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4일 토요일

백일홍(百日紅)

백일홍(百日紅)



노학엄필기(老學奄筆記)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가 실려 있다.



”명주사묘리(明州寺廟里), 주착일개명규지행적궁화상(住着一個名叫持行的窮和尙), 만복경륜(滿腹經綸). 유일년(有一年), 과춘절료(過春節了), 타간착별가인도재매저매나(他看着別家人都在買這買那), 자기야상외출매점동소(自己也想外出買点東西), 가구대몰유일문전(可口袋沒有一文錢), 불금탄식(不禁嘆息). 타망견정전재종적나일과광활적자미수(他望見庭前栽種的那一棵光滑的紫薇樹), 촉경생정(觸景生情), 사시자조도(寫詩自嘲道) : ”대수대피리(大樹大皮裏), 소수소피전(小樹小皮纏), 무피야과년(無皮也過年).”



다시 말하면 ”명주의 어느 절에 학식이 풍부한 가난한 스님이 한 분 있었다. 어느 해 봄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것 저것 사들인다. 가난한 스님도 시장에 나가 무엇을 좀 사오려고 생각했다. 호주머니를 만져보니 무일푼이다. 스님은 탄식했다. 스님은 정원에 심어 놓은 반질 반질한 백일홍 한 그루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백일홍을 어루 만지며 시상이 떠올라 스스로 자신을 조소하는 시를 읊었다. ”큰 나무들은 두꺼운 껍질이 있고 작은 나무들도 얇은 껍질로 둘러 싸여 있건 만 뜰앞에 심어 놓은 백일홍은 해가 묵었음에도 발가벗고 있구나!” 는 뜻이다.



스님은 자신을 백일홍과 견주어 비슷함을 발견하였다. 명주는 현재 절강성(浙江省)영파(寧波)이다.



고대 부터 중국에서는 하늘에 있는 자미성(紫薇星)은 황제의 보좌(寶座)라고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래서 황제 만을 돌보는 관원은 자미성(紫薇省)의 관료이며 자미랑(紫薇郞)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자미관사(紫薇官舍)의 앞뒤로 자미수(紫薇樹)를 심어 놓았다.



당서(唐書)-백관지(百官志)에 보면 ”개원원년(713 년)개중서성위자미성(開元元年(713年)改中書省爲紫薇省), 중서령위자미령(中書令爲紫薇令).”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당(唐) 나라 제 10 대왕 현종(玄宗) 개원 원년에 중서성을 자미성이라고 개명했다. 그리고 중서령(中書令)을 자미령(紫薇令)이라고 바꾸어 불렀다.” 는 뜻이다.



중서성(中書省)은 중앙 삼성(三省)의 하나이다. 이때 부터 자미는 중서령(丞相)과 중서시랑(中書侍郞) 등의 대명사가 되었다.



백거이(白居易)의 자미화(紫薇花)란 시(詩) 속에 보면 ”자미화대자미옹(紫薇花對紫薇翁), 명목유동모부동(名目誰同貌不同).” 이라고 시를 읊었다.



다시 말하면 ”자미화는 자미옹을 일컫는데 비록 이름은 같으나 용모는 다르다.” 는 뜻이다.



현재 자미수는 정원수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옅은 보라색 꽃에 초록색 꽃잎을 지닌 취미(翠薇)와 유백색(乳白色) 꽃에 담녹색(淡綠色) 꽃잎을 가진 은미(銀薇)와 도홍색(桃紅色) 꽃을 피우는 홍미(紅薇) 등 여러 가지 품종이 있다.



자미수의 특징 중 하나는 무피(無皮)와 파양(怕痒)이다. 자미수는 매년 겉껍질을 만들어 내지 만 껍질은 스스로 떨어져 버린다. 껍질이 떨어진 후 나무가지는 빛이나고 신선하게 보이며 매끄럽다.



수령(樹齡)이 많은 자미수는 더 이상 겉껍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나무의 근맥(筋脈)이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자미수를 후자탈(猴刺脫)이라고 칭한다.



후자탈(猴刺脫)이란?



원숭이들의 건드림으로 부터 벗어났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무의 겉이 매끄럽고 윤이나기 때문에 원숭이들이 나무를 쳐다 만 보고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미수의 또 하나의 특징은 파양(怕痒)이다. 가려움을 탄다는 뜻인데 자미수의 외부 자극에 대한 생리반응이다. 사람들이 자미수의 나무 가지나 꽃이나 잎을 손으로 어루만지거나 쓰다듬을 경우 흔들거린다. 그래서 파양수(怕痒樹) 또는 양양화(痒痒花)란 이름을 얻었다. 자미수 나무 가지는 매끄럽고 섬세하며 미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건드려도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미화는 관상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수 천년 전 부터 황궁(皇宮) 안에 심기 시작했다. 운남성(雲南省) 곤명시(昆明市) 태화사(太和寺) 내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자미수는 명(明) 나라 제 13 대왕 신종(神宗) 만력(萬曆) 연간에 심은 것으로써 수령(樹齡)이 430여 년이 넘은 고목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또 섬서성 면현(勉縣) 정군산(定軍山)의 무후묘(武候墓) 뒤에있는 침궁(寢宮) 옆에 서있는 자미수는 수령 500년이 넘었다. 자미화의 화기(花期)는 보통 3, 4 개월이나 긴 것은 5, 6 개월이다. 그래서 백일홍이란 이름을 얻었다. 자미수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쇠약해서 여위어 뼈가 드러난 것 처럼 생겼다. 그리고 순수하면서 고풍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다.



고인들은 호자(虎刺)와 구기(枸杞)와 두견(杜鵑)과 모과(木瓜)와 석매(臘梅)와 문죽(文竹)과 산다(山茶)와 석류(石榴)와 취백(翠白)과 길경(吉慶)과 매(梅)와 도(桃)와 문월설(文月雪)과 나한송(羅漢松)과 봉미죽(鳳尾竹)과 치자(梔子)와 서부해당(西部海棠)과 더불어 자미수를 “분재(盆栽)의 십팔학사(十八學士)” 라고 칭했다.



송(宋) 나라 때 시인 양만리(揚萬里)는 다음과 같이 시(詩)를 읊었다.



”사치여취약환가(似痴如醉弱還佳), 로압풍기분외사(露壓風欺分外斜).

수도화무백일홍(誰道花無百日紅), 자미상방반년화(紫薇常放半年花)!”



다시 말하면 ”바보 처럼 술에 취한듯 흐느적 거리다가도 원상태로 되돌아와 아름다움을 되찾고 모진 바람이 불어 괴롭힐 땐 한 쪽으로 기울이네! 누가 화무백일홍이라고 말 했던가? 자미는 반년 동안 아름다운 꽃을 피우네!” 란 뜻이다.



양만리는 이 시 속에서 자미화가 오랫동안 꽃을 피운다는 것과 적응성이 강하다는 것과 자미수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잘 묘사해 놓았다.



자미화의 성미(性味)는 한(寒), 산(酸), 미고(微苦)이고 활혈(活血), 지혈(止血), 해독(解毒), 소종(消腫) 작용이 있다. 그러므로 산후혈붕부지(産後血崩不止)와 객혈과 변혈과 각종 출혈증상을 치료해 주며 습진과 개나(疥癩)와 선창(癬瘡)과 유선염과 간염과 간경화와 복수 등을 치료해 준다.



현대 약리 분석 결과 자미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알칼로이드 성분은 유행성 감기 바이러스와 병독의 억제 작용이 있다고 나타났다.



자미화 30g 을 180cc 의 물속에 집어 넣고 물이 80cc 가 될때 까지 끓여서 매차 30g 내지 40g 씩 하루에 두 세 차례 복용하면 객혈, 토혈, 변혈이 치료된다.



자미화의 뿌리 역시 약용하며 옹저와 창독과 치통과 이질 등을 치료해 준다.



또 자미근(紫薇根) 30g 과 비파수근피(枇杷樹根皮) 30g 과 신선한 백급 5g 과 속단 5g 과 단자연동(煅自然銅) 9g 을 모두 가루내어 하루 두 차례 매차 3g 씩 따뜻한 물로 복용하고 남사등(南蛇藤)과 토우슬(土牛膝)을 짛이겨 골절 부위에 발라주고 판자로 고정시켜 주면 골절이 치유된다.



이질의 치료에는 자미근을 수전복하면 치료된다.



치통의 치료에는 자미근과 달걀을 함께 삶아서 달걀도 먹고 국물도 마시면 지통된다.



편두통의 치료에는 자미근 30g 과 돼지고기 60g 을 함께 삶아 먹으면 치료된다.



급성황달형 간염의 치료에는 자미근 15g 과 자미엽 15g 을 수전복한다.



자미엽 속에 들어있는 각종 알칼로이드는 습진과 이질과 출혈증상을 치료해 줌과 동시에 백후간균과 백색염주균을 사멸시킨다.



씨 속에는 마취 성분이 들어있고 수피(樹皮)는 일종의 흥분제 역할을 해주며 해열작용도 있다.



창상출혈 : 자미엽 30g 과 남과근(南瓜根) 30g 과 유월동(六月凍) 30g 과 철발탄(鐵發炭) 4.5g 을 모두 가루내어 환처에 발라주면 치료된다.



습진 : 자미엽 30g 을 삶은 물로 환처를 씻어주고 짛이겨 환처에 부쳐두면 치료된다.



자미수는 Sulfur Dioxide 와 Hydrogen Fluoride 와 Chlorine 을 배독시켜 주는 작용이 있다. 그외 각종 유독 가스 흡착율이 강하다. 과학자들은 자미수엽 1kg 은 10g 의 유독가스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므로 자미수는 녹화와 미화와 오염을 방지해 주는 나무이다. 그래서 일본과 구미 각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미수 재배를 장려하고 있다. 녹화 사업의 일환으로 자미수 재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2011년 5월 11일 수요일

복건성(福建省) 하포(霞浦)의 전복 양식(養殖)

복건성(福建省) 하포(霞浦)의 전복 양식(養殖)



석결명(石決明)은 전복(全鰒 : Abalon)의 껍질이다. 성미(性味)는 한(寒), 함(鹹)이고 평간잠양(平肝潛陽), 청간명목(淸肝明目), 안신중진(安神重鎭) 작용이 있다. 천연 수면약은 지상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속에도 있다.



중국의 절강성 밑에 있는 복건성(福建省)은 중국내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성(省)이다. 해안선의 직선 거리는 500km 쯤 되는데 만곡이 심하여 전체 거리는 직선 거리의 6 배가 넘는 3000km 이상 된다. 그중에서도 해안선이 아주 복잡한 곳이 하포(霞浦)이다.



하포는 복건성(福建省) 내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현(縣)이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곳곳에 수 많은 해산물 양식장이 있다. 해안선이 움푹 들어간 곳에 양식장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와도 걱정없다. 양식장 주위에 크고 작은 배들이 눈에 띄는데 그 배들은 대부분 양식장 주인의 집이나 마찬가지이다.



양식하는 해산물의 종류는 500여 종에 달한다. 바닷물 밑을 자세히 살펴보면 검정색 상자들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전복을 양식하는 상자이다. 양식장에서 나오는 전복은 육질이 매우 양호하며 맛이 좋다.



전복은 다시마와 미역을 먹고 산다. 다른 식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복 양식장 부근에 반드시 다시마와 미역 양식장을 곁들여 놓아야 매일 신선한 다시마를 전복들에게 먹일 수 있다.



전복 양식자들은 전복이 들어있는 검정 대바구니를 사흘에 한 차례 물속에서 끌어 올려 전복들에게 다시마나 미역을 먹인다. 전복 양식자들 중에는 보통 3000여 개의 상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전복이 가장 좋아하는 물의 온도는 섭씨 8 도 에서 섭씨 24 도 사이이다. 4 월 말 쯤에 복건성(福建省) 하포(霞浦)에서 산동성 까지 이사를 가야 된다. 왜냐하면 전복들이 가장 좋아하는 물의 온도를 맞춰주기 위해서다. 5 월 초 부터 산동성 바닷속의 물의 온도가 서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 겨울에는 산동성의 물의 온도가 내려감으로 또 다시 복건성(福建省) 하포(霞浦)로 이사를 와야한다. 이런식으로 네차례 이사를 하고 나면 전복은 완전 성숙한다.



하포(霞浦)의 해안선의 길이는 404km 이며 하포(霞浦)는 다시마와 김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복을 좋아한다. 전복은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자보(滋補)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복의 껍질을 석결명(石決明)이라고 부르고 고혈압과 두통과 두훈을 치료해 주고 눈을 밝혀준다. 단 비위허한(脾胃虛寒)과 소화불량이 있는 사람은 신용한다. 석결명(石決明)은 안신중진(安神重鎭) 작용이 있기 때문에 불면증과 심번(心煩)과 이노(易怒)와 고구(苦口) 등 증상을 치료해 준다. 간화상항(肝火上亢)으로 인하여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석결명(石決明)과 저뇌(猪腦)와 천마(天麻)를 함께 끓여 복용하면 평간잠양(平肝潛陽) 효과가 있어 불면증이 치료된다.

2011년 5월 10일 화요일

운남성(雲南省) 홍화(紅花)

운남성(雲南省) 홍화(紅花)



홍화(紅花)의 입약(入藥) 부분은 화판(花瓣 : 꽃잎)이다. 성미(性味)는 온(溫), 신(辛), 고(苦)이고 활혈통경(活血通經)해 주고 산어지통(散瘀止痛)해 준다. 내복 할 경우 3g 내지 10g 이며 외용도 한다.



임부는 사용하지 못하고 월경량 과다(過多)한 사람과 궤양병이나 출혈성 질환이 있는 사람도 신용(愼用)해야 된다.



홍화(紅花)는 입술과 얼굴에 바르는 연지(胭脂)를 만드는데 사용하는데 천연 취출물이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없고 피부를 보호해 주는 미용 역할도 한다.



홍화(紅花)는 자연 환경이 아름다운 운남성과 같은 고원지대에서 잘 자란다. 운남성에는 1600여 종에 달하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중 대리주(大理州) 외산현(巍山縣)은 홍화(紅花)의 주산지로 이름이 나 있다.



외산현(巍山縣)은 곤명(昆明)의 서쪽 24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해발 평균 2000m 가 넘는 고원지대이며 기후가 건조하고 일조 시간이 길어서 홍화의 생장 조건에 적합하다. 외산현(巍山縣)은 대리(大理)의 영기(靈氣)가 서려있고 지금도 순수하고 고풍스러운 시골이다.



특히 청화향(靑華鄕)은 홍화를 비롯한 모든 농산물과 생활필수품의 집산지이다. 이곳 농민들은 날짜를 말할 때 1,2,3,4 대신에 12 생초(生肖: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자(子) 일(日), 내일은 축(丑) 일(日) 등으로 말한다.



그리고 매 6 일 마다 장(場)이 선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 농민들은 주로 물물교환의 전통적인 경제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에 가보면 인산인해를 이루고 길거리가 매우 번화하며 왁자지껄하고 벅적 벅적하다. 장터를 서성대다 보면 일 천년 쯤 뒤로 물러가서 사는 느낌이 든다. 가축들과 들짐승들을 잡아다가 팔기 때문에 그들이 내는 소리 또한 시끄럽다.



길거리에서 쥐약도 팔고 의복은 물론 유기농 한약도 살수 있어서 좋다. 산에서 직접 채취하여 시장에 팔러 나왔기 때문에 감초에도 흙이 많이 묻어있다.



운(雲) 자(字)와 전(滇) 자(字)가 첫 머리에 붙어있는 한약은 대부분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한약들이다.



운령(雲령), 운남근(雲南根), 운토(雲土), 운연(雲烟), 운고지(雲故紙), 운우슬(雲牛膝), 전초구(滇草蔻), 운서자(雲鼠刺), 운남감초, 운오동(雲梧桐), 운황단(雲黃檀), 운천초(雲茜草), 운남관좌연(雲南觀座蓮), 운남산죽자(雲南山竹子), 운남오엽삼(雲南五葉蔘) 등 이루 셀수 없이 많이 있다.



운남홍화는 해발 2300m 의 고지에서 생산된다. 홍화(紅花)로 천에 염색도 하고 음식물에 색깔도 낸다. 또 연지도 만들어 부녀자들의 화장품으로도 사용된다.



원(元) 나라 때는 관청에서 전문적으로 홍화 만을 관리하는 전매청이 설치되었었다.



홍화(紅花)는 개보본초(開寶本草)에 처음 기재되어 있는 국화과 1 년생 초본 식물이다. 잎사귀 가장 자리에 톱니 처럼 생긴 가시가 붙어 있다. 한 낮에 햇빛이 쨍쨍 쬐일 때 홍화(紅花)를 채취할 경우 수분의 증발이 잘되어 가시가 매우 단단함으로 꽃을 따다가 잘못으로 인하여 가시에 찔리면 손에 상처를 입고 부르트기도 하고 가렵고 알러지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약농(藥農)들은 잎사귀에 이슬이 묻어있는 이른 새벽 부터 홍화(紅花)를 채취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가시에 이슬이 묻어 축축함으로 가시가 단단하지 않고 연하기 때문이다.



홍화(紅花)는 매년 3 월에 개화하며 화기(花期)가 다른 꽃에 비하여 길어서 2, 3 개월 꽃이 피어 있다.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홍화(紅花)는 붉으나 약간 황색(黃色)을 띄고 있으며 신강(新疆) 지방에서 생산되는 홍화 보다 가격이 비싸다. 홍화(紅花)는 무게가 가벼워서 한 마지기(200 평(坪))에서 그저 몇 킬로그램 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5, 6 월에 노랑색이 빨강색으로 변할 때 채취해야 된다.



의종금감(醫宗金鑑)에 실려있는 도홍사물탕(桃紅四物湯)은 사물탕에 도인(桃仁)과 홍화(紅花)를 가미한 것으로 부녀자들의 경기(經期)가 빠르고 양이 많고 색자질점조(色紫質粘稠)하며 괴상(塊狀)일 경우와 복통과 복창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처방이다.

2011년 5월 8일 일요일

번목별(蕃木鼈)

번목별(蕃木鼈)



무협소설(武俠小說)에 보면 견혈봉후(見血封喉)와 단장초(斷腸草)와 견기약(牽機藥)은 9 대독약(大毒藥) 중 3 종(種)에속한다.



견기약(牽機藥)은 마전자(馬錢子)의 별명이며 번목별(蕃木鼈)이라고도 부른다.



마전자(馬錢子)와 남당(南唐)의 최후 황제 이욱(李煜 : 서기 958 년 – 서기 975 년)과 관계가 깊다. 조광윤(趙匡胤)이 북송(北宋)을 건립하고 중원(中原)을 통일한 후 남당왕 이욱을 연금(軟禁)했다. 음력 7 월 7 일은 이욱의 생일이다. 이욱의 사랑하는 절세미인 소주황후(小周皇后 : 서기 950 년 – 서기 978 년)는 송태종의 침실 안으로 불러 들여졌으나 이욱은 아무런 힘이 없이 옥중에 같혀있으며 비통한 심정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하고 망강남(望江南)과 자야가(子夜歌)와 우미인(虞美人) 등 명곡(名曲)을 썼다.



사서(史書)에 의하면 송태종 조광의는 여러차례 소주황후를 강간했다고 한다. 소주황후는 강간 당하고 나서 구슬피 울었다. 후에 송태종 조광의(趙匡義 : 서기 976 년 – 서기 997 년)는 이욱에게 독약 견기약(牽機藥)을 먹여 죽여버렸다. 이욱이 독살된 후 소주황후도 29 세의 꽃다운 나이에 죽어 버렸다.



견기약(牽機藥)은 중독 반응이 매우 빠른 독약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독약 중 하나이다. 쥐약을 만들 때 반드시 마전자(馬錢子: 견기약)가 들어 간다.



고대인들의 소설 속에 보면 마전자(馬錢子)는 살인무기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마전자 알칼로이드를 커피 속에 탈 경우 마전자(馬錢子)의 고미(苦味)를 엄폐할 수 있다.



원래 마전자(馬錢子) 중독에 걸리면 머리와 목의 근육에 심한 경련이 생겨 머리가 앞으로 수그러지게 됨과 동시에 최후엔 두 다리와 머리가 서로 상접(相接)하여 사망하는데 눈뜨고는 차마 볼수 없다.



마전자(馬錢子) 중독의 고통은 매우 심하다.



현대 과학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마전자(馬錢子)의 독성 성분은 스트리키닌(Strychinine)이다고 한다. 사람이 스트리키닌 5mg 내지 10mg 복용시 중독에 걸리며 30mg 복용시 사망한다. 마전자(馬錢子) 생약(生藥) 7g을 복용하면 사망한다. 마전자(馬錢子)의 잠복기간은 매우 짧아서 30 분 내지 180 분 이내에 발작이 나타난다.



마전자(馬錢子)를 내복할 경우 반드시 가공포제를 거쳐야 한다. 포제방법은 식초와 감초를 사용한다. 그리고 일일 용량은 0.3g 내지 0.6g 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된다. 마전자(馬錢子)의 입약(入藥) 부분은 종자이며 동전 모양으로 생겼다. 그래서 마전자(馬錢子)란 이름을 얻었다.



마전자는 통락지통 해주고 산결소종 해주는 공효가 있다. 그래서 질타손상과 소아마비 후유증과 류머티즘 관절통과 삼차신경통과 요추간반돌출증과 어혈동통과 전신관절구급과 마목과 암종(癌腫)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마전자의 종자는 편원형이나 편타원형인데 직경은 1.5cm 내지 3cm 이고 두께는 3mm 내지 6mm 이며 한 쪽은 약간 볼록하고 반대편은 약간 오목하여 영락없이 동전 처럼 생겼다. 표면에 용모(茸毛)가 나있다.



중증 근무력증의 치료에도 사용된다. 중독증상은 맨처음 두통과 두훈과 번조와 호흡증강과 근육추근감이 생기며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고 호흡이 가중된다. 동공은 축소되고 가슴이 갑갑해져서 호흡작용이 비정상적이다. 신근(伸筋)과 굴근(屈筋)이 극도로 수축된다. 청력과 시력과 미각이 과도로 민감해 진다. 최후로 호흡근이 강직되기 때문에 질식 사망한다.



해독방법은 환자를 즉시 병원으로 옮기거나 위(胃)를 세척해낸 후 감초, 녹두, 방풍, 구등, 청대, 생강 등을 수전복한다.



1. 녹두 100g 과 생강 100g 을 수전복한다.

2. 꿀 6g 과 녹두 120g 과 감초 30g 을 수전복한다. 추축이 발생할 경우 방풍 6g 과 감초 10g 과 구등 12g 과 생강 5g 과 청대 2g 을 수전복한다. 추축이 엄중할 경우엔 오공(蜈蚣) 3 마리와 전갈(全蝎) 6g 을 가루내어 한번에 복용한다.

견혈봉후(見血封喉)

견혈봉후(見血封喉)



독일 사람으로써 서기 1622 년에 명 나라에 들어간 탕약망(湯若望)이란 선교사가 있다. 그는 1645 년에 흠천감(欽天監 : 천문대장)을 지냈고 1646 년에 시헌력(時憲曆)을 완성했으며 신역법(新曆法 : 현재의 陽曆)을 중국에 최초로 보급한 사람이다



청(淸) 나라 제 3 대왕 순치황제(順治皇帝 : 서기 1644 년 – 서기 1661년)의 왕사(王師)를 지내기도 하였다.



탕약망(湯若望)의 본명은 Johann Adam Schall Von Bell (서기 1591 년 – 서기 1666 년)이며 세조(世祖 : 順治)의 황태후의 원인 모를 병을 치료해 순치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탕약망(湯若望)은 간신(奸臣) 오배(鰲拜)를 비롯한 궁정(宮廷) 대신(大臣)들의 모함으로 반역죄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았다.



투옥된 이유 중 하나는 견혈봉후(見血封喉)라는 독(毒) 나무 가지로 침(針)을 만들어 순치황제(順治皇帝)를 찔러 죽였다는 것과 주술을 써서 일찍 죽게 했다는 것이다.



후에 제 4 대왕 강희(康熙(聖祖) : 서기 1662 년 – 서기 1722 년)에 의하여 다행히 억울한 누명이 벗겨졌다.



왜냐하면 궁내(宮內)에서 견혈봉후(見血封喉)라는 독나무를 본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견혈봉후(見血封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견혈봉후(見血封喉)는 아열대와 열대 식물이므로 수도 북경과 같은 북부 온대 지방에서는 서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견혈봉후(見血封喉)는 비가 많이 와서 습기가 많은 고온 다습한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해남도(海南島)의 가장 남쪽 도시 능수현(陵水縣 : 북위 18 도) 북부와 만녕시(萬寧市) 사이에서 견혈봉후(見血封喉)가 생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식물과 청(淸) 나라 제 5 대왕 세종(世宗 : 서기 1723 년 – 서기 1735 년)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다음은 민간에 전해 내려 오는 혈적자(血滴子)에 관한 두 가지 다른 고사(故事)이다.



첫째 한 여름철에 매미들은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앉아 하루 종일 운다. 어떤 사람들은 긴 대나무 끝에 찐득 찐득한 점성(粘性) 물질을 발라 달라 붙게하여 매미를 잡는다.



청(淸) 나라 제 5 대왕 세종(世宗 : 서기 1723 년 – 서기 1735 년) 때 정부기관 중에 특무기구(特務機構)가 설립되었다. 특무대원들은 평민복 차림으로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찻집에 들어가서 차(茶)를 마시며 호동(胡同 : 골목)을 두루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여론을 몰래 청취하여 조정(朝廷)에 보고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다.



이 특무기구의 별명은 점간처(粘竿處)란 별명을 갖고 있었으며 특무대원들은 혈적자(血滴子)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점간처(粘竿處)란?



긴 대나무 끝에 아교풀과 같이 찐득 찐득한 물질을 발라 반정부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높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신나게 노래하는 매미를 사로 잡듯이 반정부 인사들을 속출해 내는 기구란 뜻이다.



혈적자(血滴子)에 대한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



청(淸) 나라 제 11 대왕 덕종(德宗 : 서기 1875 년 – 서기 1908 년) 광서(光緖) 년간에 궁안에 있는 독약(毒藥) 창고 속에서 두 병의 독약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옹정(雍正 : 世宗) 초년(初年)에 광서성(廣西省) 무신소(抚臣所)에서 바친 독약이었다.



청대야사(淸代野史)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옹정(雍正)이 즉위하자 마자 광서(廣西) 순무(巡抚) 이발(李绂)에게 밀지(密旨)를 하달하여 광서 지방에 혹시 견혈봉후수(見血封喉樹)가 있는지 찾아 보라고 어명을 내렸다.



순무(巡抚)란?



임시로 지방에 파견하여 민정과 군정을 순시하던 대신을 일컫는다. 밀지란? 밀칙(密勅)이며 임금이 몰래 내린 지령이다.



옹정(雍正)이 밀칙을 하달한 이유는 혈적자(血滴子)라는 독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혈적자는 독사(毒蛇)의 독액(毒液)과 독나무의 즙액(汁液)을 혼합하여 만든 독약이었다.



사람들이 견혈봉후(見血封喉)란 말을 들었을 때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허구(虛構)한 물질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이 창조한 실질적인 독나무이다.



해남도 남단의 만녕시(萬寧市) 열대식물원에 가보면 직접 견혈봉후(見血封喉)를 볼수 있다. 키가 크고 나뭇잎이 무성하기 때문에 보통 나무와 똑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견혈봉후(見血封喉樹) 속에 극독약즙이 들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견혈봉후(見血封喉)는 키가 큰 상록(常綠) 교목(喬木)이며 보통 키가 평균 30m 쯤 이나 된다.



견혈봉후수(見血封喉樹)의 독성 성분은 견혈봉후감(見血封喉苷 : 사포닌)인데 심장의 혈액 수출량을 대폭 증가시켜 심장박동을 빠르게 해주는 공능이 있다.



현대 의약학상 연구 개발 가치가 높은 식물이다. 견혈봉후수(見血封喉樹)는 심장병의 치료는 물론 강심(强心) 작용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견혈봉후(見血封喉) 수피(樹皮) 속에 들어있는 독즙(毒汁)이 사람의 피부에 있는 상처 속에 묻어 혈액속으로 들어가면 호흡이 마비되고 근육이 마비되며 혈액이 응고되고 심장박동이 감약되며 최후로 심장이 멈추어 사망하게 된다.



잘못으로 인하여 제독(制毒) 시키지 않고 먹을 경우 심장마비와 심박정지가 되며 유즙(乳汁)이 눈 속으로 들어갈 경우 즉시 장님이 된다.



유즙(乳汁)을 화살 촉 끝에 발라 사람과 동물에 쏘아 맞으면 즉사한다. 견혈봉후(見血封喉) 겉에 하얀 백반(白斑)을 볼수 있는데 유백색 독즙이 소나무의 송진 처럼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견혈봉후(見血封喉)의 학명은 Antiaris Toxicaria 이다. 전독목(箭毒木) 또는 견혈봉후(見血封喉)라고도 칭한다.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전독수(箭毒木), 저명자시유어이전적인용타적수즙도도전두상사살야수이래(這名字是由於以前的人用它的樹汁塗到箭頭上射殺野獸而來), 거설(據說), 피사중적야수(被射中的野獸), 왕파상주칠보혹왕파하주팔보(往坡上走七步或往坡下走八步), 우혹자재평지상주구보(又或者在平地上走九步), 도필사무의(都必死無疑), 당지인칭칠상팔하구불활(當地人稱七上八下九不活).”



다시 말하면 ”전독수(箭毒樹)란? 고인들이 이 나무의 즙을 화살촉 끝에 발라 짐승을 사냥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들 짐승들은 이 나무의 독이 묻은 화살에 맞으면 언덕을 올라갈 때는 일곱 발(步) 걸어가서 쓰러져 죽고 언덕을 내려올 때는 여덟 발(步) 걸어가서 쓰러져 죽으며 평지를 걸어 갈때는 아홉 발(步) 만 걸어가면 쓰러져 죽는다. 그래서 화살촉에 맞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칠상팔하구불활(七上八下九不活)” 이란 속어를 만들어 냈다.” 는 뜻이다.



옛날에 동인도(東印度) 군도(群島)의 원주민과 영국군이 싸울 때 동인도(東印度) 제도의 인디언들은 화살촉 끝에 견혈봉후수(見血封喉樹)의 즙액을 묻혀 영국 사병(士兵)들을사살했었다.



견혈봉후(見血封喉)의 독성을 사용하여 봉건 황제들은 반정부 인사들을 살해했고 들 짐승들을 사냥하였다.



고대 중국에서 독주(毒酒)를 사용하여 사형을 집행했었는데 그중 하나는 짐주(鸩酒)가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末期) 진(秦 : BC 403 년 – BC 221 년) 나라의 정치가 여불위(呂不韋 : ? – BC 235 년)는 진(秦) 나라 제 10 대왕 장양왕(壯襄王 : BC 249 년 – BC 247 년) 때 승상(丞相)에 올랐다.



여불위는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한 사람이다. 장양왕이 죽고나서 제 11 대왕위에 오른 진왕(秦王(政))은 실제로 여불위의 친자식이라고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여불위는 정(政)의 모친과 밀통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폭로되자 독약을 먹고 자살했는데 그 독약이 바로 짐주(鸩酒)이었다.



고대에 독(毒)은 궁정(宮廷) 음모(陰謀)와 직결되었으며 궁정 음모엔 항상 독주가 뒤따랐다. 죽이긴 죽여야 겠는데 가혹한 형벌은 차마 내릴 수 없고 대신(大臣)들의 체면을 살려 점잖게 임금이 대신(大臣)들에게 사약(賜藥 : 毒酒)을 내려 마시게 함으로써 자결케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짐(鸩)은 일종의 새인데 깃털 속에 독이 있어 그 깃털과 함께 담근 술을 마시면 즉사한다고 한다. 짐주(鸩酒) 외에 궁중에서 사용했던 또 하나의 독약은 견기약(牽機藥)이다.



전독목(箭毒木)의 입약(入藥) 부분은 수즙(樹汁)이고 성미(性味)는 온(溫), 고(苦), 극독(劇毒)이다. 고혈압과 심장병을 치료하는데 독을 제거시킨 후 유효 성분을 취하여 사용한다. 전독목의 독성 해독에 홍배죽간초(紅背竹竿草)를 사용한다.



전독목(箭毒木)의 수령(樹齡)은 200년 이상이고 최근 광동성(廣東省) 뇌주시(雷州市) 뇌성진(雷城鎭) 상파남촌(上坡南村)에서 20 주(株)가 발견되었고 뇌주시(雷州市) 전체에서 약 600 주(株)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뇌주(雷州)는 개명되어 현재는 해강시(海康市)라고 부른다. 광동성의 서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 뇌주(雷州) 반도내에 있는 시(市)이다. 동한(東漢) 때 복파(伏派) 장군의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며 유배지(流配地)로써 이름 난 곳이다. 예를 들면 소동파(蘇東坡), 소철(蘇轍), 구준(寇准), 진관(秦觀), 이강(李綱) 등을 포함하여 열 명의 저명한 인사들이 귀양갔던 곳으로써 이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십현사(十賢祠)가 건립되었다.

2011년 5월 6일 금요일

조쇠(早衰) 예방 지압

조쇠(早衰) 예방 지압



모든 사람은 늙는 것을 싫어하지만 신체가 뇌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그러나 남 보다 먼저 일찍 늙는 것은 원치 않는다. 어떤 사람은 연령과 비례하지 않고 더 일찍 늙는다. 예를 들면 시력과 청력이 남 보다 먼저 감퇴되고 머리카락이 일찍 희어지며 치아가 남 보다 일찍 빠지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인체의 모든 기관의 작용이 하강된다.



다음과 같은 혈위(穴位)를 하루에 한 차례 안마해 주거나 지압해 줌으로써 기혈(氣血)과 음양(陰陽)의 평형을 유지시켜 조쇠를 예방할 수 있다.



첫째 신경(腎經)의 용천혈(湧泉穴)이다.



용천혈(湧泉穴)을 양쪽 발바닥에서 취하여 안마나 지압을 매일 해준다. 용천혈(湧泉穴)은 발바닥의 중심 선상에서 앞으로 3 분의 1 되는 우묵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발바닥을 간지럽혀 안쪽으로 오무릴 때 사람 인(人) 자(字)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중심에 우묵 들어간 곳이다.



둘째 비경(脾經)의 삼음교혈(三陰交穴)이다.



삼음교혈(三陰交穴)은 안쪽 복숭아뼈의 위로 3 치(寸)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강이 뼈 뒷쪽 경골후연(脛骨後緣)에 있다.



셋째 독맥(督脈)의 명문혈(命門穴)이다.



등뒤에서 취혈한다. 두번째 요추극돌기(腰椎棘突起)와 세번째 요추극돌기 사이의 우묵 들어간 곳이 명문혈(命門穴)이다. 또는 양쪽에 있는 제 12 늑골(肋骨)의 끝을 연결한 선상의 중앙에 있다.



이상 세 혈위(穴位)는 조쇠(早衰)를 예방해 주는 침점이다.

구등(鉤藤)은 고수왕(古樹王)

구등(鉤藤)은 고수왕(古樹王)



성당산(聖堂山)은 대요산(大瑤山)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아홉 굽이로 삥 둘러싸여 있는 명산(名山)이다.



다음은 대요산(大瑤山) 요족(瑤族)들에게 전해 내려 오는 전설 중 하나이다.



“유일위요족두령(有一位瑤族頭領), 공감노인인타피관병추포(公甘老人因躲避官兵追捕), 수수조기휴대적나미분살거(隨手抓起携帶的糯米粉撒去), 나미분순간화위성당산(糯米粉瞬間化爲聖堂山), 산여산지간나좌과과만장심연적천교(山與山之間那座跨過萬丈深淵的天橋), 취시공감노인해하자기적백두건(就是公甘老人解下自己的白頭巾), 포향고봉이변성적(抛向高峯而變成的). 성당산적미경(聖堂山的美景), 피칭위인간선경(被稱爲人間仙境), 취연야화도유타적약용가치(就連野花都有它的藥用價値), 난괴후래일위앙모공감노인적채약선생(難怪後來一位仰慕公甘老人的採藥先生), 간도성당산미경적시후(看到聖堂山美景的時候), 유연망반(流連忘返), 최후거연재산중도과료삼년이부지(最後居然在山中度過了三年而不知), 출산시재발현당일자기대상산적나파시도(出山時才發現當日自己帶上山的那把柴刀), 도병조이부후성회료(刀柄早已腐朽成灰了).”



다시 말하면 ”옛날에 성당산 속에 공감노인(公甘老人)이라고 불리우는 요족의 두령(頭領)이 관병(官兵)들의 추격을 받고 도망가다가 몸에 지니고 있던 찹쌀 가루를 휙! 뿌렸더니 순간적으로 성당산이 나타났다.



공감노인(公甘老人)은 만장(萬丈 : 1 장(丈)은 3m) 깊이의 계곡에 걸쳐있는 구름 다리를 지나 자신의 머리에 두르고 있던 흰 머릿 수건을 던졌더니 고봉으로 변했다. 성당산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사람들은 성당산을 ”인간선경(人間仙境)” 이라고 부른다.



성당산에는 약용 가치가 풍부한 야생화가 만발하여 있다. 그러길래 후에 공감노인(公甘老人)을 경모하는 채약 선생 한 분이 채약하러 성당산에 올라갔다가 성당산의 미경(美景)에 도취되어 넋을잃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조차 잊어 버렸다.



어느덧 성당산에 머문지 3 년이 지나갔다. 그제서야 채약 노인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산에 채약하러 올라 갈때 가지고 갔던 시도(柴刀)의 칼자루는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칼날은 녹이슬어 쓸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하산(下山) 할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는 뜻이다.



시도(柴刀)란?



채약하거나 땔 나무를 하는데 사용하는 큰 칼을 일컫는다.



성당산에 구등(鉤藤)이 많이 생장하고 있는데 구등(鉤藤) 역시 교고남(絞股藍)과 마찬가지로 등상(藤床狀) 식물이며 거친 가지와 갈고리를 지니고 있다. 구등(鉤藤)의 길이는 약 10m 에 달한다.



거칠었던 구등(鉤藤)의 가지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마손되고 결국은 갈고리(鉤) 마저 문드러 없어져 버린다. 구등(鉤藤)의 갈고리는 어린 가지에 많이 집중되어 있으며 갈고리는 변태된 가지이다.



나이가 많은 구등(鉤藤)은 300 년이 지난 것도 있는데 매해 봄이 되면 새 가지와 새 잎을 낸다. 고인들은 악조건의 생활 환경 속에서 오래 견디고 오래 살며 끈질기고 생장력이 강한 식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임상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한약의 약효를 검증하였다. 구등(鉤藤)도 이와 같은 한약의 일종이다.



약농(藥農)들은 구등(鉤藤)을 채집하자 마자 칼로 자른 후 햇볕에 말려서 가공창으로 보낸다.



구등(鉤藤)의 성미(性味)는 감(甘), 량(凉)이다. 소풍청열 작용과 평간정경 작용이 있다.



구등(鉤藤)은 내차(奶茶)의 주요 성분이다. 내차(奶茶)란? 몽골과 청해성(靑海省)과 신강성(新疆省)과 티베트 등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이 즐겨 마시는 차(茶)이다.



구등(鉤藤)은 응조풍(鷹爪風)이라고도 부른다. 응조(鷹爪)란? 매의 발톱을 일컫는다. 구등(鉤藤)의 모양은 영락없이 매의 발톱 처럼 생겼다. 구등(鉤藤)의 갈고리(鉤)는 잎사귀가 붙어있는 겨드랑이(葉腋)에서 돋아나는데 바로 갈고리 부분의 줄기와 가지를 채취하여 약으로 사용한다.



구등(鉤藤)은 남북조 시대 도홍경(陶弘景)이 서기 536 년에 저술한 명의별록(名醫別錄)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의가에서는 구등(鉤藤)의 기미(氣味)가 경(輕)함으로 소아과 전용약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후세 의가에서 구등(鉤藤)을 계속 임상 실험하여 산부인과와 내과와 소아과에서 상용(常用)하게 되었다.



구등(鉤藤)을 20 분 이상 끓일 경우 혈압을 내려주는 약성이 대폭 경감됨으로 주의를 요한다. 그래서 고인들은 구등(鉤藤)을 후하(後下)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