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5일 수요일

안연지락(顏淵之樂)

안연지락(顏淵之樂)
공자(孔子)는 안연(顏淵)이라고 불리는 제자를 항상 칭찬하였다. 왜냐하면 안연(顏淵)은 덕행을 구비하고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는 안연(顏淵)을 일컬어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 라고 기록해 놓았다.
다시 말하면 ”안연(顏淵)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화를 풀지 아니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 는 뜻이다.
안연(顏淵)의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능력은 대단하였다. 안연(顏淵)은 절대로 화를 내는 법이 없고 치욕을 참고 굴욕을 참는 힘이 비상했다.
또 안연(顏淵)은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편안하게 지낸다.
즉 "일단식(一簞食), 일표음(一瓢飲), 회야불개기락(回也不改其樂)" 이었다.
다시 말하면 ”소쿠리 밥과 표주박 물을 마시며 살지라도 항상 기쁘다.” 는 뜻이다.
안연(顏淵)은 수신(修身)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
논어에 보면 안연(顏淵)에 대하여 "무벌선(無伐善), 무시노(無施勞)" 라고 언급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남모르게 힘써 일한다.” 는 뜻이다.
안연(顏淵)은 본래 자기의 공로를 뽐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장점을 과시하지 않는 것이 그의 장점 중 장점이었다. 안연(顏淵)은 항상 자기를 낮추고 자기 자신의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안연지락(顏淵之樂)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孔夫子很贊嘆他的學生顏淵,顏淵具備很好的德行.在《論語》裏孔夫子贊嘆顏淵是"不遷怒,不貳過".顏淵的改過能力很強,而且他不會發怒,忍辱的功夫也非常好.顏淵又能做到安貧樂道,"一簞食,一瓢飲,回也不改其樂".顏淵確實做到修身的功夫.在《論語》裏同時也提到顏淵是"無伐善,無施勞".顏淵從來不誇耀自己的功勞,不炫耀自己的優點.他很謙卑,懂得把功勞讓給別人,總覺得那些都是自己應該做的事。”

2012년 9월 4일 화요일

태종납간(太宗納諫)

태종납간(太宗納諫)


어느 날 한 대신이 당태종(唐太宗 : 서기 626 년 - 서기 649 년)에 관한 비평을 장황하게 일장연설을 한 후 궁을 떠났다.


그 신하의 일장연설을 함께 듣고 있던 한 대신이 당태종(唐太宗)에게 ”대왕! 그가 황상을 비평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어찌하여 그의 연설을 중단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를 징벌하지 않습니까?” 고 말했다.


당태종(唐太宗)은 ”그 신하가 나를 비평하는 말들 중에 80% 는 틀린 말이고 20% 는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신하의 비평 중 20% 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신하의 비평을 그 자리에서 제지시키거나 반박하거나 한다면 누가 감히 간언을 하겠는가?” 고 대답하였다.


당태종(唐太宗)은 모든 사람들의 간언을 폭넓게 받아 들이고 자기 나름대로 반성해 보았다.


당태종(唐太宗)은 오히려 이러한 풍조를 조성하기 위하여 충신들의 간언과 충고를 막지 않았다.


당태종(唐太宗)은 자기 면전에서 자기를 비방하고 조소하여도 꾹 참고 끝까지 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일 개인의 생각이 어느 때는 예기치 못한 크나큰 훌륭한 일을 성취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태종납간(太宗納諫)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有一次,有一個臣子長篇大論地批評唐太宗.批評完之後,這位臣子就出去了.旁邊幾位大臣就跟皇上說:"皇上,他所說的多數都是假的,您為何不責罰他?為何不制止他的話?"唐太宗就說:"他說十句有兩句對的,我就采納.假如我去制止他,這樣一傳出去,說皇上對別人的諫言還會反駁,還會批評.此風一起,以後誰敢諫言?"唐太宗能夠看得這般深遠,能廣納眾言,再自己去判斷,這樣就不會堵塞忠臣對他的勸諫.唐太宗面對別人譏毀的時候,他是持這樣的態度.所以,一個人的心量有多大,成就就有多高。”

2012년 9월 3일 월요일

덕화복인(德化仆人)

덕화복인(德化仆人)
춘추 시대에 어질고 덕망이 높은 안영(晏嬰) 재상은 여러 방면에서 타(他)에 모범이 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안영(晏嬰)을 매우 존중했으며 칭찬했다.
안영(晏嬰) 재상은 30 년 동안 옷을 한 벌 가지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영(晏嬰)은 의복을 항상 깨끗이 빨아서 단정하게 입고 다녔다. 안영(晏嬰)은 물건을 사랑했기 때문에 오랫 동안 보존할 수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로 받았을 때 그 물건이 아까워서 오랫동안 사용하게 된다. 안영(晏嬰)의 이와 같은 청렴한 기풍은 문무백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본이 되어 전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안영 재상이 타고 다니는 마차를 부리는 안영 재상의 마부는 매일 안영(晏嬰)을 마차에 태워 사무실 까지 대령해 준다.
마부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마다 목을 추켜 세우고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가슴을 쫙펴서 오만한 모습을 보인다.
안영 재상의 마부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마부 주제에 무엇이 그렇게 콧대를 높여 줄까? 하고 생각한다.
재상의 마차를 끌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과 비교해 볼 때 대통령이나 수상의 자동차 운전수나 마찬가지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이다.
다시 말하면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것이다.
후에 마부의 부인이 이렇게 남편이 위세를 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부의 부인은 마부에게 ”나는 당신을 떠나렵니다.” 고 말했다.
마부는 매우 긴장된 어조로 ”어째서 나를 떠나려고 합니까?” 고 물었다.
마부의 부인은 ”백성들이 안영(晏嬰) 재상의 덕행을 존중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영(晏嬰) 재상은 항상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니다. 그러나 당신은 본래 덕행이란 두 글자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만불손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한 남편을 의지하고 더 이상 살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고 말했다.
마부는 부인의 말을 듣고 참회하기 시작하였다. 마부는 ”앞으로 내가 개과천선할 것입니다. 당신은 부디 나를 떠나지 말아 주십시요.” 라고 부인에게 애원하였다.
그리고 나서 마부는 부인의 충고와 권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마부는 개과천선하게 되었다.
안영(晏嬰) 재상은 마부의 덕행이 날로 날로 빠른 속도로 진전됨을 알고 마부를 제(齊) 나라의 사대부(士大夫)에 천거해 주었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덕화복인(德化仆人) 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在春秋時代,有一位賢相叫晏嬰.晏嬰做出了很多的好榜樣,孔夫子對他也非常尊重和稱贊.晏嬰的一件大衣穿了三十年都沒換過,當然那一件衣服看起來還是整整齊齊的,因為"愛物者,物恒愛之".你對任何的物品愛惜,它也會回饋給你,會讓你使用得很久遠.官居宰相者一件大衣穿三十年,請問除了會影響他的家庭以外,還會影響什麽?會影響所有的文武百官,所有的人民.所以,當一個大臣他非常廉潔,就可以帶動整個社會清廉的風氣。
晏嬰的馬夫,就是幫助他駕車的仆人,每天送晏嬰去辦公.所以,馬夫每次見到人都擡頭挺胸,一副很高傲的樣子.為什麽他感覺得很高傲?因為他為宰相駕車,他就顯示出一副不可一世的樣子,用一句成語來形容,就是狐假虎威。
後來馬夫的太太知道了,有一天就跟他提出來,她說:"我要離開你,我要走了."馬夫就很緊張,他說:"怎麽了?你為何要離開我?"她說:"人家都是尊重晏嬰的德行,晏嬰宰相既有德行而且謙卑,你根本沒有德行還這樣傲慢,所以我不想依靠你,我要離開."馬夫聽了覺得很慚愧,就跟他太太說:"我一定改過,你就不要離開了."他的太太也確實很有見地,懂得要進諫、規勸她的先生,當然她的先生也有肚量接納太太的意見.後來這位馬夫很認真地改過,晏嬰覺得他的德行進步非常快速,就舉薦這位馬夫當上了齊國的大夫。

가영무질(佳英撫侄)

가영무질(佳英撫侄)


명(明) 나라 때 장가영(章佳英)이라고 불리는 처녀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장가영(章佳英)은 고아가 되었다. 장가영(章佳英)의 세 오빠는 결혼한 후 모두 죽어버렸다. 그래서 장가영(章佳英)은 오빠들의 집에서 올케들을 도우며 조카들을 키우고 살았다.


얼마 후에 세 명의 올케도 죽어 버리니 장가영(章佳英)은 세 오빠의 자식들을 도맡아 기르며 살게 되었다.


장가영(章佳英)은 조카들을 양육하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시집도 가지 못하고 조카들을 친 자식 처럼 길렀다. 장가영(章佳英)은 늙어 죽을 때 까지 조카들이 성심성의껏 보살펴 주어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가영무질(佳英撫侄)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明朝的時候,有一位女士叫章佳英.她的父母很早就過世了,所以她從小就是孤兒.她有三個兄長,後來三個兄長也很早就過世了,她就跟嫂嫂一起照顧她的侄兒們.很不幸,她三個嫂嫂也都陸續去世了.在這樣的情況下,章佳英就抱定一個宗旨,一定要好好把自己的侄兒們撫養長大,所以她終身沒有出嫁.她用真誠的愛心去愛護這些晚輩,相信她的晚年也會贏得晚輩們對她的奉養。"

2012년 9월 2일 일요일

사선양산(士選讓產)

사선양산(士選讓產)
옛날에 장사선(張士選)이라고 불리는 서생이 있었다. 그의 부친은 장사선(張士選)이 어렸을 때 죽었다.
그리하여 장사선(張士選)은 작은 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성장한 후 장사선(張士選)이 독립하려고 할 때 작은 아버지는 장사선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재산의 절반은 네것임으로 너에게 주겠다.” 고 말했다.
장사선(張士選)은 숙부님에게 ”숙부님! 숙부님은 슬하에 일곱 명의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재산을 8 등분하여 그중 한 부분 만 나에게 주면 됩니다.” 고 말했다.
숙부는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재산의 절반은 너의 아버지 소유이고 나머지 절반은 나의 소유이다. 그래서 나의 재산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고 말했다.
장사선(張士選)은 숙부님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못했다.
그래서 장사선(張士選)은 ”숙님님! 만일 절반의 재산을 내가 가질 경우 나의 사촌 형제들의 불평과 불만이 있을 것이므로 재산을 8 등분하여 8 분의 1 을 내가 갖는 것이 타당하며 그렇게 재산의 분배를 함으로써 전 가족이 화목할 것입니다” 고 말했다.
이와 같은 재산의 양보는 자기의 덕행이므로 후에 무궁한 복을 받는다.
후에 장사선(張士選)은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
도중에 관상쟁이를 만났는데 관상쟁이는 장사선(張士選)의 관상을 보더니 ”당신은 과거에 음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이번에 과거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됨은 물론이고 차후에 자손들도 입신출세하여 영광을 볼 것입니다.” 고 말했다.
장사선(張士選)이 음덕(陰德)을 쌓은 인과응보(因過應報)의 결과로 장사선(張士選) 자신의 부귀영화는 물론 후대 자손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사선양산(士選讓產)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在古代,有位讀書人叫張士選.他父親過世較早,所以他的叔叔就來撫養他.等到他十多歲能獨立了,叔叔就跟他說:"我們把財產分成兩份,一份給你,一份給我."可是張士選立即就對他的叔叔說:"叔叔,你有七個兒子,應該分成八份,而不是分成兩份."叔叔依舊堅持說:"不行,這是分給你父親的,這是分給我的,分成兩份就好."張士選確確實實感受到,要永遠不忘叔叔的恩德,如果他真的拿了那麽大一份,其他兄弟的心就不平,所以他堅持讓叔叔分成八份.後來叔叔確實就把家產分成了八份.由於這個緣故,所以家庭一片祥和。
如此一讓,讓出了什麽?讓出了自己的德行,提升了自己的心性.自性之中具足了無量智慧、無量德能、無量相好,而相好就是無量的財富.所以,當我們的自性與性德相應的時候,其後福無窮。
為什麽說積陰德的人會有好的果報?因為陰德都是從自性流露出來的.後來,張士選要到京城去考試,剛好遇到一位算命先生,看他的面相就告訴他,你積了很厚的陰德,這次考試一定會高中,而且你往後的子孫也會非常榮顯.其實這些結果,我們都可以從因果的來龍去脈推衍出來.他不只積了陰德給後代,也做了最好的榜樣垂範後代子孫。”


만방유죄(萬方有罪) 죄재짐궁(罪在朕躬)

만방유죄(萬方有罪) 죄재짐궁(罪在朕躬)

공자(서기 전 551 년 – 서기 전 479 년)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주 요왕과 순왕과 우왕과 탕왕과 주문왕과 주무왕의 예를들어 언급하였다. 공자는 또 그 당시 성왕들은 물론 사회 현상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제자들과 담론하였다.


사서를 보면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게 되고 또 고대 성왕들의 가르침을 본 받을 만 하다. 다음과 같은 예화가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요임금이 길을 가고 있었다. 요임금은 두 사람의 죄인이 묶여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요임금은 ”나의 백성들이 어째서 범죄를 저지를까?” 고 생각해 봤다. 요임금은 죄인들이 죄를 저지른 연유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죄인들 앞으로 다가갔다.


요임금은 죄인들이 붙잡혀 가는 이유를 물었다.


죄인들은 ”남의 집 물건을 훔쳤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요임금은 또 ”너희들은 어째서 남의 집 물건을 훔쳤느냐?” 고 물었다.


죄인들은 ”날씨가 오랫동안 가물어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집안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훔쳐냈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요임금은 죄인들의 말을 듣고나서 매우 난감하였다. 요임금은 죄인들을 압송해 가는 사병들에게 ”너희들은 두 명의 죄인을 풀어 주어라. 내가 붙잡아 가겠다.” 고 말했다.


그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랬다. 사람들은 ”어째서 군왕께서 죄인을 붙잡아갈까?” 이상하게 생각했다.


요임금은 ”이 두 사람이 죄를 저지른 것은 나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첫째 나의 덕행이 부족하여 천상에서 한재를 내린 것이고 둘째 내가 백성들에게 교육을 잘못 시켰기 때문에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낸 것이다.” 고 말했다.


요임금은 자기 반성을 먼저하였고 진심으로 참회하였다. 요임금의 진심으로 인하여 천지가 감동하였으며 즉시 먹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고 단비를 내려 한재를 면하게 되었다.


요임금의 진성심(眞誠心)으로 인한 천지의 감응은 확실히 불가사의 한 일이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만방유죄(萬方有罪) 죄재짐궁(罪在朕躬) 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孔夫子常常在他的言論中,談到堯舜禹湯、文武周公.談到當時的聖王,談到當時的社會現象,夫子對此是非常地向往.我們可以從史書中了解到,古聖先王確實值得我們學習效法.史書記載,有一天,堯帝走在路上,看到兩個人犯罪被抓起來.堯帝看了之後,心裏很著急.我的人民為何被關,難道犯法了?他趕快趨步上前,把事情了解清楚.結果一問之下,是因為他們偷了人家的東西.堯帝接著就問:"你們為什麽要偷人家東西?"這兩個犯人就說:"因為上天久旱不雨,我們家裏已經沒有東西吃了,不得已才偷人家東西."堯帝聽完很難受,他就對這些押解的士兵說:"你把他們兩個放了,把我抓起來吧!"當時在場的人都很驚訝,如何可以把君王抓起來?堯帝就說:"我犯了兩個大過失.第一,因為我沒有德行,所以才召感上天久旱不雨;第二,是我沒有把我的人民教好,他們才會偷人家東西."堯帝至誠地反省懺悔,這種真誠心,天地當場都感動,烏雲立刻就彌漫整個天空,降下甘露.依報隨著正報轉,感應確實不可思議。

康熙求雨
《四庫全書》記載,康熙皇帝在歷代君王中是非常有德行的皇帝.當國家遇到旱災的時候,康熙會有一段時間齋戒沐浴,齋戒沐浴之後再到天壇祈雨.康熙帝在走向天壇的時候,天空是太陽高照,沒有任何下雨的跡象.當康熙皇帝踏上天壇用他的至誠心誦讀祭文,在誦讀祭文的過程中,天空就開始烏雲密布,念完祭文之後,雨就降下來了。"



2012년 9월 1일 토요일

부형청죄負荊請罪

부형청죄負荊請罪
전국시대(서기 전 403 년 - 서기 전 221 년) 조(趙) 나라에 두 명의 대신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인상여(서기 전 329 년 - 서기 전 259 년)이고 또 한 사람은 염파(서기 전 327 년 - 서기 전 243 년) 장군이었다. 인상여는 인상여완벽귀조(藺相如完璧歸趙) 사건 때문에 조 나라에 공헌한 바가 크므로 인하여 상경(上卿)에 봉해졌다. 한 편 염파는 수 십만 대군을 이끄는 대장군이였다. 그러므로 염파 장군은 자기 보다 지위가 높은 인상여를 일개 서생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인상여는 전쟁에서 세운 공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파 장군은 항상 인상여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인상여는 염파 장군이 자기를 찾아 올 경우 일부러 부딪치기 싫어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왜냐하면 서로 좋지않은 감정이 있으므로 부딪칠 경우 마음 속에 번민이 생겨 병에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염파 장군의 마차가 앞에 오고 있었다. 인상여는 염파 장군을 먼빛으로 보자마자 즉시 마차에서 내려 자기가 손수 말머리를 돌렸다. 마차에 타고 있던 인상여의 가족들은 마음속에 불만이 생겨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나약합니까? 어째서 염파 장군을 두려워합니까?” 고 불평하였다. 인상여는 ”나 개인의 수치는 아무런 상관없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염파 장군과 충돌이 빚어질 경우 조 나라가 장래 큰 재난을 겪을런지 모른다. 또 강국인 진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나의 말 머리를 돌려 염파 장군을 따라간 것이었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의 영예와 치욕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 고 말햇다. 인상여는 항상 나라와 백성들을 먼저 생각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염파 장군의 귀에 들어갔다. 염파 장군은 성현들의 서적을 탐독한 사람이므로 참회하는 마음이 있었다. 염파 장군은 가시 나무로 만든 매를 한 다발 자기의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다. 인상여는 염파 장군이 친히 자기 집을 찾아 온 것을 보고 감동하였다. 급히 대문 밖으로 나가 염파 장군의 손을 붙잡고 영접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염파 장군은 개과천선하였고 두 사람은 허물없이 친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조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일했다. 부형청죄란? 잘못을 인정하여 정중히 사죄한다는 뜻이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부형청죄(負荊請罪)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負荊請罪
在戰國時代,趙國有兩位大臣,一位是藺相如,另外一位是廉頗將軍.因為藺相如完璧歸趙,對趙國有很大的貢獻,趙王把他封為上卿.而廉頗是帶領數十萬大軍的大將軍,他就覺得藺相如是一介書生,也沒有立下汗馬功勞,居然位子在他之上,心理很不平,常常去找藺相如的麻煩.藺相如看到廉頗來找他,不想跟他當面衝突,就以生病為理由避開.有時候走在路上,剛好廉頗將軍的馬車來了,藺相如立即交代他的下人繞道而行.他們這些家人心理就很不平衡,說:"大人,您為何這樣懦弱?為何會怕他?"藺相如就告訴他們:對我個人的這種羞辱沒有關系,假如我跟廉頗將軍起了衝突,國家將會有很大的災難.秦國為什麽不敢侵犯我們?就是有我跟廉頗將軍在.我們不能因為個人的榮辱,而令國家陷於更大的危難,甚至於致使國家蒙受恥辱,那就嚴重了.藺相如念念不是想自己,而是以大局為重,為國家、為人民著想。
這段話後來傳到了廉頗大將軍的耳中,將軍畢竟是讀過聖賢書的人,立刻生起懺悔之心.所以,老人家背著荊棘,走到藺相如的家裏,負荊請罪.藺相如知道廉頗將軍來,也非常感動,趕快衝向前去把老將軍扶起來.廉頗知過能改,使兩個人變成了莫逆之交,讓趙國免於災患。"