로(過勞)의 원인이다. 마그네슘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飲食) :
마그네슘 부족(不足)은 신체(身體) 발염(發炎)과 불면증(不眠症)과 과로(過勞)의 원인이다. 마그네슘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飲食) :
일상생활(日常生活) 중 스ㅡ레스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스트레스에 저항하기 위하여 아드레날린(Adrenaline)의 분비량이 증가됨과 동시에 혈당(血糖)이 소모(消耗)되고 심도(心跳)가 가속(加速)된다. 자연요법가(自然療家)이며 의학박사(醫學博士)인 Carolyn Dean 는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대량(大量)의 마그네슘이 소모되는데 만일 체내(體內)에 마그네슘이 결핍될 경우 에너지 생성이 부족해 지며 신체(身體)는 대량의 아드레날린(Adrenaline)을 분비하고 그결과 긴장(緊張)과 조급(躁急)과 이노(易怒) 등 정서(情緒)가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스트레스는 대량의 마그네슘을 소모하며 마그네슘이 결핍될 경우 스트레스의 레벨이 상승된다는 뜻이다. 부신피질(副腎皮質)은 스트레스에 반응해 코르티솔(cortisol)을 분비하는데 혈당을 높이고 면역 시스템을 저하시키며 정서(情緒)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발염(發炎)과 만성병(慢性病)과 비만(肥滿)의 주요원인(主要原因)이다. 토양(土壤)이 빈척(貧瘠)해 짐으로 인하여 식물 속의 영양분이 대량 유실됨과 동시에 현대인들은 장기 마그네슘 결핍상태에 처해 있다. Carolyn Dean 박사(博士)는 현대공업화(現代工業化)는 토양(土壤)을 점점 빈척(貧瘠)하게 만들기 때문에 과일과 채소와 곡물(穀物) 속의 비타민과 광물질(礦物質) 함량(含量)을 감소시키는데 21 세기의 토양 속의 영양분은 20 세기의 토양 속의 영양분에 비하여 3 분의 1 이 감소되어 있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고 발표했다. 정서(情緒)가 불온정(不穩定)한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편식(偏食)」을 하는 사람들이다. 마그네슘은 혈당대사와 에너지 생성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채내의 세로토닌(Serotonin)의 보조성분(輔助成分)이다. 그러므로 마그네슘이 결핍할 경우 세로토닌의 생성이 결핍된다. 세로토닌은 신경전달물질(神經傳達物質)이며 수면주기(睡眠週期)와 정서(情緒)와 기억(記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뇌신경세포(腦神經細胞)를 보호(保護)해 주고 뇌신경세포의 노화(老化)를 방지해 준다.
다음은 마그네슘의 함량이 높은 식물(食物)이다. 1. 100 그램의 우방(牛蒡 : 우엉) 속에 537mg 의 마그네슘이 함유되어 있다. 일본(日本)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南雲吉則 : なぐも よしのり)는 국민들에게 「우방차(牛蒡茶 : 우엉차)」를 적극 추천(推薦)하고 있다. 우방(牛蒡) 속에 함유되어 있는 사포닌(Saponin)은 감비(減肥) 작용과 미부(美膚) 작용이 있으며 면역력(免疫力)을 증강시켜 주므,로 방암(防癌) 작용도 있고 수각빙냉(手腳冰冷)을 개선(改善)시켜 주는 효과(效果)가 있다. 동시에 우엉은 청혈제(清血劑)이고 신장독소(腎臟毒素)를 배제(排除)시켜 준다. 나구모 요시노리(南雲吉則 : なぐも よしのり)는 우엉차를 음용하므로써 일본 내에서 불로의사(不老醫師)란 영예를 얻었다.
2. 소맥배아(小麥胚芽 : 밀의 싹) : 100 그램의 소맥배아 속에 490mg 의 마그네슘이 함유되어 있으며「모든 영양분을 보급(補給)해 주는 초급식재(超級食材)」란 영예(譽為)를 얻었다. 그러므로 소맥배아는 방병(防病)、항로(抗老) 작용이 있고,과산화효소(過氧化酵素)와 세레늄 화합물(化合物)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면역력(免疫力)을 증강(增強)시켜 주고 항로방암(抗老防癌) 작용이 있고 대뇌(大腦)를 보호(保護)해 주며、 아동(兒童)들의 발육(發育)을 촉진(促進)시켜 주는 공능(功能)이 있다.
3. 홍조(紅藻) : 100 그램의 홍조 속에 220mg 의 마그네슘이 함유되어 있고 다종(多種) 필수(必須) 아미노산이 총중량(總重量)의 25% 함유되어 있으며 인체(人體) 내에서 소화(消化)가 잘되고 또 홍조(紅藻) 속에는 아이오다인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그외 마그네슘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飲食)은 다음과 같다.
1、케일(Kale),시금치、결구(結球)상추, 호박、홍피(紅皮) 마령서(馬鈴薯)、황제두(皇帝豆)、우방(牛蒡), 홍조(紅藻)、곤포(昆布)、톳(바닷말).
2、교맥(蕎麥)、소미(小米)、흑맥(黑麥)、연맥(燕麥).
3、행인(杏仁)、캐슈、호두(胡桃).
4、올리브 오일、코코넛 오일、참기름、아마인유(亞麻仁油).
Dr. Dean 은 의사이며 자연요법의사(naturopath)이고 허벌리스트(herbalist)이며 침구사(acupuncturist) 이고 영양학가(nutritionist) 이며 건강강연자(lecturer) 이고 건강상담자(consultant)이며 저자(author) 이고 발명가(inventor)이며 실업가(entrepreneur)이다. 현재 Dr. Dean 은 캐나다(Canada)의 토론토(Toronto) 시(市)에 있는 the Canadian College of Naturopathic Medicine (CCNM) 의 이사장을 6 년째 역임하고 있다.
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배추의 신기한 공효 :
배추의 신기한 공효 :
배추는 청장(清腸)의 공효와 숙변(宿便)의 청제(清除)와 오장(五臟)의 독소(毒素)를 배제시켜 준다. 배추 속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C 의 함량은 오이 보다 4 배(倍)가 더 높고 토마토 보다 1.4 배(倍)가 더 높으며 비타민 A 의 함량은 오이 보다 1.8 배(倍)가 더 높고 비타민 A 는 천연(天然) 무독(無毒) 항암물질(抗癌物質)이며 인후(咽喉)와 식도(食管)와 위장(胃腸)의 상피조직(上皮組織)의 염증(炎症)을 경감시켜 주고,치암물질(致癌物質)로 인한 세포(細胞)의 돌연변이를 방지해 주며 조직(組織)의 암병변(癌病變)을 억제시켜 준다. 비타민 C 는 항괴혈산(抗壞血酸)이라고도 칭하는데 치암물질(致癌物質) 아초안(亞硝胺)의 생성(生成)을 억제시켜 줌과 동시에 암세포(癌細胞)의 증식(增殖)을 억제시켜 준다.
또 배추 속에 함유(含有)되어 있는 일종(一種)의 인돌-3-카비놀(Indole-3-carbinol (C9H9NO) 성분은 항암제 , 항산화 제 및 항죽상경화 작용에 대한 생체의학 연구 의 주제이다. 인돌 -3- 카비놀의 함량(含量)은 배추 중량(重量)의 0.01% 이며 인체(人體) 내의 일종(一種)의 중요한 효소의 생성을 촉진(促進)시켜 주는데 이 효소는 암세포(癌細胞)의 생장(生長)과 암세포의 세포분열(細胞分裂)을 억제시켜 준다.
그외 배추 속에 함유되어 있는 미량원소(微量元素) 몰리브덴(Mo)은 인체금속효소(人體金屬酵素)의 중요(重要)한 조성성분(組成分)이다. 식도암(食道癌)의 고발지구(高發地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두발(頭髮) 속의 몰리브덴 함량(含量)은 매우 낮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의 수토(水土) 속에 몰리브덴(Mo)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량원소(微量元素) 몰리브덴은 치암물질(致癌物質) 아초안(亞硝銨 : 니트로사민(Nitrosamine))의 합성(合成)을 방지해 준다. 그런데 배추 속에는 몰리브덴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인체 내에 발암물질 니트로사민의 생성(生成)을 방지해 주기 때문에 암증(癌症)의 발생(發生)을 방지해 준다. 매일 1 파운드의 배추를 복용할 경우 500mg 의 몰리브덴을 흡수하게 되므로 암증(癌症)을 예방할 수 있다. 동시에 배추 속에 미량원소(微量元素) 셀레늄이 함유되어 있는데 심장(心臟)에 유익한 미량원소(微量元素)이므로 「생명지화종(生命之火種)」이란 영예를 얻었다.
인체(人體) 내에 셀레늄이 결핍될 경우 견고(堅固)한 암증 일차 방어선(防禦線)이 무너지는 것과 동일하다. 셀레늄은 인체(人體)에 중요한 과산화효소(peroxidase)의 조성성분(組成部分)이며 불포화지방산(不飽和脂肪酸)의 산화를 방지해 주고,치암과산화물(致癌過酸化物)과 유리기(遊離基 : free radicals)의 형성(形成)을 억제해 준다. 또 셀레늄은 탄서세포(吞噬細胞)의 공능(功能)을 통하여 암세포(癌細胞)의 에너지 대사(代謝)와 인터페론(Interferons : IFN)의 단백합성(蛋白合成)에 영향을 미치고 화학치암물(化學致癌物)의 대사(代謝)에 영향을 미쳐 암증을억제시킨다.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도가(道家)의 청장(清腸) 묘방(妙方) : 배추탕 :
도가(道家)의 청장(清腸) 묘방(妙方) : 배추탕 :
전통한의학설(傳統漢醫學說)에 보면:「욕무병장무사(欲無病腸無渣);욕장수장상청(欲長壽腸常清)」이란 구절이 있다. 다시 말하면 “무병장수하고 싶으면 장을 깨끗이 해라.” 는 뜻이다.,
또 인체(人體) 자신(自身)의 만성중독학설(慢性中毒學說)의 창시자(創始者) 일리야 일리치 메치니코프(Илья Ильич Мечников, 영어 : Ilya Ilyich Mechnikov : 1845년 ~ 1916년)는 러시아의 생물학자, 세균학자이며 1908년 파울 에를리히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그는 :「대장(大腸)에 적취(積聚)된 식물(食物)의 부패(腐敗) 후에 형성(形成)된 유해물질(有害物質)은 자신(自身)의 중독(中毒)을 발생(發生)시켜 질병(疾病)과 노쇠(老衰) 현상(現象)을 출현시킨다.」고 그의 의학상(醫學上) 저명(著名)한「自身中毒 : Self - Poisoning 」학설(學說)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1888년에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에 들어가 루이 파스퇴르 밑에서 세균학과 면역학을 연구하다가 백혈구의 식균 작용과 면역과의 관계를 발견하였다. 또한 인간의 노화 현상을 연구하여 유산균(乳酸菌)을 섭취하면 노화(老化)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딴 유제품9乳製品)이 한국야쿠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람의 장도(腸道)의 길이는 대략 8 미터 내지 10 미터이고 매 3.5 센티미터 마다 주름쌀이 있으며 매일 장도내에 체류(滯留)되어 있는 식물잔사(食物殘渣)를 체외로 배설(排泄)시켜준다. 장도(腸道)의 주름쌀 내(內)에 체류되어있는 식물잔사(食物殘渣)는 세균(細菌)의 작용(作用)에 의하여 건결(乾結)되고 부패(腐敗)되며 발효(發酵)될 경우 악취(惡臭)와 유독물질(有毒物質)을 형성하고 장벽상(腸壁上)에 부착되어 숙변(宿便)을 조성한다. 숙변(宿便)은 장내환경(腸內環境)을 악화(惡化)시킴과 동시에 장위(腸胃)의 공능(功能)을 문란(紊亂)시킨다. 그 결과 내분비문란(內分泌紊亂)을 조성하고 신진대사(新陳代謝)의 문란(紊亂)도 조성하며 최종적으로 각종(各種) 병증(病症)을 유발시킨다. 그러므로 고인들은 "장도(腸道)의 문제(問題)는 만병지원(萬病之源)" 이란 속어(俗語)를 남겼다. 도가(道家)의 일개(一個) 기효비방(奇效秘方)은 청장(清腸) 뿐만 아니라 숙변(宿便)을 배출시켜 주고 오장(五臟)의 독소(毒素)를 청제(清除)해 준다. 이 비방(秘方)은 배추를 다량 섭취하는 간단한 비방이다.
다음은 도장(道長)이 말하는 청장(清腸)을 위한 배추의 전문(專門) 식용방법이다.
도장(道長)은 "배추는 매우 탁월한 청장(清腸)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장위병인(腸胃病人)들의 질병치료에 기효(奇效)하다. " 고 말했다. 적당량의 배추를 물속에 집어넣고 소량의 매운 고추와 화초(花椒) 또는 거피생강(去皮生薑 : 껍질을 벗겨낸 생강)을 가미하여 끓인 후 국물과 함께 복용한다. 기름과 소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생강피(生薑皮)의 성(性)은 한(寒)이고 강육(姜肉)의 성(性)은 열(熱)이다. 매일 공복시 복용하는데 이와같이 만든 배추탕(白菜湯)은 배독효과(排毒效果)가 탁월하며 변비자(便秘者)나 장위병인들의 장위(腸胃)를 대청소해 준다. 평상시 일 개월에 일차(一次),또는 매주(每週) 일차(一次) 복용할 경우 흑색(黑色) 숙변(宿便)이 배출된다. 21 일 이상 복용할 경우 5 종(五種) 안색(顏色)의 대변(大便)이 배출(排出)되며 오장(五臟)의 독소가 청제(清除)된다. 도장(道長)은 사회활동(社會活動)의 불편을 피하기 위하여 주말의 3 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으며 특히 춘절(春節)은 체내 배독(排毒)의 호시기(好時機)라고 건의했다. 흑색숙변(黑色宿便)이 배출(排出)되고 나면 배가 홀쭉해 짐과 동시에 허리도 가늘어 지고 얼굴의 반점(斑點)과 뾰루지 등도 점차 소실(消失)되며 구취(口臭)와 체취(體臭)도 청제되고 지갑상(指甲上)의 월아(月牙)도 정상(正常)으로 회복(回復)된다.
미국(美國) 뉴욕의 암증연구소(癌症研究所)는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의 부녀유방암(婦女乳房癌) 발병율(發病率)이 서방의 부녀들에 비하여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의 부녀자(婦女子)들이 배추를 다량 섭취하기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조사자료(調查資料)에 따르면 매(每) 100,000 명의 부녀자(婦女子) 중(中) 매년(每年) 유방암(乳房癌) 발병율(發病率)은:중국(中國) 9 명,일본(日本) 21 명,북유럽(北歐) 84 명,미국(美國) 91 명이다.
배추 속에 함유(含有)되어 있는 허다(許多)한 물질(物質)은 방암항암(防癌抗癌) 작용(作用)이 있으며 미국국립암증연구소(美國國立癌症研究所)에서 발표한 방암식품(防癌食品) 중 마늘이 제 1 위(位)이고 배추가 제 2 위에 올라있다.
고인들의 속언(俗言)에 "약보불여식보(藥補不如食補)" 란 말이 있는데 "식보(食補)가 약보(藥補) 보다 훨씬 낫다." 는 뜻이다. 음식물(飮食物)은 가장 좋은 약물(藥物)임이 분명하다. 음식조리(飲食調理)는 신체(身體)를 보양(保養)해 줌과 동시에 질병(疾病)을 치료해 준다.
도가(道家)의 양생역사(養生歷史)는 유구(悠久)하다. 진시황(秦始皇) 시기(時期)에 성행(盛行)하였던 선단수련(仙丹修煉)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목적(目的)으로 실행되었는데 현대인(現代人)들의 양생(養生)에도 동일하게 유익하다.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겨울철에 마시는 홍차(紅茶) :
겨울철에 마시는 홍차(紅茶) :
홍차(紅茶)는 녹차(綠茶)를 가공(加工)하여 제성(製成)된 차(茶)이다. 홍차는 물 속에 충포(沖泡)한 후 홍색(紅色) 탕즙(湯汁)으로 변하며 미(味)는 감(甘)이고 성(性)은 한(寒)이다. 단백질(蛋白質)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고 정신을 진분시켜 주며 피로(疲勞)를 풀어주는 작용이 있다. 동계(冬季)는 한냉(寒冷)한 계절이며 체내(體內)의 양기(陽氣)를 상한다. 그런데 홍차는 보양(補陽) 작용과 조소화(助消化)시켜 주는 공효가 있고 신체를 강건하게 해준다. 작문(作文)이나 사자(寫字)나 작시(作詩)할 경우 한 잔의 홍차(紅茶)를 음용할 경우 영감(靈感)과 사원(思源)이 떠오른다. 당(唐) 나라의 대시인(大詩人)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와 백거이(白居易)와 송(宋) 나라 때 대문호(大文豪) 소동파(蘇東坡)와 육유(陸游)는 차(茶)와 술(酒)을 즐겨 마셨다. 매차 생각이 고갈(枯竭)되고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경우 차(茶)를 한 잔 마시고 나면,정신(精神)이 맑아지고 술을 한 잔 마시고 나면 영감(靈感)이 기동(起動)하기 시작하며 술이 거나하게 되면 글의 구상이 샘솟듯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육유(陸游)는 일 만(一萬) 여수(餘首)의 시(詩)를 썼는데 차(茶)와 술(酒) 덕택이다고 말했다. 소동파(蘇東坡)는 피폄후(被貶後) 술과 차를 벗삼아 시와 글을 쓰며 살았으며 허다(許多)한 가작(佳作)을 완성하였다. 육유는 반취반성(半醉半醒)한 상태에서 시(詩)를 썼으며「취와미인퇴(醉臥美人腿)」상황하(狀況下)에서 집필(執筆)하였다.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40 세(歲) 부터 대뇌(大腦)는 위축(萎縮)되기 시작하며 좌수쇄아(左手刷牙)와 각지체조(腳體操)는 대뇌(大腦)를 활성화시켜 준다.
40 세(歲) 부터 대뇌(大腦)는 위축(萎縮)되기 시작하며 좌수쇄아(左手刷牙)와 각지체조(腳體操)는 대뇌(大腦)를 활성화시켜 준다.
사람은 나이를 더해 감에 따라 고정(固定) 상표의 커피를 좋아하고、고정(固定)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휴가 기간에도 고정(固定)된 휴가형식을 택하는 등 안일(安逸)한 생활방식을 취한다. 매일 동일한 형식의 생활방식을 취할 경우 대뇌신경(大腦神經)이 용이하게 위축(萎縮)되므로 인하여 심신(心身)에 불리한 각종 증상(症狀)을 조성한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일본의학박사(日本醫學博士) 카토 슌메구무( かとう しゅんめぐむ)는 KATO PLATINA CLINIC 원장(院長)인데 나이를 더해 감에 따라 신체(身體)의 기능(機能) 퇴화(退化) 이외에 인체(人體)의 「심(心)」도 노화(老化)되기 시작하는데 다음은 심령노화(心靈老化)의 특징(特徵)이다고 말했다.:
《노화(老化) 정도(程度)의 검측(檢測)》 :
1.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他人)의 대화(對話)의 진행(進行)을 방애한다.
2. 외식시(外食時) 습관적으로 고정된 요리(料理)를 주문한다.
3.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말을 한다.
4. 친구가 먼저 자기를 초대해 주기 바란다.
5. 자기 나이를 앞세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
이상에 열거한 5 가지 중에서 2 가지 이상(以上) 부합(符合)되는 노인들은 주의를 요한다.
일상생활(日常生活)에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생활은 대뇌신경섬유(大腦神經纖維)를 용이하게 위축9萎縮)시킨다. 카토원장(加藤院長)은 " 일상생활(日常生活) 중 중복(重複)되는사건이 많을 경우 대뇌(大腦)는 기계화(機械化)되어 자동반응(自動反應)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뇌(大腦)의 신경섬유(神經纖維)는 위축(萎縮)된다. 뇌부의 신경섬유(神經纖維)가 충만(充滿)되어 있을 경우 정보(情報) 교환의 기능이 양호해 지며 신경섬유(神經纖維)가 위축(萎縮)되어 있을 경우 감정(感情)이 억압(壓抑)을 받고、 사물(事物)을 판단하는 대뇌(大腦) 전두엽(前頭葉)의 기능이 쇠퇴된다. 대뇌의 신경섬유가 위축상태에 있을 경우 마번(麻煩)과 초려(焦慮)가 발생하고 감정(感情)을 컨트롤 할 수 없으며 폭노(暴怒) 등이 용이하게 발생되고 행동력(行動力)이 없어지며 정서(情緒)의 조절이 않되는데 이는 모두 심령노화(心靈老化)의 특징(特徵)이다." 고 말했다. 일본우애치료원(日本友愛治療院)의 과학자들은 "대뇌(大腦)의 전두엽(前頭葉)은 감정(感情)을 컨트롤하고 의욕(意欲)과 창조력(創造力)을 증진시켜 주며,사고(思考)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40세(歲) 이후부터 위축(萎縮)되기 시작한다. 일단(一旦) 대뇌 전두엽(前頭葉 ; frontal lobe)이 위축(萎縮)될 경우 정확(正確)한 판단(判斷)이 어렵다." 고 설명했다.
《간단한 뇌부(腦部)의 홯성화 체조 방법》:
1. 양쪽 발가락을 사용하여 신문지를 한장 한장 폈다가 다시 원래대로 접는다. 평상시(平常時) 잘 사용하지 않던 발가락을 사용할 경우 신체(身體)가 컨트롤되고 잘사 용하지 않던 대뇌의 신경섬유(神經纖維)를 사용하게 되므로 인하여 대뇌(大腦)가 활성화(活性化)된다.
2. 좌수쇄아(左手刷牙) : 이빨을 닦을 경우 오른 손잡이들은 왼손(左手)으로 치솔을 붙잡고 이빨을 닦는 습관을 들인다.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음주(飮酒)는 불유쾌(不愉快)한 기억(記憶)을 망각하게 해준다.
음주(飮酒)는 불유쾌(不愉快)한 기억(記憶)을 망각하게 해준다.
음주는 불유쾌(不愉快)한 기억(記憶)을 망각하게 해준다고 미국의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고인(古人)들의 속언(俗言)에 :「舉杯消愁愁更愁。」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술을 마셔 취하기만 하면 온갖 걱정이 사라진다." 는 뜻이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의과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연구팀은 실험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존스홉킨스 연구원(研究員) 중 노먼 호이(Norman Haughey) 박사는 음주를 심리질병(心理疾病) 요법(療法)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자들의 정신요법(精神療法)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음주는 기억(記憶) 조차 하기 싫은 기억들을 소제(消除)해 주는 효과(效果)가 있다고 설명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外傷後 stress 障碍 :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란?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심적외상(心的外傷)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단 음식과 짠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질병(疾病)을 암시(暗示)해 준다.
단 음식과 짠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질병(疾病)을 암시(暗示)해 준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특별히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영양(營養)의 불균형이나 건강(健康)의 문제(問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노년인들이 신(酸) 음식과 단 음식과 쓴(苦) 음식과 매운(辣) 음식과 짠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주의를 요한다.
직장 근무자들이 오후의 차시간(茶時間)에 심신(心身)은 이완 상태에 있다. 이때 단 음식과 한 컵의 화차(花茶)를 마실 경우 에너지가 보충된다. 구미(口味)와 신체상태(身體狀態)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고 미국의 영양학자들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단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체내(體內)의 에너지가 결핍(缺乏)된 상태이며; 육류(肉類)가 먹고 싶을 경우 결철(缺鐵) 상태이고;짠(鹹)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과도(過度)한 피로(疲勞) 상태임을 의미한다고 미국의 영양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구미(口味)와 건강비밀(健康秘密) :
96% 의 여성(女性)과 68% 의 남성(男性)들이 기아시(飢餓時) 게걸들린 사람 처럼 일종의 음식을 다량 섭취한다고 캐나다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발견되었다.
또 미국(美國)의 미각(味覺)과 취각(嗅覺) 연구기구(研究機構)는 오후 3 시 부터 6 시 사이는 가장 용이하게 발생하는 취은시간(嘴癮時間)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시간에 체내(體內)의 혈당(血糖)은 강저되어 있고 게을러 지는 시간이며 스트레스가 가장 많이 쌓이는 시간이다. 단 음식은 대뇌(大腦)를 자극시켜 다량의 세로토닌(Serotonin)을 분비시켜 주며 초조(焦躁)하고 불안(不安)한 정서(情緒)를 완해(緩解)시켜 주는 공효가 있다. 취은(嘴癮)이란? 광적인 음식 기호벽이다. 고인(古人)들의 고어(古語)에「想吃什麼就是缺什麼」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 어느 시간에 특별히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그 음식 속에 들어있는 어떤 영양소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는 뜻이다. 구미편호(口味偏好)와 영양결핍(營養缺乏)은 일정(一定)한 관계(關係)를 갖고 있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다음은 구미(口味) 속에 은장(隱藏)되어 있는 건강비밀(健康秘密)이다.
1. 초코릿이 먹고 싶을 경우 : 초콜릿은 여성들의 선호 식품이다. 특별히 피로(疲勞)할 경우와 정서(情緒)가 저락(低落)되어 있을 경우와 경기전(經期前)에 초콜릿이 먹고싶다. 한 조각의 초콜릿을 먹고나면 정서(情緒)가 완해(緩解)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왜냐하면 초콜릿을 먹을 경우 체내에서 혈청소(血清素 : 세로토닌)가 석방(釋放)되므로 인하여 심정이 쾌락(快樂)해 진다. 특별히 노년인들이 초콜릿이 먹고 싶을 경우체내(體內)에 비타민 B 군(群)이 결핍(缺乏)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초콜릿은 인체(人體)의 신진대사(新陳代謝)를 도와주며 에너지를 증가시켜 준다. 비타민 B 군(群)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식물은 초콜릿과 토마토와 귤과 포도와 배(梨)와 우유와 두류(豆類)와 견과류(堅果類)와 시금치 등이다.
2. 단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 단 음식은 당분(糖分)을 제공해 주는데 당분은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가장 직접적(直接的)인 방식(方式)의 하나이다. 단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체내(體內)에 에너지가 결핍(缺乏)되어 있는 상태이다. 혈당(血糖) 강저시(降低時) 초조(焦躁)와 불안(不安)과 정서혼란(精緒混亂)과 사유력 강저와 이노(易怒)와 고집(固執)이 조성된다. 이와같은 정서의 변화는 인슐린 대사(代謝)에 이상(異常)이 발생한 표현(表現)이다. 수육(瘦肉)과 달걀과 어류(魚類)와 산약(山藥)과 두류(豆類)와 우(藕 ; 연뿌리) 등을 보충시켜 주어도 좋다.
3. 육류(肉類)가 먹고 싶을 경우 : 체내(體內)에 아미노산과 철(鐵) 등 광물질(礦物質) 결핍시(缺乏時)에 特別想吃 육류(肉類)가 먹고 싶다. 육류(肉類)는 인체(人體)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보충시켜 주며 그중 육류 속에 함유되어 있는 철(鐵)은 인체(人體) 내의 철과 동일한 형식(形式)이며 완전일치(完全一致)한다. 그러므로 육류 속의 철분은 인체(人體)의 흡수이용(吸收利用)이 용이하다. 그러나 다량의 육류를 섭취할 경우 대사질병(代謝疾病)이 용이하게 유발된다. 육류가 먹고 싶을 경우 버섯과 지마(芝麻)와 땅콩과 대두(大豆) 등으로 대체(代替)해도 된다.
4. 짠(鹹) 음식이 먹고 싶을 경우 :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피로(疲勞)한 사람들은 짠(鹹) 음식을 선호한다. 또 체내에 포타슘이 부족하거나 칼슘이 부족하거나 철(鐵)이 부족한 사람들도 짠 음식을 선호한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5. 기름에 튀긴 음식과 탄산음료(碳酸飲料)가 먹고 싶을 경우 칼슘이 부족하며;고기를 통째로 구운 요리로인 바비큐(barbecue)가 먹고 싶은 사람은 체내에 탄수화합물(碳水化合物)이 결핍된 상태이며;견과(堅果)와 두류(豆類)가 먹고 싶은 사람들은 체내(體內)에 유화(硫化)트립토판(Tryptophan sulfide)이 부족하다.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복통(腹痛)과 27 종(種) 내장질병(內臟疾病)의 관계 :
복통(腹痛)과 27 종(種) 내장질병(內臟疾病)의 관계 :
흉구(胸口)에 작열감(灼熱感)이 출현될 경우 위산역류(胃酸逆流)의 대표적 증상이다. 일본(日本)의 저명한 소화기내과(消化器內科) 의사(醫師)들은 각종(各種) 복부동통과 심와동통(心窩疼痛)과 대응(對應)하는 질병(疾病)들을 상세히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일본(日本) 동경도(東京都) 대전구(大田區) 서방병원(緒方病醫院) 교부마사미(刑部優美 : ぎょうぶ まさみ) 원장(院長)은 흉구(胸口)의 정하방(正下方) 및 늑골(肋骨) 정중앙(正中央) 부위는 전통적으로 심와(心窩)라고 칭하며 상복부(上腹部)의 기점(起點)인데 그 주위(周圍)에 심장과 식도(食道)와 위(胃)와 12지장(十二指腸)과 이장(胰臟)과 간과 담(膽) 등 소화기관(消化器官)이 있고 특히 간장(肝臟)은 신진대사(新陳代謝)와 해독(解毒)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重要)한 장기(臟器)이며 심장(心臟)은 신체(身體)의 혈액순환(血液循環)을 담당하고 있는 가장 중요(重要)한 장기이다고 말했다. 일본(日本) 예측의학(預測醫學) 연구소(研究所) 소장(所長)이며 소화기관(消化器官) 의학박사(醫學博士) 코야마 데츠로(高山哲郎 : こうやま てつろう)는 “ 심와(心窩)의 우측(右側)에 해독(解毒) 기관 우신(右腎)이 존재(存在)하고;좌측(左側)에 좌신(左腎)이 존재(存在)한다. 그러므로 하복부 동통(下腹部疼痛)은 대장이나 소장(小腸)의 문제(問題)로 인하여 발생할 경우도 있으므로 상복통(上腹痛)과 하복통 환자 스스로 자아병리판단(自我病理判斷)하기엔 복잡한 동통이다.” 고 설명했다. 코야마 데츠로(高山哲郎 : こうやま てつろう) 소장(所長)은 “ 흉하(胸下)와 상복(上腹) 부분(部分)을 심와구(心窩區)와 우상복부(右上腹部)와 좌상복부(左上腹部) 등 3 구역(三區域)으로 나누었다. 장기(臟器)들이 복부의 좌우(左右)에 분포(分布)되어 있기 때문에 병증(病症)과 통감(痛感)과 발작부위(發作部位)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고 설명했다.
A 구역(區域):정중앙(正中央) 심와구(心窩區) :
一、구토(嘔吐)와 토혈(吐血)과 엄중(嚴重)한 동통(疼痛):식도(食道) 파열(破裂)
일본(日本) 동경도(東京都) 대전구(大田區) 서방병원(緒方病醫院) 교부 마사미(刑部優美 : ぎょうぶ まさみ) 원장(院長)의 다년간 경험(經驗)으로 판단(判斷)하여 심와(心窩)의 중앙(中央)에 극심한 동통자들은 대부분 구토(嘔吐)와 구토대혈(嘔吐帶血)과 혈변과 두훈과 흉민(胸悶)과 호흡곤란(呼吸困難)과 냉한(冷汗)과 면색창백(面色蒼白) 등 증상이 출현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와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도(過度)한 구토(嘔吐)로 인하여 식도파열(食道破裂)이 조성됨과 동시에 반복적(反覆的)으로 구토(嘔血)가 발생한다. 그중 음주(飲酒)로 인한 자발성식도파열(自發性食道破裂)은 30% 내지 50% 에 달하며 식물중독(食物中毒)과 훈차(暈車)나 훈기(暈機)나 훈선(暈船)으로 인한 반복구토(反覆嘔吐)는 식도벽(食道壁)을 산식파열(酸蝕破裂)시킨다. 만약 구토(嘔吐) 후(後) 극렬(劇烈)한 흉통(胸痛)과 대량(大量)의 출혈(出血)이 있을 경우 위궤양(胃潰瘍)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위내시경검사(胃內視鏡檢查)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二、흉민(胸悶)과 창기(脹氣)와 식욕부진(食慾不振)과 구혈(嘔血):위염(胃炎) 또는 식물중독(食物中毒) :
코야마 데츠로(高山哲郎 : こうやま てつろう) 소장(所長)은 조기(早期) 위암(胃癌)은 뚜렷한 증상(症狀)이 없으며 심와동통(心窩疼痛)과 창기(脹氣)와 식욕부진(食慾不振) 등 만성위염(慢性胃炎)의 상견적(常見的) 증상 만 출현하는데 만성위염(慢性胃炎)을 적극적(積極的)으로 치료(治療)하지 않고 방치해 둘 경우 위암(胃癌)으로 병변(病變)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1 년 또는 2 년(年)에 일차(一次) 위내시경검사(胃內視鏡檢查)를 받아 자신(自身)의 건강을 안전(安全)하게 확보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백성들에게 건의했다.
三、식후 동통(疼痛)과 혈변(血便)과 토혈(吐血):위육류(胃肉瘤)、궤양(潰瘍), 위뉴전(胃扭轉 : 꼬임) :
만약 식사후 반시간 내지 한 시간내에 극렬(劇烈)한 심와동통(心窩疼痛)이 있으며 평상시엔 심와민통(心窩悶痛)과 식욕부진(食慾不振) 과 구토감(嘔吐感)이 있을 경우 위궤양(胃潰瘍)이거나 위부(胃部)에 비상피성(非上皮性) 악성종류(惡性腫瘤)가 생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위암종류(胃癌腫瘤) 중 95% 는 상피세포(上皮細胞) 증생형(增生型) 위선암(胃腺癌) 이며 5% 는 비상피세포(非上皮細胞) 증생형(增生型) 악성종류(惡性腫瘤)인데 주로 임파류(淋巴瘤) 또는 간충질종류(間充質腫瘤)이다. 간충질종류는 신경종류(神經腫瘤)와 평활근종류(平滑肌腫瘤)로 구분된다. 간충질(Mesenchyme)이란? 미분화(未分化) 된 결합 조직이고 간충질세포(Mesenchymal cell)는 또한 성인기에 줄기 세포로 작용하며 림프 조직, 뼈 조직 및 연골 조직으로 발전 할 수있다. 창기(脹氣)와 건구(乾嘔)와 흉민(胸悶)과 식욕부진 등 증상이 출현될 경우 장위과(腸胃科)에 가서 위내시경검사(胃內視鏡檢查)를 받아야 한다. 위궤양(胃潰瘍)이 발생된 부분의 위벽(胃壁)은 위산(胃酸) 자체(自體)의 침식(侵蝕)을 받아 유농발염(流膿發炎)을 유발한다. 40 세(歲) 이후(以後)의 중년자(中年者)들에게 발생하는 상견병(常見病)이며 그중 70% 의 위궤양(胃潰瘍) 환자(患者)들은 젊었을 때 유문나선간균(幽門螺旋桿菌)에 의하여 만성위염(慢性胃炎)에 이환(罹患)되어 있었는데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화형성(惡化形成)되었다. 그러므로 평상시 급성위통(急性胃痛)이나 혈변(血便)이나 구토(嘔血) 등 증상(症狀)이 출현할 경우 병원에 가서 검진해 봐야한다. 위뉴전(胃扭轉) 발생시(發生時) 강렬(強烈)한 창기감(脹氣感)과 극렬한 복통과 지속성(持續性) 구토(嘔吐) 등 증상이 발생하는데 위부뉴전(胃部扭轉)의 정도(程度)가 과대(過大)할 경우 혈액(血液)의 유통이 폐색되므로 위벽괴사(胃壁壞死)외 위천공(胃穿孔)이 발생되어 최후로 쇼크사망한다. 그러므로 위뉴전을 방지하기 위하여 식사시 좌세를 단정(端正)히 하고、평온(平穩)한 마음을 갖고,한번에 소량(少量)의 음식을 세작만연(細嚼慢嚥) 해야하며 하루에 다차(多次) 진식(進食)하는 것이 좋다.
四、둔통(鈍痛)과 자통(刺痛):심장질병(心臟疾病) :
심장은 앞가슴의 중간(中間)에서 약간 좌측(左側)으로 치우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심와(心窩) 또는 흉구(胸口)를 죄는 느낌이 있고 동통과 호흡(呼吸) 곤란을 초래할 경우 협심증(狹心症)이나 심근경색(心筋梗塞) 발작(發作)의 전조(前兆) 증상이다. 코야마 데츠로(高山哲郎 : こうやま てつろう) 소장(所長)은 협심증(狹心症)과 심근경색(心筋梗塞)은 모두 결혈성(缺血型) 관상동맥경화(冠狀動脈硬化) 심장질병(心臟疾病)인데 일단(一旦) 관상동맥폐쇄(冠狀動脈閉鎖)의 시간(時間)이 40 분(分) 이상 초과(超過)될 경우 심장내막(心臟內膜)의 심근(心筋)이 괴사(壞死)함으로 인하여 완전심근경색(完全心筋梗塞)이 유발되기 때문에 급구(急救)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日本) 동경도(東京都) 대전구(大田區) 서방병원(緒方病醫院) 교부마사미(刑部優美: ぎょうぶ まさみ) 원장(院長)은 " 매일 30 분(分)씩 유산소운동(有酸素運動)을 진행할 경우 혈관벽(血管壁)에서 일산화질소가 석방되므로 인하여 혈관을 연화(軟化)시켜 줌과 동시에 혈관(血管)의 탄성(彈性)을 가강(加強)시켜 준다. 그결과 결혈성(缺血性) 심혈관질병(心血管疾病)을 예방(預防)해 준다. 그리고 평상시 전흉(前胸)과 심와(心窩)와 하악(下顎)과 경부(頸部)와 좌측(左側) 상벽(上臂) 등 심장(心臟)의 주동맥(主動脈)과 연접되어 있는 부위(部位)에 긴박감(緊迫感)과 둔통감(鈍痛感)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건강을 위하여 생활형태(生活型態)를 조정(調整)해야 한다.“ 고 설명했다.
五、야간(夜間0의 공복시(空腹時)에 동통(疼痛)이 반복적(反覆的)으로 발생할 경우 : 십이지장궤양(十二指腸潰瘍) :
일본(日本) 동경도(東京都) 대전구(大田區) 서방병원(緒方病醫院) 교부마사미(刑部優美 : ぎょうぶ まさみ) 원장(院長)은 "십이지장(十二指腸)과 연접되어 있는 위유문(胃幽門) 부위에 있는 유문괄약근(幽門括約筋)은 음식물이 소화(消化)된 후 식미(食糜)를 12지장(十二指腸) 속으로 진입하는 속도(速度)를 조절(調節)해 준다. 유문나선간균(幽門螺旋桿菌) 감염(感染)이나 엄중(嚴重)한 생활스트레스는 과다한 위산분비(胃酸分泌)를 조성(造成)하므로 인하여 유문괄약근(幽門括約筋)의 근력(筋力)을 감약(減弱)시켜 주고 대량(大量)의 위산(胃酸)과 혼합된 식미(食糜)가 십이지장(十二指腸) 속으로 진입(進入)되어 궤양유농(潰瘍流膿)과 작상(灼傷)을 조성(造成)한다. 십이지장궤양(十二指腸潰瘍)과 위궤양(胃潰瘍)의 발생 비율은 약(約) 3:1 이다. 십이지장궤양(十二指腸潰瘍)은 심와(心窩)의 정중앙(正中央)에 통증이 출현되고,공복시(空腹時)에 동통(疼痛)이 출현되며、식사후엔 동통이 완해(緩解)된다. 그러나 위궤양(胃潰瘍)은 심와(心窩)의 정중앙(正中央)에서 약간 왼쪽 부위에 통증이 나타나며,식사후 반(半) 시간이나 1 시간 내(內)에 동통(疼痛)이 출현되고 공복시(空腹時)엔 오히려 동통이 완해(緩解)된다고 설명했다.
B 구역(區域):오른쪽 상복부(右上腹) :
一、유니(油膩)한 음식(飲食) 복용 후(後) 동통(疼痛)과 창기(脹氣)와 발열(發熱):담결석(膽結石)괴 담낭염(膽囊炎) :
담낭(膽囊)은 체내(體內)에서 상당히 침묵(沉默)한 기관(器官) 중 하나이다. 담결석(膽結石) 환자(患者)들 중 80% 는 확진(確診) 전(前)에 부적감(不適感)이 전혀없다. 담낭 속에 들어있는 담즙(膽汁)은 지방(脂肪)의 소화를 담당하는 주요(主要) 소화액(消化液)인데 담낭(膽囊)이나 담관(膽管)이 결석(結石)으로 인하여 폐색되어 만성발염시(慢性發炎時) 유니(油膩)한 음식(飲食)을 섭취할 경우 담낭(膽囊)이 담즙(膽汁)을 수송(輸送)하지 못하므로 인하여 담관(膽管)에 창통(脹痛)이 유발되고 발열도 발생한다. 세균(細菌) 감염(感染)으로 조성(造成)된 급성담낭염(急性膽囊炎)은 우측 상복부(上腹部)에 극렬(劇렬)한 동통과 신체발열(身體發熱)을 유발하고 황달(黃疸)과 복막염(腹膜炎)도 발생시켜 치사(致死)의 가능성(可能性)도 내포하고 있다.
二、발열(發熱)、식욕부진(食慾不振)、상토하사(上吐下瀉)、황달(黃疸):각종(各種) 간염(肝炎) 및 간종류(肝腫瘤) :
주정성(酒精性) 간염(肝炎)을 제외한 기타 각종 간염(肝炎)과 양성(良性) 간종류(肝腫瘤)는 세균(細菌)과 병독감염(病毒感染)으로 인하여 발생된다. 인체의 면역계통(免疫系統)이 살균(殺菌) 소독(消毒)하는 과정 중 발열과 체온상승이 발생된다. 또 간장(肝臟)은 대사(代謝)의 센터이므로 발염시(發炎時) 또는 질병 감염시(感染時) 통상적(通常的)으로 식욕(食慾)이 저락(低落)되고 요액(尿液)變成이 다갈색(茶褐色)으로 변하며、분변(糞便)의 회백화(灰白化) 등 황달증상(黃疸症狀)이 출현된다. 주정성(酒精性) 간염(肝炎)의 증상은 비교적 적으므로 인하여 환자(患者)의 대다수는 자각증상이 없다. 그러므로 일본(日本) 동경도(東京都) 대전구(大田區) 서방병원(緒方病醫院) 교부마사미(刑部優美 : ぎょうぶ まさみ) 원장(院長)은 자기(自己) 자신의 변뇨(便尿)가 변색(變色)하기 시작할 경우 철저(徹底)히 계주(戒酒)하며 관찰(觀察)해야 한다고 건의(建議)했다.
三、창기(脹氣)、피곤(疲倦)、상토(想吐)와 요액(尿液)의 안색(顏色)이 짙어질 경우 :간경화(肝硬化) :
각종 간염(肝炎)에 이환될 경우 간장조직(肝臟組織)에 손상을 입는다. 이에따라 자신(自身)의 혈소판(血小板)과 면역세포(免疫細胞)들은 간장(肝臟)의 수복(修復)에 나서며 동시에 단백질(蛋白質) 섬유화(纖維化)를 형성(形成)하며 간장(肝臟)을 보호(保護)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섬유화(纖維化) 면적(面積)의 범위(範圍)가 과대(過大)할 경우엔 간장경화(肝臟硬化)가 조성되며,상구(傷口)가 완전(完全) 수복(修復)되지 못할 경우엔 간경화(肝硬化)로 변성된다. 간경화(肝硬化)의 치병인자(致病因子) 중 간염병독감염(肝炎病毒感染)과 과량(過度)의 주정(酒精) 섭취(攝取)는 대종(大宗)을 이룬다. 간경화(肝硬化) 환자(患者)들은 간세포암(肝細胞癌)과 간쇠갈(肝衰竭)과 식도정맥류파열(食道靜脈瘤破裂) 등 소화도출혈(消化道出血)로 사망한다. 이상의 3개 질병(疾病)의 증상(症狀) 在 발생초기(發生初期)에 就會出現 창기(脹氣)와 피곤(疲倦)과 상토(想吐 : 구토하고 싶은 생각) 등 증상(症狀)이 출현되며 간장발염(肝臟發炎)으로 인하여 요액(尿液)의 안색(顏色)은 짙은 황갈색(黃褐色)이다.
四、창통(脹痛)과 호흡곤란(呼吸困難)과 하지수종(下肢水腫) :간어혈(肝瘀血) :
간어혈자(肝瘀血者)들은 통상적(通常的)으로 급성심근경색(急性心筋梗塞)의 병사(病史)나 폐염(肺炎)의 병사(病史)를 지니고 있으므로 심장(心臟)의 보조능력이 저락(低落)되어 만성심장쇠갈(慢性心臟衰竭)에 걸려있기 때문에 간장(肝臟)의 공혈부족(供血不足)이 형성된다. 심장(心臟)에서 뿜어내는 신선(新鮮)한 혈액(血液)의 4 분의 1 은 간장肝臟으로 수송(輸送)되어 사용된다. 그러므로 심장쇠갈자(心臟衰竭者)들은 용이하게 어혈(瘀血)과 황달(黃疸)과 수종(水腫)과 호흡곤란(呼吸困難) 등 증상(症狀)이 출현된다. 간어혈(肝瘀血)은 심장쇠갈(心臟衰竭)의 합병증이므로 심장공능(心臟功能)이 잘 조절될 경우 간어혈(肝瘀血)도 조절할 수 있다.
五、긴붕(緊繃) 또는 은은(隱隱)한 자통(刺痛):대면적(大面積) 간암(肝癌) :
고인들의 속설(俗說)에:「간시침묵적기관(肝是沉默的器官)」이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간은 침묵의 기관이다." 는 뜻이다. 간암종류(肝癌腫瘤)의 직경(直徑)이 5cm 를 초과(超過)할 경우 其實就會 출현(出現) 우상복(右上腹) 부위에 긴붕(緊繃)과 은은한 통감(痛感)이 출현되고 10% 의 간암(肝癌)은 담도암(膽道癌)이 전이(轉移)되어 발생한다. 대다수의 간세포암(肝細胞癌)들은 만성간병(慢性肝病)이 악화(惡化)되어 형성된다. 而成,所以除了有 그러므로 간염(肝炎) 병사자나 간경화(肝硬化) 병사자(病史者)들은 특별(特別)한 주의(注意)를 요한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우상복근육(右上腹筋肉)의 긴붕(緊繃)과 은은(隱隱)한 동통이 발생할 경우 즉시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한다.
六、 오른쪽 복부하방과 견갑골(肩胛骨)의 후방(後方) 동통(疼痛):신결석(腎結石) 또는 신장염 ;
신장(腎臟)은 배독(排毒)과 요산(尿酸) 대사(代謝)의 중요(重要)한 장기(臟器)이다. 신장(腎臟) 또는 신장과 상연(相連)되어 있는 비뇨계통(泌尿系統)에 결석(結石)이 출현(出現)하거나 염증이 발생할 경우 우측 늑골(肋骨) 하연(下緣)으로 부터 5cm 좌우(左右)되는 곳에 극렬(劇烈)한 자통감(刺痛感)이 발생한다. 또는 우측 후방의 견갑골(肩胛骨) 부위에 자리잡고 있는 고황혈(膏肓穴)에 동통(疼痛)이 발생한다.
C 구역(區域):왼쪽 상복부(左上腹區) :
一、왼쪽 복부의 후방(後方)과 허리 부위와 배부(背部)의 극렬한 동통과 둔통(鈍痛):급성췌장염(急性胰臟炎) 또는 만성췌장염(慢性胰臟炎) :
췌장(胰臟)과 신장(腎臟)은 복부 중 후방에 자리잡고 있는 장기(臟器)인데 동통시(疼痛時) 전방(前方)에 위치한 위부동통(胃部疼痛)으로 오진(誤診)하기 쉽다. 췌장(胰臟)은 다종(多種) 소화효소(消化酵素)를 분비(分泌)하며 혈당(血糖)을 조정(調整)해 주고 내분비(內分泌)를 조정(調整)해 주며 폭음폭식(暴飲暴食)하거나 다유다주(多油多酒)하거나 고첨고함(高甜高鹹)한 음식(飲食)을 섭취한 후(後) 극통감(劇痛感)이 출현(出現)되는데 이는 급성췌장염(急性胰臟炎)의 대표증상이다. 而隨著急性胰臟炎的反覆發生以及膽結石影響整體消化,胰臟會收到自己的消化酵素酸蝕而萎縮、硬化,這時就會演變為隱隱鈍痛、想吐且容易脹氣的慢性胰臟炎。 과거(過去) 의학통계(醫學統計)에 보면 只有好應酬的 남성(男性)族群較容易들이 비교적 용이하게 췌장염(胰臟炎)에 이환(罹患)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후생노동성(日本厚生勞動省)의 최신통계(最新統計)에 의하면 여성(女性)들의 만성췌장염(慢性胰臟炎) 이환율(罹患率)이 점차 증가되고 있다고 발표되어 있다.
二、식사후 왼쪽 상복부 동통(疼痛)과 요산배통(腰痠背痛) 증상(症狀)이 타배시(駝背時) 감완(減緩)될 경우:췌장결석(胰臟結石) :
코야마 데츠로(高山哲郎 : こうやま てつろう) 소장(所長)은 췌장도관(胰臟導管) 내(內)에 결석(結石)이 생성된 환자(患者)들의 40% 는 即便確診為 胰臟疾病,也常遭為 만성췌장염(慢性胰臟炎)으로 오진(誤診)된다고 말했다. 但是多數胰臟結石者的確也是經過 급성췌장염(急性胰臟炎)이 반복적(反覆的)으로 발작(發作) 而來,平均約會在第 하는 사람들은 一次 발병후(發病後) 5 년(年) 후(後)에 開始形成 결석(結石)이 형성된다고 한다. 췌장결석(胰臟結石)의 성인(成因)은 과도(過度)한 주정(酒精) 섭취(攝取) 외에 還有可能是因為 부갑상선(副甲狀腺) 기능항진(機能亢進)으로 인한 導致 고(高) 칼슘 혈증(血症) 또는 췌장도관(胰臟導管)의 변형(變形)과 영양불량(營養不良) 등 원인(原因)으로 조성造成 췌장도관(胰導管)의 폐색(閉塞)이 조성되는데,並且產生 회백색(灰白色)의 결석(結石)이 생성된다. 가장 유효(有效)한 판단방식(判斷方式)은 就是大多數患者在 전경(前傾) 타배시(駝背時) 복통(腹痛)과 배통(背痛)과 요통(腰痛)이 감완(緩解)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다수(大多數)의 췌장도관폐색환자들은 患者都 습관적(習慣的)으로 식사후에 타배(駝背 : 머리를 앞으로 수그림) 자세로 걷는다.
三、요배(腰背) 부위의 극통(劇痛)과 식욕부진(食慾不振)과 체중감소(體重明顯減少)와 황색피부(黃色皮膚) 색깔과 회백색(灰白色) 대변(大便):췌장암(胰臟癌) :
대부분의 췌장암(胰臟癌)은 만성췌장염(慢性胰臟炎)의 병변(病變)으로 인하여 발생되며 병정의 악화속도(惡化速度)가 매우 빠르고 십대(十大) 암증(癌症) 사인(死因) 중 제 8위(第八位)이다. 췌장(胰臟)의 악성종류(惡性腫瘤)는 주위(周圍)의 임파결(淋巴結)과 담낭(膽囊)으로 용이하게 전이(轉移)되며 췌장암 후기(後期)엔 간장(肝臟)으로 전이된다. 담낭(膽囊)으로 전이 될 경우 담도(膽道)의 폐색이 조성되면 담즙(膽汁)이 배출되지 못하므로 인하여 피부(皮膚)가 황색으로 변함과 동시에 대변의 색깔은 회백색으로 변하는데 폐색성황달(閉塞性黃疸)의 대표적 증상이다. 췌장암(胰臟癌) 환자의 생존율은 5.5 개월(個月)이므로 코야마 데츠로(高山哲郎 : こうやま てつろう) 소장(所長)은 60 세(歲) 이상의 노년인들에게 매년(每年) 췌장정기검사(胰臟定期檢査)를 받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四、왼쪽 하복부와 왼쪽 후방(後方) 견갑골(肩胛骨) 동통(疼痛):신결석(腎結石) 또는 신장염(腎臟炎) :
신장(腎臟)은 배독(排毒)과 요산(尿酸) 대사(代謝)의 중요(重要)한 장기(臟器)이다. 신장(腎臟)과 신장과 연접한 비뇨계통(泌尿系統) 결석(結石)과 염증이 출현(出現)할 경우 좌측 늑골(肋骨) 하연(下緣)으로 부터 약 5 센티미터 좌우(左右)되는 부위에 극렬(劇烈)한 자통감(刺痛感)이 출현하는데 이 부위는 신장이 위치하고 있는 부위이다. 경우에 따라 좌측 견갑골(肩胛骨)의 고황혈(膏肓穴)에 극심한 동통(疼痛)이 발생한다.
다음은 일본 의사들이 설명하는 3구증상(三區症狀)과 동통(疼痛) 상황(狀況)을 분류(分類)한 표(表)이다.:
A. 심와(心窩):
1. 식사후 구토(嘔吐)와 심한 경우 대혈(帶血) : 식물중독(食物中毒)、식도파열(食道破裂), 식도궤양(食道潰瘍)、위염(胃炎)、위궤양(胃潰瘍)、위육류(胃肉瘤)、위뉴전(胃扭轉 : 꼬임)
2. 공복시(空腹時) 동통(疼痛) : 12지장궤양(十二指腸潰瘍)
3. 둔통(鈍痛)이나 은은(隱隱)한 자통(刺痛) : 협심증(狹心症)、심근경색(心筋梗塞) 등 심장질병(心臟疾病)
B. 우상복(右上腹):
1. 유니(油膩)한 음식(飲食) 섭취 후(後) 차옹(脹痛)、발열(發熱) : 담결석(膽結石)、담낭염(膽囊炎)
2. 발열(發熱)、식욕부진(食慾不振)、상토하사(上吐下瀉)、황달(黃疸) : 각종간염(各種肝炎)、양성(良性) 간종류(肝腫瘤)
3. 피곤(疲倦)、상토(想吐)、요색변농(尿色變濃) : 간경화(肝硬化)
4. 창통(脹痛)、호흡곤란(呼吸困難)、하지수종(下肢水腫) : 간어혈(肝瘀血)
5. 긴붕(緊繃 : 팽팽하게 잡아당김, 켕김)、자통(刺痛) : 직경(直徑) 5cm 이상(以上)의 간종류(肝腫瘤)
6. 늑골하연(肋骨下緣) 5cm 되는 부위의 자통이나 견갑골(肩胛骨)의 자통(刺痛) : 신결석(腎結石)、비뇨계통결석(泌尿系統結石)、신장염(腎臟炎)
C. 좌상복(左上腹):
1. 복부(腹部)와 요부(腰部)와 배부(背部)의 극통(劇痛)과 체중감소(體重減少) : 급성췌장염(急性胰臟炎)、췌장암(胰臟癌)
2. 복부(腹部)와 요부(腰部)와 배부(背部)의 둔통(鈍痛) : 만성췌장염(慢性胰臟炎0
3. 식사후飯後의복통腹、과배통背痛且이타배시駝背時감완(減緩)될 경우 : 췌장결석(胰臟結石)
4. 피부색(皮膚色) 납황(蠟黃)、 회백색(灰白色) 대변(大便) : 췌장암(胰臟癌)
5. 늑골하연(肋骨下緣) 5cm 되는부위와 견갑골(肩胛骨)의 자통(刺痛) : 신결석(腎結石)、비뇨계통결석(泌尿系統結石)、신장염(腎臟炎)
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하루에 2 컵의 생강코코아 음료를 마실 경우 강혈당(降血糖)은 물론 혈관(血管) 연령(年齡)이 38 세(歲) 젊어진다.
하루에 2 컵의 생강코코아 음료를 마실 경우 강혈당(降血糖)은 물론 혈관(血管) 연령(年齡)이 38 세(歲) 젊어진다.
생강코코아 음료제법 :
♦ 재료(材料) : 순(純) 코코아 분(粉)(무당(無糖), 무유지방(無乳脂肪)) -- 5g, 생강(生薑)(거피(去皮) 생강(生薑) 또는 생강분(生薑粉)) -- 5g. 적당량의 흑당(黑糖)이나 꿀(蜂蜜)이나 콩국(豆漿)이나 우유.
♦ 코코아 분(粉) 5g 을 200ml 의 열수(熱水) 속에 집어넣고 생강(生薑)을 혼합하여 음용한다. 매일 1 컵 내지 2 컵을 따뜻할 때 음용한다.
일본(日本) 의학박사(醫學博士)들은 코코아는 건강식품이며 난신(暖身) 효과(效果)는 4 시간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인(日本人)들의 화제(話題) 중 매일 생강코코아 차(茶)를 음용(飲用)할 경우 혈관연령(血管年輕)이 20 세 내지 40 세(歲) 젊어진다는 생강코코아건강법이 있다. 일본에서 TV 와 신문잡지에 의학박사 타이라 류(平柳 : たいら りゅう)의 저작(著作)《病気にならない! 生姜ココア健康法》(번역暫譯:질병을 예방해 주는 생강코코아 건강법健康法)이 소개되어 있다. 현재 생강코코아 음료는 일본인들의 인기를 집중하고 있는 건강열음(健康熱飲) 중 하나이다. 생강(生薑) 속에 함유되어 있는 진저롤(Gingerol)과 쇼가올(Shogaol) 양종(兩種) 성분(成分)은 신체표면(身體表面)의 혈관(血管)을 확장시켜 줌과 동시에 난신작용(暖身作用)이 있다. 생강(生薑)을 가열(加熱)한 후 진저롤은 쇼가올로 전변(轉變)되며 심장(心臟)과 장위(腸胃)의 혈류량(血流量)을 증가(增加)시켜 주고 신체(身體)를 난화(暖和)해 준다. 진저롤과 쇼가올 성분은 혈액순환(血液循環)을 촉진(促進) 시켜 주므로 인하여 복용한 후 3 시간 내지 4 시간이 경과하면 난신효과(暖身效果)가 발생한다.
생강코코아는 혈관(血管)을 확장시켜 줌과 동시에 혈압(血壓)을 안정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효과(效果)가 있다. 그외 생강(生薑)은 혈관(血管)을 긴축(緊縮)시키는 효소(酵素)「AGE」의 활동(活動)을 억제시키는 공효가 있다. 그결과 혈관(血管) 확장 작용(作用)이 있으며 혈압(血壓)을 안정상태로 회복시켜 준다. 고급당화최종생성물(Advanced_glycation_end-product : AGE)은 당에 노출 된 결과로 당화 되는 단백질 또는 지질이다. 고급당화최종생성물은 당뇨병(diabetes)과 동맥죽상경화증(atherosclerosis)과 만성신장질환(chronic kidney disease) 및 알츠하이머 병(Alzheimer's disease)과 같은 많은 퇴행성 질병(degenerative diseases) 의 발달 또는 악화의 요인(要因)이며 노화를 촉진시켜 준다. 또 코코아 속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혈압(血壓) 안정 성분(成分)인 플라바놀(Flavanols)은 체내(體內)에서 일산화질소를 생성하는데 일산화질소는 혈관(血管) 확장 작용과 혈관탄성(血管彈性)을 유지해 주는 효과(效果)가 있기 때문에 혈압(血壓)을 정상(正常)으로 회복(回復)시켜 준다. 그러므로 생강코코아 음료는 혈압(血壓)을 안정시켜 주는 상승효과(相乘效果)가 있다. 연령이 증장(增長)함에 따라 체내(體內)의 일산화질소는 점차적으로 감소(減少)되므로 인하여 노화(老化)가 촉진되고 질병이 발생된다. 일산화질소는 혈관(血管)을 확장시켜 주고 또 동맥(動脈) 평활근(平滑筋)을 이완시켜 주기 때문에 혈류불순창(血流不順暢)으로 인한 신체권태(身體倦怠)를 치료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뇌부(腦部)의 혈류량(血流量)을 증가시켜 주므로 대뇌(大腦)의 피로(疲勞)를 소제해 주고 인지능력(認知能力)을 증강시켜 준다.
생강코코아 음료는 변비(便秘)를 개선시켜 줌과 동시에 소수종(消水腫) 작용이 있고 혈관연령(血管年輕)을 38 세(歲) 하강시켜 준다.
일본(日本) 건강잡지(健康雜誌) 총편집인(總編輯人) 센다이 쇼지(川内昭治 : せんだい しょうじ)는 코코아와 생강(生薑)은 인슐린 분비(分泌) 작용(作用)을 촉진시켜 주므로 혈당치(血糖值)를 하강(下降)시켜 주며, 나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주고 좋은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주므로 혈관폐색(血管閉塞)을 방지해 주고,동맥경화(動脈硬化)를 개선시켜 주므로 인하여 뇌중풍(腦中風)과 심근경색(心筋梗塞)을 예방(預防)해 준다고 말했다. 다음은 생강코코아 음료를 복용한 사람들의 증언이다. :
• 70 세(歲) 남성(男性)의 3 년전 혈관연령(血管年齡)은 90 세(歲)였는데,생강코코아 음료를 복용한 후 현재(現在) 혈관연령이 52 세(歲)로 강저되었다.;
• 생강코코아 음료를 복용한 38 세(歲) 여성(女性)의 혈당치(血糖值)가 107mg/dl 으로 부터 80mg/dl 으로 하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허한체질(虛寒體質)이 개선(改善)되었다. ;
• 36 세(歲) 여성(女性)의 체지방(體脂肪)이 감소(減少)되었다.;
• 67 세(歲) 여성(女性)의 혈관연령(血管年齡)은 24 세(歲)로 하강되었으며,수종(水腫)이 소실(消失)되었다.;
• 76 세(歲) 여성(女性)은 변비약(便祕藥) 대신 생강코코아 음료를 복용한 후 변비가 치유되었다.
"생강코코아 건강법(健康法)" 에 보면 「血管年輕了40歲」、「血壓下降40」、「血糖值下降27 」、「體脂肪減少了」、「體重減少3.2公斤」등 안례(案例)들이 수록되어 있다. 생강코코아 음료는 고혈압(高血壓)과 고혈당(高血糖)을 개선(改善)시켜 주는 작용(作用)이 있다고 타이라 류(平柳) 박사(博士)는 부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2 컵의 생강코코아 음료를 복용할 경우 치매와 자율신경(自律神經) 문란(紊亂)과 동맥경화(動脈硬化)와 허한(虛寒)을 예방해 준다고 설명했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심계(心悸)를 개선시켜 주고 심교통(心絞痛)을 방치해 주는 혈위(穴位) :
심계(心悸)를 개선시켜 주고 심교통(心絞痛)을 방치해 주는 혈위(穴位) :
《황제내경(黃帝內經).영추(靈樞).궐병(厥病)》 에"心痛,與背相控,如從後觸其心,傴僂者,腎心痛也,先取京骨、昆侖,發針不已,取然穀。心痛,少腹滿,上下無常處,便溲難,刺足厥陰。" 라고 기재되어 있다. 또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에 "心痛,衄噦嘔血,驚恐畏人,神氣不足,郤門主之。"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극문혈은 심통과 뉵혈과 토혈과 사람을 두려워함과 신기부족을 치료해 준다." 는 뜻이다. 또 소부혈(少府穴)은 심계(心悸)와 심교통(心絞痛)의 일정(一定)한 치료작용(治療作用)이 있다. 소부혈은 주먹을 쥐었을 때 새끼 손가락이 닿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심교통(心絞痛)이란? 관상동맥(冠狀動脈)의 공혈부족(供血不足)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흉통(胸痛)을 일컫는다. 동맥공혈부족(動脈供血不足)은 심장근육에 결혈(缺血)과 산소부족을 유발하므로 인하여 동통(疼痛)을 유발하는데 흉구(胸口)에 죄는 느낌이 발생한다. 노누형심교통(勞累型心絞痛)은 화를 크게내거나 타인(他人)의 언어자극시(言語刺激時) 분노(憤怒)가 발생함으로 인하여 유발되는 심교통(心絞痛)이다. 다른 하나의 심교통은 정상생활 중 발작하는 혈관경련성(血管痙攣性) 심교통(心絞痛)인데 관상동맥수축(冠狀動脈收縮)으로 인하여 혈관(血管) 내경(內徑)이 협착(狹窄)해 지므로 혈액(血液)의 수송이 불창(不暢)해져서 심장근육의 혈액공급(血液供給)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심교통(心絞痛)이다. 혈관경련성심교통은 약물치료(藥物治療)하지 않을 경우 심근졸사(心筋卒死) 등 돌발병(突發病)이 출현한다.
극문혈(郤門穴)은 곡택혈(曲澤穴)과 대릉혈(大陵穴)을 연결한 선상(線上)에 있으며 완횡문(腕橫紋) 위로 5 촌처(五寸處)에 위치(位置)하고 있다. 극문혈은 심포경상(心包經上)의 양생혈위(養生穴位)임과 동시에 심교통(心絞痛)의 특수(特殊) 치료(治療) 공효(功效)가 있는 혈위이다. 심교통(心絞痛)이 발생할 경우 극문혈(郤門穴)에 안마나 지압을 해 줄 경우 동통(疼痛)이 경감(輕減)된다. 또 소부혈(少府穴)은 흉민(胸悶)과 유뇨(遺尿) 와 소변불순창(小便不順暢) 등의 치료에 일정한 효과(效果)가 있다. 그외 소부혈(少府穴)은 심교통(心絞痛)과 심계(心悸) 등을 치료해 주는 효과도 있다. 소부혈(少府穴)에 산통(酸痛)이 발생 할 때 까지 3 분 내지 5분(分) 동안 안마나 지압을 해 줄 경우 심교통(心絞痛)과 심계(心悸) 등 증상(症狀)이 경감된다. 평상시 조만(早晩) 각각 일차(一次) 소부혈에 안마나 지압을 해 줄 경우 심교통(心絞痛)의 발생을 방지(防止) 할 수 있다.
2017년 11월 7일 화요일
일본(日本) 요통치료(腰痛治療) 권위자(權威者)의 최신요법(最新療法) :
일본(日本) 요통치료(腰痛治療) 권위자(權威者)의 최신요법(最新療法) :
현대인(現代人)들은 만성요통(慢性腰痛) 문제(問題)로 고민하고 있다. 일본(日本) 동경대학교(東京大學校) 의과대학(醫科大學) 부속병원(附屬病院)의 "22 세기(世紀) 의료(醫療) 센터" 의 마츠다이라(松平浩 : まつだいら) 요통(腰痛) 권위의사(權威醫師)는 요통(腰痛)의 신논점(新論點)을 제출했다. NHK 등 저명한 TV 프로그램에서 요통(腰痛)의 최신치료(最新治療)와 요통의 예방방법(預防方法)을 제시했는데 이 동작을 실행한 후 3 초(秒) 후에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그의 저서(著書) 「一回3秒 これだけ体操 腰痛は「動かして」治しなさい」(번역:한 번에 3 초 동안 간단한 체조를 실행할 경우 요통(腰痛)이 치료된다.)에 보면 " 3 개월 동안 요통(腰痛)이 치유되지 않을 경우 공구감(恐懼感)은 물론 신체강경(身體僵硬)이 조성(造成)되며 동통(疼痛)은 더욱 민감(敏感)해 지고 요통(腰痛)의 악성순환(惡性循環)이 지속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日本) NHK 의 요통특집(腰痛特輯) 프로그램에서 3 개월三(個月) 이상(以上) 장기요통자(長期腰痛者) 70 명을 상대로 실험(實驗)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2 주(週) 후(後) 70 명 중 32 명의 요통이 개선(改善)되었다.
《3 초(秒) 동안 실행하는 간단한 체조(體操)》: 이 체조(體操)는 배부(背部)와 요부(腰部)의 근육이 과도긴장(過度緊張)되어 있고 감각(感覺)이 민감하며 동통(疼痛)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반듯하게 서서 손바닥을 양쪽 둔부(臀部)에 각각 대고,수지(手指)는 땅을 향한다. 숨을 크게 내쉼과 동시에 천천히 상반신(上半身)을 뒤로 젖힌 자세에서 3 초 동안 유지한다. 그후 천천히 원래(原來) 위치(位置)로 되돌아 온다. 요통을 예방하고저 하는 사람들은 이 동작을 하루에 1 회 내지 2 회 실행해 주고;이미 요통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요통의 증상을 개선(改善)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10 차례 반복 실행해 주어야 한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각중풍(腳中風 ; 다리 중풍)!
각중풍(腳中風 ; 다리 중풍)!
퇴마목(腿麻木)과 각마목(腳麻木)은 대병(大病)의 전조(前兆) 증상이다. 요추병(腰椎病)의 증상(症狀)은 많이 있는데 예를들면 배부산통(背部酸痛),두훈(頭暈),요통(腰痛),후두부(後頭部) 두통,양측두통(兩側頭痛),하지발냉(下肢發冷),수부무력(手部無力),기력(氣力) 쇠퇴,보태(步態) 불온(不穩),근육위축(筋肉萎縮),간헐성파행(間歇性跛行) 등 증상(症狀)이다. 수마목(手麻木)과 각마목(腳麻木) 역시 요추병(腰椎病) 증상(症狀)의 하나이다.
요추병(腰椎病) 환자(患者)들에게 출현되는 수마목(手麻木) 증상과 각마목(腳麻木) 증상(症狀)? 마목의 주요 원인은 추관(椎管) 내(內)의 교감신경섬유(交感神經纖維)가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신경근(神經根)이 추간판돌출(椎間板突出) 부분(部分)의 압박(壓迫)을 받으므로 인하여 혈류부족(血流不足)과 결혈(缺血)과 산소부족이 조성되어 소퇴(小腿)와 각부(腳部)에 동통(疼痛)과 마목(麻木) 등 이상감각(異常感覺)이 출현된다. 특히 장시간(長時間) 서 있거나 앉아있을 경우 하지마목(下肢麻木)이나 단순마목(單純麻木)이나 하지발냉(下肢發冷)이나 발양(發涼)이나 마목감(麻木感)이 가중(加重)되기도 한다. 장기(長期) 수마(手麻)나 각마(腳麻) 등은 인체(人體)의 행동(行動)을 불편(不便)하게 해주는데 주의를 요한다. 요추병(腰椎病)으로 인하여 유발되는 수각마목(手腳麻木)과 퇴마목(腿麻木)은 국부신경(局部神經)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추간판(椎間板)이 신경(神經)을 압박 할 경우 심한 경우에 대소변실금(大小便失禁) 등 전형적(典型的)인 협박식(脅迫式) 병증(病症)을 조성한다. 좌각마통(左腳麻疼)과 좌퇴침(左腿沉) 또는 좌소퇴창만(左小腿漲滿)과 죄대퇴근(左大腿筋)의 긴축(緊縮),또는 오랫동안 앉아있을 경우 좌측 서혜부(鼠蹊部:regio inguinalis)마목(麻木)과 동통이 유발된다. 최후로 양쪽 사타구니 동통과 후배통(後背疼)과 심한 요통과 쌍수마목(雙手麻木)이 출현됨과 동시에 좌각저(左腳底) 반응(反應)이 비교적 지둔(遲鈍)해진다. 또는 목의 좌측(左側)과 좌측견부(左側肩部)와 좌견(左肩)과 흉추(胸椎)의 동통이 엄중하다. 수마목이나 각마목의 근본(根本) 원인(原因)은 혈액순환(血液循環)의 불량 때문인데 시간(時間)이 경과함에 따라 세포(細胞)들의 혈액공급부족이 조성된다. 수마(手麻)나 각마(腳麻) 증상(症狀) 출현시 골과병원(骨科病院)에 가서 전문의사의 검사(檢查)를 받아 확진(確診)해 보는 것이 현명하다.
수면시 각마(腿麻)?
1. 첫째 양호(良好)한 정서의 유지가 필요하다. 억울정서(抑鬱情緒)와 초려정서(焦慮情緒)는 하지불안증후군(下肢不安症候群 : Restless leg syndrome)의 증상(症狀)을 가중(加重)시켜 준다.
2. 합리적(合理的)인 일상생활(日常生活)과 직장생활의 안배(安排).
3. 수면방식(睡眠方式)의,조정(調整) : 수면전 공포자극성(恐怖刺激性) 글을 읽거나 영화의 시청을 피해야 한다. 또 수면전에 퇴부(腿部)를 단련(鍛煉)시켜야 한다.
4. 수면시(睡眠時) 온도변화(溫度變化)에 주의(注意)를 기울여 온난(溫暖)한 환경(環境)을 유지해야 한다.
5. 니코틴이나 카페인 등 자극성물질은 흥분(興奮) 신경계통(神經系統)의 공능(功能)을 자극시켜 주므로 하지불안증후군(下肢不安症候群 : Restless leg syndrome) 증상(症狀)을 가중(加重)시켜 준다.
하지마목(下肢麻木)과 핍력(乏力)은 요추간판 탈출증(腰椎間板脫出症 : Spinal disc herniation)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 임신기간(妊娠期間)에 관절인대(關節韌帶)는 이완상태에 있고 자궁(子宮)은 전향(前向) 돌출(突出)이 증대(增大)되므로 중심(重心)이 후방으로 이동되고 배근(背筋)은 지속적으로 긴장상태(緊張狀態)에 있으며 요배동통(腰背疼痛)이 용이하게 출현됨과 동시에 하지마목(下肢麻木) 등 증상(症狀)을 유발시킨다. 그외 자궁(子宮)이 하지혈관(下肢血管)을 압박하므로 인하여 하지혈액순환(下肢血液循環)이 불량해 지므로 하지경련(下肢痙攣)이 유발되고 칼슘 부족도 하지경련을 유발시키는 인소(因素) 중 하나이다. 퇴마목(腿麻木)이 발생할 경우 즉시 즉시 자세를 개변시켜 몇분 동안 다리를 움직여 주므로써 주어야 한다. 예를들면 좌퇴(左腿)에 마목증상이 발생할 경우 우수(右手)를 10 초(秒) 동안 천정을 향하여 3 차례 반복하여 쳐들어 준다. 또 우퇴(右腿) 마목시(麻木時) 좌수(左手)를 동일하게 쳐들어 주면 마목감(麻木感)이 점차 완해(緩解)된다.; 또는 " 내팔자(內八字 : Toe-in)" 자세로 걸을 경우,부동(不同) 근육의 수력(受力)의 균형(均衡)을 이루어 주므로 마목감각(麻木感覺)을 경감(輕減)시켜 준다.; 또 열부(熱敷)를 해주어도 마목(麻木) 증상이 소제(消除)된다. 그리고 평상시 첨자세(站姿勢)와 좌자세(坐姿勢)를 항상 정확(正確)한 자세(姿勢)로 취해주되,동일(同一)한 자세(姿勢)를 오랫동안 지속하지 말아야 한다. 장시간 앉은 자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몇 분 동안 만 자세를 바꾸어 주면 마목을 피할 수 있다. 또 산보나 수영 등으로 퇴부(腿部)를 단련시켜 주어야 한다. 그외 골질증생(骨質增生)과 요추간판탈출증(腰椎間板脫出症 : Spinal disc herniation) 과 요부근육손상(腰部筋肉損傷) 등 병변(病變)은 주위신경(周圍神經)에 영향을 입혀 퇴마목(腿麻木)과 각마목(腳麻木)을 유발시켜 주므로 의사를 찾아가서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퇴마목의 원인(原因)?
1. 양성하지마목(良性下肢麻木):심정(心情)、음식(飲食)、천기(天氣)、운동상황(運動狀況)의 개변(改變)은 자연적으로 증상을 소실(消失)시켜 주며 일반적으로 2 일 내지 3 일이 경과하면 증상이 소실(消失)된다.
2. 악성하지마목(惡性下肢麻木):악성하지마목(惡性下肢麻木)의 주요(主要) 특징(特徵)은 지속성(持續性)과 진행성(進行性)이다. 시간(時間)이 경과함에 따라 마목(麻木)의 정도(程度)는 가중(加重)된다.
퇴마목(腿麻木)의 위해(危害) : 퇴마목 증상(症狀)이 발생할 경우,전문의사의 검사(檢查)와 진단(診斷)을 받아야 한다. 퇴마목과 각마목은 구좌(久坐)와 구첨(久站)과 구존(久蹲) 등 불량자세로 인하여 퇴부(腿部)의 혈액유통(血液流通)이 불창(不暢)하므로 인하여 주위신경(周圍神經)이 압박(壓迫)을 받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 대뇌(大腦)와 하지의 신경(神經)의 정상전도(正常傳導)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마목(下肢麻木)을 일상샐활 중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증상의 하나로 여기며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소실(消失)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절대로 소홀히 여기면 않되는 엄중한 증상이다.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수면 전(前) 30 초(秒) 동안 앙식체조(仰式體操)로 심층(深層) 핵심근력(核心筋力) 단련하기 :
수면 전(前) 30 초(秒) 동안 앙식체조(仰式體操)로 심층(深層) 핵심근력(核心筋力) 단련하기 :
연령(年齡)이 증가(增加)함에 따라 근력(筋力)의 유실(流失)이 조성(造成)된다. 사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사람들게 근육강경(筋肉僵硬)과 대사폐물(代謝廢物)의 누적(累積)이 용이하게 조성된다. 일본(日本) 운동지도사(運動指導師)는 사무실 근무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근육은 척추(脊椎) 주위(周圍)에 집중(集中)되어 있는데 수면전에 간단한 신전체조(伸展體操)를 실행할 경우 요통(腰痛)의 발작(發作)을 예방해 주고 개선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심층근육(深層筋肉)은 이완상태에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타배(駝背)를 형성한다.
일본(日本)의 저명한 운동지도사(運動指導師)이며 체능교련사(體能教練師) 요시다 키유키(吉田輝幸 : よしだ゛ きゆき)는 사무실 의자에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척추(脊椎) 주위(周圍)에 있는 다열근(多裂肌)과 복횡근(腹橫肌)과 복사근(腹斜肌) 등 심층근육(深層筋肉)들은 평상시 덜 사용되므로 이완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반신(上半身)과 늑골(肋骨)과 골반(骨盆) 사이를 좁혀준다. 그 결과 타배(駝背)가 조성되어 소복(小腹)과 요부(腰部) 근육(筋肉)의 산통(痠痛)과 손상을 유발시킨다. 타배는 골반(骨盆)의 전경화(前傾化)를 조성하고 내장하수(內臟下垂)를 조성하며 소복(小腹)의 돌출(突出)을 조성하므로 요부의 산통(痠痛)을 형성한다.
수영은 체간(體幹)을 단련시켜 주고 대사력(代謝力)을 증강시켜 준다. 일본(日本)의 유도정복사(柔道整復師) 히라가코지(平賀浩二 : ひらが こうじ)는 수면전 체간(體幹)의 심층(深層) 핵심근육(核心筋肉) 단련은 타배(駝背)와 요통(腰痛)의 문제(問題)를 개선(改善)시켜 줌과 동시에 이미 퇴화(退化)되어 있는 대사력(代謝力)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30 초(秒) 앙식체조(仰式體操) : 요시다 키유키(吉田 輝幸 : よしだ゛きゆき)는 수면전에 침대위에 드러누운 자세에서 30 초(秒) 동안 수영하는 자세를 계속 실행할 경우 요통(腰痛)이 완해(緩解)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요시다(吉田: よしだ゛) 식(式) 침상(床上) 앙식체조(仰式體操)》이다. :
※1. 천정을 바라보고 침대위에 누운 자세에서 두손은 신체(身體)와 수직(垂直 : 90도(度))되게 하늘을 향하여 쳐들고 소퇴(小腿)는 위로 쳐들어 침상과 수평(水平)을 유지해주며 관관절(髖關節)과 90 도(度)를 유지한다. 이 자세는 기본자세이다.
2. 1 의 기본자세에서 오른 손과 왼 발만 힘을 주어 상하로 쭉뻗는다.
3. 오른손과 왼발을 2 초(秒) 동안 쭉뻗은 후 천천히 1 의 기본자세로 되돌아 온다.
4. 그 다음 1 의 기본자세에서 왼손과 오른발을 상하로 힘을 주어 쭉 뻗는다. 이와같은 동작을 30초 동안 반복 실행해 준다.
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1 분(分) 동안 테니스 공을 밟아 줄 경우 각저의 임파순환(淋巴循環)을 돕는다.
1 분(分) 동안 테니스 공을 밟아 줄 경우 각저의 임파순환(淋巴循環)을 돕는다.
테니스 공의 탄성(彈性)은 각저근막(脚底筋膜)을 자극시켜 주므로 임파순환(淋巴循環)을 도와준다. 일본(日本) NESTA 의 신전체조(伸展體操) 부분(部門)의 담임(擔任) 무전민희(武田敏希) 교련(教練)은 테니스 공의 외연내강(外軟內硬)한 탄성(彈性)은 족저근막(足底筋膜)을 이완시켜 주는데 가장 적합(適合)하다고 말했으며 각저(腳底)의 임파회류(淋巴回流)를 자극시켜 줌과 동시에 근육을 조정(調整)해 주고 족저근막(足底筋膜)의 탄성(彈性)을 증강시켜 주므로 인하여 하반신 혈액순환(血液循環)을 촉진시켜 준다고 말했다.
각저(腳底) 안마시 통증이 발생할 경우 신진대사폐물(新陳代謝廢物)이 과다(過多)하게 퇴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운동과학(運動科學) 전문가(專問家) 코즈 나오아키(木津直昭木津 : こづ なおあき)는 각저안마(腳底按摩)의 이론(理論) 중 「반사구(反射區)」관념(觀念)에 관하여 설명한다. 각저안마시 동통(疼痛)이 발생함은 족저근막이 과도(過度)하게 긴장(緊張)되어 있음은 물론 신체(身體) 내의 유산(乳酸)과 수분(水分) 등 대사물(代謝物)이 이곳 동통처에 퇴적(堆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자극을 줄 경우 퇴적물(堆積物)이 그 부위의 신경(神經)을 압박하므로 동통감이 발생한다. 무전민희(武田敏希)는 테니스 공을 발로 밟을 경우 각저(腳底)에 극렬(劇烈)한 동통감(疼痛感)이 발생하는 사람들은 평상시 대량의 신진대사폐물이 각저(腳底)에 누적(累積)되어 있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각저근육(腳底筋肉)을 이완시켜 주기 위하여 특별히 강(強)한 안마를 해 주어야 한다. 수면 전에 족저를 안마 해 줄 경우 하반신(下半身)의 혈액회류(血液回流)와 하반신의 임파액(淋巴液)의 회류(回流)를 도와준다.
※ 테니스 공 각저안마(腳底按摩) 전(前)에 먼저 열수포각하고 나서 끓인 물을 한 컵마신다. 그러면 신체(身體)의 임파순환(淋巴循環)이 가속(加速)되어 소수종(消水腫) 효과가 나타난다. 발꿈치 부터 발가락 끝 까지 테니스 공을 1 분 동안 세게 골고루 밟아준다. 긴장되어 있던 족저근이 이완된다.
※ 주의(注意): 각저안마 중 특별히 동통(疼痛)이 더욱 심한 부위(部位)를 발견할 경우 이곳에 더욱 힘을 가하여 테니스공을 세게 밟아준다.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일본(日本)의 가내(家內) 전통 지해비방(止咳秘方): 양총탕(洋蔥湯)은 살균해독(殺菌解毒) 작용이있다.
일본(日本)의 가내(家內) 전통 지해비방(止咳秘方): 양총탕(洋蔥湯)은 살균해독(殺菌解毒) 작용이있다.
감기에 걸려 콧물이 흐르고 해수(咳嗽)가 그치지 않을 경우 서양약 만 복용하면 서양약(西洋藥)의 항약성(抗藥性)을 증가시켜 줌과 동시에 신체가 상한다. 그러므로 물을 다량 마셔주고 비타민을 섭취해 주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여 주고 일본(日本)의 전통(傳統) 가전(家傳) 감기치료 처방(處方)을 사용하여 감기를 치료해 보는 것도 좋다.
양총탕(洋蔥湯)(1 인분):
재료(材料):물 300cc、달걀 1 개(個)、양파 반(半) 개、생강 적당(適量)、마늘 2 편(片)、간장, 꿀 적당.
STEP 1:양파와 마늘과 생강(生薑)을 모두 잘게 썬다.
STEP 2: 먼저 냄비 속에 양파를 집어넣고 물을 부어 끓인다.
STEP 3:마늘과 생강과 간장을 넣고 다시 한 번 더 끓인 후
STEP 4:꿀을 가미하여 따뜻할 때 음용한다.
양파 속에 함유되어 있는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퀘르세틴 ( Quercetin)은 면역공능(免疫功能)을 조정(調整)해 주므로 감기를 치료해 주며 위(胃)의 기능을 개선(改善)시켜 주고 강혈당(降血糖)과 강혈지(降血脂)의 공효(功效)가 있다. 일본(日本)의 저명한 요리연구가(料理研究家) 무라우에 사가코(村上祥子 : むらうえ さがこ)는 “ 마늘 속에 함유되어 있는 「알리신(Allicin)」성분(成分)은 면역능력(免疫能力)을 증강(增強)시켜 주고 인체(人體)의 자유기능(自癒機)을 증가시켜 주므로 양파와 배합(配合)할 경우 더욱 유효(有效)하다. 생강은 수각빙냉(手腳冰冷)을 개선시켜 주며 해독살균(解毒殺菌) 작용이 있고 면역력(免疫力)을 강화(強化)시켜 준다. 또 생강을 가열(加熱)할 경우에 쇼가올(Shogaol)의 함량(含量)을 증가시켜 주므로 전신(全身)을 온난(溫暖)하게 해준다. 달걀 속의 비타민 A 는 감기를 예방해 주고 눈(眼睛)을 보호해 주는 작용이 있으며,비타민 B 군(群)은 신경(神經)을 보호해 주고、신진대사(新陳代謝)를 촉진시켜 주므로 체질허약자(體質虛弱者)들에게 적합하다." 고 설명했다.
이 처방은 감기에 걸렸을 때 조성되는 식욕부진(食慾不振)도 치료해 준다.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커리와 건포도(乾葡萄)와 포도피(葡萄皮)는 대장암(大腸癌) 예방(預防) :
커리와 건포도(乾葡萄)와 포도피(葡萄皮)는 대장암(大腸癌) 예방(預防) :
대장암(大腸癌)은 10대(十大) 암증(癌症) 중 제 일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장암의 일부 원인은 음식습관(飲食習慣)의 개변(改變)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 암증(癌症)을 예방하기 위하여 고유지(高油脂)와 홍육(紅肉)과 기름에 튀긴 음식 등을 삼가 섭취해야 한다.
일본(日本) 소화계통(消化系統) 전문 의사(醫師) 고다 쇼(ごうだ しょう)의 저서 《為什麼你的病好不了》에 보면 커리와 건포도(乾葡萄)와 포도피(葡萄皮) 속에 함유되어 있는 강황소(薑黃素)와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등 특수(特殊)한 영양성분(營養成分)은 암증(癌症)을 방지해 주고 대장암(大腸癌) 세포(細胞)의 증생(增生)을 억제(抑制)시켜 준다고 암증연구센터는 실증(證實)하였다. 대장암의 조기병변(早期病變)인 이상선와소(異常腺窩巢 : aberrant crypt foci of colonic mucosa, ACF)는 대장암(大腸癌)의 전암병변(前癌病変)이며 대장식육(大腸息肉) 형성(形成) 후(後),최후(最後)로 대장암(大腸癌)으로 변성(變成)된다. 커리 속에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강황소(薑黃素)」성분(成分)(커리의 황색(黃色) 성분(成分))은 암전병변(癌前病變)을 예방해 주므로 대장암(大腸癌)의 조기(早期)病灶的 발생률(發生率)을 감소(減少)시켜 준다. 그외 포도피(葡萄皮) 속에 풍부하게 함유(含有)되어 있는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성분은 암세포증생(癌細胞增生)을 억제시켜 주는 효과(效果)가 있다. 건포도와 포도피를 식용(食用)할 경우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성분 때문에 항암공효(抗癌功效)가 있다.
대장암에 걸릴 확률을 강저시켜 주기 위하여 커리와 포도피(葡萄皮)와 건포도(乾葡萄)를 복용해야 한다.
【커리】:
커리 속에 함유되어 있는 「강황소(薑黃素)」는 방암효과(防癌效果)가 있다. 0.2/100 내지 2/100 제량(劑量)의 강황소(薑黃素)를 복용할 경우 이상선와소(異常腺窩巢 : aberrant crypt foci of colonic mucosa, ACF)의 형성(形成)을 강저(降低)시켜 준다. 그외 강황소(薑黃素)는 항노화(抗老化) 공효(功效)도 있으며 치매증의 발생을 예방(預防)해 준다.
【포도피(葡萄皮)와 건포도(乾葡萄)】:
포도피(葡萄皮) 속에 함유(含有)되어 있는 진귀(珍貴)한 항산화성분(抗氧化成分)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성분은 고도(高度)의 활성산소 흡수능력(吸收能力)이 있으므로 장수식품이다. 29 일 동안 연속적으로 매일(每日) 0.5g 내지 1g 의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을 복용시킨 결과 대장암의 암조직증생(癌組織增生)이 현저하게 감소(減少)되었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은 인슐린저항을 개선(改善)시켜 줌과 동시에 간공능(肝功能)을 개선시켜 주므로 혈압(血壓)을 강저시켜 주고 콜레스테롤의 레벨을 강저시켜 준다. 또 감비(減肥) 효과(效果)도 있다.
뇌혈전(腦血栓)의 6개(個) 선조(先兆) 증상 : 제 일 먼저 혀(舌頭)를 관찰 !
뇌혈전(腦血栓)의 6개(個) 선조(先兆) 증상 : 제 일 먼저 혀(舌頭)를 관찰 !
뇌혈전(腦血栓)의 발병률(發病率)은 점차 연경화(年輕化)와 저령화(低齡化) 추세(趨勢)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 중 뇌혈전의 위협(威脅)을 받고 있다.
뇌혈전(腦血栓)은 뇌동맥(腦動脈)의 내벽상(內膜上)에 자리잡고 있으며 혈액(血液)의 유형성분(有形成分)이 동맥의 내벽에 부착(附著)하여 형성된다. 일반적으로 50세(歲) 이후(以後)에 발생하며 여성(女性)들 보다 남성(男性)들에게 더 많이 발생된다. 뇌동맥죽상경화(腦動脈粥狀硬化)와 반괴(斑塊)는 혈류(血流)의 속도를 완만(緩慢)하게 하며、혈압(血壓)을 저하시켜 준다.
다음은 뇌혈전의 6개 전조증상이다. :
1、혀(舌頭)의 마목(麻木) :
뇌혈전 폭발(爆發) 전(前)에 25% 의 환자들은 잠시성(暫時性) 뇌결혈(腦缺血) 발작(發作)이 발생되는데 한의학에서는「소중풍(小中風)」이라고 칭하며 발병(發病) 하루 전(前)에 잠시적으로 언어장애(言語障礙)가 출현하는데 말이 서툴고 혀가 불영활(不靈活)하다.
그러므로 혀(舌頭)에 마목(麻木)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전문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2、돌연(突然)히 현훈(眩暈)이 발생 :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피로(疲勞)하고 현훈증상이 조성된다. 그후 1 일 내지 2 일 동안에 반복(反覆)하여 5 차례 이상(以上) 현훈(眩暈)이 출현(出現)할 경우 뇌출혈(腦出血) 또는 뇌경색(腦梗塞)의 위험성(危險性)이 증가(增加)된다.
특별히 고혈압(高血壓) 환자(患者)들은 주의(注意)를 요한다.
3、극렬(劇烈)한 두통(頭痛) :
뇌혈전은 극렬(劇烈)한 두통(頭痛)을 유발하며 엄중한 경우 추축(抽搐)과 혼미(昏迷)와 기수(嗜睡)와 두통(頭痛)이 발생한다.
4、보태(步態) 이상(異常) :
걸음걸이가 이상해 지며 산보할 때 퇴무력(腿無力)이 발생하는데 이는 편탄(偏癱)의 선조증상(先兆症狀) 중 하나이다. 노년인(老年人)들의 걸음걸이가 돌연(突然)히 변화(變化)하고 지체마목(肢體麻木)과 무력(無力) 등 증상이 출현할 경우 뇌혈전의 전조 신호(信號)이다.
5、비출혈(鼻出血) :
비출혈은 뇌혈전의 위험신호(危險信號) 중 하나이다. 뇌혈전 폭발전(爆發前) 반년간(半年間) 수차(數次) 대량(大量)의 비출혈(鼻出血)이나 안저출혈(眼底出血)이나 혈뇨(血尿) 등 증상(症狀)이 출현된다.
6、혈압(血壓) 이상(異常) :
혈압이 돌연히 200/120mmHg 이상(以上) 지속시(持續時) 뇌혈전의 전조(前兆) 증상이다. ; 또 혈압(血壓)이 돌연히 80/50mmHg 이하(以下)로 강저시 뇌혈전의 전조증상이다.
일단(一旦) 뇌경색(腦梗塞)이 발생(發生) 할 경우 치료효과(治療效果)는 만족하지 못하므로 뇌경색의 선조증상(先兆症狀)을 식별(識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一旦) 상술(上述)한 6 종(種) 증상(症狀)이 출현(出現)할 경우 속히 병원을 방문하여 병인(病因)을 조사하는 것이 현명하다.
2017년 10월 26일 목요일
심근경색(心筋梗塞)과 뇌경색(腦梗塞)의 발병률을 강저시켜 주는 2 분 체조 :
심근경색(心筋梗塞)과 뇌경색(腦梗塞)의 발병률을 강저시켜 주는 2 분 체조 :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심근경색(心筋梗塞)과 뇌경색(腦梗塞)의 발병률을 강저시켜 주는 2 분 체조를 소개했다.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마음을 태우는 심정(心情)은 대개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하는 증상(症狀)들이다. 스트레스는 비만을 조성하고 면역력을 저하시켜 주며 심근경색(心筋梗塞)과 뇌출혈(腦出血)과 뇌경색(腦梗塞) 등 치명적(致命的)인 질병(疾病)을 유발시킨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방법은 많이있다. 과학적(科學的)으로 실증(實證)된 방식(方式)도 있다.
스트레스 홀몬이 분비(分泌)될 경우 인체의 면역력(免疫力)은 하강(下降) 되며 암(癌)에 걸릴 확률이 증가(增加)된다.
현대인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크고 작은 도전(挑戰)에 직면하게 된다. 또 현대사회는 정보화 사회이므로 24 시간 각(各) 방면(方面)의 정보침략(情報侵略)과 정보교류(情報交流)의 스트레스 사회 속에서 생활한다.
일본(日本) 순천당대학교(順天堂大學校) 소림홍행(小林弘幸) 교수(教授)의 다년간 스트레스 연구에 의하면 공구감(恐懼感)과 불안감(不安感)이 인체내로 침습해 올 경우 대뇌(大腦) 속의 편도체(扁桃體 : Amygdala)가 직접 반응(反應)하여 스트레스 홀몬인 코르티솔을 분비(分泌)하므로 인하여 심도(心跳)變가 빨라지고 혈류량(血流量)이 감소(減少)되며 혈액(血液)은 말초혈관(末梢血管) 내로 집중된다고 한다. 편도체(扁桃體 : Amygdala)는 대뇌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인데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日本) 명치대학교(明治大學校) 법률학과(法律學科) 호리타슈고(ほりた しゅうご) 교수(教授)가 출판(出版)한 서적(書籍) 《科学的に元気になる方法集めました》(번역:원기(元氣)를 회복(恢復)시키는 과학적(科學的)인 방식(方式)의 총정리 )에 보면 38 종(種)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다음과 같은 과학실증(科學實證) 연구(研究) 자료가 5 가지 소개(介紹)되어 있다.
1.수포온수(手泡溫水) : 매일 족욕(足浴)을 하며 동시에 수포온수(泡手溫水)를 해주면 일거양득이다. 섭씨 40도(度)의 온수(溫水) 속에 두 손을 10분(分) 동안 수포(手泡)해 준다. 온열감(溫熱感)이 수지(手指)에 생기면 자율신경(自律神經) 중 부교감신경(副交感神經)의 활동이 증가되므로 신체가 이완된다.
일본(日本) 자율신경(自律神經) 권위자(權威者) 오바야시 히로유키(小林弘幸 : おばやし ひろゆき)는 "남성(男性)은 30세(歲) 이후、 여성(女性)은 40세(歲) 이후 부터 부교감신경(副交感神經)의 활동(活動)은 급속도(急速度)로 하강(下降)하므로 평상시 교감신경(交感神經) 우위(優位)의 상태(狀態)에 처해있기 때문에 신체는 긴장(緊張)되어 있고 진분(振奮)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그결과 하루 종일 초려(焦慮)와 불안(不安)이 조성되고 혈액순환(血液循環)이 악화(惡化) 상태이며 면역력(免疫力)은 저하(低下)되어 있고 수면(睡眠)에 영향을 미치므로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고 설명했다.
2. 5 가지 좋은 일을 해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UC)연구팀은 5 가지 소소(小小)한 선사(善事)를 베풀 경우 엔도르핀(Endorphin, Endogeneous Morphine)이 분비되므로 인하여 행복감(幸福感)을 높혀준다고 발표했다. 예를들면 쓰레기 줍기와 감사편지 쓰기와 좌석양보와 길 안내와 헌혈(獻血) 등등 이다. 또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은 매주 날짜를 정하여 5 가지 작은 호사(好事)를 지속적(持續的)으로 6주(週) 동안 실행(實行)할 경우 행복감(幸福感)이 증가된다고 발표했다.
3. 허리를 곧게펴는 동작 :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실험(實驗)에 참가한 사람들을 A 조와 B 조로 나누고 A 조에게는 허리를 곧게펴는 동작(動作)을 2 분(分) 동안 유지하게 하고 B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허리를 굽히는 동작을 2 분 동안 유지하게 하였다. 실험결과 허리를 곧게펴는 동작을 실행한 A 그룹의 사람들의 스트레스 홀몬 코르티솔의 분비량이 25%감소되었으며 허리를 굽히는 동작을 실행한 B 그룹의 사람들의 코르티솔(cortisol)분비량은 15% 증가되었다. 이 실험으로 허리를 곧게 펴는 동작은 스트레스를 감저시켜 줌을 알게되었다.
또 허리를 곧게 펴는 동작은 대뇌(大腦)와 신체(身體)에 큰 영향을 미쳐 적극적(積極的)인 태도(態度)를 증가시켜 줌과 동시에 자신감(自信感)을증강(增強)시켜 준다.
4. 3 분 동안 발매(發呆 : 멍한) 상태 유지하기 :
초려(焦慮)와 불안감 때문에 직장내의 일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미미한 발매(發呆) 상태를 유지하면 불량감정이 해소된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주의력(注意力) 집중(集中) 상태(狀態)에 비하여 발매시(發呆時) 대뇌(大腦)는 20 배(倍) 이상 활약한다고 발표했다.
사고(思考)가 곤란(困難)할 경우 대뇌(大腦) 전두엽(前頭葉 : preFrontal Lobe)등 부위(部位)가 일을 하고 기타(其他) 대뇌부위(大腦部位)의 효능(效能)은 강저(降低)되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경우 일부러 발매(發呆) 상태를 만들어 주면 대뇌(大腦)의 기타 부위가 활약(活躍)하기 시작하므로 인하여 각양각식(各樣各式)의 기억(記憶)과 정보(情報)가 용이하게 정리(整理)된다. 그러므로 근무 중 잠깐 시간을 내어 건물의 창(窗)밖의 풍경을 3 분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근무효률(勤務效率)이 증가된다.
5. 행동(行動)의 변화 :
근무에 흥취가 없고 인생이 무료할 때 스트레스가 크다는 증거이다. 대뇌(大腦)에서 도파민이 분비될 경우 스트레스는 경감된다.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小說家)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むらかみ はるき) : 1949년 1월 12일 ~ )는 소설을 쓰다가 내용(內容)에 혼란이 생기므로 인하여 소설을 계속 쓸 수 없을 때 서실(書室) 내에 4 시간 내지 5 시간을 조용히 앉아있는 습관이 있는데 그후 모든 스트레스가 완해된다고 한다. 행동의 변화는 대뇌를 활성화시켜 준다.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E」자(字)발음 + 5 분(分) 동안 머리쳐들기 :
「E」자(字)발음 + 5 분(分) 동안 머리쳐들기 :
이 동작은 폐염(肺炎)의 발병률을 강저(降低)시켜줌과 동시에 예방해 주고 치료해 준다. 사람은 연령(年齡)이 증장(增長)함에 따라 체력(體力)이 종전과 다름을 인식하게 된다, 밥 입맛도 줄고 음식물 저작(咀嚼)하기도 힘들며 사래가 잘 들리고 인후(咽喉) 주위의 근력(筋力)도 점차 노화(老化)되고 쇠퇴(衰退)된다. 일본(日本)의 전국서점(全國書店)에서 「가정의학(家庭醫學)」계통의 베스트셀러는《肺炎がいやなら、のどを鍛えなさい(번역:폐염(肺炎)에 걸리지 않으려면、인후(咽喉)를 단련(鍛鍊)해라.》인데 저작자(著作者)는 10,000 명 이상(以上)의 환자들을 치료(治療)한 명의(名醫) 니시야마코이치로(西山耕一郎: にしやま こういちろう) 의사(醫師)이다,
니시야마코이치로(にしやま こういちろう)는 40 세(歲) 부터 인후가 퇴화(退化)되기 시작하여 음식물을 삼킬 때 자주 사래가 들리며 해수(咳嗽)가 심한데,이는 인후 주위의 근육 퇴화(退化)의 경보신호(警報信號)라고 말했으며 간단(簡單)한 단련(鍛鍊) 방법으로 인후의 근육을 강건하게 해주므로써 10년 수명(壽命)이 연장(延長)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년인(老年人)들이 폐염(肺炎)으로 인한 사망률(死亡率)은 높은데 인후 근력(筋力)의 단련으로 예방(預防)할 수 있다.
일본호흡계통학회(日本呼吸系統學會)에서 " 폐염(肺炎)에 이환(罹患)된 노년인(老年人)들의 70% 이상은 흡입성폐염(吸入性肺炎)이며 반복감염발작(反覆感染發作)이 용이하게 유발된다. 치료(治療)가 곤란(困難)하므로 고령환자(高齡患者)들의 사망률(死亡率)이 높은 원인(原因)이다." 고 발표했다. 서산(西山) 의사(醫師)는 흡입성폐염(吸入性肺炎)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대책(對策)은 인후근력이 약화(弱化)되기 전(前)에 인후와 폐부(肺部)와 전신(全身)의 근력(筋力)을 증강시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폐염(肺炎)은 약물(藥物)을 사용하여 치료 가능한데 항약성(抗藥性)의 위험성(危險性)이 있다. 그러므로 평상시 인두와 후두(喉頭) 주위(周圍)의 근육을 단련(鍛鍊)시켜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후 5분(分) 단련법(鍛鍊法) : 일본(日本) 동경(東京) 치과대학 호원현(戶原玄) 부교수(副教授)는 "기관(氣管)의 상방(上方)에 자리잡고 있는 후두개(喉頭蓋 : epiglottis)는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갈 때 음식물의 일부가 기도로 넘어가지 못하게 즉시 기관(氣管)을 막는다. 그러나 연령(年齡)이 증장(增長)함에 따라 후두개의 근력(筋力)이 쇠퇴(衰退)되므로 후두개가 기도와 식도를 닫았다가 열어주는 속도가 지완(遲緩)되거나 미약(微弱)해 짐으로 인하여 음식물(飮食物)이 용이(容易)하게 기관(氣管)으로 진입 될 경우 해수(咳嗽)는 물론 사래가 들린다. 음식물의 일부나 타액(唾液)이 기관(氣管) 속으로 진입될 경우에 폐(肺) 속의 잡균(雜菌)들이 증생(增生)한다. 그결과 흡입성폐염(吸入性肺炎)이 유발된다."고 설명했다. 니시야마코이치로(にしやま こういちろう) 의사(醫師)와 일본(日本) 미산치과병원 (米山齒科病院) 미산무의(米山武義) 원장(院長)은 몇 가지 인후근력(咽喉筋力) 훈련법(訓練法)을 제창하였다. 매일 5분(分) 씩 실행하는 간단(簡單)한 단련(鍛鍊)이다. 허약(虛弱한 환자(患者)들은 활력(活力)이 증진되고 10년 수명(壽命)이 연장(延長)된다.
《인후체조(咽喉體操) 단련법》
1. E 자(字) 체조(體操): 영어의 「E」자(字)를 발음(發音)할 때의 입모양을 하고 동시에「E──」라고 길게 발음한다. 반복(反覆)하여 5 차레 내지 10 차례 실시한다.
2. 대두체조(抬頭體操) : 베개 없이 마루 바닥에 천정을 바라보고 들어누운 자세에서 머리만 위로 높히 쳐들어 각첨(腳尖 : 발끝)을 30 초 내지 60 초(秒) 동안 쳐다보고 있다. 5 차례 내지 10 차례 반복 실시해 준다.
90세(歲) 이상의 일본(日本)의 장수촌민(長壽村民)들은 40세(歲)의 생리상태(生理狀態)를 보유(保有)하고 있다.
90세(歲) 이상의 일본(日本)의 장수촌민(長壽村民)들은 40세(歲)의 생리상태(生理狀態)를 보유(保有)하고 있다.
인체(人體) 내에서 분비되는 허다한 홀몬은 생리상태(生理狀態)와 심리상태(心理狀態)를 조절해 준다. 「회춘(回春) 홀몬」이라고 칭하는 DHEA 는 뼈를 보호해 주는 공능과 혈관(血管)을 보호해 주는 등 다종(多種) 공능(功能)이 있으며 현대 의학계(醫學界)에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日本)의 경도(京都) 북부(北部)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일개(一個) 소진(小鎮)에 거주하는 고령자(高齡者)들의 DHEA 분비량(分泌量)은 전일본(全日本)에서 가장 높으므로 과학자들이 주목(注目)하고 있다.
이 지역 고령자들의 DHEA 분비량은 기타 지역의 고령자들의 분비량의 3 배(倍)이다. 일본(日本) 경도부(京都府) 북부(北部)의 경단후시(京丹後市)에 거주하는 75명의 백세노인(百歲老人)들의 DHEA 의 분비량은 일본(日本) 평균치(平均値)의 3배(倍)로 나타났다. 기무라지로에몬(木村 次郎右衛門(きむら じろうえもん) : 1897년 4월 19일 - 2013년 6월 12일)은 116세 54일 동안 생존하다가 노쇠(老衰)와 폐염(肺炎)으로 인하여 사망하므로써 세계 최장수 남성자 명단에 올랐다. 기무라지로에몬(木村 次郎右衛門 : きむら じろうえもん)은 인류사상(人類史上) 남성(男性)으로써 116세(歳)의 장수기록을 달성(達成)한 사람이며 직업은 우편국(郵便局) 직원(職員)이었다.
DHEA 의 분비량(分泌量)은 20세(歲) 때 가장높다. 경도부립의과대학(京都府立醫科大學)의 심혈관(心血管)과 신장내과(腎臟內科) 전문의사 장성명(場聖明) 교수(教授)는 대규모(大規模) 조사(調查)에 착수하였다.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고령자(高齡者)들의 체내에서 분비되는 DHEA 의 수치는 기타 지역의 고령자들의 분비량의 수배(數倍)에 달하며 이 지역의 92 세(歲) 여성(女性)들의 DHEA 수치(數值)는 기타 지역의 40세(歲) 여성들의 DHEA 수치와 상당(相當)하다고 발표되었다. 일본(日本) 복강대학(福岡大學) 의학부(醫學部) 내분비당뇨과(內分泌糖尿病科)의 DHEA 연구(研究) 권위자(權威者) 유뢰민언(柳瀨敏彥) 교수(教授)는 "DHEA 는 부신(副腎 : adrenal glands)에서 분비되는 일종(一種)의 스테로이드(steroid)홀몬인데 청춘기(青春期) 이후에 대량(大量) 분비(分泌)되며 20세(歲) 때 최고봉에 달하며 매(每) 10년 마다 29% 의 속도9速度)로 감소(減少)된다." 고 설명했다. DHEA 의 하강속도(下降速度)가 더딘 사람들은 장수(長壽)한다고 과학자들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다음은 DHEA 의 주요(主要) 공능(功能)이다. :
1. 콜레스테롤의 체내(體內) 퇴적(堆積)을 방지해 준다. DHEA 는 콜레스테롤의 원료(原料)이며 DHEA 가 대량(大量) 분비(分泌)될 경우 혈지량(血脂量)을 강저(降低)시켜 주므로 인하여 혈관(血管)의 건강(健康)을 유지해 준다.
2. 골질(骨質)의 유실(流失)을 방지해 주므로 골밀도(骨密度)를 증가시켜 준다.
유뢰(柳瀨) 교수(教授)는 60세(歲) 이상(以上)의 고령자(高齡者)들에게 지속적(持續的)으로 DHEA 약물(藥物)을 투여(投與)하였다. 그결과 수시자(受試者)들의 골밀도(骨密度)가 현저(顯著)하게 상승됨을 발견하였다. 장교수(場教授)는스스로 장수촌을 방문하여 고령자(高齡者)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결과 장수촌 노인들의 생활습관(生活習慣) 중 DHEA 대량분비(大量分泌)를 촉진시켜 주는 다음과 같은 양대(兩大) 공동점(共同點)을 발견하였다. :
습관(習慣) 1: 취미생활(趣味生活) :
장교수(場教授)는 부신(副腎 : adrenal glands)은 스트레스에 약한 일개(一個) 내장기관(內臟器官)인며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경우 체내(體內)에서는 대량(大量)의 스트레스 홀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대량 분비되는데 상대적으로 DHEA 의 분비량(分泌量) 은 대폭 감소된다고 말했다. 장수촌 지역 노인들은 젊었을 때 부터 직장 외(外)에 허다한 시간(時間)들을 취미생활에 투여한다. 예를들면 수공예(手工藝)와 낚시질과 회화(繪畫)나 서예(書藝)나 바둑과 장기나 포커게임 등을 즐기는데 이와같은 생활방식(生活方式)은 부신(副腎 : adrenal glands)에 부담(負擔)을 적게주며 DHEA 를 지속적(持續的)으로 분비(分泌)시켜 준다.
습관(習慣) 2:대량(大量)의 비타민 C 섭취 :
당지(當地)의 명품「경단후산수사(京丹後散壽司)」는 풍부한 채소를 사용하여 만든다. 예를들면 토마토와 브로콜리와 상추와 오이 등을 스시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집안에 있는 채소밭에서 생산된 유기농 채소들인며 비타민 C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이다. 유뢰(柳瀨) 교수(教授)는 인체내의 좌우 콩팥 위에 각각 한개씩 있는 3각형의 작은 내분비선인 부신(副腎 : adrenal glands, suprarenal glands) 속에 최고농도(最高濃度)의 비타민 C 가 함유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평상시 섭취하는 음식 중 비타민 C 가 대량(大量) 함유되어있을 경우 부신의 피로(疲勞)를 방지(防止)해 주고 부신기능(副腎機能)의 쇠퇴(衰退)를 방지해 주므로 인하여 DHEA 의 분비량이 증가된다. 장교수(場教授)는 장수건강(長壽健康)을 원하는 사람들은 비타민 C 가 함유되어 있는 식물(食物)을 다량 섭취해 주고 여가를 선용하여 취미생활을 영위할 경우 부신이 건강해져서 회춘(回春) 홀몬이 대량 분비되기 때문에 젊어진다고 설명했다.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복창문제(腹脹問題)를 해결해 주는 3 종(種) 식물(食物) :
복창문제(腹脹問題)를 해결해 주는 3 종(種) 식물(食物) :
식사를 하며 말을 할 경우 또는 코가 막혀서 입으로 숨을 쉴 경우 공기가 위속으로 진입된다. 공기(空氣)의 주요성분(主要成分)은 산소와 질소이며 산소는 소장(小腸)을 통과하자 마자 체내로 흡수되지만 질소는 대장(大腸) 속으로 진입(進入)되어 창기(脹氣)를 유발시킨다. 다음은 복창문제(腹脹問題)를 해결해 주는 3 종(種) 식물(食物)이다 :
1. 셀러리 :
영양학가(營養學家) Nikki Ostrower 는 "셀러리 속에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의 함량은(蛋白質)의 함량(含量)은 일반 채소의 1 배(倍)이고 철(鐵)의 함량(含量)은 토마토의 20 배(倍) 좌우(左右)된다. 비타민 B 의 함량(含量)도 높고 칼슘과 인(磷)과 철(鐵) 등 광물질(礦物質) 원소(元素)의 함량(含量)도 일반(一般) 녹색채소(綠色菜蔬) 보다 높다. 셀러리는 이뇨제(利尿劑)이며 사약(瀉藥)이고 간장(肝臟)의 충혈(充血)을 완해(緩解)시켜 주며 복창(腹脹)을 해결해 주는 공효(功效)가 있다." 고 설명했다.
2. 당근 :
당근 속에 흡수성(吸水性)이 강(強)한 식물섬유(植物纖維)가 대량 함유되어 있으므로 인하여 장도(腸道)의 연동(蠕動) 운동을 가강(加強)시켜 주고, 변비(便秘)를 예방해 준다. 동시에 혈액(血液)을 정화(淨化)시켜 주고 소화불량(消化不良)과 복창문제(腹脹問題)를 치료해 주며 간장(肝臟)의 잡질(雜質)을 청소해 주는 효능이 있다. 셀러리는 오이와 마찬가지로 이뇨제(利尿劑)이며 복창문제(腹脹問題)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셀러리와 당근과 오이 즙(汁)을 매일 1 컵 내지 2 컵 음용할 경우 위기(胃氣)가 신속하게 개선된다고 Ostrower 는 설명했다. .
3. 열차(熱茶) :
영양학가(營養學家) Paula Simpson 는 식사 후에 한 컵의 열차(熱茶), 예를들면 박하차(薄荷茶)나 생강차나 민들레차를 음용 할 경우 소화(消化)를 촉진시켜 주므로 복창(腹脹)을 감소(減少)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또 박하(薄荷) 속에 함유되어 있는 박하뇌(薄荷腦 : menthol) 성분(成分)은 해경(解痙) 작용(作用)이 있으며 초려(焦慮)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준다.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1. 쥐띄(鼠)ᅟ남성(男性) :
1. 쥐띄(鼠)ᅟ남성(男性) :
쥐띄 남성들은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며 개성(個性)이 있다. 쥐띄(鼠) 남성들의 마음 속에는 현모양처(賢母良妻) 유형(類型)의 여성(女生)을 제 일 순위로 꼽는다. 쥐띄 남성들은 반려자(伴侶者)의 가정배경(家庭背景)과 착의용모(着衣容貌)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여성이 부지런하며 알뜰하게 집안 살림을 잘 꾸려가는 것을 좋아한다. 동시에 사상과 감정이 서로 맞아야 함은 물론 서로 사상(思想)을 교류하되 원의(願意)가 서로 일치하기를 바란다.
소띄 여인(女人) :
소띄 여인(女人) :
천성적(天性的)으로 선량(善良)한 품성을 갖고 태어났다. 소띄 여성들의 용모는 대부분 대단히 예쁘게 생겼다. 가정생활(家庭生活) 중(中),소띄 여인(女人)들은 남편을 비교적 자상하게 돌보고 살뜰히 보살펴 준다. 소띄 여성들은 윗 사람이나 아랫 사람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 천성적(天性的)으로 선량(善良)하며 선사(善事)를 베풀어 준다. 그러므로 소띄 여성과 결혼하는 남성들은 복(福)이 있다.
닭띄(鷄) 여인(女人) :
닭띄(鷄) 여인(女人) :
닭띄 여성은 행동거지가 단정하다. 천생적(天生的)으로 우아(優雅)한 화신(化身)이다. 개성(個性)이 있고 부지런하며 알뜰하게 집안 살림을 잘 꾸려나간다. 결혼 후 남편에게 충성스러운 마음이 굳어 변하지 않는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하여도 난관(難關)을 함께 잘 헤쳐나간다. 남편과 동고동락하는 역량이 강하고 자녀(子女) 교육열(教育鴷)이 강하여 후대(後代) 배양(培養)에 비상하게 우수(優秀)하며 출중(出眾)하다. 닭띄 여성들은 마음씨가 좋아서 닭띄 여성과 결혼하는 남성은 복(福)이 있다.
뱀띄 여자(女子) :
뱀띄 여자(女子) :
외모(外貌)는 단정하고 성격(性格)은 비교적 침온(沉穩)하다. 언제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며 매사에 두려움이 없다. 비교적 활기가 없고 저조한 편이다. 뱀띄 여자(女子)들은 결혼 후 남편을 비교적 자상하게 돌보고 살뜰히 보살펴 준다. 외모(外貌)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뱀띄 여자(女子)의 심령(心靈)은 아름답고 슬기롭고 영리하다. 특별히 노인(老人)들에게 효순(孝順)하며 자녀(子女)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하므로 남성들의 이상적(理想的)인 결혼(結)婚) 대상이다. 뱀띄 여성들은 결혼 후 현처(賢妻)이든가 양모(良母)이다.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대장암과 히카마 :
대장암과 히카마 :
히카마(jicama) 속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이눌린(inulin) 성분은 대장암에 걸릴 확률을 강저시켜 주며 대장암 세포의 전이를 방지해 주고 대장암 세포의 생장을 억제시켜 준다고 영국영양학저널(British Journal of Nutrition)에 발표되어 있다. 다음은 이눌린(Inulin)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식물들이다. : 아스파라거스, 마늘, 리크, 돼지감자, 양파, 히카마.
2017년 10월 11일 수요일
황반부 병변은 성인 제 3대 실명(失明)의 원인이다.
황반부 병변은 성인 제 3대 실명(失明)의 원인이다.
3C 란? (1). 컴퓨터(Computer)(2). 통신(Communication,핸드폰)(3) 가전제품(소비자전자: Consumer Electronics)의 3 종(三種) 산품(產品)의 대명사이다. 장시간(長時間) 핸드폰을 사용하고 컴퓨터를 사용할 경우 적당(適當)한 휴식(休息)이 필요한데 눈의 극한상황(極限狀況) 까지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황반부병변(黃斑部病變)은 시력(視力)의 침묵 킬러(Killer)이다. 2010 년(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황반부병변(黃斑部病變)과 백내장(白內障)과 청광안(青光眼 : 녹내장)은 성년인(成年人)들의 3대 실명원인(失明原因)이라고 발표했다. 한쪽 눈 속에 흑점(黑點)이 출현되거나 찌그러지거나 비뚤어진 선(線)이 나타 날 경우 황반부병변(黃斑部病變)을 의심해 보는 것이 현명하다.
●주의(注意)를 기울여야 할 사람들 :
황반부위(黃斑部位)는 시망막(視網膜)의 중앙(中央)에 자리잡고 있는데 직경이 5.5mm 정도되는 타원형이다. 황반에는 시세포와 시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시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시망막(視網膜)의 일부로써 황색소(黃色素)를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황반부(黃斑部)라는 이름을 얻었다. 안과의사(眼科醫師)들은 황반부병변(黃斑部病變)과 나이와 계통성질병(系統性疾病)과 고도(高度)의 근시(近視)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노년성(老年性) 황반부(黃斑部) 병변(病變)은 연령(年齡)이 증장(增長)함에 따라 시망막(視網膜) 중앙부위(中央部位)가 퇴화(退化)되어 출현된다. 당뇨병(糖尿病)과 고혈압(高血壓) 등 계통성적 만성질병환자들은 황반부병변(黃斑部病變)이 용이하게 출현된다. 그외 고도(高度)의 근시(近視)가 있는 사람들도 황반부병변 이환률(罹患率)이 증가한다. 그러므로 고도(高度)의 근시인(近視人)들의 정기적(定期的) 안과검사(眼科檢查)는 매우 중요하다.
평상시 눈을 보양(保養)해 주는 5대(五大) 방법(方法) :
1、눈을 사용하는 습관(習慣) 조정(調整) ;
장시간(長時間) 근거리(近距離) 사용시 섬모근(ciliary muscle)은 지속적(持續的)으로 긴장상태에 처해 있으며 이완되지 않기 때문에 경련(痙攣)이 용이하게 조성된다. 그 결과 근시(近視)의 도수(度數)가 증가한다. 그러므로 30분(分) 동안 컴퓨터를 사용한 후 5 분(分) 동안 휴식을 취해 주어야 한다. 오야족(熬夜族)들과 장시간 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평상시 핸드폰과 컴퓨터의 광도(光度)를 실내광선(室內光線)과 일치시켜 두는 것이 눈에 유리하다. 광도가 높을 경우 눈을 자극시켜 주므로 눈이 상한다. 섬모근(ciliary muscle)이란? 모양체라고도 불리며 수정체를 에워싸는 제방(堤坊) 모양으로 원형(圓形) 구조를 이루고 있다.
2、자외선(紫外線與)과 남광(藍光 : BluRay)의 상해(傷害)를 피해야 한다.
자외선(紫外線)이 강렬시(強烈時) 썬글라스를 착용해야 되며 실내(室內)에서 3C 산품(產品)을 사용시 항남광안경(抗藍光眼鏡)을 착용하므로써 눈(眼睛)의 상해(傷害)를 피해야 한다. 30 분(分) 동안 3c 제품을 사용하고 나서 10 차례 눈을 깜박거려 주면, 누수(淚水)의 증발(蒸發)을 예방(預防)해 준다.
3、정기(定期) 시력검사(視力檢查) :
황반부(黃斑部) 병변(病變) 초기(初期)에 증상(症狀)이 없다. 그러므로 정기적(定期的)으로 시력검사와 시망막검사(視網膜檢查)를 하는 것은 필수적(必須的)이다. 특별히 고도(高度)의 근시자(近視者)들은 반년(半年) 마다 일차(一次) 동공확장검사(散曈檢查)를 해야한다.
4、금연 :
유행병학자(流行病學者)들의 조사 연구 결과 흡연인들의 눈병 발병률은 비흡연인들 보다 2 배 내지 5 배(倍)가 더 높다고 발표되었다.
5、눈에 유리한 영양소(營養素) 섭취 :
옥수수와 호박과 달걀과 시금치와 브로컬리와 당근과 포도와 노랑색 피망과 붉은색 고추와 감(柿)과 오렌지와 모과(木瓜)와 망고 등 엽황소(葉黃素 : 루테인)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식물을 섭취해 주어야 한다.
조기(早期) 황반퇴화(黃斑退化)와 병변(病變)은 시력(視力)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다르다. 그러나 시야(視野)에 흑영(黑影)이나 직선이 비뚤어지게 보이는 증상(症狀)이 출현(出現)할 경우 전문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눈을 사용하는 유익한 습관을 드려야 함은 물론 정기적으로 시력검사(視力檢查)를 해야하고 자외선(紫外線)과 남광(藍光 : 푸른 광선)을 피하고 엽황소(葉黃素)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식물(食物)을 잊지말고 섭취해 주어야 한다.
2017년 10월 10일 화요일
저작근(咀嚼筋) 안마(按摩)는 두통(頭痛)과 이명(耳鳴)과 수겸(瘦臉)을 개선(改善)시켜 준다.:
저작근(咀嚼筋) 안마(按摩)는 두통(頭痛)과 이명(耳鳴)과 수겸(瘦臉)을 개선(改善)시켜 준다.:
저작근(咀嚼筋)은 음식물을 씹는 근육(muscle of chewing/ muscle of mastication)이라고 칭하며
(1). 교근(咬筋 : masseter),
(2). 측두근(側頭筋 : temporalis),
(3). 내측익돌근(內側翼突筋 : medial pterygoid),
(4). 외측익돌근(lateral pterygoid)의 4 개의 근육으로 조성되어 있다.
어느 40세(歲)의 일본(日本) 여성(女性)은 갑자기 오른쪽 귀에 동통감(疼痛感)이 시작되더니 청력이 하강되어 사람들의 말소리를 잘 듣지 못하였다. 최후로 입을 벌리기 조차 힘들었다. 그녀는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를 찾아가서 진단을 받았다. 검사(檢查)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 의사는 그녀를 치과의사에게 보냈다. 치과의사는 그녀에게 저작근안마(咀嚼筋按摩)를 받게하였다. 저작근안마 치료를 받는 도중에 귀의 동통(疼痛)은 점점 소실(消失)되었다. 그녀는 치과의사가 자기의 충치를 치료하고 이빨을 교정(矯正)할 줄 믿었었다. 현재 일본(日本)의 치과병원(齒科病院)에서는 일종(一種)의 특별한 요정(療程)──「저작근안마(咀嚼筋按摩)」가 유행하고 있다. 저작근(咀嚼筋)은 인류(人類)가 음식물을 저작(咀嚼)할 때 사용하는 근육이다. 그러나 현대인(現代人)들의 음식(飲食)은 부드러워서 저작근(咀嚼肌)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작근의 강경(僵硬)과 쇠퇴(衰退)로 인하여 얼굴 부위의 혈액순환(血液循環)이 불량(不良)해 짐과 동시에 근력(筋力)이 저하(低下)되므로 인하여 각종(各種) 질병을 유발시켜 준다. 저작근(咀嚼筋) 안마(按摩)의 제 일목적은 「저작운동(咀嚼運動)을 정상(正常)으로 회복(恢復)시켜 주는 것이다. 마아(磨牙)와 아관긴교(牙關緊咬 : Clenching)등 문제(問題)를 해결해 주고 악관절증(顎關節症)으로 인한 동통(疼痛)을 경감(減輕)시켜 주며 미용효과도 있고 타액(唾液)의 분비량(分泌量)을 증가시켜 주므로 구건(口乾)을 개선시켜 준다. 그 뿐만 아니라 두통과 훈현(暈眩)과 이명(耳鳴)도 치료해 준다.
저작(咀嚼)은 4 개의 근육(筋肉)의 협력(協力)으로 완성(完成)된다. 일단(一旦) 저작근이 강경(僵硬)되고 위축(萎縮)될 경우 각종(各種) 신체(身體)의 부적(不適)을 조성(造成)한다. 측두근(側頭筋)이 강경(僵硬)될 경우 두통(頭痛)과 안정피로(眼睛疲勞)가 조성(造成)되며 입을 벌리지 못한다. 측두근(側頭筋)이 이완될 경우 3차신경(三叉神經)의 긴장(緊張)이 완화(緩和)되며 안정(眼睛)과 두부(頭部)가 청상(清爽)해 진다.
교근(咬筋 : masseter)의 긴장상태(緊張狀態)가 지속될 경우 악관절증후군(顎關節症候群)이 발생되며 교근(咬筋)이 이완될 경우 용이하게 입을 벌릴 수 있으며 악관절증후군(顎關節症候群)을 개선시키는 효과(效果)가 있다. 교근(咬筋)의 강경(僵硬)을 소제해 주는 안마는 저작곤란(咀嚼困難)과 수겸(瘦臉)도 개선시켜 줌과 동시에 피로(疲勞)를 소제(消除)해 준다.
일본(日本)의 정체사(整體師 : bodywork therapist) 무로하라 시즈코 : むろはら しずこ)는 골격(骨骼) 교정요법(矯正的療法) 전문가인데 근육(筋肉)을 이완시켜 주므로써 뼈를 정상 위치로 복원(復原)시켜 주는 정골사(整骨師)이다. 현재까지 5500 명의 겸부(臉部)의 문제와 두통(頭痛)의 번뇌(煩惱)를 저작근 안마를 시술하여 해결해 주었다.
다음은 《교근(咬筋 : masseter) 이완법》의 내용의 일 부이다.
STEP 1. : 두 손으로 귓밥을 잡고 뒷쪽으로 원을 그리며 돌려준다. 귀는 교근과 연접되어 있으므로 이 동작은 교근을 이완시켜 줌과 동시에 단련시켜 준다.
STEP 2.: 두 손바닥을 양쪽 볼에 대고 숨을 크게 내쉰다. 토기시(吐氣時) 긴장되어 있던 교근이 이완된다.
STEP 3.: 10 분 동안 왼쪽 손바닥을 오른쪽 뺨에 대고 문질러 줌과 동시에 오른쪽 팔을 흔들어 준다.
STEP 4.: 저작근 중 태양혈(太陽穴) 주위에 있는 측두근(側頭筋)은 아래턱을 위로 올려주는 힘이 가장 강하다. 엄지 손가락의 지복(指腹)을 태양혈에 대고 안마해 준다.
손의 저림과 통증을 개선(改善)시켜 주는 자가요법(自家療法) :
손의 저림과 통증을 개선(改善)시켜 주는 자가요법(自家療法) :
장시간(長時間) 컴퓨터 사용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수근관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데 손의 마비를 조성한다. 수근관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은 대무지(大拇指)와 식지(食指)와 중지(中指)와 무명지(無名指)를 마비시킨다. 또 척골신경포착증후군(Ulnar nerve entrapment : cubital tunnel syndrome)은 소지(小指)와 무명지(無名指)를 마비시킴과 동시에 통증도 수반한다. 손과 팔에 있는 3 개의 주요신경(主要神經) 중 하나인 척신경(尺神經 : Ulnar nerve)은 목으로 부터 시작하여 팔꿈치 부근(附近)을 통과하며 팔꿈치의 내측(內側)의 툭 튀어나온 돌출골두(突出骨頭)의 하방(下方)을 통과한다. 이 부위에는 소량(少量)의 연조직(軟組織)으로 구성(構成)된 협착(狹窄)한 통로(通路)가 있는데 이를 주관(肘管)터널 또는 가이언터널이라고 칭한다. 가이언터널을 통과한「척신경(尺神經 : Ulnar nerve)」은 소지쪽 손바닥에 분포한다. 척신경(尺神經)의 위치(位置)는 매우 얕아서 팔꿈치 부근(附近)에서 용이하게 압박(壓迫)과 자극(刺激)을 받는다. 척신경이 압박을 받을 경우 소지(小指)와 반쪽 무명지(無名指)에 감각(感覺) 이상이 출현된다.
1. 척신경(尺神經) 압박(壓迫)의 원인 :
◆팔꿈치를 만곡(彎曲)할 경우 팔꿈치의 내측에 툭 튀어나온 뼈 부근을 통과하는 척신경(尺神經)은 늘어난다. 그러므로 팔꿈치를 구부리고 있는 시간이 길거나 반복해서 팔꿈치를 구부렸다 폇다 할 경우 동통(疼痛) 증상(症狀)이 출현한다.
◆장시간(長時間) 팔꿈치를 짚고 있을 경우 척신경에 압박(壓迫)을조성(造成)한다.
◆팔꿈치 부근에 액체(液體)가 퇴적(堆積)될 경우 종창(腫脹)이 발생되므로 척신경을 압박(壓迫)한다.
◆팔꿈치의 내측(內側)을 모서리에 부딪힐 경우 동통(疼痛)과 산마감(痠麻感)이 발생되며 동시에 소지(小指)와 무명지(無名指)에 마목(麻木)이 출현된다.
2. 척신경(尺神經)이 압박(壓迫)을 받을 경우 나타나는 증상(症狀) :
◆자동차 운전을 할 때나 핸드폰을 사용할 때 처럼 장시간 팔꿈치를 구부리면 무명지와 소지에 마비가 오고 통증이 발생된다. 심한 경우 수면중에 수지(手指)의 마목(麻木)으로 인하여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팔꿈치 만곡시(彎曲時) 무명지와 소지에 무감각 증상이 출현된다.
◆악력(握力)이 감약(減弱)되고 수지(手指)의 협조(協調)가 곤란(困難)해 진다. 그 결과 타자(打字)나 악기樂器)연주(演奏)가 불편해 진다. 이와같은 증상(症狀)이 빈발할 경우 비교적 엄중(嚴重)한 척신경압박(尺神經壓迫)이다.
◆신경압박(神經壓迫)이 비교적 엄중(嚴重)하거나 장시간(長時間) 지속(持續)할 경우 근육쇠약(muscle wasting)의 문제(問題)가 야기된다. 근육쇠약은 원상태로 역전(逆轉)되기 어려우므로 전문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현명하다.
주의사항 :
1. 장시간(長時間) 팔꿈치를 만곡(彎曲)하는 동작(動作)을 피해야 한다. 장시간(長時間) 컴퓨터를 사용하지 말아야하며 의자(椅子)의 높이가 너무 낮으면 머리를 쳐들어야 하고 팔꿈치를 더 많이 구부려야 한다.
2. 수면 중 팔꿈치를 구부리고 잠을자면 않된다.
3. 서있는 자세에서 두 팔을 앞뒤로 흔들어 주는 운동은 팔꿈치와 팔목의 강경감(僵硬感)을 완해시켜 준다.
4. 두 팔을 앞으로 쭉 펴고 있는 자세에서 손과 손가락만 신체(身體) 방향으로 구부린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젖힌다. 반복 실행해 주며 마지막으로 팔꿈치를 구부려 준다.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독일연구:악력(握力)이 강하면 강할 수록 사망률(死亡率)은 더욱 더 강저된다.
독일연구:악력(握力)이 강하면 강할 수록 사망률(死亡率)은 더욱 더 강저된다.
악력(握力)과 심장병(心臟病)과 중풍(中風)과 관계가 있다고 종전에 과학자들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독일의 과학자들은 악력(握力)과 사망률(死亡率)과 관계가 있다고 증명하였다.
1. 악력(握力)은 사망률(死亡率)에 영향을 미친다.
독일의 과학자들은 교육배경(教育背景)이 다르고、경제수준(經濟水準)이 다른 러시아인과 영국인(英國人)과 덴막인들을 상대로 조사연구하였다. 악력(握力)이 강하면 강할 수록 사망률(死亡率)은 더욱 더 강저된다고 발표했다. 악력(握力)이 1kg 더 강해질 경우 러시아 남성(男性)들은 사망률(死亡率)이 4% 강저되었고、러시아 여성(女性)들은 10% 강저되었다. ;영국(英國)의 남녀(男女)는 2%、3% 각각 강저되었다. 덴막의 남녀(男女)는 6%, 8% 각각 강저(降低)되었다.
플로리다 대학교 연구팀은 종전에 당뇨병(糖尿病) 환자와 고혈압(高血壓) 환자(患者)들의 악력(握力)은 점차 퇴화(退化)된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美國)의 과학자들은 4년(年) 내(內)에 악력(握力)이 5kg 하강(下降)될 경우 사망률(死亡機)은 16% 증가(增加)되었다고 발표했으며 심장병(心臟病)에 걸릴 확률은 7% 증가되었고 뇌중풍(腦中風)에 걸릴 확률은 9% 각각 증가되었다고 발표했다.
•일본(日本) 내과의사(內科醫師)의 혈관회춘술(血管回春術) : 탈발(脫髮)과 백발(白髮) 개선(改善) :
•일본(日本) 내과의사(內科醫師)의 혈관회춘술(血管回春術) : 탈발(脫髮)과 백발(白髮) 개선(改善) :
인체(人體) 내의 혈관(血管)의 90% 는 모세혈관(毛細血管 : capillary)이다. 운동부족(運動不足)과 비만시(肥滿時) 혈관세포(血管細胞)는 노화(老化)되므로 인하여 모세혈관 내의 혈액(血液)의 유통은 완만해 지는데 이와같은 혈관을 「유령혈관(幽靈血管)」이라고 칭한다. 유령은 즉 혈전이며 혈전(血栓)은 은형살수(隱形殺手)라고도 칭한다. 혈관(血管) 속의 유령(幽靈)이란? 혈관(血管)을 폐색하는 혈전이며 일단 혈액(血液)의 유동(流動)이 차단될 경우 순환계통(循環系統)의 탄환(癱瘓)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사망을 초래한다. 현대인들에게 혈전의 출현은 연령(年齡)과 시간(時間)에 상관없이 생명(生命)을 위협한다. 피부(皮膚)에 주름쌀이 형성되고 피부의 색깔이 암침(暗沉)해 질 경우,유령혈관(幽靈血管)이 발생(發生)했다는 증거이다. 또 두피(頭皮)에 백발(白髮)이 출현되고 탈발(脫髮) 현상(現象)이 출현되면 유령혈관이 발생했다는 표시이다. 혈 관기능(血管機能)이 감약(減弱)된 상태에 처해 있을 경우 엄중(嚴重)하며 면역공능(免疫功能) 문란으로 인하여 당뇨병(糖尿病) 발생률과 이암률(罹癌率)을 높혀준다. 일본(日本)의 내과의사(的內科醫師) 아카사와스미요(赤澤純代 : あかさわ すみよ)와 임송언(林松彥)은 환자(患者)의 대다수는 각부혈류불통(腳部血流不通)으로 인한 각부강경(腿部僵硬)으로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과부(踝部 : 복숭아뼈 부위)와 슬개(膝蓋) 부위는 혈액(血液)의 유통(流通)이 가장 완만한 부위이다. 두 명의 의사는 환자들에게 각부(腳部) 정맥안마(靜脈按摩)를 실시하라고 권유한다. 지체(肢體)의 말초(末梢) 부위에 발생한 어혈(瘀血)을 심장(心臟)으로 회류(回流)케 촉진시켜 주므로써 혈관유령화(血管幽靈化)를 피해야 된다고 역설한다.
안마방법(按摩方法):
1. 발가락 끝에서 부터 안마하기 시작하여 발톱 부위 까지 안마해 준다.
2. 각배(腳背 : 발등)으로 부터 소퇴(小腿 : 종아리)의 후측(後側)을 지나 대퇴(大腿)의 후측(後側)을 통과하여 서혜부(鼠蹊部) 까지 가볍게 안마해 준다.
3.신체의 말단인 발에있는 혈액을 심장으로 밀어 올려준다는 느낌으로 안마를 실시해 준다.
4. 소퇴(小腿 : 종아리)의 후측(後側)을 지나 대퇴(大腿)의 후측(後側)을 통과하여 서혜부(鼠蹊部)의 근육(筋肉)을 상하로 여러차례 안마해 준다. 임의사(林醫師)는 “부종(浮腫)也有可能是은 혈관(血管) 이상의 경보(警報) 신호 중 하나이다. 수분(水分)이 요액(尿液)으로 배출(排出)되지 못할 경우 용이하게 인체부종(人體浮腫)이 조성(造成)되며 또 체내(體內)에 염분(鹽分) 과다시(過多時) 수분(水分)의 배출(排出)이 정지(停止)되므로 인하여 부종(浮腫)이 발생되는데 이는 혈관(血管)의 노화(老化)를 의미해 줌과 동시에 고혈압(高血壓)과 동맥경화(動脈硬化)에 걸릴 확률을 증가시켜 준다.” 고 설명했다. 칼슘은 염분을 체외로 배출시켜 주는 물질임과 동시에 소종(消腫)시켜 주는 물질(物質)이다. 적당량의 칼슘을 섭취할 경우 혈압(血壓)이 조정(調整)된다. 황두분(黃豆粉 : 콩가루) 속에 풍부한 칼슘이 함유되어 있다. 매(每) 100g 의 황두 속에 2000mg 의 칼슘이 함유되어 있다. 하루 칼슘 섭취량은 420mg 인데 3 숟갈의 황두분(黃豆粉)에 해당된다. 그러나 신장질병(腎臟疾病)이 있는 사람들은 의사(醫師)와 상담한 후 섭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손의 악력(握力)이 약한 사람들이 뇌중풍(腦中風)에 걸릴 확률은 1.6 배(倍) 높다.
손의 악력(握力)이 약한 사람들이 뇌중풍(腦中風)에 걸릴 확률은 1.6 배(倍) 높다.
병마개를 손으로 돌려서 열기 힘든 사람은 손의 악력(握力)이 비교적 약한 사람이며 심근경색(心筋梗塞)과 뇌중풍(腦中風)에 걸릴 확률이 1.6 배(倍) 높다고 캐나다 온타리오 주 해밀턴에 위치한 연구 중심 공립대학교인 맥마스터 대학교(McMaster University)의 Daryl Leon 교수는 발표했다.
Daryl l Leon 교수 연구팀은 17개(個) 국가(國家)의 35세로 부터 70 세(歲) 사이의 남녀(男女) 139,691명을 실험대상으로 손의 악력(握力)과 체력(體力)을 4년(年) 동안 검측(檢測) 추종(追蹤) 조사하였다. 그결과 악력(握力)이 5kg 이하인 사람들의 사망률(死亡率)은 16% 증가(增加)되었다고 발표했다. 심혈관질병(心血管疾病)에 걸릴 확률은 17% 증가(增加)되었고、심근경색(心筋梗塞)에 걸릴 확률은 7% 증가했으며 뇌중풍(腦中風)에 걸릴 확률은 9% 증가되었다고 발표했다. Daryl Leon 교수는 악력저하(握力低下)와 전신체력(全身體力) 저하(低下)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의사들이 고령자(高齡者)들의 건강을 진찰(診察)할 경우,악력(握力)을 검측(檢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령자(高齡者)들은 須鍛鍊提升 전신(全身)의 근육력(筋肉力)을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
일본(日本) 후생노동성(厚生勞動省)의 과학자들은 복강현(福岡縣) 구산정(久山町)에서 40년(年) 이상(以上) 거주한 주민(住民)들을 20 년(年) 동안 추종조사(追蹤調查) 연구(研究)하였다. 연구결과 악력(握力)이 강한 사람들이 악력이 약한 사람들 보다 사망률(死亡率)은 평균 40% 낮다고 발표했다.
Daryl Leon 교수는 악력(握力)은 전신(全身)의 근력(筋力)을 대표한다고 설명했다. 고령자(高齡者)들은 하반신(下半身) 근육단련(筋肉鍛鍊)에 힘써 발목의 접질림과 삐는 것을 예방(預防)해야 한다고 말했다. Daryl Leon 교수는 남성(男性)의 악력(握力)의 기준(基準)은 30kg 이상이고,여성(女性)들의 기준은 25kg 이상이다고 설명했다.
수부(手部)와 둔부(臀部)와 근건(筋腱)과 대퇴근육(大腿筋肉)을 단련(鍛鍊)시켜 주는 간단(簡單)한동작(動作) :
1. 수부(手部)의 근육(筋肉)을 단련(鍛鍊)시켜 주는소프트 파워 볼(Soft power ball) 단련(鍛鍊) :
(1)、소프트 파워 볼을 손바닥의 중안에 놓고 주먹을 폈다 오무렸다 반복해 줄 경우 수완(手腕)의 악력(握力)을 증가시켜 준다.
(2)、소프트파워볼을 대무지(大姆指)와 식지(食指) 사이에 끼고 주먹을 쥐엇다 폈다해 줄 경우 수부의 소근육(小筋肉)을 훈련시켜 준다.
2. 단각(單腳) 첨립(站立) 단련(鍛練)은 둔부(臀部)와 대퇴근육(大腿筋肉)을 단련시켜 준다.
(1)、오른쪽 발을 사용하여 일분(一分) 동안 서있다.
(2)、좌측 발만 사용하여 일분(一分) 동안 서있다.
3. 굴슬운동(屈膝運動)은 후퇴건근(後腿腱筋)을 단련(鍛鍊)시켜 준다.
(1)、의자의 등받이를 붙잡고 쭈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2)、천천히 일어서는데 이때 소퇴와 대퇴의 각도를 90도로 유지한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다. 10차례 반복(反覆)해 준다
The Future of Gelatine Has Just Begun –
The Future of Gelatine Has Just Begun – Its Multi-faceted History Is Proof
The foodstuff gelatine has had a long and successful history. In ancient times
it was used as a ‘‘biological adhesive’’, and in the course of time it progressed
to industrial manufacture and diverse applications. Some 8000 years ago, cave
dwellers in what is now the Middle East were able to produce glue from animal
tissues. Some 3000 years later, the Ancient Egyptians were well aware of its functionality
and used a type of wood glue produced from collagen as an adhesive to
glue their items of furniture together. And, at the court of Henry VIII of England
(1491–1547), pickled dishes with ‘‘glittering calves’-foot jelly’’ were on the menu
at every banquet. It was in the Napoleonic era, however, that gelatine experienced
its first real boom: it was used as a source of protein to feed the French when
meat became scarce during the blockade of their ports by the British navy. And,
of course, modern pharmaceuticals and photography would be unthinkable today
without gelatine.
The use of gelatine for health purposes has been documented since as early as
the Middle Ages. For example, Hildegard von Bingen, Benedictine Abbess and
universal scholar, recommended in her ‘‘Physica’’ around 1150 that ‘‘frequent
and adequate’’ portions of a broth made from calves’ feet was good for joint pain.
Today, science has proven just how right she was.
1.1.2
It All Began with Glue
However, archeologists have established that certain forms of crude gelatine were
used much earlier. Chemical and microbiological analyses carried out at the
Weizmann Institute in Israel on samples taken from a cave near the Dead Sea
clearly show that its inhabitants in the New Stone Age knew much about the adhesive
strength of collagen glue and used it for numerous purposes. Discoveries
1
Gelatine Handbook: Theory and Industrial Practice. R. Schrieber and H. Gareis
Copyright 8 2007 WILEY-VCH Verlag GmbH & Co. KGaA, Weinheim
ISBN: 978-3-527-31548-2
in both Deir el Bahari (in the funerary temple of Queen Hatshepsut) and in
Thebes [1] (today’s Luxor) also unambiguously prove that animal glue was used
in Egypt at the time (see Fig. 1.2). This form of glue, so-called glutin glue, is still
produced today from the collagen of animal hides. In addition, some pyramid
texts indicate that the Egyptians also used bones in the preparation of various
broths and soups [2].
Thus, the use of gelatine for the preparation of food during the first few centuries
AD can be clearly established. During this period, the bone and hide of animals
was boiled to obtain glue. However, a different kind of product was also obtained
– a raw extract that, when cooled, solidified to produce what in fact was the
‘‘original form’’ of edible gelatine.
Fig. 1.1 Gelatine has had a long and successful history. The granulated
types are today’s most common grades for industrial use.
Fig. 1.2 The Ancient Egyptians used glutin glues for furniture
production. This glue is still produced today from the collagen of
animal hides and bones in some countries, including Egypt.
2 1 Introduction
1.1.3
Pure Luxury for Kings and Aristocrats
For centuries, gelatine was a luxury item; it was used to prepare an extravagant
jelly for dishes presented at court and in aristocratic villas. It was only in the late
17th century that scientists started propagating its nutritional and physiological
qualities.
In 1682 the French mathematician Denis, Papin invented a pressure cooking
pot [3] called a ‘‘digester’’ that made it possible to cook bones until soft. Papin
recommended using the stock produced for preparing soups; he even suggested
to King Charles II of England in 1681 that ‘‘the jelly produced from bone be used
as a general foodstuff for the people.’’
1.1.4
During the Napoleonic Wars, Gelatine Was Systematically Researched as a Source
of Protein
Gelatine’s popularity as a foodstuff came about during the Napoleonic Wars. The
blockade of the French ports by the British navy during the wars meant a shortage
of meat protein for the population. Politicians and scientists initiated a search
for possible alternatives and in fact found one – gelatine. In 1803 and 1818, the
administrator of the Military Hospital in Paris, Anton Alexis Cadet de Vaux, published
reports on ‘‘gelatine produced from bones and on the resulting bouillon’’.
A commission headed by the chemist d’Arcel used these to compile methods for
manufacturing gelatine. Gelatine as a source of protein for nutritional purposes
was then systematically researched and its manufacture and application improved.
The obvious consequence was the industrial production of gelatine.
The first company to manufacture gelatine on an industrial scale was Coignet
& Cie., founded in 1818 in Lyons, France. The company improved production in
two areas: it was the first company to use ‘‘hide split’’ (so-called ‘‘glue leather’’)
as a raw material (see Section 2.2.2), and it introduced a process for the industrial
drying of thick gelatine leaves. This remained the method of choice until
Fig. 1.3 Manufacture of gelatine was extremely work-intensive until the
middle of the 20th century. Here, packing of the dried gelatine sheets.
1.1 Gelatine –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3
the middle of the 20th century. The first products to be sold under the label
‘‘powder gelatine’’ were no more than ground thick leaves or bars of gelatine.
1.1.5
Suddenly, Medicines No Longer Had a Bitter Taste
Almost at the same time, the first new applications for gelatine were developed.
The first breakthrough came about in 1833 when French pharmacist Mothes was
granted a patent for the manufacture of gelatine capsules (French Patent No.
9690). These ‘‘original capsules’’ were produced by immersing a small leather
sack filled with mercury into a concentrated solution of gelatine. The chilled and
dried gelatine film which looked like a capsule was then stripped from the leather
bag. These capsules enabled drugs to be dosed more easily and, for the first time,
to be better protected from the effects of heat, cold, and humidity. More importantly,
however, the medicines they contained no longer tasted bitter.
Later, American companies became technology leaders in the manufacture of
capsules. In 1897 [4], the company Eli Lilly, based in Indianapolis, IN USA,
started filling powders and granulates into very thin, two-part hard gelatine capsules.
By 1913, the company had also developed and globally introduced the first
automatic method for the production of hard gelatine capsules. The process for
the simultaneous production of ‘‘bodies’’ and ‘‘caps’’ was introduced in 1931 by
Parke, Davis & Company in Detroit, MI USA.
Fig. 1.4 Construction plan of a hard shell capsule machine from the
patent application of Parke, Davis & Company, 1931.
4 1 Introduction
Around 1930, a further pioneering invention revolutionized the manufacture of
soft capsules: Robert P. Scherer invented a machine for the automatic and continuous
manufacture and filling of soft gelatine capsules, a process that very soon
spread throughout the world (see Fig. 1.5). Gelatine, however, was also used in
other pharmaceutical applications: it was used, for example, for coating tablets
and microcapsules, thus reliably protecting the active substances contained in
them from the effects of light and atmospheric oxygen.
It is not only this effective barrier function that makes gelatine so valuable
in pharmaceutical production; its high degree of compatibility and extremely low
allergenicity make it an ideal component of drug systems. These particular properties
have also been utilized in applications in medicine: since the 1940s, for example,
gelatine sponges have become indispensable as hemostats against surgical
bleeding (see Fig. 1.6). Interestingly, this has a connection with the early history
of gelatine: during the 3rd century, the Chinese and Japanese used gelatine for
this specific purpose [5]. A further example is in the area of emergency medicine,
where gelatine-based substances are used as blood replacement agents or plasma
expanders (see Fig. 1.7). These were intensively researched during the First World
War [6] and successfully used on a large scale during the Second World War.
1.1.6
Gelatine Helped to Popularize Photography
The history of photography would also have been quite different without gelatine.
The decisive breakthrough was made by Frenchman Louis Jacques Mande´
Daguerre (1787–1851), who developed the ‘‘Daguerreotype’’ process of photographic
printing. The process, however, was somewhat complex and difficult to
handle. In addition, it was only possible to prepare unique original positives.
These were expensive, and hence the hobby of photography was restricted to
those who could afford it.
Fig. 1.5 Two of the first soft shell capsule machines of Robert P.
Scherer, who revolutionized the manufacture of soft gelatine capsules
with his development.
1.1 Gelatine –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5
Making photography uncomplicated, important for its widespread popularity,
was made possible half a century later with the help of gelatine. From 1880
onwards, ready-to-use dry photographic plates coated with gelatine emulsion became
available. With these, it was possible to produce negatives and therefore
many positives. However, photography was only finally popularized by George
Eastman who, in 1888, introduced his famous ‘‘Kodak Number 1’’ camera (see
Fig. 1.8).
This made it possible for the amateur photographer to produce photos at reasonable
cost as the easy-to-use camera worked with rolls of film instead of plates.
An indispensable aspect of the exposure and development of the films was the
coating of the photographic paper with high-quality gelatine. The gelatine used
had to be chemically pure and particularly uniform in terms of its viscosity and
texture. The companies involved in the photographic business, although many,
like Kodak, had their own gelatine manufacturing plants, soon started to cooperate
with specialists in photographic gelatine.
At the end of the 19th and beginning of the 20th centuries, such specialists
were to be found particularly in Germany and France. The close cooperation that
followed soon led to both industrial areas becoming closely knit, at least in part.
In 1921, for example, George Eastman and Heinrich Stoess, after a long and successful
transatlantic cooperation, founded together the first German-American
joint venture after the First World War – the Odin Factory in Eberbach, Germany,
the plant supplying Kodak with its photographic gelatine (see Fig. 1.9).
Also, Agfa AG, at the time one of the largest of Kodak’s competitors in Europe,
concluded a contract with DGF (Deutsche Gelatine Fabriken AG) in Go¨ppingen
Fig. 1.6 Gelatine sponges are available in a variety of shapes
to stanch surgical bleeding in different areas of the human
and animal bodies.
6 1 Introduction
and Schweinfurt in Germany whereby DGF AG agreed to supply all of Agfa’s requirements
for photographic gelatine. In 1964, in fact, Agfa AG itself started producing
gelatine: it acquired completely the company Koepf & So¨hne and from
then until the year 2000 produced part of its total requirement of gelatine at its
own plant in Heilbronn, Germany.
1.1.7
Magically Appearing Text
The contracts between Kodak and Stoess on the one hand and Agfa and DGF on
the other were quite different in nature. However, they had one thing in common:
as with all documents at the time, they were duplicated using carbon paper.
This changed dramatically in the 1960s: Barrett Green and Lowell Schleicher of
the company NCR invented the microcapsule for carbonless paper that was based
on the reaction between gelatine and gum arabic (US Patent No. 72 800 457). This
enabled special dyes to be embedded in microscopically small capsules that were
Fig. 1.7 Blood plasma substitutes based on gelatine are
widely used for the temporary replacement of blood in the
circulatory system after surgery or accidents.
1.1 Gelatine –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7
coated onto the reverse side of the paper to be written on (see Fig. 1.10). The pressure
exerted by either the pen or the typewriter keys caused the capsules to
rupture, hence releasing an initially colorless amount of ink. A special coating
on the upper side of the copy then rendered the ink visible, and the text appeared
as if by magic! This ended the period of black ‘‘carbon fingers’’ in many a typing
pool.
Fig. 1.8 Advertisement for the ‘‘Kodak Nr. 1’’ camera which worked with
rolls of film instead of plates. This made it possible to produce photos
in an easy way and at reasonable cost.
8 1 Introduction
1.1.8
Gelatine Literally on Everyone’s Lips
A further important step that made gelatine ubiquitous in its use was the introduction
of household packs of granulated gelatine in the United States in 1890
through the efforts of Charles Knox (see Fig. 1.11) and in Germany, during the
period of worldwide economic recession, through DGF AG. This single event
made gelatine into a basic and very popular ingredient for numerous foodstuffs
and brought about its use on a worldwide basis.
Another major move to make gelatine more widely known was made by Peter
Cooper in the United States when, in 1845, he obtained the first patent for a gelatine
dessert. In 1897, the product was improved by adding fruit flavors and was
named JELL-O1. The first recipe book was published in 1904. Sales of JELL-O1
are currently about 300 million boxes per year in the United States. A different
way of offering gelatine desserts to the public was developed in Great Britain by
Fig. 1.9 In 1921, George Eastman and Heinrich Stoess established a
joint venture – the Odin Factory in Germany. The plant supplied
Kodak’s factories world-wide with its photographic gelatine for close to
20 years.
Fig. 1.10 Carbonless paper forms are covered on the back with gelatine
microcapsules filled with ink. The capsules collapse and release the
incorporated dye as a result of the pressure of the pen when writing.
1.1 Gelatine –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9
the company Rowntree. Starting with a similar product to JELL-O1 in 1923, they
started marketing concentrated cubes called Jelly Tablets in 1932. These also
contained different fruit flavors (see Fig. 1.12). Although the product was very
successful in Great Britain, it never managed to be marketed on a broader scale
abroad.
Ever since, not only the food industry but also gelatine manufacturers have
been continuously developing new applications for gelatine. Further aspects of
its multifunctional properties were discovered and made available via new products
to consumers. Many of these products were literally on everyone’s lips:
Fig. 1.11 Household packs of granulated gelatine were introduced in
1890 by C. Knox and soon became very popular in the United States.
Fig. 1.12 Jelly Tablets are concentrated gelatine cubes containing sugar
and different fruit flavors. After mixing with hot water and then chilling,
the dessert is ready to eat.
10 1 Introduction
marshmallows were introduced into the United States in the early 1900s and became
extremely popular by the 1950s, in 1930 the now-famous gummy bears
were introduced, and by the 1970s gelatine enabled fruit yogurts without the
filmy layer of whey on the surface to be developed (Fig. 1.13).
At the end of the 1970s, hydrolyzed gelatine became one of the top topics on
the talk shows on American TV. The result: the calorie-reducing ‘‘liquid protein’’
created a record-breaking demand. Gelatine was also significantly involved in the
worldwide success of the low-fat margarines and sandwich spreads invented by
Lage Sundstroem in Sweden that, by 1984, were being produced on an industrial
scale (US Patent No. 4071634). Gelatine was the emulsifier and stabilizer used to
ensure the consistency and spreadability demanded by consumers.
1.1.9
An Essential Element of Our Daily Lives
Today, gelatine is a modern product with a very wide range of uses. It is an essential
element of our daily lives, even if this is not obvious at a first glance. Match
heads contain gelatine and digital holiday snapshots can be printed on topquality,
gelatine-coated ink-jet photographic paper or, traditionally, on classical
photographic paper in the photo laboratory. Gelatine has also been proven to be
effective as a cleansing agent and is used in the clean-up and refurbishment of
buildings contaminated with asbestos. It is also used for the restoration of historical
documents. Furthermore, it helps to support healthy joints and bones, and
has many other uses. However, in spite of these numerous applications, not all
of the many and various functional properties of gelatine have been exhaustively
researched. The highly versatile history of gelatine has shown that its future has
in fact just begun.
Fig. 1.13 Today, gelatine is a very popular ingredient in numerous
foodstuffs. Confectionery products are by far the largest application
area for gelatine around the world.
1.1 Gelatine –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11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This chapter will give an overview of the development of the industry over more
than 200 years from small local manufacturing through growth periods to global
players. Because of the limited space available in this book, very small operations
and companies of little importance or significance for the general development of
the industry or which disappeared rapidly have been ignored. Company names
have been abbreviated.
1.2.1
Period 1800–1865
In this early period, gelatine was produced for edible purposes solely on a private
level or by small businesses on a semi-commercial scale. But some small glue
manufacturers already existed and saw the possibility of changing their production
to the manufacture of gelatine.
France
The first production of gelatine on an industrial scale by the company Coignet was
reported in 1818 for their plant in Barabon-sur-Rhoˆne (see Section 1.1). Soon
after, they acquired further small glue and gelatine plants in France and Belgium
and also started exporting. In 1839, the business of Weishardt started what was
most likely the first glue manufacturing facility in the south of France.
Belgium/England
In the following years, small companies started in Belgium and most likely also
in Great Britain. However, no details are known.
Germany
In 1840, the first German gelatine plant of O. Lindenbauer was established, but
during the next 25 years only three more were built, including the company
Creutz, which subsequently existed for more than 100 years as an independent
small gelatine company.
There is no information about the size of production available from those
times, but it is very likely that even the best and largest plants did not produce
more than 10 000 kg per month.
The raw materials used in those times were hide pieces, but also bones collected
from butchers and residues from those businesses making combs and buttons
from bone were used. Most of the process development was transferred from
France to other countries. The product made had the form of thick gelatine
plates, like those of chocolate.
After the invention of the use of gelatine for the photographic process in several
steps between 1839 and 1856, the best qualities of edible gelatine were chosen
for this application. The general interest in gelatine production also became
12 1 Introduction
obvious, and it must have been profitable because soon more and more gelatine
companies were founded.
1.2.2
Period 1866–1900
France
The existence of four more glue and gelatine plants in France in 1875 is reported.
These also supplied products to Germany. In 1891, E. Rousselot founded the
company Rousselot which manufactured glue, and he acquired two additional
glue plants in France in 1894 and 1900. His gelatine production is confirmed for
1909 but may have started earlier. These were the roots for today’s second largest
gelatine manufacturer in the world.
Belgium
Efficient, well-known manufacturers must have existed, because purchases from
this region are reported by German companies. In 1895, a plant processing Indian
bone was built (Socie´te´ Anonyme de Vilvorde) next to an existing plant (Socie´te´
Anonyme de Grimbergen). Both establishments merged in 1911 and are the roots
of today’s company PB Gelatines.
Great Britain
The company W. Oldroyd started gelatine production in Widnes – which was later
an important gelatine site, and B. Young changed his production in London from
glue to gelatine. About 1900, C. Simeons, the son of a German gelatine manufacturer,
came to England and founded the companies C. Simeons and the British
Gelatine Works in Luton to manufacture photographic gelatine. The Luton plant
later (1920) became part of British Glues & Chemicals and afterwards part of the
Croda company.
United States
Several gelatine plants were established during this time. In 1890, C. Knox
founded Knox Gelatine, but no details are available about production. In 1888,
some 92 glue plants existed in the United States, but it is not known to what extent
they also produced gelatine.
One of those glue plants was owned by Peter Cooper, who had purchased a glue
plant in 1820 in New York City. He invented several pieces of labor-saving equipment
for manufacturing gelatine, and in 1845 he obtained the first American
patent for his process.
Germany
Gelatine manufacturing became very popular during this time, and a total of 16
plants are reported by 1900. Some were based on modified glue plants, and others
started when tanneries decided to upgrade the value of their by-product hide
splits and pieces instead of selling or dumping them.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13
The following were the roots of today’s GELITA AG, the world’s largest
manufacturer of gelatine. In 1867, A. Schmitt started his gelatine production in
Schweinfurt, and in 1872 C. Heinrichs founded a gelatine plant in Ho¨chst, which
was then merged in 1889 with the Schmitt company to form the first DGF. In
1880, the brothers Paul and Heinrich Koepff, who ran a tannery, founded a gelatine
and glue plant in Go¨ppingen. Their relative, Jacob Koepff, founded a gelatine
plant in Su¨ssen in 1889. In 1888 H. Stoess established the Heidelberger Gelatine-
Fabrik Stoess in Ziegelhausen (close to some large tanneries) and soon specialized
in the production of photographic gelatine.
The glue plant of Caesar & Ewald was founded in 1886 because several tanneries
were in the neighborhood. Mr. Ewald was a businessman and Mr. Caesar
had experience in tanning. In 1906 they changed from glue to gelatine plates.
Today they are still a major manufacturer of edible leaf gelatine.
The other plants founded during this period had disappeared by this time.
The production of photographic gelatine increased rapidly after 1880, and included
exported material. During this period, about 100 tons/annum of photographic
gelatine was exported from Germany to the United States, mainly to Eastman
Kodak.
Only for Germany are best-estimated production figures (all kinds) available:
1880 approx. 200 tons
1890 approx. 400 tons
1900 approx. 1200 tons.
During this period, the gelatine plates produced became thinner, and the description
‘‘leaf gelatine’’ was created. The thinnest leaves have proven to be of the best
quality – a rule which is still valid today. In this period the milling of plates and
leaves was also started for the manufacture of powder gelatine.
Local fresh bones, partly degreased with solvents, and hide splits and pieces
were the raw materials used during this period. However, calf heads and legs
were also common. The manufacture of ossein started in Germany after the first
attempts in France.
Regarding the location for a gelatine plant, some basic requirements had to be
fulfilled:
1. Nearby raw material supply, at that time mainly tanneries.
Long transport routes for material comprising 80% water
was expensive, as it is today, especially as the raw material
degraded rapidly during long periods of transport.
2. Adequate availability of fresh water wells for groundwater,
springs, or good quality river water.
3. Location away from housing areas because of the odor of the
raw materials and from the plant.
4. Close to a river or the sea shore, primarily for disposal of the
effluent, but also to transport raw materials and final products.
5. For fuel for firing the boilers, the availability of wood and coal.
14 1 Introduction
6. A location close to forests was also an advantage because of
the requirements for the drying of the gelatine. A forest
cleans the air of dust and also has a moderating effect on
the climate. This was important because at that time no air
conditioning for drying the air was available. Because of this,
it is reported that the gelatine quality in winter months was
superior of that of summer months. Some companies even
manufactured only during winter.
1.2.3
Period 1901–1914
France
This was a period of rapid growth for the gelatine industry. In France, both
Coignet and Rousselot developed their businesses very successfully. In 1901 Rousselot
acquired the plant in Camp-Major near Marseille; after this they built the plant
in Angouleˆme near Bordeaux, and in 1913 the construction of the plant in Islesur-
Sorgue near Avignon was commissioned. And they also acquired an ossein
plant and a glue and gelatine plant in Belgium. Angouleˆme and Isle-sur-Sorgue
are still major manufacturing plants of Rousselot today.
In 1908, La Socie´te´ des Colles et Ge´latines Francaises was founded to manufacture
hide gelatine and glue in two plants. One was destroyed during the war
and was rebuilt in 1922 in Attichy to manufacture bone gelatine; it also specialized
in the manufacture of hard shell capsule gelatine. The Compagnie des Ge´latines
Francaises (CGF) also became an important supplier of photographic gelatine.
In 1971, the Attichy plant was purchased by Rousselot. It was shut down in 1981
after complete know-how transfer because of over-capacity within the Rousselot
group.
Belgium
It is also surprising to see the development of the glue and gelatine industry in a
small country like Belgium during this period. Eleven manufacturing companies
existed at places around Vilvorde and Ghent, which are still the locations for large
gelatine plants. So they must have been successful in their export business.
Germany
Four new companies went into operation. The Koepff brothers split their business
into the Go¨ppinger Gelatine-Fabrik Paul Koepff and the company Koepff &
So¨hne in Heilbronn, which in 1964 became part of Agfa AG. Also of importance
was the foundation of the Chem. Fabrik Calbe which, after World War 2, became
the major manufacturer of gelatine in East Germany until its liquidation in 1991.
In 1911 the Go¨ppingen company of Paul Koepff and the DGF company in
Ho¨chst merged, DGF thus becoming the largest manufacturer in Germany.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15
Because of the technology transfer, the production methods of the gelatine
plants became more and more similar. The French companies had by this time
lost their leading position. The business in gelatine and glue was quite profitable,
and a lot of money was invested in expansion and modernization of the plants. In
1912/13, DGF built the most modern and largest gelatine plant in Europe and
most likely in the world. In 1914/15, they produced 614 tons of leaf gelatine, of
which 258 were for photographic purposes.
Great Britain
In England, a new company, Cleveland Products, was established in 1907 to manufacture
gelatine from ossein. This company was also merged in 1920 into British
Glues and Chemicals along with four other companies.
The Netherlands
The Dutch company Lijm and Gelatine Fabrik Delft, which was established in 1885
and started the production of bone glue in 1887, partly moved into gelatine production
in 1911.
Australia/New Zealand
Until 1913, there was no gelatine production in the Pacific area. In that year, C.
Davis, who had formed the New Zealand Glue Company in Auckland in 1889,
changed another hide glue plant, which he had bought in Christchurch in 1909,
into gelatine manufacturing, and Davis Gelatin was founded. The technology
used was imported from England. The business progressed rapidly, and sales
were soon extended to both Canada and Australia, so that it became necessary to
import large quantities of raw materials from Australia.
United States
At the same time, the granulated gelatine of Kind Gelatine in Camden NJ, a company
founded in 1908 by M. Kind, became very popular in the United States.
Most of it was sold to the ice cream industry. Kind had learned how to make gelatine
in his family business in Czechoslovakia.
In the same year the first gelatine was manufactured by the American Glue
Company in their plant in Peabody MA. The Boston area was at that time very
popular for its tanning industry, and Peabody was called ‘‘Leather City’’. Eastman
Kodak soon became the principal customer for this plant. Some technical exchange
was initiated to produce high-quality photographic gelatine. Some time
before this, George Eastman almost went bankrupt when batch after batch of his
photographic glass plates produced poor results because of inferior gelatine from
one of his suppliers. In 1930 the Peabody plant was purchased by Eastman Kodak
and renamed Eastman Gelatine to ensure access to the high quality gelatine from
this plant. At this time, close cooperation between the photographic companies
and their gelatine suppliers started. The emulsion recipes and the gelatine used
fitted like a key in a lock. For this reason Eastman Kodak and Stoess also intensified
their business relationship.
16 1 Introduction
During this period, the use of imported bone from overseas started in
Europe because the local raw material supply of bone and hides was not
sufficient and quality problems were experienced.
In 1910/11 more than 23 000 tons of bone were exported from India to
Belgium, and in 1913/14 this increased to 34 000 tons. In the same year
16 000 tons were exported from India to France and 10 000 tons to the
United States. However, Brazil and Argentina also started to export bone
to France,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The best estimates for the total production of edible and photographic
gelatine in 1910 are approx. 2000 tons each in France and Belgium. In
1913, production in Germany was most likely about 3500 tons.
In 1913, the total gelatine production in the US is reported to have been
approx. 5000 tons.
1.2.4
Period 1915–1918
The First World War had a very negative impact on overall gelatine production.
Europe
Raw material imports decreased, utilities were scarce, and production decreased
in Germany in 1918 to about 1/3 of normal. The plants in Belgium also stopped
production during the war. But in France, the Coignet plant in Isle-sur-Sorgue expanded,
and very soon (in 1918) took advantage of the market demand. Mainly,
the market for photographic gelatine was growing, which was related to the importance
of the military use of the photography. However, quite apart from the
war, there was still export business during this period.
United States
In the United States, Knox acquired an interest in the Kind gelatine plant in
Camden NJ, because he saw his business mainly in marketing and less in production.
Because of the cutting off of imports of ossein from Europe during the war, an
ossein plant was built in Everett MA, which was in operation until the late 1940s.
Australia/New Zealand
In 1917, the first gelatine plant in Australia was established in a suburb of Sydney
by the New Zealand-based Davis Gelatine. M. Davis wrote in his book on company
history that the presence of many tanneries in this area and the plentiful supply
of pure, fresh water in the sand beds beneath the property were the most important
factors involved in selecting the location.
1.2.5
Period 1919–1939
Shortly after the end of the war, the gelatine industry recovered rapidly and expanded
worldwide.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17
France
In France, Rousselot in 1920 acquired a further gelatine plant in Strasbourg and in
1931 the plants in Angoule`me and Isle-sur-Sorgue; at the same time the business
became a public company. Also in 1931, Rousselot started the production of photographic
gelatine. A further step in their expansion was the foundation of a gelatine
plant in 1936 in Clifford, England. However, during this period, France lost
its leading position in the market, with a production of only approx. 4000–5000
tons in 1938.
Belgium
Substantial changes took place here. All companies expanded and, following a
fusion, the company Ge´latines Hasselt & Vilvorde was established, which had had
a production of approx. 4000 tons before the war. At that time, Belgium was most
probably the largest gelatine manufacturing country in Europe, with more than
6000 tons/annum.
In 1919, a bone-degreasing operation based on petroleum was established in
Vilvorde, and in 1932 the name of Pont Bruˆ le´ Etablissements Duche´ was changed
to Pont Bruˆ le´.
Germany
Of course, Germany suffered most from the war. However, good personal contacts
helped to regain and even increase some export business afterwards. The
war had created severe supply problems for the Eastman Kodak Corp., which had
been supplied by Stoess and DGF. To develop this business further because of the
good quality of the Stoess gelatine, the two companies founded a joint venture in
1921. This resulted in the Odin gelatine plant being built in Eberbach for the exclusive
delivery of products for 20 years to the various plants of Eastman Kodak.
In 1939, however, the plant was closed down because of the war.
DGF on the other hand had made a contract with Agfa to supply them with gelatine.
In the same period, two new gelatine plants were built in Germany, but
many others disappeared. From a total of 26 plants built since 1840, only 11
remained in 1934 because of the worldwide economic crisis in 1929/33. But the
industry recovered again from approx. 1000 tons in 1919 and reached a peak in
production in 1938 with approx. 5000 tons. However, margins were extremely low.
In 1929/31, the production of Stoess was moved from the Heidelberg plant to a
new plant in Eberbach approx. 30 km away because of the need to expand.
Because of the growing demand for bone gelatine, Ewald, in 1928, built a plant
for the manufacture of ossein and also started the production of photographic
gelatine, which ceased in 1960.
Great Britain
The foundation of British Glues and Chemicals in 1920 was an important step,
which consolidated the business of five gelatine companies.
Beside this, five more gelatine plants were established, of which that built in
1937/38 by Leiner in Treforest, Wales later became a very important factory. The
18 1 Introduction
total production increased from 2400 tons in 1930 to 7000 tons in 1935, but the
use of gelatine in England exceeded domestic production by approx. 3000 tons/
annum.
United States
Production showed rapid growth during this period. Thirteen plants manufactured
more than 10 000 tons of edible gelatine in 1937, and a further approx.
3000 tons of edible gelatine was imported. For 1930, imports of approx. 600 tons
of photographic gelatine from Germany were documented.
During this period, the use of pigskin as a raw material was started by the company
Swift in Chicago, a meat packing company, as was the gelatine plant of
United Chemical and Organic Products (UCOPCO) in Calumet City/Chicago, part
of Wilson & Co., another meat packer. This plant later became Dynagel and part
of DGF Stoess. Also Grayslake Gelatin, which was founded in 1919, used pigskin
as the sole raw material. This company ceased its production in 1982 because of
the energy crisis. Eastman Kodak had had its own gelatine plant in Peabody since
1930 and built a further one in Rochester NY because of growing demand and
quality problems with some purchased gelatines. The plant in Peabody still exists;
the one in Rochester was closed in 1984.
AGFA in Germany later produced also its own gelatine, in common with Konica
and Fuji in Japan.
In 1919 a gelatine plant was founded in Woburn, by five tanneries in that area.
The first major customer was the owner of the Jell-O table jelly business. Production
in 1920 was approx. 100 tons, and in 1921 it was approx. 300 tons. In 1922,
a five-year contract was signed to supply 500 tons per year. The total production of
that plant in 1924 was up to 1000 tons. In 1925, the Postum Cereal Company, later
to be known as General Foods, purchased the Jell-O brand. Because of the high
demand for gelatine for table jellies and to ensure a steady supply, General Foods
acquired Atlantic Gelatin in Woburn in 1930, which then became the largest gelatine
plant in the world after the war with about 10 000 tons/annum.
Kind Gelatine, Camden was also of great importance, as was the gelatine plant
Keystone in Dubuque IA, founded by American Agricultural Chemical, which owned
two more small plants.
Peter Cooper owned a gelatine plant (US Gelatin) in Oak Creek, using pigskin
raw material. This was acquired in the mid 1970s by Rousselot. The raw material
at that time was imported ossein.
Japan
The production trials for gelatine in Japan were started in 1926 by the company
Nitta Belt. Local hide glue production had become important for the Nitta company
after world war one because of import restrictions for many goods. As in
many other countries, the production of glue started to be shifted into higher
quality gelatine because, after the war, western products like ice cream, marshmallows,
and jellies increased in popularity also in Japan. In 1930, a gold embargo
was imposed, and the price of imported gelatine increased rapidly. Nitta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19
therefore started to produce gelatine on a regular basis in their Yao factory. Soon,
several other companies followed suit. In 1932, Nihon-Hikaku (Nippi) evaluated
the gelatine production based on hide splits in their Tokyo plant. In 1940 they
built a new gelatine factory in Fujinomiya for photographic bone gelatine in close
technical cooperation with Fuji. Because of growing demand, the Ministry of
Commerce and Industry had, in 1933, decided to offer cash incentives for the domestic
production of photographic film, which supported the foundation of Japanese
photo manufacturers. These companies also started to search for close cooperation
with domestic gelatine manufacturers. In 1934, Rokuo-sya (Konica)
manufactured about 1000 kg per day together with Yasu Photo Chem. In 1937 a
public grant was given to the Sanshine Chemical Institute because of the work
of a researcher, G. Kobayashi, who had been working on photographic gelatine
since 1920, to build a plant for photographic gelatine in Takarazuka, which, after
the war, became part of the Konica company. The plant went into operation in
1939. Also, Fuji was involved during this period in investments in the Japan
Chemical Industries to make gelatine in the factory, which became known, after
1941, as Fuji Film Kawakami when they acquired ownership. But this plant was
closed in the 1950s. One of the reasons for the increasing photographic gelatine
production was also the war between Japan and China in 1937, which made imports
very difficult.
Australia/New Zealand
The Davis plants in New Zealand and Australia were also expanded during this
period, and many overseas sales offices were established. During the 1930s, Davis
supplied about 40% of the Canadian edible gelatine requirements and 55% of
South Africa’s.
South America
In the early 1920s, the first gelatine plant in South America was established in
Brazil north of Sao Paulo by a British meat packer called Angelo. But the business
went bankrupt after a few years. Until the 1970s, slaughter was predominantly
done in the south of Brazil, which was therefore also the location of the tanneries.
But it took another 20 years before a second and very successful round of gelatine
production started in South America.
All the plants in the industry modernized on a step-by-step basis. Stainless
steel started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equipment. Also, new equipment
for jellifying the gelatine solution was invented to replace manual work in the
production of gelatine leaves, which were still very common in Europe.
More and more plants changed from expensive hide raw material, which was
in short supply after the war, to bones, which were imported at very low cost
from India, Brazil, and Argentina.
In 1929/30, France imported approx. 11 000 tons from India, Belgium more
than 50 000, Germany approx. 8000, the United States 11 000, and Japan 4000.
In addition to this, the United States imported on average approx. 40 000 tons/
annum from Argentina in the period 1924/29.
20 1 Introduction
1.2.6
Period 1940–1948
The Second World War affected the whole European gelatine industry tremendously.
Several plants were more or less completely destroyed and were not rebuilt.
Others, which were less damaged, re-started with different products and reduced
production. During the war, what production there was concentrated on
photographic gelatine because of its military importance, most of the other plants
in Continental Europe having closed down.
France
In 1947, Rousselot started to export gelatine again, and in 1948 DGF in Germany
followed with photographic gelatine and in 1950 with edible gelatine.
Germany
In 1939 the cooperation between Eastman Kodak and Stoess was discontinued
and the Odin plant stopped production. Very little production remained.
Great Britain
In Treforest (Wales), a new plant in was built by Leiner to manufacture hide gelatine.
In 1943 they expanded the plant to produce bone gelatine based on imported
bone from India and Pakistan, where they later installed their own bone mills.
United States
Production in the gelatine industry expanded strongly during this period because
of the missing imports from Europe. In 1948/49, over-capacity was first reported,
and in 1948 Atlantic Gelatine exported approx. 500 tons of photographic gelatine
to Russia. In 1945, Hormel, a large meat packing company, established a gelatine
plant in Austin MN based on pigskin from their own slaughtering plant.
The gelatine plant was located in the same building. At that time, Hormel was the
third meat packer to enter the gelatine business.
Japan
In Japan, the government reorganized the location of gelatine and glue plants to
spread them over different regions and to ensure a reasonable size of the businesses
(130 companies were merged into 9). In 1941, Miyagi Chemical Industries
started to make gelatine from whale bones, and Fuji Film acquired the gelatine
plant of Japan Chemical Industries. In 1944, Konishiroku (Konica) bought the Sanshine
Chemical Research Institute and changed its name to Sanyo Military Use
Photographic Gelatine Co., changing it again in 1948 to Takarazuka Gelatine. In
1945 Nitta Belt segregated its activities and established Nitta Glue & Gelatin.
Spain
In 1947 in Spain, a company named Junca started to manufacture hide glue in a
little town close to Girona where many tanneries were located, because of a sur-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21
plus of water supply. Because Spain was relatively isolated at that time, it took
about 20 years to develop into a regular daily gelatine production based on hides.
Not far away, in Girona, another glue manufacturer, Pagans, founded in 1942, had
a business based on bone. In 1948 their daily production of gelatine based on imported
ossein was about 200 kg per day.
South America
The companies Sairsa, Rodrigues Pinto, and Rebiere were founded in the early
1940s in Brazil to manufacture glue and some gelatine. Sairsa and Rebiere had
already been part of a tannery businesses and Rodrigues Pinto was also built close
to a tanning facility. All were located within a radius of about 100–300 km north
west of Sao Paulo. But as the companies grew in production they were forced to
source their raw material hundreds of kilometers away because the tanneries had
moved with the cattle herds further north. Rebiere is still an independent family
business, Sairsa became a part of DGF Stoess and Rodrigues Pinto was acquired by
General Brands, then Nabisco and today Kraft General Foods.
Just after the war, the American Stauffer Chemicals completed a new gelatine
plant in Buenos Aires to serve the local market. In 1965 Rousselot became a shareholder
in this company.
1.2.7
Period 1949–1972
France
After the war, Coignet and Rousselot were dominant in the French gelatine industry.
The Weishardt company was of less importance until the 1960s. But then they
expanded and started to export larger quantities of pigskin gelatine, mainly to
Germany. Nevertheless, by the end of the war, Weishardt had serious cash flow
problems and Rousselot acquired 30% of the shares in the company.
One of the shareholders in the Coignet business, which had six plants for glue,
gelatine, and bone degreasing, was at this time the large industrial company
Ugine Kuhlmann, and this company acquired the business completely in
1965.
Rousselot developed its business further with its four French plants for ossein
and gelatine. In 1962, the gelatine plant in Ghent was acquired from Union Chimique
Belgium. In 1964, the ownership in Rousselot was 75% the Rousselot family
and 25% the large French St. Gobain corporation, a leader in the chemical industry.
In 1965, Rousselot acquired a shareholding in the Argentinian Stauffer
company to have better access to the South American markets. In 1968 the glue,
gelatine, and raw material businesses of Rousselot and Ugine Kuhlman merged,
Rousselot retaining a 66% majority.
Belgium
After the war, six plants remained in Belgium. The two largest in Ghent and
Vilvorde are still important manufacturing sites.
22 1 Introduction
In 1958, the ownership of the Vilvorde plant changed to Pont Bruˆ le´, the majority
share of that company being acquired in 1964 by Produits Chimiques de
Tessenderlo, a large chemical group which was itself mainly in the ownership of a
French government-controlled company. In 1972, the gelatine-related activities
were split off and became PB Gelatines. In 1972, the Vilvorde plant made its first
attempt to move from bone and cow hides to pigskin.
The plant of Hasselt & Vilvorde, also a major producer of leaf gelatine for household
purposes, was closed in 1971 after acquisition by Rousselot, and the plant of
TMB (Tannerie & Maroquinnerie Belges) in Zaventem was closed in 1978. Another
plant in Zaventem (Colles et Ge´latines Zaventem) was acquired by Pont Bruˆ le´ in
1970 and closed after a short time.
Germany
The partition of Germany after the war placed three of its 11 companies in East
Germany. Two of these plants did not start up again, and only the Chemische Fabrik
Calbe became a state-owned company to supply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DDR), other East European countries, and to some extent also Russia,
mainly with photographic gelatine based on hides and bone. In addition, some
pigskin use followed in the 1980s. After Germany’s reunification, the company
went bankrupt in 1992 because DGF Stoess were not able to acquire the plant under
acceptable terms.
DGF repaired the Go¨ppingen plant and started to expand soon afterwards. In
1973, a brand new plant had double the capacity of the previous one. The Eberbach
plant of Stoess was also modernized and expanded in the years 1966/67. In
1965, Stoess acquired the DGF shares, combined the activities in the market, and
merged the two companies in 1972. By this time the DGF Stoess group was again
a worldwide player in photographic, pharmaceutical, and edible gelatine.
In the Eberbach plant, a large, modern semi-automatic drier for leaf gelatine
was installed in 1967 after several less successful trials in the Go¨ppingen plant
several years before.
The Koepff plant in Heilbronn (result of the business split of the Koepff
brothers in 1904) was also repaired and expanded, but on a step-by-step basis
mainly with money from their main customer Agfa, who bought shares in the
company. It is reported that in 1964 the shareholding of Agfa reached 75%.
Thus, the company was renamed, and the name Agfa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new name.
After 1965, the Chemische Werke Pfeffer in Memmingen changed their production
from glue to gelatine. But in 1974 the plant was closed by the regulatory
bodies because of environmental problems.
In 1969 the Reinert family, a large trader of edible gelatine, acquired the small
gelatine plant Herold (a DGF plant before the war) and built a new pigskin gelatine
plant there in the 1970s.
In 1951, the glue plant of Ratjen in Nienburg also started a gelatine production,
which was soon expanded, and the plant was modernized. In 1965, the glue and
gelatine businesses were separated, and a new company Nienburger Gelatine was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23
formed. Both businesses were acquired by the pharmaceutical company Schering
in 1969, which was mainly interested in the glue business and had no expertise
in the gelatine field. Thus, in the early 1970s, they started to look for a potential
buyer.
The Ewald company ceased the production of photographic gelatine around
1960 and concentrated more on leaf gelatine for households, bakeries, and catering.
In 1971 the conversion of the raw material from hide splits and bone to pigskin
started.
Great Britain
British Glues developed very successfully and in 1964 was the largest gelatine
manufacturer in Europe. Part of their success was the establishment of modern
bone degreasing plants in England, Austria, and the Netherlands for domestic
bone. This gave them some quality advantages in photographic gelatine compared
with the imported Indian bone. From 1949 through 1958, all plants were
completely modernized. In 1968 Croda acquired British Glues, and the latter
name disappeared. Croda was founded in 1925 as a chemical company to manufacture
raw materials for the cosmetic and chemical industries. General chemicals
and dyes, emulsifiers, and fat derivatives followed. The gelatine acquisition
was carried out to add a further important pillar to the portfolio shortly after the
company went public and had sufficient funds available.
Leiner also expanded the plant in Treforest, mainly based on imported bone.
In 1956, a new plant in Canada was built, but this shut down again after a short
period because of a lack of raw material. Most of the equipment was shipped to
Brazil (Cotia/Sao Paulo), where a new Leiner company, Cobrage-Compania Brasileira
de Gelatinas, started production in 1959. Also in this period, Leiner founded
a gelatine production enterprise in India (today Shaw Wallace/Narmada). In 1961,
Leiner became the largest bone gelatine manufacturer in the world. After 1959,
Leiner tried to manufacture pigskin gelatine; this proved to be a fiasco and forced
the company into bankruptcy in 1980.
The small Rousselot plant in Clifford was not of importance at that time, and
the same was true of Gelatine Products in Runcorn, the former Cheshire Glue
Co., which was acquired in 1991 by DGF Stoess.
The war had changed the position of Great Britain in the world market completely.
In the 1930s, imports had been approx. 2500 tons/annum and exports approx.
250 tons/annum. In the 1960s, imports dropped to approx. 600 tons/annum
and exports increased to approx. 2500 tons/annum.
The Netherlands/Switzerland
The Delft company in the Netherlands changed from glue to gelatine, and production
increased slowly to about 1000 tons/annum.
In Switzerland, the company Geistlich started to producce a small amount of
gelatine after being a traditional glue manufacturer since 1909.
The Winterthur plant in Switzerland was liquidated in 1971.
24 1 Introduction
Sweden
In 1967, the KemaNord Group, a large chemical manufacturer, acquired the Stidsvigs
& Ha¨lsingborgs Limfabriker, a company which had been producing about 1000
tons/annum of edible gelatine from hides and bone since 1957. A new plant (Extraco)
was built in 1971 with the target of producing 3000 tons/annum, mainly
based on pigskin. In 1976 the target was exceeded, but the distance to the raw
material sources, and hence the transportation costs for frozen pigskin, created
financial problems.
Italy
In this period, a small plant, Barbero in Sta. Vittoria d’Alba, was founded, but it
went bankrupt in 1968 and was acquired by F. Vezza. It then became Italgelatine
with about 1000 tons/annum production after some investment.
In Torino the company Fermonte produced approx. 700 tons/annum of photographic
gelatine. Fermonte was owned by the photographic company Ferrania
Spa, which itself was owned by 3M. The Fermonte plant was sold in 1973 to the
third Italian gelatine manufacturer during this period, Lapi, with its plant in Empoli,
near Pisa, which had a production of approx. 700 tons/annum at that time.
Spain
In 1960, the owners of Pagans decided to focus completely on gelatine and divested
themselves of their other businesses. In 1967, they expanded their degreasing
and demineralization capacity and brought up their production to 1200 tons/
annum, but they ran into severe financial problems in paying for this investment.
The other manufacturer, Junca, erected a new plant in the outskirts of the town
in 1953/54. At the end of the 1960s the production of leaf gelatine was also
started for the domestic market only. The first gelatine exports of this company
were made in the early 1970s to Egypt and to the USA.
Eastern Europe
There are some indications that in those years very small technical gelatine production
facilities existed in Yugoslavia, Czechoslovakia, Poland, and Romania.
Most of these disappeared in the years following because of inferior technology
and their small size.
Russia
No details about the foundation of the Russian gelatine industry are known.
However, it can be assumed that some plants did exist during this period,
founded before the war. Total production of about 5000 tons/annum was reported
for the end of the 1960s.
United States
Because of the lack of imports during the war and the growing use in all applications,
the gelatine industry expanded rapidly. In 1949, Atlantic Gelatin manufactured
approx. 10 000 tons/annum. The fairly unrestricted access to fresh pigskin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25
impelled the industry to make their plants much larger. However, only one new
plant was built in this period, the new pigskin gelatine plant of Kind & Knox in
Sioux City IA in 1966. In 1937, a total of 13 plants produced approx. 10 000 tons/
annum; in 1953 it was approx. 25 000 tons, but in 1974 only approx. 19 000 tons/
annum were produced by 11 plants because imports had resumed. From 1971 to
1974 production had to be reduced because of an oversupply situation.
In 1972 Lipton, a Unilever company, acquired Kind & Knox, with their plants in
Sioux City and Camden, from the Knox family. Their main business target was
the retail market, in which the ‘‘Knox Sparkling Gelatin’’ packs for households
played a dominant role. Therefore they sold the Camden plant in the middle of
the 70s to Peter Cooper.
In the same period the gelatine plant in Dubuque became Keystone Gelatin
and the gelatine plant in Calumet City became the Gelatin Division of Wilson, a
large meat packer. In 1978 the Rousselot company bought US Gelatin with its
plants in Oak Creek WI and Camden NY from Peter Cooper and continued international
expansion.
Canada
A large Canadian integrated meat products company, Canada Packers, built a gelatine
plant in Toronto in the 1950s mainly based on their own pigskin. In 1970 it
was expanded to make 1500 tons. For a brief period it also manufactured some
hide gelatine.
Australia/New Zealand/South Africa
The plants in Australia and New Zealand were further modernized and expanded,
and in 1970 the first semi-automatic continuous extraction process was
constructed in Botany, Sydney.
Because of the limited raw material sources in Australia and New Zealand, all
kinds of raw materials besides pigskin were used – sheep legs, dried hide splits
and pieces, wet hides, hairy material, but no ossein.
In 1951, Davis acquired 70% of the shares of the small gelatine company Gelatex
in South Africa, which then became Davis Gelatine Industries. In 1971, the remaining
30% were purchased and the plant modernized and expanded.
Japan
In 1954, Fuji Film decided to curbail their own gelatine production, close their
Kawakami gelatine plant, and concentrate on the purchase of gelatine from outside
but in close technical cooperation with their Japanese suppliers.
In 1955, Nippi doubled their production by means of a large modernization and
expansion program.
In 1957, Tadera Glue changed its name and Asahi Gelatine was founded to produce
high-grade glue. In 1960 it became a cooperative factory of Nippi and entered
a technical and sales agreement. In 1971 the factory was rebuilt and expanded
and the production of acid gelatine started.
26 1 Introduction
In 1960, Nitta Glue and Gelatin changed its name to Nitta Gelatine.
In 1968, Yamaguchi Trading and Nitta established a JV company, Hikone Gelatin.
Their gelatine was exclusively marketed by Nitta.
Because of its dependence on imported raw material, Nitta started, in 1970, to
make ossein with a partner in Thailand, and Takarazuka Gelatin did the same in
1973 with a partner in India.
Gelatine production of all types in Japan was reported in 1966 to be 3600 tons;
in 1974 the confirmed figure was 6,600 tons.
But Japan was still dependent on gelatine imports for the photographic industry.
So was it not surprising to see an import duty of 20% for edible and pharmaceutical
gelatine but only 3.5% for photographic gelatine.
Mexico
In 1959, Mexican investors, under the leadership of A. Olaza´bal, founded Industrias
Coloidales approx. 2700 m above sea level in Toluca, close to Mexico City. This
was later modernized with the assistance of PB Gelatines. The production was
based on pigskin. Some time later Olaza´bal left the company. Since 1990, the
company has been known as Coloidales Duche´ and is controlled by a group of
French investors. This is a result of certain banking turbulences.
In 1968, A. Olaza´bal founded a further gelatine plant, Panamericana de Grenatina,
also in the Toluca area and approx. 8 km from his old plant. The reasons
were the weather conditions and the water availability. At the beginning, the plant
processed 100% pigskin; however, during the 1970s and 1980s, hide and bone
processes were developed for cost reasons.
Also in the 1960s, Grenatina Diamante was founded in Leon in the North of
Mexico in the predominantly tanning area. The plant was and still is of little importance
outside Mexico. The same is true for Grenatina Regia.
However, probably the first gelatine plant in Mexico was Progresa, founded in
the 1950s in Leon. This small plant still exists. Because of the importance of the
table jelly market, Mexico has developed a relatively large gelatine production.
Brazil
In 1965, Leiner continued their world-wide expansion and founded a gelatine
plant in Cotia, a suburb of Sao Paulo, a location which was also close to slaughterhouses
and tanneries.
At this time, another gelatine plant was built in the South of Brazil in Estancia
Velha by Inbragel. This was later taken over by Leiner do Brazil.
Colombia
In 1930, E. Minski and I. Gilinski founded a tannery in Colombia. In the late
1960s and early 1970s, two gelatine plants were built, one in Baranquilla (Gelatinas
de Colombia-Gelco) by Minski and Gilinski and the other in Manizales (Progel)
by Nabisco. For the latter plant, Davis provided the production know-how and
owned a 30% stake in the company.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27
India
In 1948, the company Rallis was founded to make chemicals. Most probably late
in the 1960s, their affiliated company PPI (Protein Products of India – at first a
large ossein manufacturer) started to become a gelatine manufacturer based on
Rousselot technology after Rousselot acquired a 14% share holding in 1969. In
1983, when the use of Indian bone became more and more questionable, Rousselot
sold its share, and PPI was renamed Rallis.
Since 1961, Leiner has had a small production plant in India, the company
Leiner-Knit Gelatine in Jabalpur. The partners previously owned tanneries in that
area. Some years later, the large industrial group Shaw Wallace became a partner,
and the plant was modernized and expanded and became Shaw Leiner. After several
financial irregularities in that operation, all the English employees, including
Mr. Leiner, had to leave the company in 1970. Leiner lost his shareholding completely
in 1978 and the company became Shaw Wallace Gelatines.
Further, Raymond Glues & Chemicals in Baroda was founded in 1964. An ossein
plant was built, followed by a gelatine plant.
But besides this relatively small production in gelatine itself, the Indian companies
became more and more important as suppliers of crushed bone or ossein for
the world’s gelatine industry. However, in the 1950s, the import of crushed bone
was restricted because, when unloading a vessel in France (Dunkirk), several dock
workers were infected with anthrax and died. The same happened a few years later
in Hamburg. This created an increased preference for the more sanitized ossein.
The accidents also created a public discussion about the source of such bone material
(animals that had not been slaughtered but simply died), and as a result it
was used more for photographic gelatine – at least until the industry realized that
Indian bones are not the best source for high-quality inert photographic gelatine.
Korea
In 1963, Sammi was established for the purpose of producing and distributing
edible and pharmaceutical gelatine. The raw material at that time was most likely
hide split, because many tanneries were located in Korea. This privately owned
plant still exists today.
The most important events in this period were the following:
1. Rousselot and Leiner started to become real international
companies with production sites overseas.
2. Large industrial groups entered the gelatine business for
different reasons, so several private ownerships disappeared.
3. The importance of safe and secure raw material supplies was
recognized because of the growing output of the industry.
Local sourcing became more and more difficult. Several
companies invested in affiliated businesses domestically and
abroad to collect raw materials and also to install the first
pre-treatments like degreasing and demineralization of the
bone material.
28 1 Introduction
4. Pigskin was used in Europe by many companies as an
additional or alternative raw material, mainly for edible
gelatine.
5. The demand for photographic gelatine showed a constant
growth potential, but the main driving force in the markets
in the years after 1960 was the sharply rising demand for
pharmaceutical capsule gelatine, including microcapsules. In
Europe, fruit gummies became very popular, and with the
dairy industry a new market was created.
1.2.8
Period 1973–1993
France
In 1973, the name Rousselot-Kuhlmann changed again and the company became
Rousselot by merging with its raw-material-collecting company Soporga and the
acquired Compagnie des Ge´latines Francaises. In 1977, the owner family of Rousselot
had tremendous fears about the intention of the Socialist Party to nationalize
important French businesses. As a result, they decided to sell the business.
Because of the first oil crisis, the petroleum industry was looking into alternative
businesses, and one of the major projects was to make protein from crude oil by
bio-fermentation. Thus, there was general interest in proteins at that time. A potential
buyer was found quickly – British Petroleum. However, the French government
intervened and presented an alternative buyer, ATO-Chemie, a subsidiary
company of ELF-Aquitaine and TOTAL. In 1985, the name changed again because
of a restructuring of the businesses of ELF and the newly founded state-owned
Sanofi company. Rousselot became a part of Mero-Rousselot-Satia (MRS), with a
large portfolio of other products including other hydrocolloids. The next name
change happened in 1988, and MRS became Sanofi-Bio-Industries (SBI) in the
sole ownership of Sanofi. In a restructuring program, Rousselot closed the plants
in Attichy (France) in 1981 and Clifford (England) in 1980, because they decided
to concentrate all investment in their Camp-Major and Isle-sur-Sorgue plants. In
1975 the total production of Rousselot in France and Belgium was approx. 20 000
tons/annum, but further expansion was undertaken and in 1985 the total production
was approx. 25 000 tons. In 1989, the Dubuque plant of Keystone Gelatin was
acquired, and in 1990 the Argentinian plant of Stauffer was completely taken over.
This expansion program was completed with the acquisition of the Pagans plant
in Spain in 1991.
During this period, Weishardt expanded further and was reported to produce
approx. 3500 tons in 1982. Export businesses were developed, and since 1981 the
company has been trying, unsuccessfully, to produce photographic gelatine.
Belgium
In 1981, the last production of limed bone gelatine was made in the Vilvorde
plant of PB Gelatines. All this production was moved to the acquired plant in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29
Nienburg, Germany. The plant became mainly a pigskin gelatine plant apart
from some remaining acid bovine bone production. Between 1987 and 1993, substantial
investment was made in Vilvorde in the bone-degreasing unit and the gelatine
plant, and the capacity now exceeds 9000 tons/annum. Also, the Ghent
plant of Rousselot (manufacturing mainly pigskin gelatine) was further modernized
and expanded to produce 10 000 tons/annum.
Germany
In 1973, DGF Stoess acquired more than 25% of the shares of the largest bone
collector in Germany, Scheidemandel, to safeguard the raw material supply for future
expansion. At the same time, the site of the Pfeffer plant in Memmingen was
acquired, which had previously been shut down by the authorities. On this site,
the most modern bone degreasing plant in the industry was established, followed,
in 1977, by an acidulation plant. After further purchases of Scheidemandel
shares, their gelatine plant in Minden was integrated by DGF Stoess in 1981 and
completely modernized, and the production portfolio changed from hide to pigskin
gelatine. Together with Scheidemandel, a new raw material collection company,
Rohage, was founded, because, after several shortages in supply, it had become
more and more obvious that a secure raw material supply at reasonable
prices was the most important key to the success of gelatine companies. In
1990, DGF Stoess tried to acquire the Gelatinefabrik Calbe in the former East Germany,
but, because of previous environmental problems with the soil, the negotiations
failed and the plant went into receivership. In 1978, DGF Stoess decided
to expand outside of Germany. It acquired a minority shareholding in the Australian
Davis group and started a 50/50 joint venture with Davis in the USA by acquiring
the old gelatine plant from Wilson in Calumet City and building a brand
new pigskin gelatine plant (Dynagel). Soon, further acquisitions followed – in
1983 in Brazil (Sairsa), in 1991 in Great Britain (Gelatine Products) and Sweden
(Extraco), and in 1992 again in the United States (Kind & Knox). With a worldwide
production of approx. 36 000 tons/annum in 1993, the difference to the
Rousselot group had become insignificant. In 1979, the production of hydrolyzed
gelatine in a separate plant in Eberbach was started. To expand these activities, a
smaller operation for hydrolyzed gelatine was acquired in Finland (Lappro) in
1989, but the growing lack of hide splits in that area during this time forced its
closure in 1998.
After the Schering group had realized that gelatine production did not fit
into their business interests, they sold the plant to PB Gelatines in 1975, and
over time the production portfolio moved more and more from hide gelatine to
bone gelatine.
Great Britain
The Leiner production was continuously increased from approx. 6000 tons/
annum in 1973. In 1979 it was in the region of 8000 tons/annum. Leiner had
tried to make pigskin gelatine for many years because of the high cost of the
imported bone and the growing demand for high grade gelatine of this type.
30 1 Introduction
However, because of poor technical investments, lack of know-how and the
need to import the pigskin, the company encountered financial difficulties and
went into receivership in 1980 despite the fact that the Welsh Development
Agency had earlier invested 2 million pounds in subsidies. The whole international
Leiner group was split into separate pieces and put up for sale. A management
buy-out by five managers followed, Leiner Gelatin was founded, and a further
1 million pounds in subsidies were provided. These, however, disappeared
somehow and were subject to a parliamentary investigation. The whole site was
reduced, with some bone gelatine production remaining, but the next bankruptcy
took place in 1985. At this point, the plant was acquired, and the company became
PB Gelatines UK.
Croda upgraded their plants in Widnes and Luton and implemented a new process
to use chrome shavings from the leather industry to make low-grade gelatine.
With more than 5000 tons/annum being produced, Croda became an important
manufacturer of mainly photographic and pharmaceutical gelatine.
As mentioned before, Rousselot closed their plant in Clifford in 1980 because of
lack of size and some environmental problems.
Gelatine Products had gone through a costly modernization program in the late
1980s and had established itself successfully on the market for edible hide gelatine
in Great Britain. It had previously been in the ownership of a large British
food company which had run into financial problems and was forced to sell off
several of its companies. DGF Stoess took this opportunity to buy the company
and to become, together with the imports of pigskin gelatine from Germany and
Sweden, the leading food gelatine supplier in Great Britain.
Sweden
After the first difficult years, Extraco became a successful manufacturer of high
quality pigskin gelatine and expanded its capacity continuously (in 1987 a quantity
of 5000 tons/annum was reached, in 1989 7000 tons, and in 2001 12 000
tons), but it always had problems getting enough raw material from within short
distances because it did not have its own raw-material-collecting company. After
German reunification, it went into a contract manufacturing agreement with
DGF Stoess under which they got German pigskin and sold the manufactured gelatine
back. This way, a close cooperation started, and when their parent company
(Nobel Industries) was forced for financial reasons to sell Extraco together with 15
other businesses, DGF Stoess acquired them in 1991. The combination with the
raw material organization of DGF Stoess secured their raw material supply for future
expansion.
Italy
At this time, Italgelatine expanded their plant to approx. 3000 tons/annum capacity
and started to use pigskin, as many of the Italian tanneries had been closed by
the authorities because of pollution by their waste water. As a result, hide splits
became in short supply.
1.2 The Development of the Gelatine Industry 31
Spain
In 1975, Pagans was acquired by the Belgian DeSmeet group, one of their equipment
suppliers, as they could not pay their bills. DeSmeet decided to start the
production of pigskin gelatine and to move the plant out of town. In 1986 the
new plant was inaugurated, and in 1991 the business was sold to Rousselot. Also,
Junca started to change away from hide splits to pigskin because the breeding of
pigs increased constantly in Spain and generated additional raw material for the
gelatine industry. Besides this change, Junca also started to make hydrolyzed gelatine
in liquid and spray-dried form.
Eastern Europe
At this time, there were three small plants in Czechoslovakia, of which one,
founded in 1982, was acquired in 1995 by Weishardt and became Gelima. There
were three plants in Poland and one in Romania. In Poland, several attempts
had been made to increase gelatine production by building new plants with state
subsidies, but most of the money mysteriously disappeared, and, after a large corruption
scandal (in the press at least), one of the persons responsible was sent to
prison. Lapi, an Italian manufacturer, invested in the Romanian plant unsuccessfully
and the plant was closed.
Russia
In the 1980s, five plants existed, with a total production of approx. 6000 tons/
annum. However, they never showed up on international markets. The main site
was Kazan, which accounted for 50% and was the center for photographic gelatine
next door to the largest Russian plant for the manufacturing of photographic
films and paper.
United States
In the United States, the business of US Gelatin was bought by Rousselot with the
two production sites in Oak Creek WI and Camden NJ. In 1980, the Camden
plant was closed and the production transferred to Oak Creek, which was also
closed in 1985. Thus, the name US Gelatine disappeared from the market. Further
restructuring took place in the United States. In 1979, Hormel started up a
new gelatine plant in Davenport IA and the Austin MN plant was closed. As
well as standard gelatine, they also started to make hydrolyzed gelatine.
At the same time, Lipton decided to build a new bone gelatine plant, which
started up in 1978, and was directly connected to their pigskin plant in Sioux
City IA. During the 1980s DGF Stoess had tried a few times to convince Lipton
about a joint venture or to sell their business, but without success. However, suddenly,
in 1991, Unilever decided to concentrate on their consumer business and
to sell Kind & Knox, which made mainly gelatine for ‘‘industrial use’’. After an
auction process, which lasted many months, the business was sold to DGF Stoess,
not so much because of the highest offer, but because of the best business concept.
After this acquisition, DGF Stoess became equal in size to Rousselot, with
about an 18% share of the world market.
32 1 Introduction
Canada
In 1990, Canada Packers sold their gelatine plant in Toronto to Nitta, and it was
named Cangel.
Australia/New Zealand/South Africa
In 1983, the Davis holding company was acquired by the food company Fielder
Gillespie and lost its independence. A few years later, the new company was again
taken over by Goodman, and in 1987 Goodman Fielder acquired a 60% stake in
Leiner do Brazil and the company Leiner Davis was formed. The remaining part
of this business was then bought in 1992, including the new Argentinian plant.
In 1991, the Australian plant in the Sydney area had to be closed because of environmental
problems, and a new plant for hide gelatine was built in Queensland
by transferring much of the dismantled equipment. Because of many technical
problems, it took until 1995 for the first production batch to emerge from this
plant.
Japan
In 1974, Nihon-Hikaku became Nippi, and established an affiliated company in
India to produce ossein. Nitta did the same in 1975 by establishing Kerala Chemicals
and Proteins (KCP). In 1978, the glue plant of Koei Chemicals was changed to
gelatine production, with technical and business cooperation with Nitta, which
also sells their gelatine. In 1983, Asahi Gelatine also started to make alkaline gelatine
and, in 1986, collagen powder gelatine. In 1987, a second production line
was added.
In 1988, Takarazuka Gelatin changed its name to Konica Gelatin. Nitta acquired
a gelatine plant in Canada (Cangel) from Canada Packers.
In 1980, the total gelatine production in Japan surpassed 10 000 tons for the
first time, reaching 15 000 tons in 1990.
Mexico
After being mainly a pigskin gelatine producer, Duche´ changed their production
in 1992 for cost reasons to acid hide processing, and finally, in 2002, they started
to manufacture alkaline-treated hide gelatine, which is their main product today.
Brazil
After the bankruptcy of Leiner in Great Britain, the Brazilian operation was taken
over by the management and some investors under the leadership of H. Cobelo.
In 1983, the plant of Inbragel in Estancia Velha in the South of Brazil was
acquired, and in 1985 the new Maringa plant was established. The attempt to produce
bone gelatine in Maceio failed. The plant started up in 1986 and was shut
down in 1989. The Cotia gelatine plant was also closed in 1989, but the Maringa
plant expanded.
In 1983, DGF Stoess expanded to South America and acquired a 50% shareholding
in the Sairsa hide gelatine plant in Mococa, north west of Sao Paulo, an attempt
at a shareholding in Leiner do Brasil some years before having fa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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