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7일 일요일
공자(孔子)의 휴처(休妻) :
공자(孔子)의 휴처(休妻) :
공자(孔子) 부부는 금슬(琴瑟)이 좋은 모범적(模范的)인 부부(夫妇)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는데 사실과 다르다. 휴처(休妻)란? 출처(出妻)라고도 말하는데 아내를 내쫓아냄을 의미한다. 현대의 이혼과 마찬가지이다. 공성인(孔圣人)은 “唯女子与小人难养也”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여자들과 소인(小人)들은 다루기 어렵다." 는 뜻이다. 사서(史书)에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孔子十九岁时娶了宋国的亓官氏为妻,一年后生下儿子孔鲤。在嫁给孔子的48年后,亓官氏去世。" 다시 말하면 "공자(孔子)는 19세시(十九岁时) 그 당시 송(宋) 나라의 올관씨(亓官氏)를 처(妻)로 맞아들여 일 년후에 큰아들 공리(孔鲤)를 낳았다. 48년 후에 올관씨(亓官氏)는 사망하였다." 는 뜻이다. 또 사서(史书)에 “공씨삼세출처(孔氏三世出妻)”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공자 집안의 3세대는 모두 출처하였다.” 는 뜻이다. 이중에는 공자(孔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공자(孔子)의 휴처(休妻)에 관한 이유에 관하여 일설(一說)에 "孔子缘何休妻,有一种说法 是因为妻子'口多言'”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공자가 이혼한 이유 증 하나는 공자의 부인이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는 뜻이다. 고인(古人)들이 휴처(休妻)할 경우 다음과 같은 7 대이유(七大理由)가 있어야 한다. :1. 不顺父母,为其逆德也;2. 无子,为其绝世也;3. 淫,为其乱族也;4. 妒,为其乱家也;5. 有恶疾,为其不可与共粢盛也;6. 口多言,为其离亲也;7. 窃盗,为其反义也。 공자(孔子)는 이상의 일곱 가지 중 한 가지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孔子)의 정확한 휴처(休妻) 이유는 사서에 기재(记载)되어 있지않다.
《예기(礼记)》에 공자의 부인 올관씨(亓官氏) 사후(死后)의 정경(情景)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있다. :“伯鱼之母死,期而犹哭. 夫子闻之曰:“谁与哭者?”门人曰:“鲤也。” 夫子曰:“嘻!其甚也!” 伯鱼闻之,遂除之。伯鱼,即孔子的儿子孔鲤,在丧期后还哭死去的母亲,孔子听到了就很不高兴地说:太过分了." 다시 말하면 "백어의 모친이 사망하여 울음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어떤 문상객이 ”지금 울고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 말을 들었다. 문지기는 ’리(鯉)‘ 입니다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그래! 심히 슬프겠지!“ 라고 말했다. 백어(伯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들은척 하지 않았다. 백어(伯鱼)는 공자의 아들 공리(孔鲤)인데 모친상(母親喪)을 지낸 후에도 돌아가신 모친을 생각하며 계속울었다. 공자(孔子)는 자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마음이 괴로워 ’지나치구나! 라고 말했다.“ 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전처(前妻)와 이혼한 이유는 감정(感情)이 서로 통하지 않은것이며 심지어 혐오감(嫌恶感) 마저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자의 아들은 물론 공자의 손자(孙子) 까지 공자의 전통(传统)을 이어받아 모두 본처(本妻)와 이혼하였다. 공자가 휴처(休妻)의 상(喪)을 치루어 준 이유는 이혼을 하였기 때문에 처(妻)는 아니지만 당연히 아들의 모친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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