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용천약리(涌泉跃鲤)

용천약리(涌泉跃鲤)

동한(東漢) 때 사천성 광한(廣漢)에 강시(姜詩)라고 불리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강시는 방씨(龐氏) 부인과 결혼하였다.

강시의 부인도 효성이 지극하였다.

강씨 부인은 장강 까지 6, 7 리(里)를 걸어가서 물을 길어다 시어머니에게 드렸다. 왜냐하면 시어머니는 장강의 물을 매우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물고기 생선을 좋아하므로 부부는 장강에 가서 낚시질을 하여 생선을 잡아다가 어머니께 바쳤다.

시어머니는 물고기를 혼자 먹기 싫어하여 이웃에 살고 있는 노인들을 불러 함께 먹었다.

어느 날 태풍이 불어 방씨 부인은 물을 길러 갔다가 집에 늦게 돌아왔다.

남편은 부인의 태만을 꾸짖고 내좇았다.

방씨 부인은 옆집으로 가서 기거하며 밤낮으로 베를 짜서 시어머니께 바쳤다.

그후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집에서 좇겨 난 것을 알고 자기 아들에게 즉시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 들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방씨 부인이 집에 들어오자 마자 마당에서 샘물이 솟아 올라왔다.

물맛은 장강의 물 맛과 똑같았다. 또 샘물 속에서 매일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 올라왔다.

이때 부터 방씨는 장강 까지 먼길을 걸어가서 물을 길어 올 필요가 없었으며 시어머니를 훨씬 더 편하게 모실 수 있었다.

이상의 고사는 24 효(孝) 중 용천약리(涌泉跃鲤)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事母至孝;妻氏,奉姑尤。母性好江水,去舍六七里,妻出汲以奉之;又嗜鱼脍[kuai],夫常作;又不能食,召母共食。舍忽有涌泉,味如江水,日跃双鲤,取以供。
甘泉出,一朝鲤鱼
子能事其母,更孝于姑。
东汉四川广人,娶妻。夫妻孝,其家距江六七里之氏常到江取婆婆喜喝的江水。婆婆,夫妻就常做鱼给她吃,婆婆不愿意自吃,他请来邻居老婆婆一起吃。一次因大,氏取水晚归,姜诗怀怠慢母将她逐出家氏寄居在居家中,夜辛勤纺纱织布,将积蓄所得托居送回家中孝敬婆婆。其后,婆婆知道了氏被逐之事,令姜诗将回。氏回家天,院中忽然涌出泉水,口味与长江水相同,每天两条鲤鱼跃出。此,氏便用些供奉婆婆,不必走江了。"

목각사친(刻木事亲)

목각사친(刻木事)
동한(東漢) 시대 하내(: 현재 河南 黃河 北)에 정난()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려서 양친 부모를 잃었다. 정난()은 항상 부모님이 자기를 길러준 은혜에 감사하였다.
그리하여 정난()은 나무로 부모님의 실물과 똑같이 조각하여 방안에 모셔놓고 무슨일이든지 목각과 상의하였다.
매일 삼시 세끼를 부모님께 먼저 드리고 난 후에 자기가 나중에 먹었다. 밖에 나들이 갈 때는 먼저 부모님께 알리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고 인사드렸다.
그러나 정난()의 부인은 목각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부인은 목각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렀다. 목각의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정난()이 집에 돌아와 목각을 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인에게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어서 그 이유를 알았다.
그래서 정난()은 즉시 부인과 이혼하였다.
이상의 고사는 24() 중 목각사친(刻木事)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幼父母,未得奉,而思念劬[qu]之因,刻木像,事之如生。其妻久而不敬,以针戏刺其指,血出。木像见兰,眼中垂兰问得其情,遂妻弃之。
刻木父母,形容在日
寄言子侄,各要孝亲闱
,相传为东汉时期河(今河南河北)人,幼年父母亡,他常思念父母的育之恩,于是用木刻成双亲的雕像,事之如生,凡事均和木像商,每日三餐敬过双亲后自己方才食用,出前一定禀告,回家后一定面不懈怠。久之,其妻木像便不太恭敬了,竟好奇地用刺木像的手指,而木像的手指居然有血流出。丁回家木像眼中垂情,遂妻子休弃。"

녹유봉친(鹿乳供亲)

녹유봉친(鹿乳供)
주담자(周剡子)는 춘추시대 사람으로써 효성이 지극하였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부모님이 연로하여 안질이 생겼다.
주담자(周剡子)는 사슴의 젖을 복용시켜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담자(周剡子)는 사슴의 가죽을 둘러쓰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슴의 무리속으로 끼어 들어가서 사슴의 젖을 짜서 병속에 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어느 날 주담자(周剡子)는 사슴의 젖을 짜러 또 산속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사냥꾼이 자기를 조준하여 사살하려고 하였다.
주담자(周剡子)는 즉시 사슴 가죽을 훌떡 벗어 버리고 일어서며 내가 사슴의 젖을 짜서 부모님을 봉양하려고 합니다.” 고 포수에게 말했다.
사냥꾼은 주담자(周剡子)의 효심에 감복하고 사슴의 젖을 함께 짜서 주담자(周剡子)를 데리고 산속에서 무사히 나왔다.
이상의 고사는 24 효(孝) 중 녹유봉친( 鹿乳奉)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周剡子,性至孝。父母年老,俱患眼,思食鹿乳。剡子乃衣鹿皮,去深山,入鹿群之中,取鹿乳供而欲射之。剡子具以情告,以免。
老思鹿乳,身挂褐毛衣。
若不高声语,山中
郯子春秋期人。父母年老,患眼疾,需鹿乳治。他便披鹿皮入深山,钻进鹿群中,取鹿乳,供奉双亲。一次取乳,看见猎人正要射一只麂鹿,郯子急忙掀起鹿皮身走出,将挤取鹿乳为双亲医病的情告知人,人敬他孝,以鹿乳相送他出山."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왕양명(王陽明 )의 환생(還生)

() 나라 때 왕양명(王陽明 : 서기 1473 서기 1529 )은 대철학가였으며 이름은 수인(守人)이고 자()는 백안(伯安)이며 호()는 양명(陽明)이다. 절강성 여요(餘姚縣 : 지금 紹興) 사람이다.

왕양명은 처음엔 불교에 몰두하다가 35세부터 유교에 몰두하였다. 저서에 왕문성공전집(王文成公全集)과전습록(傳習錄)이 있다.

왕양명은 학문이 심오하고 덕망이 있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왕양명이 50세 되던 해 강소성 진강(鎭江)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를 참관(參觀)했다. 금산사에 며칠 묵고 있었다.

그 당시 금산사의 법사(法師)는 왕양명의 시중을 들어 주었다.

법사는 왕양명에게 절안에 있는 모든 건물 안에 대부부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으나 오직 한 군데 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50년 전에 그 방에 살던 노화상이 그 방안에서 원적(圓寂)하였기 때문이며 그 노화상의 육신이 지금까지 썩지않고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대로 그 노화상의 육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고 설명했다.

왕양명은 법사의 말을 듣고나서 더욱 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왕양명은 법사에게 애걸복걸 하며 그 방안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법사는 왕선생의 학문과 도덕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편의를 도모하여 방문을 열고 구경하라고 허락하였다.

왕양명이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노화상은 50 년 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스님들이 좌선할 때 깔고 앉는 부들 방석위에 단정하게 앉아서 편안하게 죽었다.

왕양명이 노화상의 얼굴을 쳐다보니 과거에 알고 지냈던 사람의 얼굴 처럼 낮이 익었다. 머리를 쳐들어 벽을 쳐다보니 50년 전 원적시에 써놓은 다음과 같은 시()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오십년후왕양명(五十年後王陽明), 개문유시폐문인(開門猶是閉門人),
정령거후환귀복(精靈去後還歸復), 시신선문불괴신(始信禪門不壞身).”

다시 말하면 ”50년 후에 왕양명이 이 방문을 열것인데 그 사람은 바로 50년 전에 이 방문을 닫은 사람이다. 정령이 떠난 후 다시 복귀하였다. 처음에 부처님을 열심히 믿었기에 육체가 썩지 않았음이라!” 는 뜻이다.

노화상은 현재, 과거,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다. 일찍이 50 년 후의 일도 알고 있었으며 노화상 자신의 영혼이 모태 속에 들어가 왕양명으로 환생하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노화상이 죽은지 50 년 후에 왕양명이 이 문을 열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50 년 후에 이 방문을 여는 사람이 바로 50년 전에 이 문을 닫고 죽은 사람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노화상의 시()는 정령이 다시 복귀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영혼이 신체를 떠난 후 다시 복귀되었다. 노화상은 죽은지 50 년 후에 자신의 전세의 육신을 보게된 것이다. 왜냐하면 노화상은 전세에 수행을 잘한 결과 래세에 왕양명으로 환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세에 왕양명으로 환생하였으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만일 노화상이 살아 생전에 소원하고 부처님께 소망을 빌고 염불하고 독경하고 극락세계를 구했더라면 노화상의 수행으로 인하여 내세에 윤회를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며 다시 왕양명으로 환생하지 않했을 것이다. 이상의 역사 고사는 후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대의멸친(大義滅親)

대의멸친(大義滅親)
석작(石碏)은 춘추시대 위() 나라의 대신(大臣)이었다.
위 나라 장공(庄公)의 애첩에서 태어난 아들 주우(州吁)는 무술을 좋아하였으며 장공(庄公)의 총애를 받고 자랐다. 주우(州吁)는 제멋대로 자란 아이였다.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간언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우(州吁)와 석작(石碏)의 아들 석후(石厚)는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로써 매우 친한 친구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우(州吁)는 석후(石厚)의 말을 전혀 듣지않고 결국 위환공 16 (서기 전 719 )에 주우는 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에 올랐다.
대신들과 백성들의 불만이 컸다. 그래서 석후(石厚)는 자기 아버지 석작에게 정국의 안정을 찾을 길을 알려 달라고 간청하였다.
석작(石碏)은 아들에게 거짓으로 주우(州吁)를 모시고 주나라 천자를 참배하러 가라고 부탁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모든 제후국들은 주나라의 영향력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석작(石碏)은 자기 아들 석후(石厚)와 주우(州吁)가 주나라 천자를 참배하러 가기 위하여 진() 나라를 통과할 때 진나라 군사들에 청하여 두 사람을 모두 가두어 놓으라고 부탁하였다.
석작(石碏)은 신하를 파견하여 주우(州吁)는 복( : 현재 安徽省 毫縣의 동남쪽)에서 죽이고 자기의 친아들은 진나라에서 죽였다.
그 당시 석작은 대의멸친(大義滅親)하였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국가의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부모형제를 돌보지 않은다.” 는 뜻이다.
춘추시대 (春秋) 사학가() 좌구명(左丘明)은 석작(石碏)에 대하여: 石碏灭亲真纯臣也!라고 기록해 놓았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대의를 위하여 친 아들을 살해한 석작이야 말로 진실한 신하였다.” 는 뜻이다.
서주(西周: 서기 전1088서기 전 771) 초년 주무왕(姬發) 때 대분봉(大分封)이 실시되었다. 그때 주무왕은 자기 친 동생 강숙(姬封)을 위()에봉했다. 위나라의 도읍은 조가(朝歌 : 현재 하남성 (河南省) 기현() 西南)였다.
강숙의6세손위정백(衛靖伯)의 손자 공손작(公孫碏: ()는 석())이 있었는데 석작이라고도 불렀다.
공손자란? 성씨가 공손이 아니라 손자라는 뜻이며 공손자의 원래 이름은 희작(姬碏)이다.
석작(石碏)은 석씨(石氏)의 시조이다.
위 나라의 장공의 애첩 소생 주우는 무술을 좋아하였고 싸움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장공은 주우를 장군에 임명하였다.
석작(石碏)은 장공에게 서자(庶子)가 호전적이고 병권(兵權)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장차 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간언하였으나 장공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장공이 죽고 난 후 태자 완()이 왕위를 계승하여 환공(桓公)이 되었다. 환공이 왕위에 오른 그 다음해에 주우가 너무나 거만하고 횡포하며 사치가 심하여 대신들의 불평이 많아서 장군 직위를 박탈해 버렸다.
그 결과 주우(州吁)는 다른 이웃 제후국으로 도주해 버렸다.
10여 년 후 주우(州吁)는 군대를 이끌고 몰래 위국으로 잠입하였다. 주우(州吁)는 자기의 심복 석후와 밀모한 후 주() 나라 항왕(恒王) 원년(元年 : 서기 전 719 ) 1 차 연회 석상에서 위나라 환공을 살해나고 나서 스스로 위나라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석후(石厚)의 아버지 석작(石碏)을 사대부(士大夫)의 자리에 위임시켰다.
주우(州吁)가 불법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대신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주우(州吁)는 자기 심복 석후(石厚)를 석작(石碏)에게 보내어 자문을 청했다.
석작(石碏)은 거짓으로 만일 주우(州吁)가 자기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천자(周天子)를 접견해야 한다.” 고 말했다.
석후(石厚)는 아버지에게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천자 접견이 가능하겠습니까?” 고 물었다.
살해 당한 위환공(衛桓公)의 어머니가 진나라 사람이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위환공의 살해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다. 그래서 주우(州吁)를 없애 버리는 일은 아주 쉬울 것으로 상상하였다.
그리하여 석작(石碏)은 자기 아들 석후(石厚)에게 현재 진왕과 주천자는 친분이 매우 두터운 사이이다. 위국과의 관계는 매우 좋으니 염려할 것 없다. 만일 주우(州吁)가 친히 진나라를 방문할 경우 진나라와 위나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을 주천왕이 알게 됨으로써 주천자와의 접견은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 고 말했다.
주우(州吁)는 석작(石碏)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후 석후(石厚)에게 진귀한 예물을 준비하여 진나라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라고 명했다.
그래서 석작(石碏)은 몰래 사신을 진나라에 파견함과 동시에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나라는 약소국가이고 나는 이제 늙어서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주우(州吁)와 석후(石厚)는 위나라 환공을 죽인 살인범입니다. 며칠 후 진나라를 방문할 것인데 즉시 체포하십시요.”
주우(州吁)와 석후(石厚)가 진나라에 도착되었다. 진환공은 즉시 그들을 체포하였다. 얼마 후에 위나라에서 파견된 살수에 의하여 주우(州吁)는 살해되었다.
진나라에서는 석작(石碏)에게 석후(石厚)는 당신의 친자식이므로 살려 주어야 겠다고 말했다.
석작(石碏)은 단호히 거절하고 신하 유양견(孺羊肩)을 파견하여 자기 친 아들 석후(石厚)을 살해하게 하였다.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Bilva(Aegle Marmelos)

Bilva(Aegle Marmelos)

1. 빌바의 잎으로 주스를 만들어 눈에 발라 주거나 신선한 잎사귀를 짛이겨 눈꺼풀 위에 발라주면 눈병이 치료된다.

2. 옆구리 갈비벼 부근이 붓고 통증이 있을 경우 빌바의 잎으로 찜질을 해주면 치료된다.

3. 빌바의 잎은 수종과 통증을 치료해준다.

4. 빌바의 뿌리는 심계(心悸 : Palpitation)를 치료해 주고 자궁염을 치료해 주며 대하를 치료해 주고 불면증과 전간병과 신경쇠약을 치료해 준다.

5. 덜 익은 과일은 지혈 작용이 있고 잘 익은 과일은 변비를 치료해 준다.
6. 잘 익은 과일로 Sherbet을 만들어 마시면 소화를 돕고 설사를 멈추게 해준다.
7. 빌바의 잎사귀로 즙을 만들어 후추 가루와 섞어 마시면 황달이 치료된다.
8. 빌바의 과실은 콜레라를 예방해 주고 폐결핵을 치료해 준다.
9. 빌바는 치질의 치료에 사용된다.
10. 빌바의 잎은 부비강염(Sinusitis)과 소화불량(Dyspepsia)의 치료에 사용한다.
11. 빌바의 잎은 혈당을 조절해 주고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경감시켜 주므로므로 당뇨병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12. 빌바의 과실과 잎사귀로 만든 가루는 하루에 3g 내지 6g 을 사용하면 좋고 주스를 만들어 마실 경우엔 하루에 10ml 내지 20ml 를 복용하면 된다.


빌바의 과실을 가루내어 복용하면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고 소장과 대장의 연동 운동 부조화로 인하여 발생하는IBS(Irritable Bowel Syndrome) 와 대장염(colitis)을 치료해 준다.

아율베다(Ayulveda) 의학에서는 대부분의 질병은 소화기관에서 시작한다고 믿고 있다.

빌바(Bilva)란?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 는 의미를 갖고 있다.

빌바는 Bael 또는 Stone Apple 등의 별명을 갖고 있으며 키는 20m나 되는 키가 대단히 큰 나무이며 인도 원산인데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월남, 라오스, 태국, 필립핀, 피지 등에서 생산된다.

껍질의 색깔은 초록색, 회색, 노랑색 등이고 완전히 익는데 걸리는 시간은 11 개월이다.

사이즈는 그레이프푸뤁(Grapefruit)이나 한국산 배 만큼 크다.

Stone Apple(쇳덩이 사과)이 말해 주는 것 처럼 껍질이 매우 단단하여 망치로 때리거나 큰 칼로 잘라야 한다. 빌바의 과일이 열리기 시작하여 완전 성숙할 때 까지 과일이 너무 크고 단단하고 나무의 키가20m나 되기 때문에 나무 꼭대기에 있는 과일이 덜어질 경우 사람의 머리에 맞으면 뇌진탕이 걸리므로 특별히 조심해야 되며 아이들은 나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한다.

레몬이나 오렌지의 껍질로 만든 쨈 맛이 나고 장미 냄새가 난다. 털이 달린 씨가 끈적 끈적한 점액 속에 들어 있다. 주스를 짜서 마시기도 하는데 레몬네이드와 비슷하다.

한 개의 빌바로 5 리터 내지 6 리터의 서벗(Sherbet)을 만들어 마실수 있다. 잎사귀는 살라드로 만들어 먹는다.

네팔(Nepal)에서는 처녀들이 빌바의 과일과 간단한 결혼 의식을 거행하는 풍습이 있는데 빌바의 과실을 잘 보관해 두고 깨뜨리지 않으면 처녀가 결혼 한 후 남편이 먼저 죽어도 과부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이 풍습은 과부들이 네팔에서 사회적으로 냉대와 멸시를 당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고 믿고 있다.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Sarvia

Sarvia Eternal Root, White Sariva 등 여러 가지 별명이 있으며 Ayurveda 의학에서는 sugandi 라고 칭한다.

생장 속도가 매우 빠른 덩쿨식물이다. 일년 내내 옅은 초록색 꽃을 피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등 남부 아시아에서 생장한다. 위장 질병의 치료와 발진과 매독을 치료해 주고 깊은 명상으로 몰입하게 해주며 불면증도 치료해 준다.

아율베다(Ayurveda) 의사들은 Sarvia 를 성불감증과 양위(Impotence)의 치료에 사용한다.

Sarvia 의 뿌리 속에 함유되어 있는 어떤 성분은 남성들의 테스토스테론의 레벨을 향상시켜 준다. 그로므로 성감을 높여주고 정자의 수를 증가시켜 주며 정력을 증강시켜 준다.

힌두 사람들은 Sarvia 의 뿌리를 피속의 독소를 제거시키는 약으로 사용하고 요도염과 발진 증상을 치료해 주며 열도 내려주고 여드름 치료에 사용한다. 여성들은 유산을 예방하고 회임을 돕는 약으로 뿌리를 사용한다.

Sarvia 의 뿌리를 채취하여 깨끗이 씻어 말려서 가루낸다. 적당량의 가루를 끓는 물속에 담그어 두었다가 차 대신 마신다.

간단한 처방은 다음과 같다.

60g 의 뿌리를 끓는 물속에 넣고 한 시간 동안 끓인다. 그 국물을 24 시간 내에 모두 몇 차례 나누어 복용한다. 끓이는 동안에 어떤 성분은 파괴되므로 끓는 물을 부어 우려내서 마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인도의 종속들은 신선한 뿌리를 캐어내자 마자 즙을 내어 마시기도 한다.

현재 뿌리의 가루를 캡슐 속에 넣어 판매하기도 한다. 뿌리의 일일 복용량은 5g 이다.

Sarvia 는 항염 작용, 이뇨 작용, 유산방지 작용, 회임율 향상 작용, 매독 치료 작용, 외상 치료 작용, 불면증 치료 작용, 진정 작용 등이 있으므로 관절염과 기관지 천식과 기관지염과 간질병과 고혈압과 면역성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또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데 괄목할 만한 효과가 있다고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